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Longing, Heartache Love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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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피루스의 스파게티.
프리스크가 요새는 먹고 삼킬 수 있을 정도라고 언질을 줬었지만, 착한 프리스크가 자신의 친구에게 상처를 입혀주기 싫었기 때문에 어떻게든 가슴 아플 수 있는 혹평을 피해서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생각을 고스란히 입밖으로 내뱉었다간 바로 자신의 코앞에서 밝은 표정으로 요리한 음식을 건네주고 있는 파피루스가 상심해할지도 모를 것이다. 물론 아스리엘은 그런 생각에 다다를 만한 위인이 아니었다. 샌즈가 곧 바로 자신에게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는 원초적인 공포를 떠나, 그것은 분명히 잘못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막상 이걸 먹고 표정을 어떻게 유지해야 할지 막막한 그였다.
' 음... ...먹고 죽진 않겠지... '
걱정이 담겨있는 손의 미세한 떨림. 그러나 그것을 어떻게든 이겨냈는지 선물꾸러미를 옆으로 조심스럽게 내려놓고선 스파게티 접시를 받아드는 아스리엘. 이윽고 포크를 조심스럽게 집어들어 새우와 양송이 버섯을 동시에 찍어, 그 주변으로 면을 돌돌말아 크림소스에 묻힌다. 그리고 소스가 떨어질까 그릇을 자신의 가슴 곁으로 가까이 갖다댄채, 입 속으로 포크를 직행시킨다. 그리고 스파게티만 입 속에 남긴채 포크를 깔끔하게 뽑아낸다.
' ...씹어야...겠지... '
그리고 천천히, 그것을 씹어본다.
' ...어라? '
나쁘지 않다. 먹을 수 있다.
아니, 썩 괜찮은 맛이었다.
새우와 양송이 버섯이 탱글하게 씹히면서 약간 덜익은 파스타면이 찰기있게 이빨의 사이로 씹힌다. 정말로 프리스크의 말대로, 요즈음에 이르러서 많이 나아진 것처럼 보였다. 아스리엘은 곧 바로 생기를 찾은 두 눈으로 파피루스를 쳐다보며 감탄사 섞인 한 마디를 내뱉는다.
" ...맛있어... "
" 오, 당연하죠! 이 파피루스만이 이런 스파게티를 만들 수 밖에 없다니깐요! "
' ' ...지금에 이르기까지 상당히 오래 걸렸다지, 아마. ' '
동시에 같은 생각을 떠올리는ㅡ그것을 서로 알고있을지 모르겠다만ㅡ 샌즈와 아스리엘. 그러나 아스리엘은 곧 바로 그와 같은 생각을 집어치우고, 스파게티를 맛있게 먹는다. 그리고 다 먹은 그릇의 옆으로 포크를 함께 내려놓아 파피루스에게 고스란히 돌려주는 한편으로, 에그노그를 받아드는 아스리엘이었다. 벌컥벌컥, 단숨에 그것을 원샷하고 빈 잔 역시 돌려주자 파피루스가 매우 기쁜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 뭔가 깨달았는지, 램프가 켜진 원형 테이블 위로 그릇들과 머리 위로 올린 생강쿠키 그릇을 내려놓고는 두 손을 뻗는 파피루스였다.
" 그럼, 산타! 저를 위한 선물이 있는 거겠죠오? 그렇겠죠오? "
" ...오! 흠흠, 물론! 자, 그럼... 스노딘 마을의 파피루스 친구를 위한 선물이... "
어색하게 늙은 사람의 목소리를 흉내내며 어색한 웃음을 흘리는 아스리엘이 선물꾸러미에서 꺼낸 것은, 포장박스들로 가득 들어찬 바구니들이었다. 나비 모양, 넥타이 모양, 꽈배기같이 배배꼬인 모양 등의 각기 다른 수많은 파스타들의 포장박스였다. 그리고, 지금 자신 앞에 있는 파피루스의 모습을 똑같이, 작은 크기로 복제한 것만 같은 피규어였다.
" ...이...건... "
" 파피루스 친구가 갖고싶어하던 인간계의 다양한 스파게티 면들이란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멋진 피규어도 갖고싶어 했더구나. "
" ...사...산타... "
" 으,응? 파피루스 친구... 마음에 안 드... "
" 완전 사랑해욧!!! 고마워요, 산타아아아!! "
" 우웟. "
눈물 콧물ㅡ분비샘이 달리긴 한 것인가?ㅡ을 전부 쏟아내며 산타를 꽈악 끌어안는 파피루스. 아무래도 키가 크고 훤칠해서였는지 아스리엘이 '안기고 있는' 것같은 풍경이었다.
" 고마워요, 고마워요오옷! 산타! 내 생에 최고의 선물이야! "
" 조,좋아해줬다면 다행이구나... 하하하하...하... "
어색한 목소리였지만, 안도와 기쁨이 분명히 섞여있는 목소리였다. 내심 기쁜듯, 아스리엘은 작게 미소지었다.
이래서... 아버지가 매년마다 직접 산타가 되어 사람들을 도와준 거였구나. 이것이 다른 이들을 돕는다는 기쁨. 감정이 메말랐던 꽃이었을때에는 절대 못느꼈을, 그 생생한 기쁨에 아스리엘의 마음은 들뜨기까지 했다. 기분 좋은 교훈의 깨달음으로, 프리스크의 의지가 가득 찬다는 말이 어떤 의미로 이해할 수 있게 된 그였으리라.
샌즈는 멀리서 파피루스가 기뻐하는 모습을, 그리고 애정이 담긴 표정으로 두 눈을 감고 그의 포옹을 받아들이는 아스리엘을 빤히 바라보다, 뭔가 생각에 잠긴듯 두 눈을 감았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짐작이 안 갈 정도로, 웃고있는 입과는 상반되는 무게감있는 느낌을 흘리고 있는 그였다.
=====
" 고마워요, 산타!
검은 줄무늬가 하나, 심플하게 그려진 노란 셔츠를 입은 팔없는 아기 괴물, 키드가 두 발로 기쁜듯 여러번 깡총 뛰어올랐다. 그 옆으로는 키드의 키 몇배는 되보이는 두터운 선물이 놓여있었다.
" 메리 크리스마스, 키드. "
" 메리 크리스마스! 산타! "
어느 정도 익숙해진듯, 늙은 목소리를 흉내내면서 키드에게 인사를 주고는 얼마 남지 않은 선물들만이 남겨져있어 휑해진 붉은 보따리를 든 채로 등돌린 아스리엘이었다. 키드는 두 눈을 반짝이며, 그 등을 기쁜듯이 마냥 행복하게 쳐다보았다.
' 산타는 위대한 파피루스 만큼이나, 겁나게 멋진 사람이야. '
" 키드! 선물은 집에서 뜯어야지! "
" 어! 시스터! 지금 갈거야! "
그의 몸 뒤로 이어진 작은 꼬리의 끝엔, 선물과 이어져있는 끈이 묶여져있었다. 자신을 향해오는 외침에 화답하는 키드가 방방 뛰어가자, 우람하게 땅 위를 버텨서고 있던 선물은 곧바로 땅 위로 풀썩 넘어지면서 작은 녀석에게 힘없이 끌려갔다.
" ...이제 남은 곳은... "
아스리엘이 보따리를 열어젖히자, 단 두개의 선물만이 남아있음을 볼 수 있었다. 그것은 자신의 어머니인 토리엘의 것과, 아버지이자 이 세계, 지하세계의 대왕... 아스고어의 것이었다. 자신이 서있는 곳은 핫랜드. 메타톤의 호텔과 알피스의 연구소ㅡ라고 쓰고 덕질하는 쓸데없이 큰 장소라고 읽는ㅡ를 거쳐와 아스고어 대왕의 뉴홈으로 향하는 길에서 멈춰있는 상황이었다.
' 아버지의 작명센스는 이해못하겠어. '
핫랜드, 워터폴 마을... 너무 심플하다못해 저런 이름이 정말로 쓰인건지 의심이 되는 단어선택이 아닐 수가 없었다.
' 그나저나... 두 분께서 마음에 들어하시려나. '
폐허에서는 항상 어떤 선물을 원하는지에 대한 쪽지가 붙여져있지 않았었다. 그것은 토리엘, 그녀가 아직까지도 폐허에서 소수를 제외하고는 폐쇄적으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며 '여기에 누가 살고있어요'라고 대놓고 광고하는 꼴이나 마찬가지였기에 매우 꺼렸으리라. 그리고 아스고어, 이번에 처음으로 프리스크의 설득으로 '자기의 좋은 친구'가 산타 역을 하는 것이기 때문인데다 그는 막상 자신을 위한 선물을 생각하지 못해냈다. 때문에 이번에 고른 것은 프리스크와 머리를 맞대고ㅡ그리고 입술도 동시에ㅡ 고민하면서 골라온 선물이었다.
아빠와 엄마가 이걸 좋아할까? 그리고 그들을 마주치게 된다면, 나는 어째야 할까?
" 이봐, 꼬맹이. "
...그와 같은 고민을 순식간에 깨트려버린 것은, 등 너머로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였다. 뻣뻣하게 굳어버린 몸. 등뒤가 순식간에 싸늘해졌다.
" ... "
아냐, 이대로 피하기만 해선 안돼. 프리스크가 그랬던 것처럼, 나도 피할 수 없는 일은 계속 피하려고만 해선 안될거야. 그녀는 도망치지 않았어.
나도... 도망쳐선 안돼.
" '그 녀석'을 제외하면 아직까지 친구를 사귀는 법을 아직까지 못 배운 티가 팍팍 나는구만. "
프리스크를 얘기하는 것이리라. 저 녀석이라면 내가 프리스크를 제외하고는 다른 이들에게 모습을 전혀 드러내지 않았다라는 것을 충분히 알고도 남을 것이리라. 아스리엘은 고개를 살짝 돌린다. 두 눈을 감고있지만, 어째선지 왼쪽 눈가에 푸른 불꽃이 연하게 피어오르고 있는 것 같았다.
" 일단은, 친구를 사귀는 방법을 배우는게 좋을거야, 꽃돌이. "
" ...난... "
" 응? "
" ...난, 플라위가 아니라... 아스리엘이에요. "
" ...흠. 뭐, 그래. '뼛속까지 우울한' 염소왕자님. "
" ...! "
설마 저 녀석...
" 뒤를 돌아서, 나와 악수하지 그래? "
그의 생각이 미처 닿기도 전에, 저 멀리 있었어야 했을 해골은 자신의 등뒤 바로까지 가까이 다가와있었다. 온 몸의 혈관 구석구석으로 소름과 오한이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이렇게 무력하게 있을 수 밖에 없는가?
' 아냐. '
프리스크에게 약속했다. 다른 이들에게 자신의 힘을 써 다치게 할 일은 없을 것이라고. 이런데서 자신의 힘을 써선 안될 것이다.
그러나 저녀석과 악수를 했다가는... 무슨 일이 벌여질지 모른다.
...잠깐의 고뇌의 끝으로, 마음을 굳게 먹은듯 더 이상 두려움을 찾아볼 수 없는 얼굴로 뒤를 돈 아스리엘. 그러나 그 동공은 아직까지 살짝 떨리고 있었다. 샌즈가 재촉하듯, 왼눈의 푸른 안광의 불꽃을 피우며 자신의 손을 잡으라는 손짓을한다.
" ... "
이윽고 천천히, 그것을 잡는다.
뿌지지지지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익!!!! 뿌부부부부우우우웅!!! 뿌부부우우욱!! 뿌지이익!! 뿌지익!! 뿌부부부부우우우우우와아아아앙-!! 뿌부부우우욱!! 부우욱!! 북,북!!
...그리고 되돌아온 것은, 인적 하나 없는, 워터폴 마을의 메아리꽃들만이 틈틈이 고개를 세우고있는 이 곳을 가득체우는 끔찍한 방귀 소리.
" ...터어어어어어어어어얼렸구나아아아아아!!! "
" ... "
자신의 손바닥으로 부드러운 비닐 쿠션같은 감촉.
...그것을 깨닫고 정신을 차렸을때엔 이미 자신의 눈앞에서 밝은 표정으로 윙크를 하며, 아까의 끔찍한 농담을 했을때의 제스쳐로 자신을 가리키고 있는 모습을 마주하게 되버린 아스리엘이었다.
끊어질 것만 같이 위태로운 제정신의 끈을 간신히 붙잡은 아스리엘은 생각했다.
지금 돌아가고 있는 이 상황은, 그에게 있어선 역대급으로 가장 최고로 끔찍한 동시에, 역사에서 지워버리고 싶을 정도로 창피한 최악의 농담거리라고 말이다.
=====
" 이봐, 너무 섭섭한 표정 짓지말라구. 너도 녀석이랑 비슷한 면이 있구만. "
잔뜩 우울해진, 아스리엘이 산타와 가짜수염마저 옆에 벗어던진 채로 무릎을 꿇고 앉아 얼굴을 깊숙이 그 사이로 파묻으며 좌절하고 있다. 그 옆, 샌즈가 느긋하게 앉아 특유의 태도로 아스리엘을 대하며 말을 건넸다.
정말로 속을 알 수 없는 해골이야. 저렇게 여유롭고 느긋한 모습의 뒤로, 악몽같은 모습을 숨기고 있는 걸까, 아니면 이것이 '진심'인걸까? 아스리엘은 창피함과 좌절감이 자신을 괴롭혀오는 한가운데에, 스스로 해답을 찾지 못한 채로 계속 같은 의문을 속으로 되뇌인다.
" 그러니까... 지금의 너는 적어도, 그 음흉하고 사악한 꽃돌이 시절의 녀석은 아니다ㅡ라는 건가? "
" ...맘대로 생각하세요. "
" 헤, 이봐. 만약에 네가 위협이 되는 녀석이었다면 진작에 나섰겠지, 그냥 장난이라고. 인상 풀어, 임마. 아까 전에 말했다시피, 너는 그 녀석과 닮은 구석이 있어. "
" ...그 녀석이라뇨. "
" 꼬맹이라고 하면 알아들으려나. 왜, 서로 첫 입술을 느낀 너만의 공주님말야. "
" 꼬맹... 뭣, 무.... ㅇ,예에에에?! "
첫 입술...
그 단순하고도 간결한, 짧은 한 단어를 들은 것 뿐인데 온 몸의 신경이 곤두서면서 겨우 진정시킨 심장이 뚝뚝 끊어지며 곤두박질치는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가슴이 철렁거린 아스리엘은 곧 바로 얼굴을 화아악 붉히며 샌즈에게 반박한다.
" 무,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거죠?! "
" 에헤이, 이봐. 날 악취미가 있는 못난이처럼 본다면 내 '뼈'가 사무치게 한이 될 거 같은데. "
" 남의 사생활에 간섭하거나 엿보는 건 추,충분히 연애ㅈ... 아니, 아,악취미에,에요오오!! "
얼마나 크게 당황했는지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헷갈려하면서 횡성수설하는 아스리엘. 그리고 그 모습을 마냥 개구지게 바라보는 샌즈.
" 나도 그걸 훔쳐보려던 의도는 없었어. 단지... 그 녀석이 걱정되서 그런 거지. "
" ...걱정...! ...이, 이라뇨... "
" 녀석이 이 지하세계의 대사관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있겠지. 이따금 몇몇 '골'때리는 인간들이 녀석을 유치하게 시샘이라도 하고 있어서 그런건지 프리스크의 마음고생이 심하더라고. 그 인간들 참 죽여주지 않아? 뭐, 그 이전에도 이미 토리엘에게 부탁을 받았지. 녀석이 상처받지 않도록 곁에서 도와달라고 말이야. 그래서 녀석 모르게 항상 뒤에서 도와줬었던 거 뿐이야. 그러다 끝~내주는 풍경 하나 우연히 발견하게 된 것 뿐이고 말이야. "
" ... "
" ...뭐, 너한테는 따로 설명해주지 않아도 알겠지만. "
알고있었다.
남들이 넘기 힘든 장애물도 아무렇지 않다는듯 간단하게 넘어버리고, 걷는게 귀찮다면서 한쪽에 양쪽 주머니에 양손을 각각 꽂은 채로 서있다 다른 쪽에서 뜬금없이 나타나는 기이한 능력을 가진 그. 그는 한때 자신이 '감정'이란 것이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사악하기 짝이 없는 끔찍한 꽃이었을 적에 샌즈를 마주했었었다.
ㅡ그는, 너무나도 강력했다.
자신을 상대로 승리를 거머쥔 것은 샌즈, 그리고 자신의 연인이었으나 후회와 절망으로 가득 찬, 기억하기 싫은 과거에는 영혼을 탐하려 했던 소녀... 프리스크였다.
물론 지금에 이르러선 그녀의 영혼, 그리고 '특별한 능력'을 탐하려 했던 스스로를 혐오하는 그였다. 그런 그녀가 나타나기 전까진, 샌즈는 자신에게 있어서 최악의 악몽이었다. 그리고 모든 것이 끝난 뒤에도, 아스리엘 자신은 플라위였던 자신을 떠나 샌즈라는 존재와 만나기를 거부하고 싶어할 정도로 두려워했었다. 그런 녀석을 게을러빠진 뼉다구라 부르는 동생 해골녀석이 참으로 이상해보일 지경이었으니 어떤 정도에 이르렀을지 안봐도 눈에 훤하리라.
그리고 토리엘... 자신의 어머니의 이름을 듣게되자 기분이 이상하게 되버린 아스리엘이기도 했다. 그녀는 잘 지낸다고 했던 프리스크의 말이 떠오른 한편으로, 너무나도 보고싶고 그리웠던 이름을 들은 것만으로 기분이 이상해졌다. 하지만 샌즈가 옆에 있단 사실만으로 이미 심란한데, 어머니의 문제까지 떠올리면서까지 힘겨워지고 싶진 않았던 그였기에 이내 마음을 가다듬으려 애쓰고 있었을 때였다.
" ...언제 한번, 인간계에 놀러갔다 온 프리스크가 위험천만할 뻔했던 적이 있었으니, 계속 그 옆을 지켜봐야 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걸랑. "
" ...! "
샌즈와의 지옥같은 '나쁜 시간'들을 희미하게 떠올리던 아스리엘이 뜬금없이 튀어나온, 그답지 않은 진중한 말에 고개를 돌렸다.
" 내가 아까 말했다시피, 프리스크의 반의 반의 반의 반의 반의 반에 미치지도 않는 왠 정신나간 얼간이들이 그녀를 해치려고 했었나봐. 그래서 에봇 산에서 떨어져 낙사할 뻔한 것을 내가 구해줬지. "
" 그...그런... "
" 걱정말라구. 그녀는 적어도 지금은 '안전'하잖아? 그리고 뭐... 그 얼간이들은 내가 친히 나서줘서... ...'열심히 돌봐줬다고' 해야하려나. "
평소의 느긋한 샌즈가 아닌, 플라위였을적 마주했던 그런 샌즈의 모습을 마주했을 그 인간들의 후일담은 더 이상 설명을 듣지 않아도 머릿속에 선명히 떠오른 아스리엘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그나저나 같은 인간들에게마저도 해를 당할 위험에 처했었다니... 괴물들이야 인간을 경계하므로 시비를 걸거나 싸움을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같은 인간들이? 그것이 너무나도 가슴아프고 슬펐던 아스리엘이었다. 그것도, 인간과 지하세계의 평화를 위해 힘써주는 고마운 위인을? 자신의 연인이었다는 사실을 떠나, 그 사실 자체에 대하여 충격받은 아스리엘의 표정에, 샌즈가 웃음을 흘린다.
" ...넌 정말로, 그 꼬맹이 녀석을 좋아하는 거구나? "
...아스리엘은 다시 자신의 발등을 쳐다본다. 그리고 고개를 더욱 숙이길 얼마,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 서로 푸욱- 빠졌네. 녀석이 너랑 만나러 갈때의 표정은, 근래 들어 보아온 그 녀석의 표정들 중에서 가장 행복해보였어. "
" ...그렇습니까. "
" ...이봐, '뼛속까지 우울한 염소 왕자님'. "
본래라면 반박하고도 남았을 아스리엘이었으나, 그는 나름 진중해진 샌즈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반박할 생각이 없었는지, 얌전히 고개만 끄덕였다.
" 그 꼬맹이 녀석을 행복하게 해줘. 녀석의 지하세계에 처음 떨어졌을 때의 여정은 다른 이들에게 있어선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끝.'이라고 끝맺음을 짓는 동화같은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본인은 반대로 너 하나를 구하지 못했단 생각만으로 적어도 자신에게 있어서 '완전한 해피 엔딩'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어. "
" ...프리스크... "
" 다른 인간 녀석들이 보면 미쳤다 그러겠지. 같은 인간들 사이에서 자신의 짝을 찾지 않고 괴물을 짝으로 삼았다라고. 하지만 그런 것 따윈 나에겐 아무래도 상관없어. 이미 언다인의 경우도 있고, 서로 외향이 틀리면서도 사랑을, 우정을 나누는 것따윈 비일비재한게 이 세상이야. 인간이라고, 예외적인 경우란 건 없다고. "
" ... "
" 걱정하지 말라구. 만약 누군가가 너희들을 괴롭히거나 시샘이 담긴 헛소리를 한다면... "
샌즈가 나지막히 목소리를 죽이고는, 천천히 아스리엘에게로 고개를 가까이 들이밀어 속삭이듯 말했다.
" 내가 친히 그 녀석들의 '골수'가 다 뽑혀져 나갈 때까지 시원하게 터어어얼어줄 테니까. "
" ...그런 짓, 저는 싫어요. 프리스크도 싫어할 거라구요. "
" 흠, 그러면 간단한 손지껌 정도? "
" 그 정도로도 모자르다구요, 당신은. "
" 힛, 나를 너무 무섭고 잔인한 야만인처럼 몰아세우는 거 아냐? "
당신의 본모습을 그 인간들이 마주하게 된다면 그렇게 생각하고도 남을 겁니다. 인간들에게 미리 명복을 전하며 차마 자신의 생각을 말로 꺼내지 못한 아스리엘이었다.
" 이봐, 그... 너도 꼬맹이라고 부르고 싶지만, 이미 그렇게 부르는 녀석이 있고, 너의 지금 생김새가 어떻든간에 이미 그렇게 불렀었으니 '꽃돌이'라 불러도 되려나? "
" ...마음대로 하세요. "
저 사람이 꼬맹이라고 자신과 프리스크를 중복해서 부를 리는 없고, 적어도 꼬맹이 1, 꼬맹이 2라면서 구분하면서 부르는 것이 훨씬 와닿는데다 어느 쪽으로도 불리기 싫었던 아스리엘은 반쯤 체념한 마음으로 긍정해버린다.
" 이봐, 꽃돌이. 남은 두 선물은 당연히 네 부모님 건가? "
정말로 악취미가 아닐까, 마구 반박을 해주고 싶었지만 큰 악의는 없어보이기에 아스리엘은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였다. 더군다나 그라면 알고도 남았을 것이라고 이미 짐작하고 있었는지 충격은 덜해있던 그였다.
" 내가 지름길을 아는데, 같이 가줄까? "
" ...? "
아스리엘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샌즈가 윙크를 하며 여유로운 표정으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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