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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수 에세이] 서울대 재적

운영자 2007.07.10 11:40:08
조회 1920 추천 0 댓글 4

3. 스물에서 마흔넷


  서울대 제적


  1971년 9월에 장티푸스에 걸려 사경을 헤맨 일이 있었다. 공장생활 3개월만이었다. 아마도 공장의 열악한 환경 때문인 듯 했다.

  처음에 감기몸살이나 설사로 생각하여 약만 지어 먹으며 견디다가 병이 너무 악화되어 부득이 고향으로 내려가게 되었는데, 열이 40도를 오르내리면서 코피가 목구멍으로 넘쳐 죽을 뻔하기도 했다.

  몸은 뼈만 남고, 고열에 설사로 계속 누워만 있는데, 대학으로부터 제적되었다는 통보가 날아왔다. 내가 속해 있던 후진국사회연구회가 정부당국의 명령으로 강제 해산되고, 전국의 대학에서 시위주동자 100여명이 한꺼번에 무더기로 제적되는 와중에 나도 포함된 것이다.


  제적통보를 받자마자 국군보안대 요원들이 고향집으로 왔다. 병석에 누워 사경을 헤매던 나를 국군 통합병원으로 끌고 가서 신검을 받게 했다. 

  중학교 3학년 여름방학 때 시골집에서 멱을 감다가 생긴 중이염이 재발된 상태에서 장티푸스까지 걸려 사경을 헤매는 자식을 강제징집 시키겠다고 끌고 가니, 어머니는 영영 자식을 못 보게 생겼다고 걱정이 태산이었다.

  담당관이 다짜고짜 “아픈데 없지?”하더니, 신체검사는 하지도 않고, 바로 영장을 발부하려고 했다. 나는 장티푸스와 중이염에 대한 설명을 있는 그대로 했지만 잘 믿지 않았다. 당연히 징집영장이 나올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징집 면제 판정을 받았다.

  그 후 고향에 돌아와 보니 내가 빨갱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문중의 별로 촉망받던 서울대학생은 이미 학교에서 제적이 되었고, 신문·방송에도 크게 보도되어 마을 어른들이 모두 놀랐다.
해방 이후에도 없었던 희한한 일이 생겼다고 동네는 술렁거렸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 집 솟을 대문 앞에 검은 지프차를 타고 온 두 사람이 강제로 나를 어디론가 끌고 갔다. ‘태백공사’라는 보안사 대구분실을 거쳐, 다시 서울로 끌려 간 곳은 동빙고동 국군보안사령부 지하 취조실이었다. 군복으로 갈아입히고 무조건 바닥에 무릎을 꿇리더니, ‘타도’라는 불온유인물을 만들었느냐고 닦달했다.
 
  생판 듣지도 보지도 못한 것이라 극구 부인했다. 두들겨 팼다. 그 다음엔 남산 중앙정보부로 끌려 가서, 취조를 받았다. 또 두들겨 맞았다. 결국 아무 혐의가 없자 차비까지 쥐어주며 나가라고 했다.
  범 아가리에 들어갔다 나오는 기분이었다. 병이 나은 후 고향과 서울에서 일거리를 찾다가 1972년 겨울부터 자동차 정비기술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러던 와중에 뜻밖에도 복교조치가 내려졌다.
어머니와 형님이 부랴부랴 등록금을 챙겨 와서 복교를 강요했다.
  1973년 봄 등록은 했으나 마음은 이미 학교를 떠나 있었다. 문리대 유인태 선배와 함께 강원대 등 지방학교를 조직화하고 다녔다. 유신반대였다. 민청학련이었다.

  당시 나는 “노동자와 생활을 같이 하는 것이 옳은 길이며, 나의 시대적 사명”이라는 생각을 점차 굳혀가고 있었다. 서울공대 산업사회연구회 윤조덕 선배의 안내로 전태일의 어머니인 이소선 여사의 창신동 판잣집에 갔다.

  그날 이소선 어머니와 어려운 여건에서 실제 노동운동을 하던 청계노조 간부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내가 가야 할 곳은 바로 노동현장이다” 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여러 가지로 문제가 산적해 있는 청계노조 간부들을 만나면서, 그들이 나처럼 배운 사람을 원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가 있었다.

  그 해 겨울, 나는 고심 끝에 민청학련 준비 일을 지금은 고인이 된 김병곤에게 넘겨주고 주변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1974년 4월 3일, 민청학련 사건이 터져버렸고, 나는 쫓기는 신세가 되었다.

  경찰의 눈을 피해 이소선 어머니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방을 얻어 고시공부 명목으로 틀어 박혀 책만 보며 시간을 보냈다. 5개월여의 수배 기간이었다. 그리고 나는 어머니가 암에 걸렸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어머니는 나의 서울대학교 졸업장을 애타게 원했으나, 그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지 못하고 그렇게 눈을 감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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