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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에 하고 싶은 일

운영자 2017.03.07 20:37:09
조회 469 추천 2 댓글 0
변호사 생활이 30년을 넘었다. 나이도 육십대 중반이 됐다. 지하철에서 경로석에 앉아도 머리에 내린 서리를 보고 아무도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다. 솔직히 이제는 노인인 걸 인정하고 산다. 여기저기 몸이 고장이 나고 부품들에서 녹물이 흘러나오는 것 같다. 사무실을 찾아오는 사람도 법률상담보다는 인생 상담이 더 많은 것 같다.


 한 달 전 쯤 됐을까. 재벌그룹 부회장을 하고 철강회사 사장을 지낸 선배가 사무실을 찾아왔다. 정년퇴직을 한 그는 나이 칠십대 말에 소송에 휘말려 곤혹을 치르고 있었다. 그는 주민들의 추천으로 아파트 입주자 대표회의 회장을 맡았다. 월급도 나오지 않는 봉사하는 자리였다. 그만한 사회적 경력과 덕망을 가진 사람도 쉽지 않았다. 그러나 세상은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그레샴의 법칙이 적용되는 것 같았다. 의심만으로 사람을 매도하고 소송하기 좋아하는 꾼에게 걸렸다. 잘못이 없어도 법망으로 빠지면 불려 다니기에 정신이 없다. 그만두고 싶어도 그만둘 수가 없다.




“내가 앞으로 살날이 잘해야 5년 정도로 생각이 되요. 하루하루를 의미 있게 살아야 하는데 인생 말년에 잘못 걸렸어요. 왕년에 한자리 했다고 해서 겁먹었는데 싸워보니까 아무것도 아니라고 상대편에서 생각하는 거야. 지저분한 일에 휘말리지 말고 남은 날 만큼 보람 있는 일을 해야 하는데 말이요.”


노년의 그의 얼굴에는 깊은 우수가 깃들어 있었다. 변호사를 하다보면 상대방을 해치기 위해서 태어났나 하는 악연들이 종종 있었다. 텔레비전의 동물의 왕국이라는 프로그램에서 하이에나 떼에게 걸려든 들소가 떠올랐다. 평화롭게 초원의 풀을 뜯어먹고 싶은 소의 소망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들소는 이리저리 뜯기고 물려 퉁방울 같은 눈을 부릅뜨고 뒤집혀 발을 허공에서 버둥거리면서 죽어갔다.


 약한 노인들을 노리는 지능범들을 상대하기가 쉽지 않은 세상이다. 그는 대회사 사장에서 보통의 인간이 되었다. 그리고 자연적으로 풍화되고 있었다. 그게 자연의 법칙인가 보다. 그가 돌아가고 오후에 다시 두 분의 선배가 사무실에 놀러왔다. 한분은 오전에 왔던 철강회사 사장을 지낸 분과 고교 동기동창이었다.


 나이가 여든 살인 그는 세상이 말하는 속칭 금수저 출신이었다. 부잣집 아들로 태어나 최고의 명문 고등학교와 대학을 졸업하고 큰 신문사 편집국장을 거쳐 사장을 지냈다. 아내는 준 재벌급 사업가였다. 제주도부터 경기도까지 연관된 호텔과 리조트를 가지고 대형 가구제조회사도 경영했다. 그러다 부도가 나 자연인으로 돌아왔다.


 같이 온 다른 한분은 대학선배였다. 기자출신인 그는 청와대 비서관과 차관을 지냈다. 칠십대 중반인 그는 역시 이제 보통사람으로 돌아와 여생을 지내고 있었다. 젊었을 때는 그가 가지고 있는 사회적 지위나 하고 있는 일에 따라 분류가 되고 성공여부가 평가되지만 수명이 길어진 지금은 누구나 죽기 전에 보통의 인간으로 되돌아오는 기간이 있는 것 같다.


“저나 선배님들이나 모두 이제는 노년입니다. 남은 기간의 의미는 뭘까요?”


내가 물었다. 먼저 청와대 비서관과 차관을 지낸 선배가 말했다.


“나는 목 디스크에 당뇨가 심해. 여기저기 아파서 활동을 할 입장이 아니야. 하루일과라는 게 새벽기도 갔다 와서 집에서 중국드라마를 두 편 정도 보면 점심시간이야. 어쩌다가 친구가 만나자고 연락을 하면 나가서 몇 명이 당구를 쳐. 그런 날은 즐거운 날이야. 사람들 하고의 관계맺음이 아직도 즐거워. 나는 몸 때문에 일을 못하지만 노년에도 긴장하면서 일을 하는 사람이 행복한 것 같아. 나이 구십대에도 생생한 김형석 교수를 보면 끊임없이 강연이라는 일이 있으니까 건강을 유지하는 것 같아. 일을 할 수 있다는 게 부러워. 나도 젊어서는 밤을 새워서 참 열심히 일했었는데----”


그의 목소리에는 아쉬움이 깃들어 있었다. 나는 이번에는 옆에 있던 금수저 출신 부자 선배에게 물었다.


“오전에 고교 동기분이 오셔서 잘해야 앞으로 5년 정도 살건데

의미있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하더라구요.“


“많이도 잡았네. 나는 5년도 살지 못할 거 같아.”


모두들 이제는 끝이 보이는 나이였다.


“부자였을 때 자신이 부자인걸 알았어요?”


“아니야, 솔직히 전혀 내가 부자라는 걸 느끼지 못했어. 익숙한 생활의 일부였을 뿐이야. 나름대로 일에 바쁘다 보니까 집안에 있는 것도 즐기지를 못했어. 제주도에 요트도 있고 말도 네 마리나 있었는데 손님대접 하는 데만 사용했지 내가 타본 적은 거의 없는 것 같아. 물고기가 물을 의식하지 못하듯 나는 부를 의식하지 못했어. 다만 돈이 있으니까 불편하지 않았다는 건 인정해. 돈을 벌어서 집에 가져다 줄 필요가 없었으니까 말이지.


 그러다 어느 날 돈이 다 날아가니까 그제야 내가 부자였었구나를 깨달았지. 그리고 후회가 일더라구. 돈이 있을 때 베풀 걸 하고 말이야. 쓸데없이 룸쌀롱 에나 다니고 계집애들한테 돈이나 뿌리면서 호기를 부렸어. 정말 잘못 살았어. 만약 다시 부자가 된다면 주위 사람들 하고 함께 하고 나누는데 쓸 거야. 돈은 그래서 필요한 거라고 생각해. 그리고 나 일하고 싶어 지역신문에서 기자를 뽑는다는 공고가 있었어. 거기 응시하려고 했더니 컴퓨터를 해야 한데, 다음 달 부터는 구청 복지회관에 가서 컴퓨터를 배우려고 해. 내가 사장을 할 때 노트북을 이백대 사서 사원들에게 나누어 줬는데 그때 배울 걸 잘못했어.” 



젊은 시절은 어떻게 하면 한시 바삐 일에서 빠져나와 평안한 노후를 즐기나 생각했었다. 그러나 나이 먹은 이제는 일을 하고 싶어 한다. 높은 지위나 자리가 아니라 작은 일이라도 하고 싶은 것이다. 그런 걸 보면 죽을 때까지 자기 손으로 뭔가 창조해 낼 수 있는 일이 있는 사람들이 가장 행복한 사람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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