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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벌이를 졸업하려고 한다

운영자 2024.04.01 12:30:19
조회 144 추천 2 댓글 1

다섯달 동안 집을 수리하면서 매일 노동하는 사람들을 지켜봤다. 젊은 러시아인 일용잡부는 먼지 구덩이 속에서 끊임없이 쓰레기를 나르고 벽돌을 옮겼다. 잠시 쉬는 시간은 핸드폰을 들고 가족과 연락하는 것 같았다. 그는 밥벌이를 위해서 먼 나라로 왔다. 나는 저녁에 그에게 품값을 주었다. 그는 감사하게 받았다. 그의 노동이 가족에게 감사한 밥이 될 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밥벌이 앞에서 양순했다.

조적공 영감은 반쯤 잘려진 녹슨 드럼통 안에서 시멘트와 물을 섞어 반죽을 만들었다. 반죽이 부드러워지기를 완강히 거부 할 때가 있다. 반죽기를 잡은 영감의 몸이 휘청거린다. 영감은 말없이 일한다. 노동을 하는 얼굴은 숭고해 보였다. 나는 일이 끝나면 그의 구좌로 임금을 보냈다. 노동자의 밥벌이는 정직하고 깨끗했다.


나도 평생 밥을 벌었다. 고등학교 시절 동네 초등학교 아이들을 모아 가르쳤다. 한 달을 가르치고 받는 만원짜리 지폐 한 장이 신기했다. 책을 파는 외판원을 했었다. 시내버스를 타고 발품을 팔면서 책을 살 사람을 찾아갔다. 책을 사주는 사람들을 보면 참 고마웠다. 노동의 과정에서 세상을 많이 배웠다. 대학을 졸업하고 군 장교가 됐다. 처음 월급이 구만원이었다. 잠자리와 밥값으로 육만원이 들었다. 나머지 삼만원이 용돈이었다. 국가에서 주는 그 노동의 댓가를 감사하게 썼다. 공무원 생활을 칠년가량 했다. 밥벌이에 굽신거릴 필요가 없었다. 승진에 대한 욕망이 크지 않은 편이었다. 평가를 잘 받기 위해 상관 눈치를 본 기억이 없는 것 같다. 출세에 연연하지 않는다면 공무원은 괜찮은 직업이었다. 내 일 하고 내 밥을 먹는 편안함이 있었다. 다만 액수가 작아 월급아니라 갈급인 것 같았다.

공무원을 그만두고 변호사를 했다. 돈을 벌고 싶었다. 내 경우는 남의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는 게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인 걸 아는 데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다. 정당하게 하려고 하면 돈은 아예 근처에도 오지 않는 것 같았다.

대형로펌의 변호사들이 머리를 맞대고 강간범을 꽃뱀에게 당한 사회 명사로 둔갑시키는 걸 봤다. 살인을 한 재벌 부인을 결백한 주부로 만들려는 공작을 들여다 보기도 했다.

선을 악으로 악을 선으로 바꾸는 능력이 있어야 큰 돈은 다가오는 것 같았다. 그래서 토스토엡스키는 변호사를 ‘고용된 양심’이라고 했다. 내 양심이 없어야 한다는 소리다.


영혼까지 변신을 해야 돈이 오는지도 모른다. 친일파라는 무서운 낙인을 찍던 판사가 변호사로 개업을 하자 그가 친일파로 단죄한 인물들의 변론을 맡았다. 그는 이번에는 친일파가 아니라고 했다. 다단계 피해자인 국민을 대신해서 범죄인을 단죄한 검사가 변호사를 개업하자 수십억의 돈을 받고 다단계 조직의 주범의 변호를 맡아 무죄를 주장했다.

그렇게 변신을 해야 큰 돈은 굴러 들어오는 것 같았다.

인간에게 돈은 개의 눈에 비친 고기 조각과 비슷한 게 아닐까. 사람들은 개를 고기 조각으로 길들인다. 저항하던 개도 고기 조각을 주면 꼬리를 흔들면서 태도가 바뀐다. 미친개도 썩은 고기 조각을 던지면 조용해진다. 개에게 정의나 양심은 의미가 없다. 고기조각이 개가 바라는 것의 전부다. 지혜가 있는 깨달은 개가 있다면 그 개의 눈에 비친 인간은 어떤 모습일까. 돈뭉치를 던지면 꼬리를 흔들면서 덤벼들고 아양떠는 인간들도 개들의 족속과 유사하다고 보지 않을까. 처음 변호사를 할 때 저녁이 되면 사무실에서 불을 끄고 기도했다. 너무 가난하게도 마시고 부하게도 마시고 일용할 양식을 달라고 했다. 어쨌든 가족의 입에 밥이 들어가야 했다. 부자가 되는 건 꿈을 꾸어본 적도 없다.

한 작가는 글에서 모든 밥에는 낚시 바늘이 들어있다고 했다. 밥을 삼킬 때 우리는 낚시 바늘을 함께 삼킨다고 했다. 그래서 아가미가 꿰어져서 밥쪽으로 끌려간다는 것이다. 그는 저쪽 물가에서 낚싯대를 들고 앉아서 나를 건져 올리는 자가 누구냐고 묻는다. 그는 그자가 바로 나라고 했다. 그러니 오도 가도 못한다고 했다. 밥 쪽으로 끌려가야만 또다시 밥을 벌 수가 있다고 했다. 나 역시 악마의 낚시 미끼에 꿰어 바닥에서 아가미를 벌떡거리며 힘들었던 적도 있었다.


칠십 고개를 넘는다는 사실은 밥벌이의 지겨움에서 벗어나는 걸 의미하기도 하는 것 같다. 내가 욕망을 가져도 세상이 밀어내는 것 같다. 차라리 홀가분한 해방감을 느낀다.

더 이상 밥 때문에 비굴하지 않아도 되고 고개를 숙일 필요도 없다. 나를 옭 죄던 밥벌이의 정신적 사슬에서 벗어나 나는 자유다. 눈에서 비늘이 떨어지고 세상을 보는 시각이 달라지는 것 같다. 요즈음 나는 전혀 다른 세상을 맞이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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