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단 상식 : 대통령이 탄 배에 어뢰를 발사한 구축함은 USS 윌리엄 D. 포터(DD-579)이다. 비슷한 이름의 구축함이 많으니 주의!
본문은 아래 선 밑부터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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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치고 휴가 싫어하는 사람 없을 거다. 물론 그 이상하게 생긴 항공전함 말고.
그래서 포상 휴가는 큰 동기 부여가 되지. 이번 이야기는 칭찬이 고래도 춤추게 하는 것처럼, 포상 휴가는 잠수함도 잡게 만든다는 걸 보여주는 이야기다.

이번 이야기의 주역, HMNZS 키위와 순잠1형 잠수함 1번함.
1943년, 미군이 남태평양 전역에서 Operation Cartwheel(수레바퀴)를 준비하고 있을 무렵, 과달카날 서부 해상에서 뉴질랜드 해군 소속 소해용 트롤어선 키위(HMNZS Kiwi)와 모아는 ASDIC으로 잠수함을 탐지, 폭뢰 공격을 가함. 폭뢰 공격을 당한 적 잠수함은 긴급부상했고, 키위가 바로 교전에 들어감.
버드(Bird)급 소해용 트롤어선 키위. 그런데 얘가 백두산함보다 크다. Aㅏ…. 원래는 기뢰 제거가 임무지만 대잠임무도 맡음.
보통 수상함이랑 잠수함이 수상에서 포격전 한다고 하면 수상함이 이기지 않나 할 텐데, 이번 경우엔 키위의 상대가 그렇게 만만하지 않음. 교전 상대인 이 잠수함은 순잠 1형 잠수함 1번함, 줄여서 이1호 잠수함인데 대충 그 전범짓으로 유명한 모 잠수함의 큰 사촌언니 정도라고 보면 됨.
순잠 1형 잠수함 1번함, 이1호. 잠수함 치고는 대형이다. 보통 이런 잠수함을 순양잠수함(Cruiser Submarine)이라고 부른다
무장을 보면 일반적으로 순잠 1형은 5.5인치 포 2문으로 무장하고 있는 데에 비해 키위가 속한 버드급 소해용 트롤어선은 4인치 포 1문. 이1호 잠수함의 경우엔 대발동정를 싣기 위해 5.5인치 포 한 문을 내리긴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화력 면에서는 키위가 불리함. 무엇보다 4인치 포로는 얘 선체 장갑을 관통할 수가 없음. 애초에 트롤 어선에 화력을 기대하면 안 되겠지만….
다행히 키위에는 누메아에서 술 두 병이랑 교환한 20mm 오리콘 한 문이 추가로 달려있었음. 격렬한 포격전이 벌어졌고, 키위의 선원들은 현명하게도 화력을 함교와 포좌에 집중, 갑판 인원들을 쓸어버림. 이 떄 이1호의 함장이 전사. 포격전이 벌어지는 와중에 키위의 서치라이트 담당이었던 캠벨 H. 뷰캐넌(Campbell H. Buchanan)은 심한 총상을 입었지만 전투가 끝날 때까지 위치를 사수하며 적을 계속 비추었음. 결국 뷰캐넌은 전사했고, 사후에 미 해군 십자장이 추서됨. 잠시 묵념하자. 윌리엄 D. 포터 건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이런 선택을 함.
그래도 이1호의 선체 자체엔 큰 피해를 입히지는 못했고, 지휘권을 인계받은 이1호의 수뢰장은 포좌에 예비 인원을 투입시킴과 동시에 선원들에게 아리사카 소총을 지급, 장교에게는 대검을 명령함. 이건 뭐 수틀리면 함상 백병전 한 번 해 보겠다는 거지.
그 때 키위에서는 함장 고든 브릿슨(Gordon Bridson)이 충각 돌격을 명령함. 읭? 지금이 아테네랑 페르시아가 펠로폰네소스에서 아웅다웅하던 시절도 아니고 왠 충각이냐 할 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충각 전술은 잠수함 상대로는 그렇게 드물지 않았음.
함장이 부딪히기 전에 기관실에는 알려줘야 겠다는 생각에 전성관으로 "충각 돌격에 대비하라."고 알리니까, 기관실에선 "아니 충각 돌격이라니 도대체 무슨 소립니까?" 라고 반발. 함장은 "사실 나도 잘 몰라. 해본 적이 없어서."라고 대답. 사실 충각 돌격 경험이 많으면 그게 더 신기하긴 하지만…. 그리고 어디라고 말은 안하겠는데 리플로 출처 세탁은 왜 하냐?
어쨌든 '무슨 소리냐' 고 반발하는 것도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능한 게, 표준배수량으로 비교해보면 순잠1형은 2135톤이고 버드급은 607톤. 아무리 상대가 잠수함이라고 해도 크기가 거의 세 배 차이가 나는데, 이건 마치 월오탱으로 치면 A-20이 IS-3에 충각돌격하는 격. 애초에 충각 돌격 자체가 어느 정도 위험 부담이 있고. 하지만 함장은 이렇게 외치면서 기어이 충각 돌격을 감행함.
"시끄러! 오클랜드에서 보내는 주말 포상휴가가 눈 앞에 있다고!"
키위는 돌격해 잠수함 함교 바로 뒤에 충돌. 잠수함 측에서는 옆에 딱 달라붙은 키위에 영거리 사격을 가하려고 했지만 각도가 안 나옴.
키위는 포화를 받으면서도 일정 거리까지 물러섬. 함장은 다음과 같이 외치면서 두 번째 돌격을 감행.
"이걸로 일주일치 휴가다!"
두 번째 돌격으로 이1호의 선체 일부를 부수는 데 성공했지만 역시 체급 차 때문지 아직 잠수함은 버팀. 이 때 착검한 장교들 중 항해사(검도 3단이었다는 듯)가 키위에 승선을 시도, 토네의 전범짓을 제외하면 2차 세계대전에서 거의 유일한 선상 칼부림 사태가 벌어질 뻔 했지만 키위가 재빨리 다시 뒤로 빼는 바람에 바다에 떨어짐. 일베에서 본 거라는 둥 다른 곳에서 본 거라는 둥.
다시 거리를 둔 키위는 세 번째 돌격을 준비함. 돌격하면서 키위의 함장은 이렇게 외침.
"이주일치 휴가를 위해 한번 더!"
이번에는 제대로 들이받아서 아예 잠수함 위로 올라타서 찍어눌러버림. 세 번 연속으로 충각 공격을 당한 이1호는 주 밸러스트 탱크에 구멍이 나고 선체는 우현으로 기울기 시작. 결국 비틀거리면서 최후의 도주를 시작함.
물론 물리 법칙이라는 게 작용이 있으면 반작용이 있는 법이라, 키위도 상당한 손상을 입음. 아래 사진에 키위의 손상이 잘 나타나 있음.
영광의 상처. 충각 돌격에는 항상 위험이 따른다.
손상당한 키위 대신 자매함 모아가 4인치포를 쏘며 추격했지만 아까 말한 대로 화력이 부족해서 잠수함 선체에 포탄이 튕겨져 나감. 하지만 이미 세 번이나 충각 돌격을 당한 잠수함이 멀리 갈 수 있나, 오래 못 가서 좌초해 버림. 선원들은 전부 내륙으로 도망쳤는데, 이 때 급히 도망치느라 미처 중요 서류를 전부 처리하지 못함. 출처 한 줄 적는 게 그렇게 어려운 건 아니잖아?
일본 측에서도 실수를 깨닫고 어떻게든 잠수함을 처리하려고 했지. 대발동정을 파견해 선체에 폭뢰를 붙여서 잠수함을 날려버리려고 하거나, 폭격기 9대에 호위기 28대를 붙여서 폭격을 하거나, 자매함 이2호 잠수함을 파견해서 뇌격처분 시키려고 하거나. 그런데 결국 전부 소용없었고, 과거에 사용했거나 향후 사용될 예정이었던 암호책 5권을 포함해 잠수함의 일지, 그리고 기타 중요 문서 등이 미해군 정보부의 손에 들어감. 제발 이게 필요없는 행위였기를 바란다.
가장 중요한 건, 모든 배와 기지의 콜사인을 확보한 거임. 미드웨이 때 미국이 일본이 AF를 친다는 건 알겠는데 AF가 어딘지 몰라서 식수로 낚시했던 거 알지? 그렇게 미드웨이는 AF라는 식으로 호칭을 부여한 게 콜사인임. 그게 연합군 손에 들어갔으니, 이젠 미드웨이 때처럼 낚시 안 해도 일본 애들이 통신에서 어떤 장소를 얘기하는 지 바로 알 수 있게 됨. https://gall.dcinside.com/board/view/?id=kancolle&no=1663492
일본 애들도 바보가 아닌지라 암호를 새로 바꾸긴 했는데, 세팅 정도만 바꿨지 전부 갈아엎은 것도 아니고, 그나마 바꾸는 데에도 상당한 시간이 소모됨. 태평양이 얼마나 넓은데, 현장에 새 암호를 돌리는 것만 해도 쉬운 일이 아니지. 결국 이 성과는 수레바퀴 작전을 진행하는 연합군에게 큰 도움이 됨. 일부에선 이 자료 덕분에 야마모토 요격 작전이 가능했다고 보는 의견도 있음.
왜 키위의 함장이 그렇게 포상 휴가에 집착했는지는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오클랜드에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아내가 있었다는 걸 생각하면 어느 정도 추측은 가능하지. 어쨌든, 포상 휴가를 위한 그의 집념이 자기 배보다 세 배 더 큰 잠수함을 기어이 잡아내고 결과적으로 연합군의 진격에 큰 공을 세운 것. 그가 그렇게 원하던 2주일치 휴가를 얻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훈장은 두 개 수여받았음. 두 나라에서 각각 하나씩.

좌측 : 영연방 수훈장(Distinguished Service Order), 실질적으로 영국 최고 훈장인 빅토리아 십자장 바로 아래 서열 취급.
우측 : 미해군 십자장(Navy Cross), 미 해군이 수여하는 것으로는 최고 훈장이며 그 의회 명예 훈장 바로 아래 서열.
…생각해보니까 2주 휴가 정도는 그냥 줬을 것 같다.
아, 이1호의 잔해는 1970년에 희귀금속을 찾던 보물 사냥꾼이 선수를 날려버리는 바람에 3분의 1이 날아감. 참고로 하구로나 쿠마와는 달리 제대로 허가를 받고 이루어짐. 그래도 나머지 선체는 아직 그 자리에 남아있음. 잠수함의 함포는 떼어내서 예전에 키위 함장이 아마도 2주간의 꿀같은 휴가를 만끽했을 오클랜드의 해군박물관에서 보관 중.
참고자료 :
John Winton, Ultra in the Pacific
Nathan Miller, War at sea.
David Owen. Anti-Submarine Warfare: An Illustrated History
Jonathan J. McCullough. A Tale of Two Subs
Royal New Zealand Navy. Navy Today 124
http://nzetc.victoria.ac.nz/tm/scholarly/tei-WH2Navy-c20.html
http://www.nzhistory.net.nz/war/bird-class-minesweepers
http://www.teara.govt.nz/en/biographies/5b41/bridson-gor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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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코레 이야기 : 이1호가 등장한다면 이름은 이치 아니면 하지메. 소위 말하는 배빵 당하는 캐릭터가 될 확률이 상당히 높을 듯. 세 번 배빵 당하고 기밀 문서 같은 걸 토하나?
P.S : 연합군 호송선단을 노리는 독일 콘도르처럼 배회하는 밀덕들을 위해 보충설명. 일부 자료에서는 이1호 잠수함에서 얻은 문서가 20만 페이지나 된다는 얘기가 있는데, 이건 일본어 자료를 번역할 때 생긴 오류라는 듯. 뭐 일본 애들도 번역 오류를 믿고 B-29가 714기나 떨어졌다고 우기기도 하니까….
역시 키배보다는 이런 글 쓰는 게 나한텐 더 맞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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