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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녀 탈랜트의 숨겨진 사랑

운영자 2024.04.15 10:27:17
조회 67 추천 1 댓글 0

오래전 드라마에서 주인공이었던 여성 탈랜트의 얼굴이 나오고 있었다. 우수가 낀 듯 잘생긴 얼굴이었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간간이 단역으로 나오는 것 같다. 그녀의 얼굴에서 기억의 아스라한 저편에 있던 한 남자의 희미한 형체가 떠올라 내게로 다가오는 것 같다.

그러니까 은행잎이 노랗게 물들었던 가을 어느 날이었다. 나는 구치소에서 그를 만났다. 휠체어를 타고 접견실로 나온 그는 어깨 위로 온통 인공혈관을 걸치고 있었다. 주기적으로 피를 걸러줘야 한다고 했다.

“예리한 면도날로 온몸을 얇게 써는 것 같이 아파요”

그는 내게 고통을 호소했다. 판사가 그를 직접 봤다면 구속영장에 서명하지 않았을 것 같았다. 내가 들은 그의 지나온 삶은 대충 이랬다.

그는 음대 기악과 출신으로 유명한 그룹사운드에서 베이스 기타 주자였다. 검은 눈빛에서 촉촉한 호소력이 배어 나오는 감성적인 얼굴이었다. 어느 날부터인가 그의 손가락 끝이 곪기 시작했다. 철로 만든 기타 줄을 치면 손가락에 피가 나오기도 하고 더러 곪기도 했다. 약국에서 고약을 사다 발랐다. 그런데도 손가락은 더 곪아갔다. 동네 의사에게 가니까 고개를 갸웃하며 대학병원에 가서 정밀검사를 받아보라고 했다. 검사 결과 버거병이라는 진단명이 나왔다.

피가 모세혈관까지 제대로 순환되지 못해 손과 발이 조금씩 썩어간다는 설명이었다. 그 병은 사람을 바로 죽게 하지는 않고 서서히 아주 서서히 촛불같이 그의 몸을 태워 없앤다고 했다. 얼마후 그의 발가락에 종기 같은 게 생겼다. 그 종기는 조금씩 위로 올라오면서 그를 잡아먹고 있었다. 오 년이 흐르자 그는 썩어버린 양쪽 다리를 잘라내고 의족을 달아야 했다. 앞으로는 양팔이 썩어서 없어질지도 몰랐다. 고통도 심했다. 그 병에 걸린 환자 열명중 거의 아홉명은 자살을 한다고 했다. 그는 아직은 죽기 싫었다. 마지막까지 음악을 더 하고 싶었다.

병원에 가서 맞는 몰핀은 한 시간 밖에 진통효과가 없었다. 악사인 그가 감당하기에는 값도 비쌌다. 어느 날 아는 후배가 히로뽕을 권했다. 히로뽕은 효과가 있었다. 병원의 몰핀보다 훨씬 싸고 하루 종일 아프지 않았다.


어느 날 그가 구속됐다. 히로뽕 판매책이 잡히면서 연예인인 그에게 정기적으로 히로뽕을 대주고 있다고 자백했기 때문이다. 수사기관은 연예인을 잡아 신문에 나고 실적을 올리는 걸 좋아했다. 수사 기록에 그의 사정이 적혀있지 않았다. 그 다음의 구속과 기소 재판은 콘베어벨트에 놓인 제조물 처럼 기계적이었다. 변호사를 하면서 그렇게 불행한 사람을 보면 도대체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극히 예외적인 소수의 사람을 위해 제도나 시스템이 바뀔 가능성도 없었다. 그저 애잔한 마음일 뿐이었다. 변호사가 그런 사정을 법정에서 얘기해도 거의 믿어주지 않았다. 거짓이 매연같이 가득 찬 법정에서 판사들도 믿지 않는 병에 오염되어 있는 것 같았다. 그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았다. 호스피스 병동에 있어야 할 시간에 그는 철창 안에서 새우잠을 자며 고통을 견뎌내고 있었다.

“많이 힘들죠?”

나는 위로조로 말했다. 불행에 대해서는 함께 있어주고 묵묵히 들어주는 수 밖에 없었다.

“처음엔 힘들었죠. 그렇지만 모든 걸 받아들이니까 편해요.

발버둥 쳐야 뭐합니까? 어차피 죽는 건데요. 인간은 누구나 죽지 않나요? 지금 죽거나 삼십년 후에 죽거나 무슨 차이가 있겠어요. 아직 팔은 남아 있어 음악을 하고 싶은데 감옥이라서 못하네요.”

그는 순간 누군가를 떠올리는 표정이더니 얼굴빛이 환해지면서 말했다.

“저는 후회가 없어요. 정말 예쁜 여자와 사랑을 나눠봤구요. 한때 돈도 있어 봤어요. 변호사님 내가 사랑하던 사람이 누군지 아세요?”

그는 유명한 드라마의 여주인공으로 나온 탈랜트를 살짝 귀뜸해 주었다.

“보고 싶지 않아요?”

“제가 일부러 쫓아 버렸는걸요. 참 좋은 여자였어요. 다리가 없어진 저를 화장실에 데려가 밑을 다 닦아 주기도 했어요.”


나는 씁쓸한 마음으로 구치소 문을 걸어 나왔었다. 그 후 그의 후배라는 사람이 그가 하늘나라로 갔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나는 그런 사람들의 눈물을 씻어줄 힘도 능력도 안되는 것 같았다.

화면에 나오는 오래전 인기 드라마의 여성 탈랜트가 아무래도 그녀일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의 영혼이 멀리서 날아와 바로 저 여자예요하고 말하는 것 같기도 했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사는 평범한 일상이 그분이 주는 최고의 선물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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