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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담덕만팬픽 무제

찹살떡(218.156) 2018.06.11 15:26:51
조회 2585 추천 23 댓글 7

세상에서 제일 신나는 게 월급 루팡이야!!






"폐하."


 늘 당당하던 모습이 오늘따라 유난히 왜소해 보이는 까닭을 유신은 잘 알고 있었다. 왕좌에 오른 뒤부터 자신의 주군은 단 한 번도 자신의 마음을 꺼내보인적이 없다. 그저 속으로 속으로 켜켜이 쌓인 마음들이 얼마나 썩고, 얼마나 고름을 흘리는 지 그는 감히 짐작도 하지 못할 것이다. 


"상장군."


 기울어져 있던 고개가 들렸다. 아무 것도 읽히지 않는, 무표정의 가면을 굳게 쓴 그녀의 검은 눈이 단단하게 굳어있었다.


"상황은 어떠합니까?"


"대의가 폐하께 있거늘 어느 누가 대적할 수 있겠습니까."


"대의라......"


 그녀는 대의란 것이 얼마나 변덕스러운 지 잘 알고 있었다. 대의란 것은 결국 살아남은 자가 가지는 포상이다. 그럼에도 저 충직한 신하는 진심으로 자신을 믿고 있었다. 자신조차 자신이 맞는지 두려울 때가 있는데.

 저 이는 그저 자신이 옳다고 아무런 이유없이 믿어준다. 그렇기에 아무런 부담없이 그를 곁에 두고 있는 것이다. 비담, 너는 그것을 알까?


"어의가 폐하의 안위를 걱정하고 있습니다. 조금이라도 쉬소서."


"역도의 잔당들이 남아있거늘 어찌 쉰단 말이오. ......끝을 보고 나서야 한숨 돌릴 수 있겠지."


 그녀의 목소리는 깊게 잠겨 있었다. 어의가 걱정하는 것도 당연했다. 며칠 째 제대로 눈도 붙이지 못한 채 강행군을 하고 있으며, 신경은 온통 반란군 토벌에 가 있으니 조금의 쉴 틈이 없다. 제아무리 천하장사라 할 지라도 버티지 못할 것이다. 그것을 제 주군은 오로지 정신력으로 버티고 계시니......


"폐하."


"비...담은 잡혔습니까?"


"아직 추포하였다는 연통은 없었습니다."


"그렇군요."


 태연한 대답이었으나 오랫동안 그녀를 보필해왔던 유신은 그 안에서 떨림을 알아챘다. 폐하께서 한 발짝 물러나 국혼까지 치르겠다 그리 약조하였거늘, 비담 너는 무엇이 부족하여 이런 짓을 저질렀느냐. 네 연모가 이런 것이냐. 제 사랑하는 이에게 이리도 지독한 상처를 남기는게? 제 앞에 있다면 그 잘난 면상을 내리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제 심정이 이런데 당사자인 폐하의 마음은 어떠할까.


"만약, 만약 비담을 추포한다면 어찌하실 겁니까?"


"역도들의 수장이니 당연히 참수하여 신국의 본을 세워야지요."


 너무도 당연한 듯한 대답에 유신의 가슴이 타들어갔다. 고저없는 목소리, 감정을 지운 얼굴, 그 모든 것이 손만 대면 전부 바스라질 것처럼 위태로워보여서. 감히...... 신하인 자신이 동정심이 들 정도로 고통스러워 보여서 참을 수가 없었다.


"폐하!"


"상장군? 이게 무슨......."


 유신은 칼을 내려놓은 채 그 자리에서 털썩 무릎을 꿇었다. 그는 머리를 숙이며 왕을 향해 제 진심이 담긴 간언을 올렸다.


"한 마디면 되옵니다."


"상장군, 무슨 소리를 하는 겁니까?"


"살려달라, 그 말 한 마디면 이 유신, 반드시 비담을 살리겠습니다."


"!!!!"


 왕의 얼굴에 쩍 금이가더니 곧 경악으로 가득 찬 표정이 드러났다. 그녀는 방금 자신이 들은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더욱이 그녀는 용납을 해서도 안 되었다. 반역의 수괴를 살리라? 그게 왕이 된 자로 해서 될 명이란 말인가? 어찌하여 자신의 충성스러운 신하는 그런 되도 않는 소리를 하는 것인가?


"상장군, 그 무슨 해괴한 소리를 한단 말이오?"


"괴롭지 않으십니까. 고통스럽지 않으십니까."


"일국의 왕으로 당연히 해야할 일입니다."


"폐하의 마음이 말입니다!"


"그만!"


 유신의 말이 날카롭게 덕만의 가슴을 할퀴고 지나갔다. 꽁꽁 숨겨서 그녀조차 잊으려 한 감정이 불쑥 튀어나오는 느낌에 그녀는 이를 악물었다. 금방이라도 제 감정이 목구멍을 타고 튀어나올 것 같았다. 그럴 수 없어. 나는 왕이다. 왕은....결코 제 진심을 보여서는 안 된다. 약한 모습 따위 보이면 안 돼. 상대가 누구이건, 한 번 무너진 모습을 보이게 되면 그걸로 끝이다. 왕이란 언제나 굳건하게 나라를 지탱하는 기둥이 되어야 한다.


"못 들은 것으로 하겠습니다."


"폐하."


"그만 하라 하였습니다, 상장군!"


"제 불충을 용서하지 마십시오. 그래도 저는 간하여야겠습니다."


 그는 처음으로 주군에게 맞섰다. 이것이 주군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이라는 충심에서 였다. 언제까지 제 주군은 이 힘겨운 짐을 모두 지고 살아가야 하는 가. 아무리 패업의 길이라도, 그녀도 사람이었다. 왜 왕은 행복해서는 안 되는 것인가? 모두가 지켜보는 자리이기에? 그럼 언제까지 고통받아야 하는 가? 결국 제 짐을 이기지 못하고 쓰러질 때까지? 


"폐하, 한 번이면 됩니다. 한 번만 진심을 보여주십시오."


"나는 왕입니다. 이 신국의 왕이요. 나를 먼저 배신한 것은 비담인데 짐이 왜.....!"


"그가 어린아이와 같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시지 않사옵니까?"


 유신은 제 친우를 떠올렸다. 악우에 가까운 우정을 나눈자이자, 과거에는 연적이었던 자. 귀신같은 검술실력으로 제게 호승심을 불타오르게 만든 이. 그럼에도 마음이 너무 여려 금방이라도 펑 터져버릴 것처럼 위태로운 이. 결국 이리 터져버리고야 말았지만.


"이미, 이미 늦었지 않습니까."


"살아만 있다면 언젠가 다시 볼 수 있을 겁니다."


 살아만 있다면 다시 볼 수 있다? 그녀의 심장이 요란스레 두방망이질치기 시작했다. 멍청한 심장은 상황이 어떤 지도 모르고 그저 속에 품은 정인을 다시 볼 수 있다는 말에 이리도 방정이었다. 덕만은 제 심장을 향해 꾸짖고 싶었다. 이러지 말라고, 헛된 희망이라도 제 손으로 심장을 잡아 터뜨려서라도 멈추게 하고 싶었다. 그럼에도 그럴 수가 없는 까닭은......


"......가능합니까?"


"폐하!"


"그를, 살리...는 것이 가능합니까?"


 결국에 가리고 또 가리려 노력했던 그 진심이 튀어나왔다. 저를 배신하였는데도 그 얼굴을 보고 싶었다. 저를 믿지 못해 미련한 짓이나 하는 바보 같은 사내이지만, 그럼에도 놓을 수가 없다. 어째서일까? 이미 오래전 유신을 놓을 때처럼 놓을 수 있을거라, 단념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한 번 해보았으니 두 번 하는 것이 어려우랴 그리 속단했는데 왜 그것이 되지 않을까.


"살리겠습니다. 반드시 살리겠습니다!"


"상장군, 아니 유신. 유신랑......"


 덕만은 아주 오래전 그를 불렀던 호칭을 입에 담았다. 자신의 모든 실수를 꾸짖고 덮어주고 해결해주었던 그 때 그의 이름을.


"한 번만 도와주세요. 한 번만."


 덕만은 울었다. 왕이 우는 것이 아니라 여인이 되어 울었다. 제 정인을 지키려는 여인이 되어 왕으로써는 할 수 없는 애원을 했다. 유신은 그녀의 진심에 고개를 숙였다.


"상장군 유신, 반드시 폐하의 바람을 이뤄드릴 것입니다."


 울지 마십시오, 나의 주군이시어. 이제는 지나간 아릿한 사랑아. 당신이 더는 울지 않도록, 이 마음이 해묵은 연정으로 인한 것인지, 아니면 신하가 가지는 충심인지는 알 수 없으나 당신이 바라는 한 나는 이루어 낼 것입니다. 유신은 그녀의 바람을 제 깊숙히 새겨넣었다.










"비담."


"...유신?"


 유신은 모든 추격대를 따돌리고 가장 먼저 비담에게 다다랐다. 상장군이, 그것도 홀몸으로, 아무런 호위없이 적진에 뛰어들다니. 비록 반란군의 와해되고 남은 것이라고는 몇 안 되는 이들 뿐이지만 참으로 무모한 짓이었다. 비담 역시 이 상황이 믿기지 않아 눈을 크게 뜬 채, 귀신을 보듯 유신을 보고 있었다.


"도망치게. 곧 군사들이 들이닥칠 걸세."


"도망치라고? 자네가 할 소리인가. 반란의 수장에게 도망치라고 종용하는 상장군이라니......폐하께서 아시면 진노하실텐데."


 비담의 얼굴엔 체념의 빛이 어려 있었다.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포기 뿐이었다. 연모도 놓치고 권력도 놓치고 자신이 무얼 위해 이리 달려왔는 지 알 수가 없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 얼마전만 하더라고 서라벌, 아니 신국에서 가장 행복한 사내가 자신이었는데. 그건가. 염종이 말한대로, 미생공의 말대로, 어머니의 말대로 자신이 너무 철이 없어서, 가질 수 없는 사람을 가지려 들어서 그런 것인가?


"폐하의 밀명으로 온 거네. 자네를 살리라는 명이 있으셨어."


"폐하께서? 그럴 리가......"


 비담은 믿을 수 없었다. 자신이 아는 폐하는 누구보다 냉정하며 제겐 곁조차 제대로 허락해 준 적이 없는 이였다. 그런 분께서 자신을 걱정해 상장군을 보내 도피까지 시키시려 한다? 그게 말이 될 법한 소린가?


"헛소리......"


"비담."


"그 분이, 그녀가 그럴 리가 없어."


"아직도 의심하는가?"


"뭐?"


"아직도 그 분의 진심을 의심하는가? 아직도 모르겠는가? 그분의 마음은 자네에게로 간 지 오래란 말일세."


 비담은 유신의 말을 쉬이 믿을 수 없었다. 그의 일생은 평생 외사랑으로 얼룩져 있었다. 어미에게도, 스승에게도 받지 못한 사랑이었다. 누구도 자신을 사랑해 주지 않았다. 그런데 자신이 그토록 바랐던 그녀의 마음을 제가 얻었다고? 그럴 리가 없다. 그녀가 무엇이 부족해 자신따위를 사랑한단 말인가. 차라리 저 잘난 유신을 사랑하면 모를까.


"받게."


 믿디 못하는 비담이 답답했는 지 유신은 제가 가지고 온 증표를 꺼내 건넸다. 왕이 주었던 정표, 비담이 돌려보냈던 그 정표가 다시 그의 손에 돌아왔다. 가락지를 받아든 비담의 손이 떨리기 시작했고, 그의 눈에 통한의 눈물이 일렁였다.


"폐....하...."


"살아남게, 반드시. 폐하의 가슴에 난도질은 그만하고. 살아만 있다면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을 테니."


 유신은 비담을 향해 포위망을 뚫을 수 있는 경로가 담긴 지도를 던졌다. 비담은 그 지도를 보며 다시금 눈물을 흘렸다. 자신이 과연 살아남아도 되는 것일까? 그녀를 위해 죽어주는 것이 나은 것이 아닐까? 그럼에도 유신이 말했다. 더는 그녀에게 상처를 남기지 말라고. 자신의 죽음이 그녀에게 상처가 된다. 그 사실이 이상하게도 기뻤다. 그만큼 그녀가 나를 사랑하는 구나. 이제야 그녀의 연모를 느낄 수 있었다.


"이 빚은 잊지 않겠다."


"내가 아닌 폐하의 의지다. 그러니......반드시 살아라, 비담."


 마지막 말을 남긴 유신은 미련 없이 등을 돌려 말을 끌고 사라졌다. 마치 잠깐의 꿈이라도 꾼 것 같았으나, 손에 쥐어진 가락지가 지금 이 순간이 현실임을 너무도 통렬히 알려주었다. 그래서 비담은 기뻤다. 끓어오르는 울음을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기뻤다. 그리고 맹세했다. 이 가락지를 품에 안고 언젠가 만날 덕만을 위해 반드시 살아남겠노라고. 죽음을 바라며 죽어가던 그의 눈빛이 타오르는 불꽃처럼 살아났다.







"폐하."


"춘추, 너구나."


 폐하께서 쓰러지셨단 소식에 또 다시 간이 철퍼덕 바닥에 떨어졌다. 언젠가 그녀가 제 곁을 떠난 다는 걸 알았지만, 머리로는 각오하고 있지만 마음이 따라주질 않았다. 저에겐 엄한 스승이자, 자애로운 어미 노릇을 하는 이를 보내겠다고 마음 먹는다고 쉬이 보내지겠는가. 하루하루 말라가는 왕의 모습에 춘추는 점점 다가올 자신의 시대를 절감하며 조금은 두려워하고 있었다. 하루라도 제 곁에 있어 제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길 춘추는 누구보다 간절하게 바랐다.

 하지만......이제 이만하면 놓아드릴 때도 되었다. 언제까지 제 욕심에 이모님을 힘들게 할 것인가? 더 늦기 전에 이 답답한 궁에서 훨훨 날아가게 해드려야지. 이미 유신에게도 알천과도 논의한 일이다. 쉽게 입이 떼어지지 않지만 그럼에도 춘추는 주먹을 꾹 말아쥐고 그녀에게 자신이 할 수 있는 선물을 건네기로 했다.


"몸에 깃든 병환이 쉬이 낫지를 않으시니 잠시 피접이라도 나가시지요."


"피접이라니."


"걱정 마소서. 이 춘추가 다 준비하겠습니다. 폐하께서 자리를 비우실 동안 착실히 공무도 보겠습니다. 유곽으로 도망치지도 않고요."


 춘추의 너스레 섞인 말에 덕만이 푸스스 웃음을 지었다. 금세 자취를 감춘 웃음이지만, 오랜만에 보는 미소였다. 그래서 춘추는 아쉬운 마음을 달랠 수 있었다. 이것으로 마지막이겠지만, 이모님께서 남은 생을 편히 사신다면 그것만큼 좋은 것이 어디있을까.


"저만 믿으소서."


 제가 어그러뜨린 인연 제가 바로잡겠나이다. 춘추는 마음속으로 그리 속으로 다짐하였다. 이모님이 진정으로 행복해지도록 하자. 제가 멋대로 판단한 이간계가 이모님께 결국 고통이 되지 않았나. 그러니 이번엔 이모님이 마음 편히 사실 수 있도록, 평안한 여생을 보내시도록 하자.

 춘추의 굳건한 결심을 모르는 덕만은 그저 춘추를 보며 말가니 웃음을 지어주었고, 그 웃음을 보며 춘추는 이번 일을 반드시 성공시켜야 한다며 스스로 채찍질했다.

 왕의 피접길은 간소했다. 어찌 왕이 궁을 비우랴. 최측근에게만 알린 채 덕만은 춘추가 준비한 피접길에 올랐다. 궁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별궁이 목적지였다. 업무일랑은 다 잊어버리시고 푹 쉬라는 춘추의 말에 덕만은 고맙다는 말로 치하를 해주고 길을 나섰다. 귀한분이 타고가는 가마답게 정예군이 호위를 맡았다. 그 덕에 별 일 없이 덕만은 별궁에 다다를 수 있었다.

 별궁에 있는 이들은 그 수가 많지 않았다. 번잡스러운 것이 싫다는 덕만의 말도 있었기에 몇 안 되는 인원이 왕의 수발을 들게 되었다. 넓게 내어진 창으로 바람이 솔솔 불어왔다. 시끄러운 소리 하나 없이, 그저 바람 부는 소리 가끔 들리는 새소리, 그리고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소리 등이 덕만에게 자장가처럼 다가왔다. 얼마만에 느끼는 여유인지. 덕만은 춘추의 마음씀씀이에 고마웠다. 궁에 돌아가거든 좋았다고 해야겠구나 싶었다.

 이 꿈같은 여유를 만끽하기 위해 덕만은 무거운 몸을 이끌고 침상에서 내려와 창가로 다가갔다. 적당한 의자를 끌어당겨 앉아 창밖을 내다보니 세상 부러울 것이 없었다. 세상에 홀로 남겨진 것 같은 기분이기도 하지만, 그 어떤 것에도 몸이 메어 있는 것 같지 않다. 이 힘겨운 육체마저도 훌훌 벗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저 눈을 감기만 하면.

 눈을 감아볼까? 덕만은 무거워지는 눈꺼풀에 정신도 가물가물해짐을 느꼈다. 막 모든 것을 놓고 깊은 잠에 빠지려는 순간.


"?!"


 불쑥, 창으로 손 하나가 나타났다. 사내의 억센 손에는 어울리지 않는 꽃 몇 송이가 들려 있었다. 갑자기 나타난 낯선 것에 덕만이 화들짝 놀라며 잠에서 깼다. 그리고 꽃을 본 순간 눈가에 눈물이 핑 돌았다. 저 꽃도, 저 손도 너무도 낯이 익었다. 그저 기억 너머 아련히 지워진 줄알았는데, 다시 보니 그게 아니었다.


"꽃입니다. 여인들이 좋아한다면서요."


 목소리까지 듣고 말았다. 덕만은 상대가 누구인지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어떻게 이 목소리를 잊을 수 있으랴. 매일밤 꿈에도 그리던 이의 목소리인데. 유신이 정말 약속을 지켰는지, 비담이 정말 무사한 것인지 덕만은 묻지 않았다. 그저 어디선가 살아있겠거니 하고 잊어두려 했었다. 그런데 그게 안 되었다. 매일밤 그의 목소리가 제 귓가에 낭랑하게 퍼졌다. 어쩔 때는 자신에게 사랑이 가득한 목소리로, 어쩔 때는 원망 가득한 목소리로. 그럼에도 좋았다. 어떤 목소리든, 어떤 모습이든, 허상이라도 그렇게 느낄 수만 있으면 좋았다.

 그런데 이리 제 앞에 나타나니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로 감정이 북받쳤다. 살아있었냐고, 그래서 이리 제 앞에 나타난 것이냐고, 아직도 자신을 연모하냐고, 하고 싶은 말이 많은데 나오는 것은 흐느낌 뿐이었다.


"울지 마십시오. 저는 폐하의 웃는 모습이 좋습니다."


"비담......"


"폐하의 명대로 살아남았습니다."


"응, 응. 고마워, 고마워."


 덕만을 고개를 끄덕이며 눈물만 뚝뚝 흘렸다. 그녀가 얼마나 힘들었는 지, 괴로웠는 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비담은 제 가슴이 미어졌다. 제 정인도 못 믿고 눈물이나 흘리게 하다니, 참으로 못난 사내가 나다.


"폐하, 덕만공주님, 덕만아."


 비담은 제 손에 들린 꽃을 덕만에게 쥐어주었다. 그리고 제 두 손으로 조심스레 덕만의 어깨를 감쌌다.


"늦어서 미안해."


 아니라고, 이리 살아남아준 것만으로도, 그리고 자신을 이리 찾아와준 것만으로도 고맙다고 그리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목구멍이 막힌 듯 나오는 것은 끅끅 흐느끼는 소리 뿐이었다. 그런 덕만을 다독여주던 비담은 처음 만났을 때 보여주었던 그 장난끼 넘치는 웃음을 씩 지었다.


"떡만아."


 덕만이 눈물을 닦고 고개를 들자 비담은 하얀 이를 드러내며 물었다.


"나랑 도망갈래?"


 비담이 손을 내밀었다. 덕만은 꽃을 쥐고 있는 손이 아닌 다른 손을 망설임 없이 내밀어 그의 손을 덥석 잡았다.


"......당연하지."


 그녀는 그 손을 잡는 동시에 왕의 자리를 버렸다. 어차피 신국에는 춘추도 있고, 유신도 있다. 그 외에 많은 인재들이 신국을 든든히 떠받칠 것이며 수많은 영광을 가져다 줄 것이다. 하지만 그에겐 자신 뿐이다. 그리고 그녀에게도 그 뿐이다. 이제 더는 우물쭈물하지 않으리.

 비담은 제 손을 잡은 덕만을 보며 조금 놀란 듯했다. 왕으로 살기를 고집했던 그녀가 이리 망설이지 않고 제 손을 잡고 아무런 미련 없이 왕관을 던져버린 것이 놀라웠다. 그럼에도 비담은 웃을 수 있었다. 이젠 의심하지 않는다. 제 마음과 그녀의 마음이 같으니까. 자신이 그녀를 위해 모든 걸 할 수 있고, 모든 걸 버릴 수 있는 것처럼 그녀도 그럴 테니까. 마주 잡은 두 손을 놓지 않은 채, 두 사람은 그렇게 자리를 떠났다.

 그들이 떠난 자리에는 그저 주인을 잃은 의자가 덩그러니 놓여있었지만 쓸쓸하진 않았다. 그들이 남긴 따스한 마음이 방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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