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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토랑을 폐업하며.

meanstime(121.144) 2018.03.23 03:47:51
조회 6999 추천 83 댓글 28


 작년 5월 오픈한 레스토랑의 폐업신고를 오늘 했습니다.


 실질적으로 작년 12월초 부터 운영을 안했으나 오늘 폐업신고를 정식으로 하며 완전히 끝이 났네요.


 무덤덤하게 굴다가 폐업신고로 마무리 매듭을 짓게되니 역시 낙담스러운 마음은 조금 있네요.




 주저리 주저리 긴글이고 두서도 참 없는 글이 될 것 같아서 미리 사과 드립니다.


 


 저는 레스토랑을 열었지만, 경력이 긴 요리사가 아닙니다.

 나이도 20대 후반이고..,아주 애 때부터 요리사 꿈을 가졌고, 정식으로 요리를 배우기 시작한건 14살 쯤.

 조리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유학을 생각했으나


 집안 형편도 변변찮아서 바로 동네 레스토랑에서 부터 시작해서 군대 다녀오고 

 호주 멜번에서 2년간 세군데 다이닝에서 근무하고 돌아왔으니


 실무 경력은 한 5년 정도 밖에 되지 않겠네요.

 

 그 5년간 실무에서도 당연히 많이 배웠습니다만,

 저는 혼자서 공부한 부분의 비중이 만만 찮은 것 같습니다.


 다 그렇듯 근무하시지만, 그 살인적인 근무시간 외에 집에 와서도 공부하고, 구상하고, 요리하고

 쉬는날이면 레스토랑에 식사하러 점심 저녁 매번 가고, 

 장 다니면서 재료 사오고 종일 여러가지 요리 하곤 했습니다.


 요리가 좋아서 그런게 베이스겠지만

 늘 '좋은 요리란 무엇인가', '내가 하고 싶은 식당이란 무엇인가'라는 의문의 답에 대한 갈증을 겪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러다보니 어느날


 '내가 직접 해보기 전에는 그건 알 수 없겠다' 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리고 성질이 더럽게 급한 저는

 그럼 직접 해봐야겠다 라고 결심하게 됩니다. 참 무모하죠.

 

 그렇게 하고싶은 레스토랑에 대한 윤곽을 잡기 시작했습니다.


 호주에서 모던한 다이닝에서 일하면서 프리쿡이 거의 다 된 미장을 플레이트 위에서 조립하는 것에 염증을 많이 느꼈습니다.


 몰론 훌륭한 요리들이였습니다만, 크게 와닿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알라미닛을 하는 단품 레스토랑에서 일했다면 달랐을까 생각드네요.


 

 여하간 전 갓 만든 음식의 그 맛(향),온도,질감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가장 좋은 식재료로 요리하며 그 재료가 가진 그 맛을 해치지 않는 난잡하지 않은 심플한 요리를 좋아합니다.


 그래서 코스를 하는 레스토랑을 하되 거의 알라미닛 메뉴처럼 딱 만들어지자 마자 손님께 제공되는 그런 레스토랑을

 작년 5월에 오픈하게 됐습니다. 그간 모아둔 돈과 대출로요. 

 

 해운대 어느 구석진 조용한 곳에, 길목 안으로 들어오지 않으면 작은 간판도 보이지 않는 곳에요.

 작고, 으리으리하진 않지만 그래도 참 구석구석 많이 고심하고 배려하며 만든 공간이었습니다.


 그런 곳에서 홍보 조차 한번 하지 않았고, 

 지금 생각 해보면 정말 어떻게 그랬는지 막연히 손님이 찾아와줄 것이라는 바람만 가지고 오픈한게 신기하네요.


 

 픽스된 메뉴 없이 단일 코스로 디너만 진행했고,

 딜리버리 받는 몇 공산품 외에 농수산물은 제가 직접 장을 보면서 좋은 재료 구하려고 새벽부터 이곳 저곳 다니곤 했습니다.

 정말 좋은 재료만 골라서 썼습니다. 소금부터 천일염 한번 안썼으니.. ㅎㅎ



 그렇게 오픈한지 얼마 안된 어느날 방문자 수 많은 어느 블로거 손님 한분이 방문 해주시고 좋게 평가해주신 덕분에

 손님이 조금씩 오시기 시작하더군요.


 직원분들에게 정말 너무나 고맙더군요.. 제 무모한 오기에 가까운 열정에 함께 해주셔서.. 아직도 정말 감사한 마음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찾아와주셨던 손님들께도 마찬가지로요.. 


 정말 접근성 안좋은 곳에, 주차도 어려운 구석에 게다가 최소 전날 예약만 받는데 (예약된 수에 맞춰서 그날 소비할 양만 장을 보기 때문에..)

 그런 곳을 예약해주시고 찾아와주시고 맛있다며 좋아해주시는 손님들께 진심으로 감사하고 기뻤습니다.



 그런데 다달이 달이 넘어가도 단골고객과 그 소개로 온 고객들 외에는 참 신규고객이 늘지 않더군요..

 

 그렇게 우여곡절 운영하다 자본 고갈로 문을 닫게 됐습니다.



 참 행복하고 또 터프한 시간이었네요.


  

 제가 레스토랑 경영을 실패한 것엔 여러 이유가 있고 핑계를 만들 수 있겟습니다만

 저는 그 이유를 밖에서 찾지 않습니다.


 다이닝 돈 안된다, 지방은 더 안된다.. 다 핑계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경영, 요리 부분에서 분명 부족했기 때문이죠.



 그래도 저는 결과적으로 폐업이라는 실패를 맛보았고, 대출금이라는 큰 짐을 졌지만 한번도 후회한 적은 없습니다. 


 제가 직접 레스토랑을 요리사를 벗어나 셰프로서 오너로서 운영하니, 

 정말 너무나 많은것을 배웠습니다.


 책에서,집에서,다른 직장에서 배울 수 없는 정말 많은 것들을요.


 제가 직접 장을 본 신선하고 훌륭한 재료들을 제가 직접 요리해서 손님들께 직접 서빙을 해드리고 음식 설명을 드리는 것

 정말 값진 경력이자 경험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그렇게 갈증을 느끼던 '좋은 요리와 좋은 식당'의 의문에 대한 답을 깨닫게 되는 소중한 계기였습니다.


 실패에 대한 낙담과, 빚에 대한 중압감을 지불하고도 좋을 만큼요.



 이제 새로운 시작을 할 때가 되었네요.


 다시 열심히 칼을 갈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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