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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시베리아 포로생활 -3

뚱띠이(121.141) 2007.03.14 14:07:41
조회 1479 추천 0 댓글 4


식빵작전

29일 동안 우리는 그 가축화물차에 실려 대초원을 횡단했다. 그 무렵의 동료들을 고작 대여섯 명밖에 기억하지 못하고 있지만, 매일같이 벌어졌던 두 가지 의식만은 내 기억속에 선명하다.

하루의 급식은 매일 아침 11시 경에 있었다. 열차가 아무 것도 없는 초원 한 가운데서 멎으면 문이 반쯤 열리고, 러시아군 보초의 호송을 받으며 포로 두 명이 곰팡내 나는 더러운 러시아빵 덩어리를 화차 바닥에 던져놓곤 했다. 어떤 때는 다섯 개의 길죽한 장방형의 독일식 흑빵일 때도 있었는데 손가락 4개를 겹쳐 놓은 정도의 두께인 빵 하나의 무게가 2kg 정도였다. 그리고 꼭 두번-정말로 두번이다 - 마른 청어리와 훈제 돼지기름을 받았다.

\'빵 작전\'은  우리들에게 하루 중 가장 중요한 행사였는데 널빤지를 몇 장 쌓아올린 제단 위에서 거행되는 참으로 기묘한 작업으로서 거의 예배에 가가운 행사였다. 1인당 정확히 225g씩 배당되는 빵은 우리의 유일한 식량이었다. 따라서 독자들께서는 그 빵이 50 조각으로 잘리는 것을 지켜보고 있는 우리 사이에 장엄한 침묵이 감돌던 것을 이해하실 것이다.

첫째, 누가 껍질이나 끄트머리를 차지하게 되느냐 하는 가장 중요한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빵조각 하나하나의 무게가 다른 조각들과 똑같다는 보장을 해줘야 하는 엄연한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또니노 판띠가 \'빵을 서는 사람\'으로 뽑혔다. 나는 그의 조수였다. 그러나, 비록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 의해서 선출되기는 했지만, 그들은 우리를 눈꼽만큼도 믿지 않았다.그 기나긴 여행이 계속되는 동안, 매일 아침 그들은 잔뜩 긴장해서 우리를 에워싸고 지켜 보았다. 판띠의 칼날이 움직일 때마다 48개의 머리가 아래위로 따라 움직였다. 그 동작이 너무나도 정확하고 숙련된 것이었기 때문에, 나는 판띠의 칼날이 그 머리들이 빵을 자르는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처음 며칠 동안, 또니노는 빵조각의 무게를 눈으로 \'달았다\'. 그러나 우리는 곧 인간의 눈은 잘못을 범하기 쉽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눈은 뒷전으로 물러났다. 저울이 등장했다. 또니노가 만든 이 저울의 구조는 아주 원시적이었다. 두 개의 나무조각을 십자가의 형태로 잡아맨 것이었는데, 수직의 나무조각이 저울의 받침대 구실을 하고 보다 교묘한 수평의 나무조각은 가로대 구실을 했다. 가로대의 양쪽 끝에 끈을 매달고 그 끝에 올가미를 만들어 놓았다. 왼쪽 올가미에는 미리 정확하게 225g이 나가게 자른 \'표준 빵조각\'이 매달려 있었다. 또니노가 비슷하게 잘라놓은 빵조각을 내가 오른쪽 올가미에 매달고는 두 개의 고가 완전한 수평을 이룰 때까지 빵부스러기를 가감하는 것이었다.

이런 정도의 정확성조차도 우리들 가운데 따지기를 좋아하는 친구들에겐 충분치 않았다. 마침내 우리는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합의를 보게 되었다. 첫째, 빵을 사람들 머리 수대로 자르고 무게를 잰다. 둘째, 50개의 빵조각을 모두 화차의 벽을 따라 늘어 놓는다. 세째, 추첨으로 그것들을 배급한다. 이 세번째 단계에서 나는 양손에 빵조각을 하나씩 들고 등 뒤로 감추는 것이다. 그러면 알파벳 순으로 또니노가 한사람 한사람에게 묻는 것이었다.
"어느 쪽이야? 왼쪽? 오른쪽?"
대답은 오랜 심사숙고 끝에 나오기 마련이었다. 마치 축구경기의 승부 도박에서 1등상이 걸려 있기라도 한 것처럼. 그리고 그런 후에라야만 우리는 편안한 마음으로 먹을 수 있었다. 침묵 속에서 50명의 트라삐스트 수도사-육식을 삼가며 엄격한 침묵 속에서 고행과 노동을 강조하는  카톨릭 수도회의 하나-이기나 한 것처럼 한입한입 영성체를 하듯이. 우리는 입에 문 빵조각이나 껍질을 천천히 우물거리면서, 입안에서 좌우로 서너 차례 돌린 후에야 뱃속으로 넘겼다. 고작 225g짜리 빵이었지만 우리는 마치 버킹검 궁전의 연회만큼이나 오래 끌면서 천천히 먹었다.

두번째 의식은 매끼니의 \'식사\'가 끝나고 화물칸의 문이 닫히기 직전에 거행되었다. 매일같이 똑같은 외침이 바깥 철로에서 들려왔다.
"죽은 사람 없나?"
이런 물음은 얼마 안 지나서 우리에게 충격을 주지 않게 되었다. 마실 물도 없는 가운데 장작을 때는 조그만 난로 하나로 그 무서운 시베리아 혹한을 막으며 냄새나는 화차 속에 허기져 누워 있는 동안, 우리는 생과 사를 갈라놓고 있는 것이 미닫이문 하나뿐이라는 생각에 익숙해져 있었다. 저주를 받은 화차가 있었는가 하면 축복을 받은 화차도 있었다. 29일 동안에 한 명밖에 죽지 않은 우리 화차는 축복을 받은 셈이었다. 그러나 축복보다는 저주를 받은 화차가 훨씬 더 많았다. 실제로 아침마다 철로 연변에 급히 공동묘지를 파서 너덧 구의 시체를 파묻지 않고 그냥 지나치는 때가 없어었다. 조그만 창문을 통해서, 우리는 그 가엾은 사망자들의 머리가 흙무덤과 돌멩이 여기저기에 튕기면서 막 사살된 미친 개처럼 질질 끌려가 묻히는 것을 지켜 보았다. 일단 구덩이에 끌어다 누이기만 하면 삽으로 흙을 수북이 퍼서 그들의 얼굴과 몸을 천천히 덮는 것이었다. 시체들은 대개 알몸으로 묻혔는데 더러는 군대에서 지급하는 짧은 무명바지만 걸쳐진 것도 있었다. 물론 계급장도 없었고, 군복도 없었다. 놀라기도 하고 믿어지지도 않는 눈으로 우리는 대초원의 평평한 땅 위에 보일 듯 말듯 약간 불룩하게 솟아오른, 갓 파낸 흙으로 덮은 흙무덤을 응시하곤 했다. 그 때 우리는 아마도 모두 똑같이 그 땅에서는 아무도 세울 꿈조차 꾸지 못한 십자가를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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