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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문학] 가스터가 뼈박이인 소설 -1-

뼈박핫산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6.03.14 23:02:48
조회 29601 추천 229 댓글 22
														

저자: sweetsinnerchild

원제: i gave an inch (you took a mile)

원문: http://archiveofourown.org/works/6164770/chapters/14124916


* 샌즈 석유짤이 인상 깊어서 번역해 옴

* 세계관은 언더펠, 뼈형제는 언더테일+언더펠


1 : https://gall.dcinside.com/undertale/196948
2 : https://gall.dcinside.com/undertale/205860
3 : https://gall.dcinside.com/undertale/395636


빌미

1. 직장 내 성추행은 상사에게 보고하세요




  샌즈는 자기가 약하다는 걸 안다.


  지하세계에서 약함이란 사형 선고와 같다는 것도 안다. 가학치(LOVE)와 살해량(EXP)이 생존의 필수조건인 세계에서, 두려워하거나 아니면 두려움 받거나인 계급사회에서, 약자는 밟고 올라서기 좋은 디딤돌에 불과하다. 몸이 약한 샌즈는 기습 한 번 당하기만 해도 먼지가 돼 버릴지 모른다.


  강해지려면 다른 괴물을 먼저 죽여서 가학치를 쌓는 게 제일 낫다. 샌즈가 피치 못할 싸움에서 제 몸 하나 건지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적의 선제 공격을 피한 직후 반격하면 된다. 하지만 힘겹게 가학치를 올려 봐도 체력이 나아지진 않았다. 뼈가 여리고 금방 지쳐 버려서 털끝만한 가망도 보이지 않는다.


  대신 다른 괴물의 부하가 되어 충성하고 복종하는 대가로 보호 받는 방법이 있다. 부끄러운 일은 아니다. 수많은 괴물들이 명목상의 안전이라도, 일용할 양식이라도 구해 보려고 그렇게 한다. 또한 힘 있는 자들에겐 결국 그 힘으로 굴복시킬 대상이 필요한 법이다.


  부끄러운 일은 아니다. 필요한 일이다. 게다가 샌즈에겐 동생이 있다.


  동생을 지키면서 싸우려면 훨씬 힘겹다. 파피루스는 샌즈보다 건강한 편이지만 아직 너무 어리고 너무 순진하다. 모두에게 착한 면이 남아있을 거라는 꿈을 버리지 못해서 꼭 필요할 때조차 남을 해치지 못한다.


  (그리고 바보 같은 짓일지 몰라도 샌즈는 동생의 꿈을 깨뜨리지 않는다. 어쩌면 내심 그 꿈이 사실이길 바라는지도 모른다. 글쎄, 철이 들면 녀석도 좀 달라지겠지만.)


  가족 따위 비웃음거리에 불과한 세계에서 형제를 자처하는 것도 괴상하긴 하지만, 샌즈는 자기가 ‘약하다’는 걸 안다.


  샌즈는 정에 약하다. 친절한 행동과 상냥한 말에, 사랑이란 허황된 관념에 약하다. 따뜻한 포옹에, 부드러운 손길에, 무언가 옳은 일, 좋은 일을 한다는 만족감에 약하다. 사랑 아닌 살해량만이 관건인 세상에서 그런 것들을 원한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을 원해 봤자 바보 같은 망상이란 것도 안다.


  그래도, 원한다.


  그래서 동생을 내다 버리고 세상을 바로 보게 해주지 않는 걸지도 모른다. 녀석이라면 얼마든지 ‘형’이라고 부르며 팔짱을 끼고, 하루 더 살아남은 게 기뻐 포옹을 하고, 샌즈가 먼지가 될 뻔한 날엔 울어 줄 테니까. 없는 편이 목숨 부지하긴 편할지도 모르나, 이런 세상을 견디고 살아 내는 게 동생 덕분이다. 하지만 제가 먼저 죽으면 동생은 어떻게 될까?


  그래서 어느 날 감당 못 할 싸움을 하다가 가스터가 나타나 구해 줬을 때, 샌즈는 그의 조수가 되어 숙식을 제공 받기로 한다. 동생을 살리기 위해선, 행복하게 하기 위해선 뭐든지 할 수 있었다.


--------------------


  조수로서 할 일은 간단하다. ‘가스터가 시키는 일은 뭐든지 하는 것.’


  평소에는 실험 준비를 하거나 필요하단 것들을 갖다 주거나 실험 뒷정리를 하면 된다. 가스터의 연구는 자세히는 모르지만 대단히 매력적이다. 샌즈는 이런 저런 핑계를 대고 자료실에서 책을 읽어 보고, 그의 학설을 공부해 보고, 가끔은 그의 오만한 점을 노리고 용기를 내어 자기가 이해한 게 맞는지 물어 보기도 한다. 운수 좋은 날에는 가스터가 먼저 이야기를 꺼내기도 하는데, 번득이는 눈빛이 자길 기특해 하는 거라고 넘겨짚어 본다.


  실험 자체는 그다지 즐겁지는 않다. 그나마 인간 시체보다는 괴물 먼지를 다루는 게 낫다. 그저 청소하기 편해서일지도 모르겠지만.


  근무가 끝나면 먹을 거리와 동생이 좋아할 만한 것들을 가지고 녀석하고 같이 사는 숙소로 돌아간다. 동생은 너무 어려서 연구소 일을 배우긴 어려울 테니 자기가 좀 더 가르치겠다고 변명해 두었다. 가스터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었다. 아무 감정이 없어 보여서, 상급 괴물들이 더러 즐긴다는…… 별난 취미가 없어 보여서.


  운수 나쁜 날엔 복종의 참뜻을 배워야 했다.


  가스터도 취미는 있었다. 그 대상이 파피루스가 아닐 뿐.


--------------------


  시작은 사소했다. 팔에 닿은 손이 조금 오래 머물거나, 뒷목을 스치던 손가락이 목뼈를 쥐어 보는 정도. 샌즈는 뻣뻣이 긴장하지만 가스터는 아무 말 없이 하던 실험을 계속 한다.


    손길은 길어지고 대담해진다. 손가락이 쇄골을 스윽 훑다가 오목한 어깨뼈 구석으로 들어온다. 샌즈 뒤에 붙어서서 그의 어깨를 짚은 채로 허릴 숙이고 벽장 비품을 꺼내던 참이다. 손뼈까지 더듬고 간다.


  샌즈가 바닥에 떨어지는 물건을 줍느라고 허리를 굽힐 때마다 따라붙는 시선이 진득하고 음습하다.


  ‘참아야 해.’


  만지고 쳐다보는 건 상관 없다. 죽이려고 공격하는 것보단 낫다. 그러니까 괜찮다.


  그래서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손길은 더욱 과감해진다. 척추가 앞으로 휘는 허리께 따라 손바닥이 문질리고, 다리 사이로 들어온 허벅지가 엉치뼈를 누르고, 골반 언저리에 손가락이 감긴다. 실험대에서 멀어져 연구실 구석으로 이끌려 간다.


  “그만 하십쇼.”


  결국 손을 뿌리친다. 가스터는 손만 내리고 그대로 서 있다. 샌즈는 박사를 사납게 째려 보지만 등에 닿는 벽은 단단하며 박사의 시선은 미동조차 없다.


  “옷 벗겨줄 때까지 기다리는 줄 알았다.”


  추파를 던지면서도 차분하고 진지한 음성. 진저리가 난다.


  “몸 팔러 온 게 아닙니다.”


  엄연히 조수로 들어왔다. 가스터는 피식 웃는다. 일그러진 입매가 돌아올 결론을 미리 전한다.


  “시키는 건 뭐든지 하는 게 자네 일이야. 뭐든지.”


  입꼬리가 한층 길게 올라간다.


  “몸 파는 것도 포함해서.”


  다시 손을 뻗어 온다. 이번엔 샌즈도 가만 있지 않는다. 가스터의 영혼을 푸르게 굳혀서 맞은편 벽으로 팽개치고 있는 힘껏 달린다. 어서 파피루스를 데리고 도망가야 한다. 어서.


  문고리를 쥐는 순간 가스터의 마법이 샌즈의 영혼을 잡아 바닥에 메다꽂는다. 문이 코앞인데 꼼짝도 못 한다.


  일어나서 옷을 툭툭 터는 소리가 들린다. 쓰러진 샌즈에게 저벅저벅 걸어오는 발소리는 여유롭기까지 하다. 완벽하게 제압하면서도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았을 것이다. 소리가 멎었다가 등 쪽 갈비뼈가 지긋이 즈려밟힌다. 숨이 막힌다.


  “자네 인생 최고로 멍청한 짓이었어.”


  교양 있는 억양 아래 깔린 노여움이 느껴져 몸서리친다.


  “샌즈 군, 제법 똑똑하지 않나. 가능성을 알아보고 동생까지 살려 주었는데, 나한테 대들어? 아무래도 내가 자네 지적 수준을 과대평가했나 봐.”


  영혼을 옭아매는 마법을 떨치고 일어서려고 애써 보지만, 가스터는 벌레 밟듯 발을 콱콱 짓이긴다. 고통스런 비명이 터져 나오고서야 발을 떼어 준다.


  “실수 한 번쯤은 용서해 줄 수도 있어. 두 번 다시 같은 실수를 하지 않는다면 말이지. 샌즈 군 생각은 어떤가?”


  영혼의 구속이 약간 풀어지자 고개를 든다.


  “죽일 거면 죽이십쇼.”


  “죽이라니? 내가 왜?”


  실험복 자락이 바닥에 슥 끌리더니 앙상한 손이 샌즈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는다. 달래는 듯한 손짓이지만 어린애 대하듯 거만하다.


  “자넨 살아 있는 편이 더 쓸모 있어.”


  “그냥 당하진 않을 겁니다.”


  손길은 잠깐 멈췄다가 계속된다.


  “자네 동생은 어떻게 되겠나?”


  논리의 비약이나, 논지는 뚜렷하다. 동생을 위협하는 악당을 가만 둘 수 없어 마력을 있는 대로 긁어 모은다.


  “미친. 동생 건들지 마, 개새끼야! 동생은—”


  쓰다듬어지던 머리가 움켜잡혀 바닥에 쾅 처박힌다.


  “정숙.”


  깨질 듯이 아픈 머리에 대고 속삭인다. 흐리고 아뜩한 눈을 연신 깜빡이자 꾀죄죄한 잿빛 타일바닥에 가물가물 초점이 돌아온다.


  “어떻게 되느냐 하면, 자네하고 자네 동생 둘 다 다음 실험 대상으로 써먹는 거야. 자네는 통제군, 동생은 실험군으로 편성해서, 동생이 실험 받는 내내 자넨 구경밖에 못 하는 거야. 아, 그 다음엔, 자넬 실컷 따먹고, 내 마음대로 처분하는 거지. 알아 들었어?”


  죽일 거다. 저 개새끼 죽여서 살해량을 올릴 거다. 동생이 말려도 저 새낀 죽일 거다.


  “아니면……,”


  다시 자상해진 손길이 아픈 자리를 어루만진다. 바닥에 얼굴이 박힌 채 이를 간다.


  “얌전히 대 주면 둘 다 계속 보호해 줄게. 동생한텐 손대지 않는다고 약속할 수도 있어. 동생은 아무 것도 모른 채 자네 숙소에 살면 돼. 그 순진무구한 세계 평화 관념도 자네가 지켜줄 수 있어. 그런데 나랑 자넨 그렇게 순진하진 않지?”


  낮게 큭큭대는 웃음 소리.


  “게다가 용케 날 죽여도 끝은 아니야. 얼마나 많은 괴물들하고 더 싸워야 할까? 얼마나 많은 괴물들이 자네들을 쫓아다닐까? 왕실 과학자를 죽였으니 말이야. 아주, 아주 많이 싸워야겠지.”


  박사는 일어서며 아무렇지 않게 샌즈의 영혼을 풀어준다. 샌즈는 굴욕감, 패배감에 질려 그대로 엎어져 있다.


  “내 방에서 기다리겠네. 잘 생각해 봐. 알겠지?”


  그가 나간다. 샌즈는 움직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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