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시인사이드 갤러리

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갤러리 본문 영역

[김문수 에세이] 청첩장 없는 결혼식

운영자 2007.10.01 18:41:05
조회 1883 추천 2 댓글 2

4. 아내와 딸


  청첩장 없는 결혼식



  나의 아내는 설난영이다. 아내는 구로공단 세진전자 노조위원장을 지냈다. 처음 만났을때, 아내는 금속노조 남서울 지역지부 여성부장을 겸하고 있었다. 노동운동 동지로서 만남이 이루어진 것이다. 

  노동운동을 하는 사람들 거의가 그렇듯이 연애감정은 의식적으로 피했다. 제 몸 하나 건사하며 살기도 버거운 생활이라 그럴 수밖에 없었지만, 실제로 혼자 사는 노동운동가는 많지 않다. 남녀의 문제는 이념과 생활보다 더 기초적인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당시 나는 아내에게 크게 마음이 끌렸으나, 일부러 무관심한 척 했던 것 같다.그러나 아내는 달랐다. 나에게 정말 관심이 없었다.혼자 살면서 노동운동을 하고, 늙더라도 후배들을 후원하며 살기로 마음먹은 사람이었다.

  내가 5공화국 초기에 계엄당국에 쫓기고 있을 때였다.마땅한 도피처가 없었던 나는 아내가 거처하는 곳으로 갔다. 목적은 피신이었지만 다른 뜻도 있지 않았을까? 다행스럽게도 아내는 나에게 피난처를 제공해 주었다. 청춘남녀가 가까이 지내다 보니 서로에게 더욱 관심을 갖게 되었다. 화려하거나 사치스럽지 않고 건강하며 꿋꿋한 여자이기에 나같이 험한 길을 가려는 사람에게 어울리는 짝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아내는 나의 청혼에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아내는 노동운동을 하면서 결혼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다시 청혼을 했다. 아내는 역시 결혼에 대해서 부정적이었다.자존심도 상하고, 바 보가 된것 같았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다시 아내를 여러 차례 설득했다. 나의 노동운동과 사랑에 대한 굳은 결심을 전했다. 아내는 드디어 마음의 문을 열었다. 설난영이 김문수의 마누라가 된다는 승낙이었다. 1981년 9월에 나는 설난영과 결혼식을 올렸다. 청첩장 한 장 만들지 않았다.

  아내는 이 세상 모든 여자들이 꿈꾸는 웨딩드레스도 입지 않았다. 남녀 평등과 민주적 가정을 약속하면서 신랑 신부가 동시에 손을 잡고 입장하였다. 당시로서는 파격이었다. 주례는 한달수 금속노조 전 부위원장이 맡아주었다. 장소는 봉천동 사거리 봉천중앙교회 교육관이었다. 참으로 딱딱한 이야기이지만 우리의 결혼은 연애, 사랑, 신혼가정의 달콤함이 아닌 동지적 결합이었다.

  그래서인지 웃지 못할 일도 있었다. 당국에서 우리가 위장 결혼식을 하며 시위를 벌이는 줄 알고 결혼식장 가까이에 전경차 5대를 대기시켜 놓는 촌극을 펼쳤다. 덕분에 우리의 하객은 전경이 주가 되었다.
 
결혼 후 부부싸움도 많이 했다. 위기도 있었다. 노동운동을 하면서도 나는 다분히 유교적이고 전통적인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일이 허다했다. 솔직히 집안에서 아내는 남편보다 지위가 낮다고 생각하고 행동했던 적이 많았다. 돌이켜보면 대부분의 부부싸움이 내 잘못에서 비롯된 것들이었다.

  그저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앞뒤 좌우를 들어보지 않고 딱 잘라 주장하는 나의 행동 때문에 아내는 마음의 상처를 받았을 것이다. 그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아내의 인내덕분이었다. 그렇게 25년의 세월을 함께 살았다.

  이젠 대학 4학년이 된 딸 동주를 보며 25년 전 아내를 생각하기도 한다. 그만큼 세월에 밀려가고 있는 것이다. 나는 나를 너무나 잘 알고 이해해 주는 아내를 사랑한다. 남자가 나이가 들면 자기 아내에 대한 충성심과 존경심이 더욱 깊어진다고 하는데, 나 역시 예외가 아닌 듯하다. 아마 나는 나이가 들수록 아내를 더 의지하고 사랑할 것이 분명하다. 

추천 비추천

2

고정닉 0

1

댓글 영역

전체 댓글 0
등록순정렬 기준선택
본문 보기

하단 갤러리 리스트 영역

왼쪽 컨텐츠 영역

갤러리 리스트 영역

갤러리 리스트
번호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추천
설문 SNS로 싸우면 절대 안 질 것 같은 고집 있는 스타는? 운영자 24/05/06 - -
61 [김문수 에세이] 딸 동주, 여성 동주 [34] 운영자 07.10.10 4864 4
60 [김문수 에세이] 아빠의 마음 [2] 운영자 07.10.08 1698 0
[김문수 에세이] 청첩장 없는 결혼식 [2] 운영자 07.10.01 1883 2
57 [김문수에세이] 마흔 네 살 대학생 [3] 운영자 07.09.12 2242 0
56 [김문수 에세이] 질긴목숨 [2] 운영자 07.09.10 1860 1
55 [김문수 에세이] 깨지는 얼음장 [2] 운영자 07.08.30 1593 1
54 [김문수 에세이] 공포의 5.18 [4] 운영자 07.08.23 1814 0
53 [김문수 에세이] 첫 구속 [2] 운영자 07.08.20 1439 0
52 [김문수 에세이] 도루코 노조위원장 [2] 운영자 07.08.16 2634 0
51 [김문수 에세이] 월급 1만원 [5] 운영자 07.07.18 1965 0
50 [김문수 에세이] 서울대 재적 [4] 운영자 07.07.10 1922 0
49 [김문수에세이] 첫 공장 생활 [2] 운영자 07.07.03 1723 0
48 [김문수 에세이] 용두동 판잣집 자취생활 [3] 운영자 07.06.29 1986 0
47 [김문수 에세이] 구멍 난 검정 고무신 [2] 운영자 07.06.27 1615 0
46 [김문수 에세이] 문중의 별 [2] 운영자 07.06.21 1540 0
45 [김문수 에세이] 일기장 [2] 운영자 07.06.19 1467 0
44 [김문수에세이] 판잣집 단칸방 [2] 운영자 07.06.15 1505 1
43 [김문수 에세이] 어머니 [4] 운영자 07.06.12 1836 0
42 [김문수에세이] 빛바랜 양반동네 [2] 운영자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7.05.31 1529 0
41 [김문수 에세이] 김문수 모델이 되다. [2] 운영자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7.05.29 1714 0
40 [김문수에세이] 10년 연속 베스트 국회의원 [2] 운영자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7.05.25 1509 0
39 [김문수 에세이] 남긴 밥을 보면 눈물이 난다 [2] 운영자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7.05.17 1465 0
38 [김문수에세이] 노무현 대톨령과 국회의원 김문수 [2] 운영자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7.05.15 1776 0
37 [김문수에세이] 17대 총선 공천심사위원장 [2] 운영자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7.05.08 1442 0
36 [김문수에세이] 지옥철, 대통령도 같이 타봅시다 [4] 운영자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7.05.03 2005 0
35 [김문수에세이] 내 이름은 김결식 [2] 운영자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7.05.01 1276 0
34 [김문수 에세이]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사람 [3] 운영자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7.04.26 1758 0
33 [김문수 에세이] 싸움 좀 그만하세요. [2] 운영자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7.04.17 1418 0
32 [김문수 에세이] 컬러시대 흑백보고서 [2] 운영자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7.04.12 1327 0
31 [김문수 에세이] 옥길동 사람들 [2] 운영자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7.04.11 1955 0
30 [김문수 에세이] 고마운 밥 한 끼 [2] 운영자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7.04.05 808 0
29 [김문수 에세이] 아름다운 사람들 [2] 운영자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7.03.27 843 0
28 [김문수 에세이] 가난한 사람들의 벗, 제정구 [2] 운영자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7.03.22 1175 0
27 [김문수 에세이] 겸손 또 겸손 [2] 운영자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7.03.20 855 0
26 [김문수 에세이] 좀 웃으세요. [2] 운영자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7.03.16 785 0
25 [김문수 에세이] 천국구와 지옥구 [2] 운영자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7.03.15 893 0
23 [ 김문수 에세이 ]공공기관 이전 - 제발 밥그릇만 깨지 말라 [2] 운영자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7.03.13 845 0
19 [김문수 에시이] 왠 수도이전인가? [2] 운영자 07.02.26 893 0
18 [김문수 에세이] 서울을 넘어 세계로 [2] 운영자 07.02.23 801 0
17 [김문수 에세이] 만남, 사랑, 두물머리 [2] 운영자 07.02.21 815 0
16 [김문수 에세이] DMZ를 백두산 호랑이 보금자리로 [2] 운영자 07.02.16 940 0
15 [김문수 에세이] 문화는 생산이다 [2] 운영자 07.02.14 761 0
14 [김문수 에세이] 유학오는 경기도 [2] 운영자 07.02.12 772 0
13 [김문수 에세이] 가깝고도 먼 경기도 [2] 운영자 07.02.07 776 0
11 [김문수 에세이] 치매·중풍으로 어려운 노인 모십니다 [3] 운영자 06.02.27 917 0
10 [김문수 에세이] 180만 명의 약속, “더 깨끗한 물을 드릴테니...” [3] 운영자 06.02.24 947 0
9 [김문수 에세이] 족쇄를 풀자 - 수정법 폐지 [5] 운영자 06.02.23 895 0
7 [김문수 에세이] 수도 분할 이전은 잘못 [3] 운영자 06.02.22 874 0
6 [김문수 에세이] 세계화 시대의 서버(server) [3] 운영자 06.02.21 857 0
5 [김문수 에세이] 경기도, 대한민국의 심장부 [3] 운영자 06.02.20 877 0
12
갤러리 내부 검색
제목+내용게시물 정렬 옵션

오른쪽 컨텐츠 영역

실시간 베스트

1/8

뉴스

디시미디어

디시이슈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