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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번역] 그린베레 A팀의 살해행각0앱에서 작성

bfamas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7.03.17 00:2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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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번역] 그린베레 A팀의 살해행각0


http://www.rollingstone.com/feature/a-team-killings-afghanistan-special-forces


2013년 11월 6일 롤링 스톤즈 지 기사.


2012년 가을,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불 서쪽의 와닥에 위치한 네르크 지역에 미군 특수부대 병력들이

도착하였다. 이 인원들은 계곡을 내려다 볼 수 있고 정규 보병 100여명이 사용하던 널찍한 네르크 전초기지에 자리잡았다. 이들은 미 육군 그린베레로, 비통상전을 위해 훈련받은 병력이었으며, 이들의 도착은 아프가니스탄 전역에서 벌어지고 있던 흔한 일이었다. 병력 급증 기간 동안 배치되었던 대규모 육군 병력이 떠나고, 수염을 기르고 조용한, 엘리트 미국인 대원들이 그 자리를 차지해 적을 사냥하고 13년간의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공식적으로 끝나가는 지금 정부군의 사기를 복돋우는 것이었다.


그러나 도착 6개월 후, 이 팀은 지역민에 대한 고문과 살해 의혹 끝에 아프가니스탄 정부에 의해 지역에서 쫓겨나게 된다. 만일 이게 사실이라면, 이러한 혐의는 2001년 이래 미군 병력에 의해 행해진 전쟁범죄 중 가장 끔찍한 사례 들 중 하나가 되는 것이다. 2013년 2월까지. 지역민들은 10명의 민간인들이 미 특수부대에 의해 납치되었고 실종되었다고 주장하며, 다른 8명은 작전 도중 그 팀에게 사망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안보지원군(ISAF)의 관계자들은 아프가니스탄 대통령 하미드 카르자이와 미국 정부가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에 대한 협상을 이어가는 민감한 기간 동안 터진 이러한 혐의를 부정하고 있다. 주요 논점은 미국이 자군 병력들에 대한 법적 면책권의 요구로, 카르자이 대통령은 이를 탐탁치 않아하고 있다. 사적으로, 몇몇 미국 관계자들은 불만을 표시하며 "제로 옵션", 즉 이라크에서 미국이 현지법에 종속되느니 모든 병력들을 철수시켰던 것을 언급했지만, 양 측 모두 그러한 행위는 사면초가에 몰린 아프간 정부와 지역에서의 미국의 패권에 모두 치명적일 것임을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네르크에서의 이러한 사건은 협상을 타격입히기에는 충분하다.


지난 겨울, 카르자이 대통령이 그러한 혐의들에 대해 조사를 명령하면서 긴장이 흘렀다. 그리고 2월 16일, 나스라툴라라는 이름의 학생이 배가 째진 채 다리 아래에서 발견되었고, 유족들은 그가 그린베레 병력에 의해 연행된 이후 행해진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와닥에서 대규모 시위가 발생하였고, 카르자이 대통령은 미군 특수부대 팀이 아프가니스탄을 4월까지 떠날 것을 요구했다. 그리고 그렇게 되었다. 이후 지역민들은 네르크 미군 전초기지 근교에 묻혀져 있던 시신들을 찾기 시작했는데, 이들은 이 시신들이 사라진 10명의 시신이라고 말했다. 7월, 아프간 정부는 미국인 특수부대 팀과 함께 일해왔던 통역관인 지크리아 칸다하리를 살인 혐의로 체포하였다고 발표하였다. 이후 칸다하리는 특수부대 대원들을 범죄 행위자로 지목하였다. 그러나 미군은 이를 부인했다. "조사 끝에 ISAF나 미군 병력이 위법 행위를 저질렀다는 것을 입증할 증거는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7월 제인 크리치턴 대령이 월 스트리트 저널에 말한 내용이다.


그러나 지난 5개월 간, 본지는 10명의 실종이 미군 특수부대원들과 관계가 있다고 주장해온 20여명이 넘는 목격자들과 피해자 유족들을 인터뷰해왔고, 아프간 정부에 대해 잘 아는 아프가니스탄과 서방의 관계자들과 접촉해왔다. UN과 적십자의 조사는 이러한 혐의가 신뢰성이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7월 아프가니스탄에서의 민간인 사상자에 대한 UN 보고서는 다음과 같이 경고한다. "알려져 있는 실종, 임의적인 살해와 고문은, 만일 그것이 분쟁의 당사자 측에서 행해진 것이라면, 전쟁 범죄에 필적한다고 볼 수 있다."


(중략)


11월의 그 날, 길가변의 폭탄이 미군 특수부대 팀이 근방을 순찰하던 도중 터져 미군 1명과 통역가가 부상당했다. 곧, ATV에 탑승한 미군들과 그를 따르는 아프간군이 왔다. 공포에 떤 오마르 씨와 굴 라힘 씨는 연장을 내려놓고 안으로 들어갔다. 둘은 뒷방에 앉아 오마르의 어린 아이들에 둘러싸여 있었고, 건장한 체격의 수염을 기른 미국인이 아프간인 통역가 두 명과 함께 앞문을 박차고 들어오면서 방을 수색하기 시작하였다. 이들은 두 명을 발견하고 일어서라고 소리쳤다. 오마르가 저항하자, 통역가 중 한명인 함자는 그를 차기 시작했고, 오마르 씨는 창문 밖으로 밀려나가 정원에 떨어졌다.


오마르 씨가 바닥에 쓰러져 있자, 오마르 씨의 아내와 아이들은 달려갔고, 그를 보호하기 위해 오마르 씨를 붙잡았다. 그러나 함자는 그들 머리 위로 총알 서너발을 발사해, 소 한 마리를 죽였고 아내와 아이들이 달아나게 했다. 이후 함자는 오마르 씨를 작은, 벽이 쳐진 사과 과수원으로 끌고갔고, 거기서 크고 눈이 음푹 파인 남자가 그의 남부 출생지에서 이름을 따온 지키리아 칸다하리라는 가명으로 알려진 다른 통역가가 미군 서너명 앞에서 굴 라힘씨를 구타하고 있었다. 이웃의 과수원에서 미군은 그 날 일찍 폭발한 폭탄의 전선을 발견하였다. 둘은 결백을 주장했으나, 미군 중 한 명이 오마르 씨에게 와 벽을 마주보고 앉힌 후 구타하였다. 오마르 씨는 칸다하리가 굴 라힘 씨를 십수 야드 떨어진 곳으로 끌고 가, 미군이 보는 가운데 통역가가 그의 권총을 들어 굴 라임 씨의 머리 뒤에 대고 총 석 발을 쏘는 것을 목격하였다고 증언하였다. 칸다하리가 돌아서서 오마르 씨를 향해 권총을 겨눴을 때, 오마르 씨는 졸도하였다. 몇분 후 정신을 차렸을 때, 그는 험비에 끌려가고 있었다.  


오마르 씨는 굴 라힘 씨의 사살을 목격한 유일한 민간인 증인이었으나, 와닥에서 기자가 그의 이웃 3명을 취재했을 때 이들은 오마르 씨의 집에 ATV를 타고 미군 특수부대 대원들이 오는 것을 들었고, 이후 총성이 들리고 특수부대 대원들이 떠나자, 굴 라힘 씨의 총알이 박혀 두개골이 박살난 시신이 사과나무 사이에 누워 있는 것을 보았다고 증언하였다. 미군들은 이후 돌아와 과수원의 벽을 폭발물로 제거하였다. 칸다하리가 12살 난 과수원 정원사의 아들을 보았을 때, 그는 소년에게 "그 놈 뇌는 주웠냐?" 라고 비웃었다.


오마르 씨 또한 사망했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그의 가족들은 그의 시신을 찾으려 했으나 허탕이었다. 그러나 오마르 씨의 고난은 막 시작한 상태였다. 그는 기자에게 이후 일어난 일들을 회상하면서 공포에 떨었다. 그는 네르크의 미군기지로 끌려가 합판으로 만들어진 감옥에 들어갔고, 다음날 아침까지 방치되었다. 이후 심문이 시작되었다. 오마르 씨는 그의 손이 묶여있었으며 칸다하리와 수염난 미국인에 의해 억류되어 구타당했다고 말했다. 두 미군과 그 통역가들이 그를 심문했는데, 굴 라힘 씨에 대해 질문하였고, 지역의 잘 알려진 반군 지도자들에 대해 질문하였다. 오마르 씨는 아무것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는 이후 구타가 격심해졌다고 말했고, 수차례 졸도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오마르 씨가 부끄러워 하면서 말하길 그의 고환을 비틀었다. 이러한 심문은 이틀 동안 진행되었다. 의자에 묶여 구타당하면서, 오마르 씨는 그가 죽을 것이라고 확신하였다. 밤에, 오마르 씨는 감옥 안에서 족쇄가 차진 채 코란을 암송하고 그의 아이들에 대해 생각하였다. 어느 순간, 칸다하리는 오마르 씨의 머리에 권총을 겨누고 그가 오마르 씨의 친구를 죽였듯이 아주 쉽게 오마르 씨를 죽일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오마르 씨의 이웃들이 미군이 그를 체포하였다는 것을 깨닫자, 이들은 마을 원로들의 탄원서를 경찰서장과 지역 지사에게 보내 오마르 씨의 석방을 탄원하였다. 두 명 모두 이들은 그럴 권한이 없다고 답했다. 그러나 우연히 미군 장교가 경찰본부를 방문한 상태였고 원로들은 미군 장교에게 굴 라힘 씨가 어떻게 처형당했고 오마르 씨가 어떻게 구금되었는 지에 대해 말했다. 이들은 미군 장교가 놀랐지만 회의적이었고 그가 이 사건에 대해 살펴보겠다고 답했다고 증언하였다. (ISAF의 대변인은 2012년 11월에 처음으로 이러한 위법행위가 제기되었다고 말했으며, 지휘체계를 따라 상부까지 보고되었다고 말했다.)


같은 날 저녁, 미군은 오마르 씨를 바로 옆에 기지가 있던 아프간군 병사들에게 넘겼다. 오마르 씨는 그가 자유롭게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분명 내가 네 놈을 죽이겠다고 약속했는데." 오마르 씨는 칸다하리가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말했다. "도대체 어떻게 살아서 나가게 됬는지 모르겠군."


(중략)


네르크에서 사라진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낮 십수명의 목격자들 앞에서 미군들에게 둘러싸였다. 약간 비뚤어진, 가는 타원형의 눈을 가진 건설 노동자 네마툴라 씨는 2012년 11월 20일 그의 아마켈 마을에서 일어난 기습에 대해 기자에게 말해주었다. 새벽 즈음, 그와 남자 형제 네 명은 오토바이와 ATV들이 마을에서 내는 소리에 일어났다. 미군들은 그들이 집을 수색하는 동안 안에 있던 네마툴라 씨와 그의 형제들을 끌어내었고, 마을의 집결지에 데려다 놓았다. 그곳에는 아마켈 마을의 남자들이 모여 있었다. 이들은 40여명을 네르크 구 센터로 데려가 거의 하루종일 앉혀놨고, 결국 미군은 이들의 홍채와 지문을 채취한 후 폭발 잔여물을 찾기 위해 손을 면봉으로 문질렀다. 이후, 지역 경찰과 정부 관료들 앞에서 8명을 골라 기지로 데려갔다. 네마툴라 씨는 그 중 3명은 그의 형제로, 헥마툴라, 세디쿨라 그리고 에스마툴라 씨가 포함되었다고 말했다.


이들은 이틀간 구금되었고, 그 중 하루는 숨막히는 컨테이너 안에서 보냈다. 헥마툴라 씨를 포함한 대부분이 풀려나기 전, 칸다하리와 미군 한 명이 누구를 풀어줄 지를 골랐다고 한다. 16세의 학생인 헥마툴라 씨가 집으로 도착했을 때, 그의 가족은 기뻐서 곧 에스마툴라와 세디쿨라 씨 또한 곧 풀려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이들은 그들을 다시 보지 못했다. 특수부대원들은 마을 주민들이 기지 근방으로 오도록 하지 못하게 했다. 지역 정부와 아프간 군경 역시 문제가 이들 손에서 벗어났다고 말했다. 네마툴라 씨와 다른 실종된 사람들의 친척들은 가족들을 대신해 전시 구금자들과 연락하는 적십자를 방문했다. 그러나 적십자 또한 바그람의 주 감옥이나 아프간 내부의 어떠한 구금시설에서도 이들을 찾을 수 없다고 하였다. 마치 세상에서 사라진 듯 했다.


비슷한 행위가 근방 마을인 데 아프가난에서 12월 6일 벌어졌다. 미군 기지로 끌려간 4명 또한 실종되었다. 그린베레가 3월 말 네르크를 떠났을 때, 총 10명이 실종되었다. 나머지 8명은 A팀의 순찰 도중 사살되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일례로, 마이단 샤의 지역 정부청사에서 한 트럭의 장작 밑에 숨겨진 폭탄이 폭발한지 4일 후였던 11월 27일에, 지역 주민들은 아지즈 레만이라는 이름의 장작 운반 기사가 미군에게 멈춰졌다고 말했다. 특수부대원들이 떠났을 때, 레만 씨는 심하게 구타된 채로 하천 옆에 누워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 레만 씨는 카불로의 후송 도중 부상으로 사망하였다. 


(중략)


한 1주 정도가 지나고 나서, 이전까지는 접근불가하던 미군기지에 그 양떼를 몰고 간 양치기가 투라카이 씨에게 그가 야생 개가 사람 시체를 차고 있다는 말을 하였다. 가족들과 지역 관료들이 도착하였을 때 뼈조각 수개와 사람 턱뼈 아랫부분, 그리고 2012년 11월 6일 고향 카림다드의 마을에서 특수부대원들에게 체포되어 실종된 39세의 농부 모하매드 카심 씨의 것임이 확실한 의류가 발견되었다.


이후 2달 간, 기지 근방의 황량한 평지에서 유해가 서로 다른 6곳에 걸쳐 발견되었다. 상대적으로 식별가능한 시신은 관개배수로를 청소하러 간 농부들이 땅을 파던 도중 발견되었다. 옷으로 사베드 모하매드 씨임이 발견된 이 시신은, 미군이 사용한 바디백과 매우 유사한 튼튼한 검정 바디백에 싸인 채 발견되었다(당시 미군 대변인인 토머스 콜린스 대령은 "우리는 그 사람의 죽음에 어떠한 관련도 없습니다"고 밝혔다.) 다른 시신들은 지역에 서식하던 야생 개들에 의해 물어뜯긴 상태였다. 몇몇은 화상 흔적이 보였고, 바디백의 파편으로 보이는 것들과 함께 발견되었다. 시신이 발견된 가장 가까운 장소는 기지로부터 50야드 떨어져 있었고, 모든 장소는 경비탑의 시야 내에 있었다.


그린베레가 떠난 후 네르크 기지를 인계받은 아프간군 지휘관에게 누군가가 그의 기지 50야드 밖에 들키지 않고 시신을 붇을 수 있냐는 물음에, 그는 웃으며 "그럴리가요."라고 답했다. 그는, 그의 경비탑은 평지의 모든 방향에 걸쳐 선명한 시야가 보장되며, 들키지 않고 누군가가 기지 밖에서 땅을 파는 일은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미국인들은 그 시신들이 거기 있었다는 걸 분명히 알았을 겁니다."


(중략)


A팀이 네르크를 떠난 지 몇 달이 지난 7월, 아프간 정부는 팀의 통역가인 지크리아 자카하리를 체포했다고 발표하였다. 관계자들은 칸다하리가 구금된 사예드 모하메드 씨를 구타하는 비디오를 확보하였고 칸다하리를 살인 혐의로 기소하였다. 관계자들은 또한 그가 결백을 주장하였으며, 살인의 책임을 A팀의 대원들에게 돌렸다고 말했다. 그러나 칸다하리는 카불의 주 교도소인 풀 에 차크리로 이감될 때까지 어떠한 언론과도 접촉하지 않았다. 기자는 그를 방문하기로 하였다.


(중략)


"당신이 지크리아 칸다하리입니까?" 기자가 물었다. 그는 동의했다. "당신은 미군 통역가였습니까?" 기자가 물었다. 그는 잠시 멈췄다. "맞습니다." 그는 대답하고 기자의 손을 움켜쥐었다.


(중략)


그는 ODA 3124 -네르크에 배치된 A팀-의 대원들을 남부 아프가니스탄의 외딴 장소에 위치해 있던 코브라 전방작전기지에서 만났다. "거긴 정말 나쁜 곳이었죠. 많은 전투와 많은 특수부대원들이 죽거나 부상당했습니다." 칸다하리는 회고했다. 2010년 2월의 파병 도중, A팀은 민간인 차량대열로 드러난 행렬에 공습을 요청해 여성과 아이들이 주였던 23명을 사살한 책임을 지게 되었다.


다른 특수부대 통역가들과 같이, 칸다하리는 그린베레들과 유대감을 가지게 되었다. "그런 통역가들은 그들이 팀의 일부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전직 특수부대원이 기자에게 말했다.


칸다하리는 팀의 선임 부사관들 중 한 명인 제프 밧슨 그리고 마이클 우즈 준위와 특히 친했다. 칸다하리는 A팀과 총 3번의 파병을 거쳤다. 그러한 파병 동안, 그는 두 명과 페이스북이로 계속 연락을 취했다. 2012년 9월, 칸다하리는 당시 ODA 3124의 팀 선임부사관이었던 밧슨이 그를 불러 칸다하리가 준비가 되었냐고 물으면서, 카불에서 만나자고 했다고 말했다. "그는 거기가 정말 끔찍한 곳이라고 말했죠." 칸다하리는 회고했다. "저는 말했습니다. 예, 문제 없습니다."


칸다하리는 나타났고, 며칠 후 네르크로 갔다. 그곳에는 밧슨과 우즈와 같은 친숙한 얼굴들이 몇몇 있었으나, 대부분은 처음 보는 얼굴들이었다. 처음의 상황은 꽤나 진정된 상태였다. A팀은 네르크의 주민들과 라디오와 장신구 등을 주면서 지역 주민들과 유대관계를 맺고자 했다. 그러나 이들은 미군과 협조하고 싶지 않았다. "그 새끼들은 헤즈비 이슬라미 씨발새끼들이었죠." 칸다하리는 회고한다.


(중략)


밧슨의 부상은 그린베레에게 분명 충격적인 일이었다. A팀에서는 계급이 아닌 경험을 통해 리더쉽이 취득된다. 이는 보통 밧슨과 같은 나이먹은 선임이 임무를 이끈다는 것이다. ODA 3124의 최고위 계급 대원은 젊은 에건 대위였지만, 분명 지도하는 것은 밧슨이었다. "선임 부사관은 우리의 아버지입니다. 그는 가장 늙고 현명한 팀원이죠." 전직 그린베레 대원이 선임 부사관의 역할에 대해 말했다. "만일 그가 총에 맞는 거를 본다면, 저는 정말 화날 겁니다. 아주 제정신을 잃겠죠." 


칸다하리는 밧슨의 부상과 후송 이후, A팀의 방식은 훨씬 거세졌다고 한다. "그가 떠나고선 바뀌어 버렸죠." 그가 말했다. "우리는 더이상 신고된 것에 따라 사람들을 체포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의심되면 체포했죠. 사람 수십명을 모아서 구 센터로 데려가는 겁니다. 그는 A팀의 정보 부사관인 데이비드 케이저가 그와 에건 대위 그리고 미국인 통역가만 배석한 채 그만의 심문을 시작했다고 증언했다. 칸다하리는 그가 구금자들을 체포해 케이저에게 보내는 일만 했다고 말한다. (혐의들이 제기된 사건들은 밧슨이 부상을 입은 11월 이후에 일어났다.) 


기자가 비디오에 구타되는 것이 찍힌 사베드 모하메드에 대해 묻자, 칸다하리는 그가 사베드를 그린베레에 맡기고 나왔다고 주장했다. 그가 말하기로는 그날 밤, 하니피가 그의 텐트에 와 "이봐, 제이콥, 여기 와서 이것좀 보지." 라고 말했다. 그들은 근방의 보관 텐트로 갔다. 그 안에는 시체가 들어간 바디백 하나가 있었다. "저게 사베드 모하메드야." 칸다하리는 하니피가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주장한다. (하니피는 사베드 모하메드의 시체를 본 적도 없다고 부정하였다.)


(중략)


기자가 ODA 3124가 위치한 포트 브랙의 미 특수부대에 연락했을 때, 이들은 A팀의 어떠한 대원과도 인터뷰하는 것을 거부하면서, 7월에 개시된 범죄 조사가 진행중이라는 사실을 강조하였다. 비슷하게, 기자가 찾아간 대원 개개인 중 아무도 기자와 인터뷰하지 않았다. 그러나, 기자는 익명으로만의 인터뷰를 요구한 다른 통역가를 찾을 수 있었다. 기자는 그를 파룩으로 호칭하겠다. 그는 A팀과 우루즈간의 코브라 전방작전기지에서 근무했다고 말하자, 모든 사건이 일어난 이후인 파병 말기에 네르크 기지에 도착했다고 말했다. 그때 칸다하리는 아프간 정부에 수배되어 떠난 이후였다. 그러나 파룩은 그 곳에 있던 다른 통역가들과 대화했고, 그들은 칸다하리가 살인을 저질렀다고 비난하였다.


"제이콥은 갱스터처럼 행동하는 걸 좋아했죠." 그가 말했다. "그는 사람을 죽이는 것을 즐겼습니다. 그는 보통 사람이 아니었어죠." 파룩은 기자에게 칸다하리가 A팀의 우루즈간 파병 기간 동안 죄수들을 사살했다고 말했다. 한번은 지역 율법학자가 팀에게 체포되었고, 심문 후 팀은 칸다하리에게 그를 석방할 것을 지시하였다. 그러나 파룩의 주장으로는, 칸다하리는 그를 전방작전기지 앞까지 데려간 후 얼굴에 총을 쏘았다. 파룩은 근방에 있었고, 칸다하리가 시신 위에 권총을 든 채 서 있는 것을 보았다. "난 한 건만 봤습니다." 파룩은 말했다. "그러나 칸다하리는 다른 두 건에 대해 말하더군요." 그는 칸다하리가 한 명은 줄로 목을 졸라 죽이고, 다른 한 명은 나무 곤봉으로 때려 죽였다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파룩은 A팀이 칸다하리가 우루즈간에서 죄수들을 죽이는 것을 알았다고 증언한다. 그는 밧슨이 칸다하리가 율법학자를 죽인 후 말하는 것을 들었다고 주장한다. "그가 말했죠. '이 미친짓 다신 하지 말게.'" 파룩은 그러나 칸다하리는 그린베레에게 전장에서의 용맹함으로 인해 아프간의 위험한 지형에서의 믿을 수 있는 협력자로 유명했다고 말한다. 하니피는 A팀이 매 파병마다 칸다하리의 배치를 요청했음을 지적한다. "물론 그를 존중하고 있었던 거죠. A팀은 칸다하리에게 매번 돌아오도록 요청했는걸요." 파룩은 그가 밧슨이 부상을 입고 후송된 이후부터 네르크의 문제들에 대해 들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를 행한 것은 칸다하리라고 말한다. "제프 밧슨은 그런 일들을 통제할 수 있었습니다." 그가 말한다. 기지의 다른 통역가들은 팀이 모르게 칸다하리가 나가서 사람들을 체포한 후 모든 살인을 저질렀다고 파룩에게 말했다고 한다.


그게 아마도 A팀 측에서의 주장인 것으로 보인다. 칸다하리가 혼자서 행동한 것이다. 그러나 수십명의 목격자들은 칸다하리뿐만 아니라 A팀 대원들이 희생자들을 구금하는 것을 목격하였다. 다른 군 관계자들은 기자에게 몇몇 혐의는 반군 대신 미군을 깎아내리려는 공작의 결과일 것이라고 말했다. "일어난 모든 일에 대해 그들이 솔직히 말하고 있지는 않을 겁니다." 한 미군 관계자가 말했다. "그게 바로 그들의 무기죠. A팀이 전쟁 범죄를 저질렀다고 말하는 것 말입니다."


네르크 지역에 걸쳐 퍼져있는 십수명의 아프간 주민들이 그런 정교하고 연속적인 거짓말들을 몇 달에 걸쳐 해오고 있다는 주장을 믿기는 힘들다. 대부분의 주민들은 UN과 적십자의 조사 또한 거쳤는데, 이 두 단체는 치밀한 조사를 걸쳐 목격자들과 그들이 제기한 주장이 신뢰성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적십자는 이 조사결과를 공개적으로 논평하지 않았지만, 7월의 UN 보고서는 "와닥의 마이단 샤와 네르크 지역에서 기록된 2건의 고문, 3건의 살인 그리고 10건의 납치 실종이 보고되며 목격자들과 피해자들은 (...)  그를 행한 것이 아프간 번역가를 대동한 미군 병력들이라고 말한다."고 밝히고 있다.


아프간 정부 또한 이러한 혐의에 대해 복수의 조사를 시행하였다. 아프간 국방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3월 ISAF와의 합동 조사 기밀 보고서를 공유하는 것을 허용하면서, 처음에는 그러한 혐의들에 대해 회의적이었다고 말한다. 그런 혐의들은 미국인들을 쫓아내기 위한 헤즈비 이슬라미의 음모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 놈들에게 가장 강한 적은 미군 특수부대죠." 고위 관계자의 말이다. "탈레반 하나를 죽일 때 마다, 반군은 그가 무고한 시민인것 마냥 시위를 하라고 지역 주민들에게 강요합니다."


그러나 마을 주민 수십명의 증언을 듣고 이 관계자는 혐의가 사실임을 믿게 되었고, 그러한 범죄들이 통역가 하나로 한정될 수 없다고 믿었다. "그 사람들이 미군에 의해 끌려갔다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가 말한다. "그리고 지키라 칸다하리가 A팀 몰래 그런 짓을 해다는 것도 가능성이 없죠." 합동 보고서에 따르면, ISAF는 "각 대표들은 연합군이나 아프간군 측의 혐의를 입증할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데 동의했다.)


칸다하리와의 첫 대화 이후, 기자는 ODA 3124의 대부분의 대원의 이름과 사진을 페이스북의 정보 교차검증으로 취득할 수 있었다. 기자는 ODA 3124 대원들의 사진과, 구글 이미지를 통해 발견한 비슷한 미군 특수부대원들의 사진을 무작위로 골랐고, 경찰이 사용하듯이 사진의 대열을 만들었다. 네르크의 다양한 통역가들 사진 또한 비슷한 작업을 거쳤다.


기자가 네르크 주민들에게 사진들을 보여주었을 때, 이들은 지체없이 ODA 3124의 대원들과 통역가들을 식별해냈다. 일례로 그의 두 남자 형제가 체포되어 기지 밖에서 묻힌 채 발견되었다고 주장한 네마툴라 씨는 A팀의 대원 6명을 골라냈다. 칸다하리가 굴 라힘 씨를 사살하는 것을 목격한 오마르 씨에게 사진을 보여주었을 때, 그는 살인과 이어진 고문에 책임있다고 주장한 3명의 대원을 골라냈다.


아프간 정부와 ISAF의 합동조사가 3월 네르크를 방문했을 때, A팀 대원들은 칸다하리가 12월 14일 "탈출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지역 주민들은 그 시점 이후로도 특수부대원들의 심각한 폭력이 있었다고 증언한다. 기자가 마틴으로 칭하는 남자가 있다. 그는 네르크 계곡의 반군 지역 깊숙히 있는 오마켈 마을에 거주한다. 마틴은 1월 19일 5시 경 미군 특수부대원들이 모든 마을의 남자들을 모았다고 한다. 


사진을 검토한 이후, 마틴은 ODA 3124의 특정한 대원 두 명을 식별해냈다. 이들은 통역가와 동반해 그와 33세의 운전사이던 아들 샤피쿨라를 근방의 창고로 끌고 가 근방 도로에서 발견된 폭탄에 대해 심문하면서 야만적인 폭행을 가했다고 마틴은 말한다. 이들은 마틴에게 그들을 마틴의 집으로 데려가라고 말했고, 한 그린베레와 통역가가 "수염난 미국인"과 샤피쿨라를 창고에 놔두고 마틴을 창고에서 끌고 나온 순간, 그는 총성 세 발을 들었다. 대원들은 마틴의 집을 수색하는 동안 마틴을 구타했고, 아프간 군 장교가 개입할 때까지 이는 지속되었다. "저 사람들은 당신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저는 그러지 말라고 했고요. 그러니 어서 가서 아들 시신을 보세요." 마틴은 아프간군 장교의 말을 회고한다. "제가 조금만 더 일찍 도착했더라면 아들을 죽이지 못하게 했을텐데요."


미군은 근방에서 IED 2개를 발견했고, 그걸 마틴의 집 뒤로 가져가 폭파시키면서 마틴의 집을 일부 파괴하였다.  이후 그들은 떠났다. 마틴은 그가 아들을 이웃의 식료품 저장실에서 발견했다고 말했는데, 머리에 한 발, 가슴에 두 발의 총상을 입은 상태였다.


(중략)


ODA 3124와 우루즈간에서 근무한 통역가 파룩은 그가 A팀과 근무하던 기간 극심한 심문을 하는 것을 꽤 보았다고 말한다. 이는 주먹, 발, 케이블과 테이저 건과 비슷한 장비를 통한 물리적 폭력이 포함된다. "당연히 사람들을 폭행하죠. 그래야 합니다." 그가 말한다. "종종 우린 누가 유죄인지 압니다만, 그 사람이 그걸 인정하거나 정보를 넘기는 걸 거부하죠. 우리가 폭행을 시작하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그게 바로 정보 부사관의 직무입니다." 그는 특수부대 대원들이 구금자들이 부패한 아프간 사법체계로 인해 곧 석방된다는 사실에 씁쓸해했다고 말한다. "저는 제이콥이나 팀이 사람들을 죽인 걸 비난하지 않습니다. 바그람으로 사람들을 보내면 카르자이 대통령은 그들을 석방시켜 버리니까요."


(중략)


한편, ISAF는 칸다하리 건으로부터 손을 씻어 버리기 위해 노력 중이다. 그가 "무급 통역가"였음을 주장하는 것이다. 크리츠턴 대령은 말한다. "그는 이전에 연합군 부대와 통역가로서 일한 적은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사건들이 벌어졌을 때, 그는 연합군을 위한 계약직 통역가가 아니었습니다."


(중략)


"특수부대원들이 칸다하리를 잡으려 했지만, 그는 이내 낌새를 채고 도망갔죠. 그리고 연락이 끊겼습니다." 5월 미군 관계자가 칸다하리에 대해 뉴욕 타임즈에 한 말이다. 그리고 칸다하리가 네르크 기지를 떠나고, A팀이 실종자들에 대한 혐의로 압박을 받고 있을 때에도, 칸다하리는 페이스북으로 우즈와 팀의 다른 일원들과 채팅을 하고 있었다. 12월 20일 우즈는 다른 통역가 하니피, 별명으론 대니인 자의 페이스북 페이지에 이렇게 썼다. "언제 돌아와?" 칸다하리는 이렇게 답했다. "우디, 아직 답을 못 주겠는데." 우즈는 답하면서 칸다하리의 수배자 신세에 대해 놀렸다. "씨발, 대니를 찾고 있는 것도 아닌데." 칸다하리가 답했다. "하하하."


4월 29일 A팀이 아프간 정부에 의해 네르크에서 쫓겨난지 한달, 그리고 기지 근방에서 첫번째 시신이 발견된지 몇주 후, 우즈는 그의 페이스북에 감사 인사를 올리면서 칸다하리와 하니피를 포함한 몇몇 통역가들을 언급한다. "내가 너희들이 얼마나 자랑스러운지는 말로 다 표현을 못하지!" 우즈의 게시물은 이어진다. "7달도 더하는 기간 동안 하도 씨발 개새끼들을 족쳐서 그 새끼들은 우리를 와닥에서 쫓아내려고 별 짓을 다 했지." 그는 데저트 이글의 신조를 인용하면서 게시글을 마친다. "압박하고, 추적한 후, 처벌하라!!!" 같은 날 칸다하리는 댓글을 달았다. "3124 대원들과 너에게 역시 감사 인사를 전할게. 난 그저 친구들과 옛 팀원들을 위해 할 일을 했을 뿐이야." 우즈와 다른 A팀 대원은 칸다하리의 댓글에 좋아요를 눌렀다.


다음 날, 우즈는 그와 칸다하리가 네르크 기지에서 어깨동무를 하고 서 있는 사진을 올렸다

출저 http://m.blog.naver.com/joo99416/220960005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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