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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덕팬픽] 추화군 1모바일에서 작성

(119.199) 2018.03.25 18:18:17
조회 3649 추천 41 댓글 26




***
봄날의 추화군은 벚꽃이 한창이었다.

하얀색의 벚꽃과 분홍색의 벚꽃이 어우러져 봄날의 찬란한 광경을 만들어내었다.


“덕만아...”


그제서야 차가운 겨울바람에 의해 벚꽃나무에 잎 하나 남아있지 않던 그날, 날카로운 칼날과 겨울 공기보다 차가운 화살에 쓰러졌던 비담이 눈을 떴다.

뿌옇게 변해버린 시야는 점차 또렷하게 천장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여러 몸에 남은 자상들은 흉터를 남겼지만 고통에 익숙한 비담에게 그리 아픈 느낌을 주진 않았다.


“덕만아...”


눈을 뜬 비담은 계속하여 덕만을 불러대었다.

그녀가 간절히 보고 싶었다.

오리 새끼 마냥 덕만을 맹목적으로 따랐기에 그녀의 앞에서 죽어갔음에도 눈을 뜬 지금 이 순간 그녀가 간절히 필요했다.

여기가 어딘가 싶어 겨우 고개를 옆으로 돌리자 거짓말처럼 서랍에 머리를 기대고 곤히 자고 있는 덕만이 보였다.


“.....”


비담은 덕만의 얼굴을 보고 나서는 이곳이 저승이라 확신하였다.

이곳이 저승세계가 아니라면 자신의 눈앞에 덕만이 나타날 수는 없는 것이었다.

저승인들 어떠하랴, 그녀가 내 앞에 있다면 그것으로 모든 것이 충분했다.


“덕만아...”


곤히 자고 있는 덕만을 애써 부르며 비담은 몸을 일으켰다.

오랫동안 누워있던 탓에 굳은 근육이 비담에게 이질적인 느낌을 주었으나 그것은 그에게 지금 중요한 사항이 아니었다.

덕만에게 다가가 그녀의 옆에 앉은 비담이 서랍에 기대고 있던 덕만의 머리를 조심스럽게 자신의 어깨로 옮기었다.

어찌나 곤히 자는지 비담이 작은 덕만의 손을 어루만지는 동안에도 덕만은 눈을 뜨지 않았다.


“여기가 저승일까요... 아니면 꿈일까요...”


자신의 것과는 다른 한없이 부드러운 하얀 손의 온기를 느끼며 비담이 중얼거렸다.

부디 전자이기를 바랬다.

꿈속에서 덕만을 만나고 꿈에서 깨어나 꿈속의 그녀와 헤어지는 것은 너무나도 많이 겪어본 일이었기에 그것이 아니기를 비담은 간절히 바라였다.


“으음...”


한참의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덕만이 몸을 움직였다.

큰 눈망울이 서서히 떠지고 고운 입에선 작은 소리가 나오는 순간 덕만은 무언가가 평소와 다름을 알아차렸다.


“비담!”


자신의 머리가 어깨에 기대져 있었고 사내는 자신의 손을 어루만졌다.

놀란 덕만이 소리치며 몸을 떼 비담을 마주 보고 나서야 덕만은 드디어 긴 기다림의 시간이 끝났음을 알아차렸다.


“폐하...”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서로가 서로를 빈틈 없이 끌어안았다.

오랜만에 느껴지는 덕만의 향에 비담은 미소를 지었고 그의 단단한 팔에 안겨 덕만은 눈물을 흘렸다.


“흐흑...”


안도의 눈물이었고 기쁨의 눈물이었다.

매일 밤 악몽처럼 그가 눈앞에서 자신의 신하들의 칼에 베이고 화살을 맞는 그 광경이 펼쳐졌다.

문득 눈물바람으로 잠에서 깨어나면 눈앞의 비담은 늘 죽은 듯 미동조차 하지 않고 움직이지 않았기에 그가 언제든 떠나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덕만을 덮쳤다.


“미안해... 미안해 비담.”


그의 등을 쓰다듬으며 덕만은 얼굴을 그의 가슴에 묻고 파고들었다.

비담은 환상과 같은 이 순간의 모든 것이 의아했다.

덕만의 얼굴을 보고 이곳은 저승이라 확신하였건만 모든 것이 너무나 현실적인 것이 그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그러나 아이처럼 매달리는 덕만이 너무 좋아 차마 아무 말을 하지 못했다.


“폐하...”

“응...?”


부드러운 미소와 어울리는 목소리로 그렇게 덕만을 부르기만 하는 비담이었다.


“폐하...”


그가 부르는, 이제는 내려놓은 그 무거운 자리.

덕만이 눈물에 젖은 눈망울로 그에게서 몸을 떼어 비담을 바라보았다.


“읍...”


기습이라 불리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빠르게 덕만의 허리를 붙든 비담이 덕만에게 입을 맞추기 시작했다.

도톰하고 말캉한 입술에 입을 맞추며 본능적으로 몸을 빼는 덕만을 단단히 결박했다.


“비...”


그를 부르려는 여인의 다급한 목소리는 사내의 입술에 삼키어 이내 사라졌다.

어느새 벌어진 틈 사이로 혀를 침범시킨 비담이 덕만의 고른 치열과 입 천장을 쓸며 어색히 굳어 있는 덕만의 혀를 희롱하였다.


“아...”


원하지 않아도 터져 나오는 신음에 놀란 덕만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지만 비담은 멈출 마음이 없어 보였다.

덕만의 잘록한 허리를 쓰다듬으며 덕만이 숨조차 쉬지 못하도록 입맞춤을 퍼부었다.

결국 참다못한 덕만이 비담의 가슴을 세 네 번 주먹으로 치고 나서야 그는 아쉬운 듯 덕만에게서 떨어졌다.


“하아...”


서로 가쁜 숨을 내쉬었다.

부끄러운 마음에 얼굴을 들지 못하는 덕만의 팔을 붙잡아 이끌어 다시 비담은 그렇게 덕만을 안았다.

쿵쿵.

세차게 뛰어대는 서로의 심장이 온전히 느껴졌다.


“꿈이 아니니 다행입니다.”

“응?”


마치 잠꼬대를 하듯 희미하게 들려오는 비담의 말에 덕만이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꿈이 아니면... 저승입니까?”

“무슨 소리를 하는 게냐...?”


이해하지 못할 비담의 말에 덕만은 진짜 비담이 어디가 아픈 게 아닐까 싶어 걱정스러웠다.

너무 오래 쓰러져있던 그였기에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지 얼른 의원을 불러야 하나 고민이 되었다.


“비담...?”

“예.”


이전에 비해 까칠해진 얼굴이 마음에 쓰였으나 그렇다 하여 그에게 큰 문제가 생긴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여전히 쳐다보기 부끄러울 만큼 다정한 눈길로 덕만을 바라보는 비담이었다.


“이곳은 추화군이다. 쓰러진 이후에 기억이 없어 혼란스러운 것이냐?”


추화군이라는 말에 비담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잘못 들은 건가.

비담이 의아한 얼굴로 덕만에게 다시 물었다.


“추화군이라 하시면...?”

“왕의 자리를 내려놓고 너와 여생을 보내겠다 하질 않았더냐.”

“폐하...”


그제서야 비담은 복잡했던 머릿속이 어느 정도 정리되는 듯하였다.

나는 죽지 않고 살아 덕만과 추화군에 남겨진 것이구나.

왕의 자리를 내려놓은 내 정인이 송장과 다름없는 내 옆을 지켜주어 하늘로 돌아가지 못한 것이구나.


“폐하...”

“이젠 폐하가 아닌걸...”


작은 목소리로 대답하는 덕만에겐 다행히 권력에 대한 미련은 남아있지 않는 듯했다.

비담이 손을 뻗어 덕만의 볼을 어루만졌다.

그의 손길에 부끄러워 고개를 들지 못하는 덕만을 바라보며 비담은 감사했고 또 감사했다.

어리석게도 잃어버린 기회를 하늘이 다시 주셨음이 분명하였다.

살았으니, 덕만이 내 곁에 있으니, 분명히 내가 해야 할 것들이 있을 것이다.






















***
날이 저물어갔다.

부엌에서 달그락달그락 부산한 소리가 들리었다.


“들어가거라.”


일부러 눈에 힘을 주어 화난 척 비담에게 말하였으나 그는 꿈쩍도 하지 않고 덕만의 옆에 서서 요리를 하고 있었다.

분명 시작은 덕만 스스로 비담에게 밥을 만들어주고자 하였건만 언제부터인지 오히려 자신은 뒤로 물러나있고 비담이 요리를 하는 모양새다.


“들어가래도. 의원이 당분간 큰 움직임도 자제해야 한다 하였다.”

“너무 오래 누워있어 몸이 굳어 그렇습니다. 자꾸 움직여야 됩니다.”

“안 된다 하질 않느냐...”


덕만의 핀잔에도 무엇이 그리 좋은지 자꾸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을 겨우 참으며 비담은 능숙하게 국을 끓였다.

덕만과 비담이 스스로 하겠다 고집을 서로 피우는 동안 원래 집안일을 하던 덕구 어멈과 덕구 아범은 안절부절못한 채로 부엌 밖을 서성이는 중이었다.


“주인님께서 일어나신지 얼마 되시지도 않았는디.”

“들어오지 말라 하시니 원...”


힐끔힐끔 주방을 바라보던 덕구 어멈이 꽤 그럴싸한 음식 냄새가 풍겨오자 안심한 표정으로 덕구 아범의 어깨를 토닥였다.


“이제 집에 가요.”

"가면 안 될 것 같은디.”

“우리가 눈치 있게 빠져줍시다. 가요, 가.”


갈팡질팡하던 덕구 아범은 먼저 그럼 간다는 덕구 어멈의 차가운 말에 급하게 채비를 하곤 집 밖을 나섰다.

그걸 알리 없는 비담과 덕만은 여전히 부엌 안에서 실랑이 중이었다.


“들어가십시오 폐하. 제가 차려드리겠습니다.”

“너야말로 들어가거라. 부탁이다.”


서로 한 고집하는 성정 덕분에 절대 양보하지 않았다.

요리를 다 끝냈음에도 불구하고 상을 차리는 것으로 또 서로 들어가라 아우성이었다.

덕만이 닿지 않는 높이 올려진 상을 꺼내려고 까치발을 들고 손을 뻗자 비담이 웃으며 덕만을 뒤에서 안아주었다.

따스한 온기가 등에 닿자 다시금 얼굴이 붉어진 덕만이 비담도 보지 못할 눈 깜짝할 새에 미소를 지었다.

비담이 한 손으로 상을 꺼내려는 순간,

와장창! 쨍그랑!

순간적으로 팔이 저리며 힘이 빠진 비담이 상을 놓치면서 허공에서 바닥으로 떨어지는 상이 주변의 식기와 부딪히며 큰 소음을 내었다.

놀란 덕만이 몸을 움츠리자 비담이 본능적으로 그녀를 감싸 안아 반대쪽으로 당기었다.

쿵!

비담의 등에 부딪친 상이 결국 바닥에 떨어졌다.


“비담...!”

“괜찮으십니까? 다치지 않으셨어요?”


놀라 눈물마저 맺힌 덕만의 양 팔을 붙잡고 이리저리 살펴보던 비담이 덕만이 다치지 않은 것을 확인하곤 꽉 껴안았다.

서로의 심장이 쿵쿵대는 것을 느끼며 서로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너는... 너는 다친 곳이 없느냐?”

“예, 괜찮습니다. 여긴 깨진 식기로 위험하니 나가계셔야겠습니다.”


부엌장의 너무 높은 곳에 상을 둔 것이 화근이었다.

평소라면 별것 아닌 일이었지만 비담이 막 깨어났기에 몸의 곳곳이 순간적으로 힘이 없어져 휘청거리거나 저리거나 혹은 근육이 팽팽히 당겨지는 느낌이 들었는데 하필 상을 드는 순간 다시 그러한 것이었다.

안은 덕만을 조심히 움직여 부엌 밖으로 이끈 비담이 문 옆에 있던 빗자루로 깨진 조각들을 쓸기 시작했다.

다시 팔들이 저려왔지만 본인보다 더 걱정하는 덕만의 눈길에 차마 내색하지 않았다.


“비담, 내가 쓸겠다.”

“안됩니다.”


단호한 비담의 음성에 덕만이 뾰로통한 표정으로 입을 삐죽삐죽 내밀었다.

누워 있어야 하는데, 편히 있어야 하는데.

걱정되는 본인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비담은 열심히 바닥을 쓸고 있었다.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 다시 부엌으로 들어간 덕만이 비담의 앞을 가로막아 섰다.


“폐하...?”

“들어가다오. 그렇지 않으면 이젠 정말 화를 낼 것이다.”

“저는 괜찮습니다.”

“방금 전 의원이 다녀가 한 말을 어찌 이리 가볍게 여기느냐?”


차가운 덕만의 말투가 이전 서라벌에서의 말투와 비슷한 것 같아 비담은 결국 빗자루를 내려놓았다.

머뭇거리던 비담이 결국 부엌을 나서 방을 들어가는 것을 본 이후에야 덕만의 화난 얼굴이 누그러뜨러졌다.


“에휴...”


화가 난 척 눈을 억지로 째려보느라 눈이 아픈 느낌이 들자 덕만이 눈을 비비었다.

거의 다 쓸은 바닥을 보며 조금 더 빗자루로 조심히 쓸고는 떨어진 상을 닦아 준비한 식사를 그릇에 담아 올리었다.

물끄러미 그 상을 바라본 덕만의 눈에 눈물이 들어찼다.

마음이 묘하다.

이 작은 소박한 밥상을 살아있는 비담과 나눌 수 있을까 걱정했던 지난겨울이 생각이 났기 때문이다.


“..... 폐하.”


결국 참은 눈물이 떨어지는 순간 등에서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단단한 팔로 등 뒤에서 감싸 안은 비담이 덕만을 나지막하게 부르고 있었다.


“또 언제 나왔느냐...”

“연모합니다.”

“응?”


질문과는 다른 대답에 덕만이 의아한 듯 그를 다시 바라보려 하였으나 워낙 꽉 안겨있는 터라 몸을 돌리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자신을 안은 그 손을 대신 어루만지었다.

그의 손을 놓았던 그날을 얼마나 자책하며 보냈던가.

덕만의 부드러운 손길에 비담이 움찔하였으나 덕만의 어깨에 얼굴을 기대 그녀의 향을 맡으며 이 순간을 오롯이 즐기었다.

감히 이러한 일을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서라벌에서의 삶이었기에 지금 이것이 그 힘든 날들의 보상이라면 마음껏 누리고 싶었다.


“비담...”


덕만이 불러주는 자신의 이름이 너무나도 좋았다.


“연모합니다.”


그래서 그 마음을, 긴 세월 동안 단 하루도 변치 않은 그 연정을 진심을 담아 덕만에게 전달했다.

붉어진 얼굴로 고개를 숙인 덕만이 결국 용기 내어 그를 바라보았다.

짙은 눈썹 아래 그윽한 그의 눈동자에 비치는 자신이 보였다.


“고맙다, 이리 살아주어서.”

“폐하...”

“믿었다. 널 믿었어. 네가 날 버리고 가지 않을 것임을 나는 온전히 믿었다, 비담.”


아까 전 비담이 그리했듯 그의 얼굴에 손을 대 어루만지며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듯 덕만이 말을 건네었다.

덕만은 지금 죽음을 두고 이야기하는 것이지만 비담에게는 그녀의 말을 듣곤 덕만이 건네주었던 그 가락지가 떠올랐다.

끝까지 믿어준 그녀를 배반하고 가락지를 보낸 그날의 아픈 기억과 아픈 감정이 눈앞에 다시 일렁이었다.

과연 덕만 앞에 내가 설 자격이 있는 것인가.

몰려드는 죄책감을 덕만의 손끝으로 애써 물리며 비담은 천천히 미소를 지었다.


“이제 밥 먹자. 죽을 끓여주어야 하는 것인데...”

“아닙니다. 어릴 때 많이 먹어 이젠 먹고 싶지 않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먼저 상을 들겠다며 서로 고집을 피우다 작은 실랑이 끝에 결국 비담이 상을 들고 덕만이 문을 열어 방으로 들어섰다.

자리에 앉아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상을 바라보고 있자니 묘한 위화감이 들었다.

누군가와 이렇게 소박하지만 따뜻한 밥상을 나눠본 적이 있던가.


“아까 본 덕구 어멈과 덕구 아범이 널 돌보느라 고생하였다.”

“그랬습니까...”

“깨지 않는 널 약도 먹이고 미음도 먹이고 몸도 닦이며 돌보아주었으니 내일 다시 오거든 꼭 감사 인사를 표하거라.”

“예.”


일어나자마자 의원이 찾아오는 통에 정신이 없어 인사 밖에 못하였기에 그것이 덕만은 계속 마음에 걸린 듯하였다.


“음, 맛있다.”


비담이 끓인 국을 숟가락으로 가리키며 덕만이 미소를 지었다.


“다행입니다.”


그 환한 때묻지 않은 미소를 바라보며 비담 역시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반찬을 덕만의 밥 위에 올려주며 그녀가 밥을 먹는 것을 빤히 바라보았다.

오물오물, 잘 먹는 모습이 예뻤다.


“비담.”

“예?”

“밥 먹는데 그리 쳐다보면 부담스럽다...”

“아, 송구하옵니다.”


하지만 그 시선이 덕만에겐 부담스러운 모양이었다.


“거의 혼자 밥을 먹어서 누가 앞에 있는 게 익숙지 않아 그렇다.”


서로가 같은 생각을 하는 듯했다.

두 사람은 따뜻한 기억보다 외로운 기억이 더 많은 사람들이기에 이리 같이 밥을 먹고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쑥스러운 듯 웃는 이러한 저녁을 가져볼 것이라 상상조차 하기 힘들었다.

그러한 꿈을 한때 가졌으나 오해로 모든 것이 부서져 산산조각이 났기에 이 순간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탕약을 다려오마.”

“예?”


밥을 반 공기도 먹지 않은 덕만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비담이 황당한 듯 되물었다.


“제가 달이면 됩니다. 앉아 드세요.”

“다 먹었다. 의원이 아까 탕약도 빼먹지 말고 먹이라 하였으니 금방 다려오마.”

“안됩니다.”


결국 비담이 자리에서 일어나 덕만의 손을 잡고 다시 자리에 앉혔다.


“다 먹었다는 대도...”

“반도 아니드셨습니다. 아직도 식사를 이리 하십니까?”


덕만의 태의가 덕만에게 간언을 해도 도저히 나아지지 않자 당시 여왕의 정인이자 상대등이었던 비담을 찾아가 폐하께서 밥을 거의 거르다시피 하니 제발 식사를 하게 방법을 찾아달라 부탁한 적이 있었다.

덕만이 석반을 할 때 찾아가 더 드셔야 한다 간언을 하였으나 아직도 이리 먹고 있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배가 부르다. 더 먹고 싶지 않아.”

“안됩니다. 딱 다섯 숟가락만 더 드십시오.”

“비담...”


덕만이 아이처럼 투정을 부리자 그 모습이 너무 예뻐 비담이 무어라 말을 더 하지 못했다.


“딱 두 숟가락만 더 먹겠다.”

“세 숟가락입니다.”

“두 숟가락.”

“자꾸 그리하시면 다시 다섯 숟가락을 드시라 하겠습니다.”


흥.

입술을 삐죽 내민 덕만이 비담이 다시 반찬을 밥 위에 얹어주자 결국 다시 남은 밥을 먹기 시작했다.

덕만 역시 비담의 밥 위에 반찬을 올려주며 그가 먹는 것을 바라보았다.

비담이 밥 한 공기를 깨끗이 비우고 덕만이 세 숟가락을 더 먹고 나서야 식사가 끝이 났다.


“제가 탕약을 달이겠습니다”

“허면 내가 목욕물을 받아주마.”

“폐하.”


비담이 그녀를 나지막이 불렀다.

밥상을 밀고 덕만의 손목을 붙잡아 잡아당기었다.

뒤로 물러나려고 하기도 전에 덕만을 껴안아 등을 토닥였다.


“비담...”


비담의 손길이 솔직히 부끄러웠다.

궁에서의 비담은 덕만을 안을 때도 조심스러웠고 잘 하지 않았을뿐더러 입맞춤은 오늘이 처음이었기에 이리 갑자기 마음을 행동으로 표현하는 비담이 어색하기도 했다.

하지만 비담은 더 이상 참지 않으려 했다.

죽다 살아나니 하루가 너무 소중하다는 것을, 덕만이 또한 너무 소중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 것이다.


“청이 있습니다. 들어주시겠습니까?”


가녀린 등을 쓰다듬으며, 떨려 뛰어대는 덕만의 심장을 느끼며, 비담이 질문하였다.


“응...”

“꼭 들어주셔야 합니다.”


무슨 청이기에 그러는 걸까?

그에게 가만히 안겨있으니 얼굴을 바라보지 못하기에 비담이 대체 무슨 생각인지 가늠이 되질 않았다.


“밥은 제가 하겠습니다.”

“안된다.”


비담의 말에 곧바로 덕만이 대답했다.

아직 몸을 다 회복하지 못하였기에 분명 아까 부엌에서도 그런 일이 일어났을 것이다.


“청소도 제가 하겠습니다.”

“안된대도.”

“빨래도 제가 할 겁니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하거라. 그럼 난 무얼 한단 말이냐.”


비담에게서 벗어나고자 덕만이 몸을 비틀었지만 그럴수록 비담이 더욱 단단하게 껴안아 움직이지 못하게 막았다.


“폐하... 제 말을 좀 들어주십시오.”

“응...? 응....”


비담이  간절하게 말하자 결국 덕만이 몸을 비트는 것을 멈췄다.

그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고개를 끄덕이자 비담이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제가 지은 죄가 많지 않습니까. 그러니 제가 다 하게 해주십시오.”

“그런 소리 하지 말거라.”


비담이 무엇을 말하려는 것인지 알기에 그녀는 더욱 단호히 말하였다.

분명 지워지지 않을 기억이지만 가능하다면 잊고 싶었다.

기억이 바래지고 희미해지면 그땐...


“피하지 마.”

“.....”


비담이 덕만의 어깨를 붙잡고 눈을 마주쳤다.

그는 알고 있었음이다.

그녀와 남은 여생을 보내기 위해서, 이 추화군에서 다시 살아나기 위해선 그녀 앞에 진심으로 용서를 구해야 한다는 것을.

끝까지 믿어주었던 덕만에게 자신의 잘못을 뉘우쳐야 한다는 것을.

그랬기에,


"피하지 마, 덕만아."

"비담..."


자신을 바라보는 그 맑고 투명한 눈동자를 바라보며 비담은 무릎을 꿇었다.


"송구합니다. 송구합니다, 폐하."


왕께 드리는 신하의 참회를, 정인께 전달하는 사내의 진심을 덕만이 부디 받아주길 바라면서 그렇게 비담은 그녀의 앞에서 용서를 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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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4078 이 정도로 여자-남자관계에서 절묘하게 연군지정을 뽑은 드라마가 없는 듯 [11] ㅇㅇ(222.99) 20.09.28 2376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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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4023 현대판 비담×춘추 [3] 보름달(119.207) 20.09.23 1508 23
384022 현대판 비담×덕만 [11] 보름달(119.207) 20.09.23 2667 36
384020 유튜브 덕만-비담 장면 모아놓은 편집본 [7] ㅇㅇ(118.235) 20.09.23 1873 23
384011 밤새 울었더니 눈이 잘 안떠져 [9] ㅇㅇ(211.36) 20.09.22 109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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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3996 나는 덕만이 왕이 된 이후 에피소드들을 계속 반복해서 봐 [5]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09.14 1470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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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3936 일식은 다시 봐도 명장면이다 [3] ㅇㅇ(1.232) 20.08.22 924 16
383925 선농제(2) [5] ㅇㅈ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08.10 476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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