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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론3(이카루스의 날개) - 33 판도라의 상자

운영자 2018.08.20 10:3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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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판도라의 상자


다음날 오후 나는 주회장을 접견하기 위해 구치소로 갔다. 회색하늘 아래 장방형의 건물들이 드문드문 컨테이너 같이 포개져 있는 모습은 항상 황량한 느낌이다. 쇠빗장을 지른 철문 앞에 앞에 섰다. 바짝 마른 도둑 고양이 한 마리가 문 아래 있는 게 보였다. 철문 저쪽에 있던 경교대원이 철문사이에 사각으로 뚫린 작은 틈으로 나를 보고는 쇠빗장을 열었다. 스르릉하면서 마찰음이 들렸다. 문이 열린 틈을 타서 고양이가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고 있었다. 

“어 고양이가 징역살러 들어가네?”

내가 농담같이 한마디 했다. 겨요대원이 발을 뻗어 고양이를 막으면서 소리쳤다. 

“야 이놈아, 들어오면 안돼, 여기 있으려면 판결문 가지고 와.”

고양이는 들어가지 못하고 실망한 눈빛으로 다른 곳으로 갔다. 접견실로 들어섰다. 세 명의 교도관이 자리에 앉아서 전화를 받기도 하고 사무를 보기도 하고 있었다. 커피 머쉰에서 커피 한잔을 뽑아 들었다. 창틈으로 여죄수들을 수용한 사동과 뒤뜰이 내려다 보였다. 누렇게 시든 풀잎들이 바람에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다. 

 
잠시후 주회장과 마주앉았다. 볼이 움푹 들어가고 뺨에 검은 털이 숭숭 난 초췌한 모습이었다. 그래도 나를 보자 그는 미소를 잃지 않았다. 슬픈 미소였다. 

“어제 오후 뉴스를 보니까 저에 대한 구속집행정지신청이 기각된 게 보도가 되더라구요, 판사가 너무 여론의 눈치를 보는 거 같아요”

그가 실망한 표정으로 말했다.

 
언론은 ‘단군 이래 최대의 사기꾼’이란 딱지를 그에게 붙여주었다. 그리고 뉴스시간마다 그 단어가 앵무새 같이 앵커를 통해 반복되고 있었다.그렇게 딱지가 붙으면 우리사회에서는 그는 사기를 친 적이 없어도 사기꾼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한 장례식장에서 만난 장군출신인 친구는 내가 주기도의 변호인이라고 하자 “그런 새끼는 당장 총을 쏴서 죽여야 하는 거 아냐?”라고 원색적으로 자기의 의견을 내뱉었다. 그게 세상인심이었다. 안에 있는 주기도는 태풍의 핵심에 있어도 주위의 그런 바람을 피부로 감지하지 못했다. 주기도가 말을 계속했다.

“김치선 변호사님은 머리도 좋고 뛰어나서 그런지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건 절대로 양보하지를 않아요, 자기 의견과 다르면 판사가 틀렸다는 거예요. 지금은 칼자루를 쥐고 있는 재판장의 기준에 조금은 맞추어 줘야 할 텐데 조금은 아쉽네요, 아마 판사를 계속했으면 크게 성공하셨을 거예요.지난번 증인 신문 때 피고인석에서 보고 있자니까 아슬아슬 했습니다. 변호사가 증인을 건드리니까 증인도 뿔따구를 내는 것 같더라구요”

“요즈음 다른 일은 없어요?”

내가 화제를 바꾸었다. 

“그동안 별일이 많았죠, 피해자들을 수천명 조직하고 검사를 대신해서 수사하고 나를 제일 공격하던 금현식이가 전향을 했어요, 아무도 모르게 나를 용서해 달라는 탄원서를 써서 재판장에게 제출했습니다. 절대 피해자들에게 알리지 말아달라고 부탁하더라구요, 원래 그 친구는 제가 많이 예뻐했어요, 그 과정에서 서상태도 많이 뛰었죠”

내가 처음에 일식집에서 봤던 정의를 독점하고 있는 듯한 표정을 짓던 두 사람이었다. 그의 얼굴에 희망의 빛이 떠오르는 것 같았다. 그가 계속했다.

“요즈음은 저를 무기징역에 처하라고 하던 피해자라는 사람들이 오히려 김근종 검사를 압박하고 있어요, 돈 받아 준다고 하더니 왜 안 받아 주느냐고 덤비는 거죠, 이렇게 할 바에야 차라리 주기도를 풀어줘서 사업을 하게 하라고 검사를 바짝 조이고 있어요”

“그외 다른 일은 없습니까?”

“매일 같이 검찰에 불려갑니다.”

“왜요?”

“자기들이 죽이겠다고 찍은 정치인이나 사회명사를 어떻게 하든지 유죄로 만들어야 겠다는 겁니다. 특히 신문에 보도된 사람들을 기소하려고 전력을 다하고 있어요, 원동연의원에 대해 강도 높은 조사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건 철저한 비밀입니다. 나보고 뇌물을 줬다고 진술을 하라고 검사가 시키더라구요.”

“정말 나쁜 놈들이네”

내가 화를 내며 말했다.

“나쁜 놈인 걸 이제야 아셨습니까?”

주기도의 얼굴에서 비웃음이 흘러나왔다. 

“그 댓가는요?”

내가 물었다.

“매일 검찰에 불러서 빈방을 주고 내가 일을 할 수 있게 편의를 봐주겠다는 겁니다. 피해자들을 만나게 하고 대표들과 합의도 할 수 있게 도와주겠다는 겁니다.”

며칠 전 언론에 몇 명의 정치인들이 주기도의 로비를 받았다고 보도됐었다. 

“민국진 의원에게 로비한 사실이 있어요?”

“그 양반이 방문판매법 개정 때 하도 깐깐하게 굴어서 다른 의원을 통해 말을 전한 적이 있습니다.”

“방희선 의원은요?”

“방희선 의원은 우리 에이유의 회원인 동광여고 교장선생님과 동창인 아주 친한 사이였죠, 그 소개로 인사를 한 적이 있어요, 그쪽에서 저에게 후원금을 요청한 적이 있었죠, 그런데 제가 깜빡 잊었어요, 보좌관이 다시 전화를 했는데 그날 사정 때문에 리턴 콜을 하지 못했어요, 아마 자존심을 다친 모양입니다. 그 후 연락이 없었습니다.”

“원동연 의원은요?”

“염동연의원은 한번 제게 납품부탁을 한 적이 있기 때문에 받아준 적이 있어요, 지금 검찰에서 강도 높게 조사하고 있더라구요, 신문에서 이름이 거론됐기 때문에 수사를 완성시켜야 한다는 거예요.”

“나광명 의원은요?”

“그 분은 제 평화포럼재단의 대사였어요”

“기자들은 노무현 대통령영부인과도 연결되어 있다고 하던데?”

주기도가 잠시 침묵하면서 생각하는 표정이었다. 이윽고 그가 말했다.

“나중에 정말 여러 가지를 말씀드릴께요.”

그가 여운을 남긴 말로 끝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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