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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단편소설] 국정원장의 항변 2

운영자 2019.02.07 10:13:59
조회 145 추천 0 댓글 0
국정원장의 항변


2


만남


뜨거운 폭염이 쏟아지던 2015년 8월 중순경이었다. 점심시간 무렵 나는 강남의 인터컨티넨털 호텔에 도착했다. 정문 앞에는 짙게 썬 팅을 한 검은색 카니발 두 대가 경광등을 번쩍이며 서 있었다.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들이 그 주위에 서서 날카로운 눈길을 보내고 있었다. 국정원장의 경호원들이었다. 호텔 일식집에서 이병호 국정원장을 만나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다. 예약된 일식당의 방으로 안내되었다. 바로 그때 이병호 국정원장이 문을 열고 들어오면서 “오랜 만입니다.”라고 했다. 식탁을 가운데 하고 마주 앉았다. 감색 유니폼을 입은 여성종업원이 들어와 도기에 담긴 차를 따른 후 주문을 기다렸다. 이병호 국정원장이 하얀 탁자보위에 놓인 메뉴판을 보면서 말했다.

“회는 일인분만 하고 나는 소바를 줘요.”

간단히 먹자는 암시 같았다. 종업원이 이번에는 나를 쳐다보았다.

“저는 냉 우동을 주세요.”

종업원이 방을 나간 후 이병호 국정원장이 입을 열었다.

“야인생활을 하면서 바닥을 치고 있을 때 그래도 엄 변호사하고 여러 얘기를 하면서 위로를 받았어요.”

그가 잠시 주저하는 모습이더니 쟈켓 안주머니에서 봉투 하나를 꺼내 내게 주면서 말했다.

“내가 힘들 때 돈도 받지 않고 소송을 해 줬는데 지금이라도 갚으려고 그래요. 이제는 월급도 많이 받고 좀 여유가 생겼어요.”

“순수한 의도로 도와드린 건데 괜찮습니다. 박근혜 정권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변호사와 의뢰인 관계라기보다는 그때 다시 좋은 인연으로서 남고 싶습니다.”

내가 사양했다.

“그래도 국정원장이면 여유 있게 쓸 돈이 있어요.”

그가 싱긋 웃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것 같았다. 묵직한 그의 표정에 허공을 향해 망연한 표정을 짓던 그의 모습이 겹쳤다.

“그래 나이 드시고 국정원장이 됐는데 견딜 만 합니까?”

내가 물었다.

“십 오년을 쉬고 있는 늙은 나한테 박근혜 대통령이 전화를 걸어 국정원장을 하지 않겠느냐는 거예요. 그렇게 해서 칠십대 중반에 졸지에 현역으로 복귀를 했죠. 그동안은 대통령선거캠프에 참여한 인사가 국정원장이 됐는데 내 경우는 평생 그 분야에서 일한 전문성이 발탁의 원인이 된 것 같아요. 노인이 된 내가 어떤 섭리로 국정원장이 됐는지 잘 모르겠어요. 미국에 있는 아들은 기도 중에 내가 여호와의 힘을 보이기 위해서 그 자리에 앉았다고 연락을 하던데 말이죠. 국정원장이 된 처음 석 달 동안은 스트레스가 쌓이고 밤에 잠을 못 자 겠더라구. 이제야 적응이 되요.”

“지금 우리나라의 상황은 어떻습니까?”

내가 물었다. 정보기관의 책임자인 그는 높은 산 꼭대기에서 보는 위치였다.

“중국은 시진핑을 중심으로 하는 일사 분란한 사회주의 국가예요. 또 일본도 겉으로는 민주국가지만 전통적으로 천황을 중심으로 단결력이 강한 나라죠. 그런데 우리는 국민들이 뭉쳐지지 않는 것 같아요. 이따금 광화문에서 열리는 시위현장을 직접 가 보곤 합니다. 국민끼리 좌우로 나뉘어 그 사이에 흐르는 싸늘한 증오를 볼 때 정말 우리가 이래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북한은 어떻게 보십니까?”

그의 생각이 박근혜 정권의 대북관일 수 있다.

“김정은은 정말 나쁜 놈이에요. 전 국민을 굶어죽게 하면서 혼자서 호의호식하고 고모부나 형을 잔인하게 죽이는 전제군주죠. 그런 악마하고 무슨 대화가 되겠어요? 전제군주 정도가 아니라 북한은 종교국가입니다. 김일성일가가 교주인 광신도집단입니다. 통일하려면 교주가 제거되어야 합니다. 김씨 일가가 아닌 다른 지도자가 나와서 경제를 살려야 합니다. 그 다음에 대화를 하고 통일로 가야 하는 거죠. 누가 차기 대통령이 될지 모르지만 안보와 북한의 존재에 대해 정확히 알아야 할 것 같아요.”

북한의 정권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좌우의 시각이 갈라져 있는 현실이다.

“국정원의 정치관여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내가 물었다. 정보기관은 정권유지를 위해 대통령의 눈과 귀역할을 넘어 몽둥이역할을 한 원죄가 있기도 했다. 야인생활을 하는 동안 국정원장 이병호씨는 칼럼을 통해 정보기관의 정치관여를 비판하곤 했었다. 그걸 확인하고 싶었다.

“전의 국정원장들은 어떻게 했는지 몰라도 나는 절대 그런 짓 안해요. 칠십 중반이 넘은 내가 무슨 다른 야망이 있겠어요? 그리고 국정원 직원들도 겉으로는 명령에 복종하지만 속으로는 정치공작이나 그런 걸 싫어해요. 이제 시대가 바뀌어서 박근혜 대통령도 그런 걸 지시하지는 못하죠. 많은 국정원 직원들이 현역 국정원장이나 대통령에게 절대복종하는 척 해도 그 속은 알 수 없는 거 아니겠어요? 나는 그저 북한과의 마지막 전쟁에 전념하고 있죠.”

“마지막 전쟁이라뇨?”

“요즈음 사실 북한의 사이버 테러가 아주 심해요. 국내 인터넷에 침입하는 건 물론이고 인터넷 뱅킹까지 교란시킨다니까요. 국내에는 간첩이 득시글하죠. 그런데 변호사들 때문에 간첩수사를 제대로 못하겠어요. 간첩의 모든 증거가 북한에 있는데 변호사들이 하나하나 증거를 트집 잡으니까 어떻게 잡겠어요?

박근혜대통령은 국내의 좌파세력을 뿌리뽑아달라는 주문인데 현 국정원의 인력으로는 대북문제를 처리하기도 힘이 든 실정입니다.”


그 말을 들으면서 몇 년 전 변호를 맡았던 간첩사건이 떠올랐다. 간첩사건의 변호인이 되어 국정원 조사실을 드나들었다. 키가 껑충하고 볼이 홀쭉한 남자가 조사를 받고 있었다. 그는 해안지역의 군사시설을 동영상으로 찍어 북으로 보냈다. 그리고 군 장교 들을 포섭해서 군사교범과 군사지도 그리고 작전계획을 빼내기도 하고 탈북한 사람들의 사는 모습들을 촬영해 북으로 보낸 혐의를 받고 있었다. 그는 묵비권과 단식으로 저항하고 있었다. 그와 둘이서 변호인 접견을 할 때였다. 그가 비웃는 표정으로 이렇게 내뱉었다.

“모든 증거가 북에 있는데 어떻게 나를 간첩으로 유죄로 만들 수 있겠어요? 남한은 법치주의잖아요? 사실 남한의 정치인 중에 나보다 더한 놈들이 수두룩해요.”

그가 코웃음을 치면서 말했다.

“그게 무슨 소리죠?”

내가 되물었다.

“중국에서 남북한정치인들의 비밀 접촉이 많았어요. 제가 북한측 대표의 경호를 한 적이 있어요. 북경의 호텔에서 남한의 정치인들을 옆에서 본 적이 있어요. 남한의 정치인들은 휴전선 근처에서 무력시위를 해달라고 했어요. 선거에서 이기려면 북에서 전쟁분위기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는 거죠. 그런 놈들이 지금 남한의 정계에 버티고 있어요. 그러니까 북한의 지도자가 남한 선거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는 셈입니다. 북의 입장에서는 골치 아픈 무력사용보다 선거 때 개입해서 원격 조정 하는 게 훨씬 파괴력이 있다고 봅니다. 누구를 남한의 대통령이 되게 하는지 북에서 결정합니다. 상대적으로 북의 말을 누가 잘 듣나 보고 그 사람이 되게 하는 거죠.”

그는 대한민국을 깔보고 있는 확신범이었다. 변호사지만 나도 한 마디 해 주고 싶었다.

“고난의 행군으로 2백만을 굶겨죽이고 정치범 수용소가 있는 김일성일가의 왕국인 북의 체제가 더 좋다는 겁니까? 국가는 국민들을 먹여 살리고 지켜주기 위해 있는 것 아닙니까?”

“그래도 남한의 썩고 약한 대통령 보다는 북의 지도자가 훨씬 결단성 있고 영도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시대조류가 변하고 있었다. 서울의 거리에 북한의 김정은을 환영하는 플래카드가 나붙고 있었다. 북한을 경험한 작가 황석영씨의 글이 떠올랐다. 김일성과 여러 번 만났던 그는 김일성의 말을 이렇게 전하고 있었다.

“남한의 의회에서 우리 북의 노동당이 소수당정도라도 자리 잡고 활동할 수 있는 여건이 된다면 한번 승부를 겨루어 볼 수 있는데 말이요”

김일성은 무력이 아니라 선거를 해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피력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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