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함정
남자직원이었던 추기형이 내용증명으로 이런 편지를 정을병에게 보냈다.
<귀하께서 이끄셨던 한국 소설가 협회에 반대세력이 생겨 부정 비리 의혹을 제기하는 소요사태로 확대되자 귀하는 회장 직에서 물러났습니다. 7년을 근무한 본인도 퇴직했습니다. 그리고 저희는 전 집행부가 됐습니다. 협회를 인수한 새 집행부는 사태를 더욱 악한 쪽으로 확대시켜 전 집행부 임원들의 명예를 짓밟고 ‘비리조사 특위’따위를 구성하여 장부를 뒤지는 등 거친 행보를 보이더니 급기야 저에게 횡령혐의를 뒤집어 씌우고 집을 가압류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에 본인은 귀하에게 과감히 나서줄 것을 강력히 요청하는 동시에 함께 만나 수습방안을 논의하자고 점심약속을 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귀하는 약속을 지켜주지 않았고 사태수습을 위해 적극 나서주는 의지도 없었습니다. 특히 초점이 되고 있는 거마비는 매월 정기적으로 귀화의 외환은행 통장에 송금되었습니다. 모든 것의 최종결정은 항상 귀하가 했음을 부인하시면 안 됩니다. 끝으로 한 번 더 당부 드리건데 원로답게 나서서 대타협을 시도 하십시요. 그렇게라도 수습하지 않으면 현 집행부는 귀하에게도 치명적인 아픔을 주고야 말 것입니다.>
2004년7월13일 마포경찰서 조사계 사무실. 경장 이형삼은 소설가 협회 사무국장 추기형을 신문하고 있었다.
“학교 교육이나 경력은 어떻게 되죠?”
“독학을 했습니다.”
“경력은요?”
“소설과 기행문을 쓰면서 문학가로 현재까지 글을 쓰고 있습니다. 출판사를 경영한 적도 있습니다.”
“정을병 회장이 국고보조금을 횡령한 사실을 얘기해 보세요.”
형사가 본론으로 들어갔다.
“정을병 회장이 그때그때 임의로 돈을 책정해서 마음대로 쓴 겁니다. 저는 그때 그건 곤란 합니다 그렇게 해서는 안됩니다라고 했습니다. 허위결산과 장부는 정을병 회장과 제가 협의해서 했습니다. 혼자 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닙니다.”
이어서 협회의 여직원이었던 박경아에 대한 조사가 있었다. 박경아는 형사에게 이렇게 진술했다.
“돈 관리는 추기형씨가 하고 단돈 천원까지 회장의 결제를 받았습니다. 결제시 입금, 출금 및 영수증까지 전부 회장님이 꼼꼼하게 관리를 하고 결재를 하는 식이었습니다. 좁은 사무실에서 사실을 숨길래야 숨길수도 없었습니다. 나라 돈이니까 괜찮다고 생각했는지 회장님은 국가 돈을 자기 돈 같이 막 썼어요.”
며칠 후 정을병 회장과 직원들 사이의 대질신문이 있었다.
“남자 직원 추기형이나 여직원 박경아의 진술에 의하면 회장이 국고금을 마음대로 자기돈 같이 쓰셨다고 하는데 어떻습니까?”
형사가 정을병회장에게 물었다.
“국고를 정확히 쓰라고 했습니다.”
그 말에 남자직원 추기형이 이렇게 되받았다.
“부인하시면 안 되죠. 수시로 이야기 하고 논의하고 다 알고 묵인하셨죠.”
옆에 있던 박경아가 가세했다.
“회장님이 그런 사실을 다 알고 있었습니다.”
2004년8월9일 마포경찰서 조사계 사무실에서 사법경찰리 경장 이형삼은 정을병을 신문하고 있었다.
“소설가 협회 회장을 하시면서 돈을 받은 사실이 있으시죠?”
형사가 물었다.
“예 회장 리베이트로 매월 3백 만원 받았고 어느 달은 2백만원을 받은 적도 있습니다.”
“통장으로 받으셨어요?”
“예 전부 통장으로 받았습니다.”
“재직하신 동안 받은 돈이 전부 얼마죠?”
“1억3천만원에서 4천만원 정도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여기 제 외환은행 마포지점으로 돈을 받은 통장 입출금내역을 복사해 왔습니다.”
정을병은 통장사본을 형사에게 제출했다.
“통장으로 받은 돈의 성격이 뭐죠?”
“리베이트와 일부는 원고료입니다. 원고료는 몇푼 되지 않습니다.”
“어떤 리베이트를 말하는 겁니까?”
“제가 협회장으로 들어왔는데 협회에 돈이 없었어요. 그래서 마사회로 가서 2억원 독서캠페인에서 2억 원등 여기저기서 상당액을 협회 운영비로 끌어왔죠. 그 돈에 대해 리베이트로 돈을 받은 겁니다. 그리고 이사회에서 협회에 협찬금을 받아오는 경우 그 유치가액의 20퍼센트를 유치자가 갖도록 규정을 마련했는데 저의 경우 그와 같은 유치가액에서 정당하게 제 리베이트를 받은 거죠. 그렇지만 국고 보조금에 대해서는 한 푼도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리베이트에 정부 돈은 전혀 포함되어 있지 않은 거죠.”
“저희가 계좌추적을 해 보니까 직원들이 국고지원금통장에서 돈을 빼서 회장님의 계좌에 한 달에 3백만원을 넣은 적이 있어요. 만약 문화관광부 국고 보조금을 리베이트로 알고 받았다면 어떻게 된다고 생각하시죠?”
“그거야 국고금이니까 거기서 리베이트를 받았다면 국고횡령이 됩니다.”
“스토리 뱅크 사업은 그 사업년도가 끝나면 정산보고를 문화관광부에 했죠?”
“그렇습니다.”
“그 결산 보고서에 최종검토자로 결재를 하셨죠?”
“그렇습니다.”
“직원 추기형의 진술은 결산시에 회장이 지시해서 허위로 결산 보고서를 만들었다고 하는데 어떻습니까?”
“그런 적은 없어요. 저는 결제가 올라오니까 사실대로 지출된 것으로 알고 결재를 한 것입니다.”
“회장이 매월 꼬박꼬박 협회로부터 통장으로 돈을 받으면서도 사람을 만나거나 돈을 쓸 일이 있으면 직원인 추기형을 데리고 다니면서 결제하도록 했다는데 맞죠?”
“그런 사실 없습니다.”
정을병은 이미 법의 덫에 걸려들어 있었다. 형사가 직격탄을 쏘기 시작했다.
“국고보조금을 횡령하고 말썽이 생기니까 허위자료들을 여직원에게 폐기하라고 지시했죠?”
“그런 사실 없습니다.”
“협회장으로 사소한 협회사무까지 일일이 챙겼다고 직원 두명이 입을 모아 말하던데 맞나요?”
“저는 그렇게 챙길 시간도 없었습니다.”
협회 직원 두명은 소설가들에게 그 모든 것을 정을병 회장이 한 것처럼 전했다. 분노한 소설가들이 정을병을 엄벌에 처해 달라는 진정서를 검찰에 보냈다. 정을병은 하루아침에 파렴치한 횡령범이 되어 감옥으로 들어갔다. 수사기록만 해도 7책으로 구성된 엄청난 양이었다. 경찰과 검찰에서 원로 소설가 정을병를 구속시키기 위해 작심하고 한 수사라는 느낌이 들었다. 같은 사무실에서 근무하던 직원들의 완벽한 진술을 확보한 상태였다. 그들은 자신의 횡령사실이 이미 드러나 있었다. 약점을 잡힌 그들은 이미 수사기관에 아가미가 꿰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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