감정은 인간과 기계를 구별시켜주는 특징이다. 우리는 감정을 느끼는 동시에 그 감정에 대해서 판단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슬픔을 느끼면 슬프다는 감정이 좋은지 싫은지 판단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근데 기계는 어떤 명령어라는 자극이 주어지면 그것을 해결할 수는 있지만 그 자극 자체에 대해서 판단할 수 없다. 물론 그 감정을 어떻게 대할지 결정할 때는 기계와 같이 이성적으로 판단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감정이 있기 때문에 자신한테 어떠한 감정을 주는 무언가에 대해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어떤 경험 A가 어떤 감정 B를 가져다 준다고 하자. A는 순간적으로 스쳐지나가지만 우리가 그 경험을 기억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이유는 B 때문이다. 물론 기억은 점차 잊혀지지만 강렬했던 그 순간이 이제 공허한 울림으로 남았다는 것을 더 이상 부정할 수 없을 지라도 우리는 그 경험을 가슴 속에 담아 추억한다. 그때 그 순간을 그리워하고 다시 오길 바라면서 그러하고, 애뜻했던 그 순간이 있었다는 것 자체만으로 소중히 여기면서도 그러하다. 그렇게 감정이 개입된 경험은 자기가 경험한 무언가한테 어떠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가능하다. 어떤 사건에 의미를 부여하면 그 사건이 개개인한테 주관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갖게된다.
우리는 흔히 어떤 경험이나 삶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러한 의미를 부여한 원인을 따져보면 받았던 감정이 그 역할을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행위를 일으키는 원인도 감정이다. 예를 들어 돈을 버는 행위의 의미를 끊임없이 물어보면 그 끝에 남는 답은 보통 ‘즐거움’, ‘만족스러움’과 같은 감정이다. 권태와 외로움도 행위를 유발하는 대표적인 감정이다. 사람들이 인간관계에서 얻을 수 있는 고통에도 불과하고 인간관계를 맺는 이유는 그것이 주는 즐거움과 더불어 인간관계를 맺지 않았을 때 생기는 권태와 외로움과 같은 패널티다.
물론 어떤 행동을 할 때 ‘즐거움’, ‘만족스러움’과 같은 감정은 같은 행위를 반복할 때마다 점차 줄어들고 그 빈자리를 권태가 채운다. 그러나 우리는 결국 다른 즐거움을 찾아나간다. 예를 들어 워커홀릭이 일을 하면서 생기는 성취욕으로 살다가 어느순간 이렇게 정신없이 사는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의문을 가지게 되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그 워커홀릭은 삶의 의미가 없어진 것이 아니라 자신한테 ‘즐거움’, ‘만족스러움’을 주는 행위가 바꿨을 뿐이다. 그는 그렇게 의미를 찾아서 다른 삶의 방식을 찾게 된다. 권태가 삶에 대한 기존의 세계관을 바꾼 것이다.
여기서 주의해야할 점은 사람들의 행동을 유발하는 원인이 감정이라고 해서 인간이 이성적이지 않은 존재는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은 이성적 사고가 자신의 감정을 배제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그런 말을 한 것일 것이다. 하지만 이성적 사고는 감정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나한테 미치는 감정적인 영향만 고려하지 않고 미래에 미칠 감정적 영향도 고려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학생이 게임을 함으로써 주는 쾌락과 공부를 통해 장기적으로 얻을 수 있는 쾌락 중 무엇이 자기한테 더 크게 다가오는지 판단할 때를 생각해보자. 게임을 선택하든 공부를 선택하든 비논리적인 선택이 아니다. 이것을 선택하는 것은 알고리즘으로 표현할 수 있다. "내가 현재 받는 쾌락이 미래에 받을 쾌락보다 큰가 -> yes면 게임을 한다 no면 공부를 한다" 이런 식이다. 결국 그는 자신한테 더 좋은 것을 이성적으로 판단해서 고른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자신의 감정을 토데로 이성적인 결정을 내린다는 것은 우리의 약점 중 하나다. 타인의 감정을 느끼지 못하고 나의 감정의 층위에서만 이성적으로 판단한다면 나 혹은 나와 동일시되는 내가 포함된 집단이 정점에 서야한다는 판단하에 대학살이 일어날 수 있고, 그것이 극적인 사례로 나타난 것이 바로 전쟁이다. 물론 생존을 위한 전쟁도 있을 수 있으나 근현대 사회에서 전쟁은, 일루미나티에 통제하에 일어나긴 했지만, 식민지 쟁탈전과 같이 자신의 집단의 이득만을 이성적으로 추구한 결과였다.
이러한 이성적 판단은 전쟁에서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점차 개인들이 감정의 층위만 고려하는 현대 사회에서도 문제가 될 수 있다. 현대사회의 문제점은 각 개인들이 주변인들마저 물질적 쾌락의 수단으로 사용해 점차 그들이 다른 사람한테 부여하는 가치가 작아진다는 것이다. 타인에 대한 사랑이 뒷받침되지 않는 이성은 파괴적인 결과를 맞을 것이다. 이 상황에서 영성인들은 어떻게 대처해야할까? 영성인들에 과제는 이 무너진 인류애 정신을 다시 되살리고 자기가 먼저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 자기 가족이나 자기가 의미부여한 무언가에 대해서만 사랑을 하는 것이 아니다. 인류 전체를 사랑해야한다. 이것은 타인들한테서 사랑뿐만 아니라 상처도 받은 우리들이 감정을 통해서만 이성적으로 판단해서 나올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모든 사람을 감정적으로 사랑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말한 사랑은 떨림과 성적인 흥분을 동반하는 불같은 사랑이나 부모가 아이를 보면서 모든 걸 해주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드는 그러한 사랑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이 직접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실체 있는 사랑이다. 내가 말한 실체 없는 사랑은 그러한 감정이 느껴지지 않더라도 그 사람의 존재만으로도 사랑할 수 있는 사랑을 말한다. 더 나아가서 자신한테 안 좋은 영향을 끼치더라도 아랑곳하지 않고 꿋꿋하게 사랑할 수 있는 사랑을 말한다. 그것을 이루려면 먼저 인간과 사회를 냉철하게 바라보고 그 본질을 깨뚫는 이성이 있어야하고 세상 사람들을 넘어 이 우주 시스템도 선을 지향한다는 확신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결국 지구에 사랑이라는 실체 없는 감정을 배우려 온 것이다. 결국 사랑이라는 것은 철저하게 이성적인 것이고 영성은 그것을 깨닫는게 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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