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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왕실의 후손들.

세크(121.132) 2007.06.20 07:02:47
조회 2217 추천 0 댓글 7






[프랑스의 왕위요구자/부르봉 가문의 당주]

 

1. 앙리 5세(샹보르 백작) 1870 - 1884 - 정통파(샤를 10세의 손자)

2. 필립 7세(파리 백작) 1884 - 1894 - 오를레앙파(루이 필립의 손자)

3. 필립 8세(오를레앙 공작) 1894 - 1926 - 필립 7세의 아들

4. 쟝 3세(기즈 공작) 1926 - 1940 - 필립 7세의 동생인 샤르트르 공작 로베르의 아들

5. 앙리 6세(파리 백작) 1940 - 1999 - 장 3세의 아들

6. 앙리 7세 피에르(파리 백작) 1999 - 현재

 

프랑스의 샤를 10세가 1830년 7월 혁명으로 퇴위하게 되자, 샤를 10세는 당시 5세의 어린 나이였던 손자 샹보르 백작을 왕위에 오르게 하고, 오를레앙 공작 루이 필립을 섭정공으로 하는 정국운영을 구상하였다.(샤를 10세의 장남인 황태자 루이 앙투안은 골수 절대왕정주의자였으므로 혁명세력에 의해 배척받을 것이 뻔했으므로 배제되었다.) 그러나 왕위에 욕심을 가지고 있던 루이 필립은 이 제안을 거절하고 스스로 즉위함으로서 7월 왕정을 출범시켰다. 영국으로 망명한 샤를 10세가 1834년 죽자 황태자였던 루이 앙투안이 자신이 부르봉 정통파의 왕이라 주장하며 루이 19세라 칭하였다. 그러나 루이 19세는 아들이 없었으므로,(루이 19세의 아내는 마리 앙투아네트의 딸 마리 테레즈이다) 1844년 당주권은 조카였던 샹보르 백작이 계승하게 되는데, 곧 그가 앙리 5세이다. 1848년 7월 왕정이 타도되자 오를레앙 파도 왕위를 요구하며 정통파와 대립하게 되는데, 1870년 제 2제정이 무너지고 왕정복고가 이루이질 수 있는 절호의 기회에서도 두 파의 대립으로 인해 끝끝내 왕정복고는 무산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오를레앙 파가 양보하여 정통파가 계승하고 후계자 없는 샹보르 백작이 오를레앙 파의 파리 백작을 후계자로 삼는다는 협상에 합의했으나, 앙리 5세(샹보르 백작)는 그 동안 이루어진 혁명의 성과를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결국, 왕정복고는 공화파에 의해 무산되었고, 1884년 앙리 5세가 실의 속에 죽자 예전의 합의대로 오를레앙 가의 파리 백작이 양 파의 지지를 받아 필립 7세가 되었다. 이 떄 정통파의 일부는 오를레앙 가문이 아니라 스페인 부르봉 왕가의 카를로스 왕자(몰리나 백작/스페인 페르난도 7세의 동생)를 지지하고자 하였는데, 이는 큰 반향을 얻지 못하였다. 이유는 스페인 계승전쟁으로 맺어진 위트레흐트 조약에서 스페인 부르봉 왕가는 프랑스에서의 모든 권리를 포기한다고 서약하였기 때문이다.

 

1886년 왕실 수장과 수장의 후계자, 그 가족들에 대한 추방령이 내려져 왕실은 영국으로 망명하였다.(이 법은 1950년에야 폐지되어 현재 프랑스 왕실 수장은 프랑스에서 살고 있다.) 필립 7세가 죽자, 당주권은 오를레앙 공작인 필립 8세가 계승하였고, 그가 죽자 사촌동생인  기즈 공작 쟝이 세습하여 자칭 쟝 3세가 되었다. 이후 계속해서 쟝 3세의 아들과 손자인 앙리 6세와 앙리 7세가 당주권을 세습하였으며, 2003년 앙리 6세의 부인인 파리 백작부인(오를레앙-브라간사 가문의 이사벨라)이 사망한 바 있다.

 

 

[프랑스의 제위요구자/보나파르트 가문의 당주]

 

불후의 영웅 나폴레옹을 배출한 보나파르트 가문은 부르봉 왕가와 함께 프랑스의 왕위를 역시 요구하고 있다. 나폴레옹 1세가 죽은 뒤 보나파르트 가문에 의해 황제로 불려진 사람은 나폴레옹 1세의 유일한 아들 나폴레옹 2세(로마왕, 라이히슈타트 공작/합스부르크의 마리 테레즈와의 아들)였다. 나폴레옹 2세가 오스트리아에서 반감금 상태로 죽은 뒤, 가문의 당주는 나폴레옹 1세의 조카 루이 나폴레옹(나폴레옹의 동생 루이 나폴레옹의 아들)이었는데 1852년 마침내 프랑스의 황제가 되어 나폴레옹 3세로 불렸다. 1870년 보불전쟁의 패배로 퇴위한 이후 1873년까지 생존해 있다가 영국에서 죽었다. 

 

이후 보나파르트 가문의 당주는 다음과 같다.

 

1. 나폴레옹 4세 (1873 - 1879) - 나폴레옹 3세의 독자

2. 나폴레옹 5세 (1879 - 1891) - 나폴레옹 3세의 사촌/나폴레옹 4세의 당숙

3. 나폴레옹 6세 (1891 - 1926) - 전자의 아들

4. 나폴레옹 7세 (1926 - 1997) - 전자의 아들

5. 나폴레옹 8세 (1997 - 현재) - 전자의 아들

 

나폴레옹 3세와 유진 황후의 유일한 아들인 황태자가 가문의 당주가 되니 보나파르트 가문에 의해 나폴레옹 4세(1856 - 1879/재위 1873 - 1879)로 불리었다. 그는 영국 군대에 자원해 아프리카의 줄루랜드에서 싸우다가 1879년 전사하였다. 그의 전사소식은 한 때 유럽전체를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나폴레옹 4세가 젊은 나이에 후사없이 죽자 가문의 계승권은 나폴레옹 1세의 막내 남동생인 제롬 보나파르트의 자손들이 상속했다. 나폴레옹 1세에 의해 베스트팔렌의 왕을 지낸 제롬 보나파르트의 아들인 나폴레옹 조제프(즉, 나폴레옹 3세의 사촌동생)가 가문의 당주가 되어 나폴레옹 5세(1822 - 1891/재위 1879 - 1891)가 되었다. 나폴레옹 5세는 이탈리아 왕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의 딸인 루이즈 테레즈(1843-1911)과 결혼하여 2남 1녀를 두었다. 나폴레옹 5세가 죽자 장남인 나폴레옹 빅토르 제롬이 즉위하니 보나파르트 파에 의해 나폴레옹 6세(1862 - 1926/재위 1891 - 1926)로 호칭되었다. 나폴레옹 6세는 벨기에의 왕 레오폴드 2세의 딸인 클레멘티아(1872-1955)와 결혼하여 1남 1녀를 두었고, 나폴레옹 6세가 죽자 아들인 루이 제롬 나폴레옹이 가문의 당주가 되어 나폴레옹 7세(1914 - 1997/재위 1926 - 1997)로 호칭하였다. 나폴레옹 7세는 2남 2녀를 두었으며, 1997년 죽자 장남인 샤를 제롬 나폴레옹(1950-현재)이 가문의 당주가 되어 나폴레옹 8세로 호칭되고 있다. 나폴레옹 8세는 부르봉 가문(양 시칠리아 계통, 즉 프랑스 정통계통이 아님)의 베아트릭스와 결혼, 1남 1녀를 두고 있다.

 

 

[오스트리아의 왕위요구자/합스부르크 가문의 당주]

1. 오토 폰 합스부르크 1922 - (현재까지 생존/1912년 생) - 마지막 황제 카를 1세의 장자

 

오스트리아의 마지막 황제였던 카를 1세의 황태자였던 오토는 현재까지 생존해 있다. 부친인 카를 1세가 헝가리에서 왕위를 요구하다 쫓겨나서 마조레스 군도로 유배되어 죽은 뒤, 오토는 합스부르크 왕가의 수장이 되었다. 그는 나치에 항거하였고, 결국 미국으로 쫓겨났다. 2차 대전 이후 오스트리아로 돌아와 왕위를 요구하였으나 결국 1966년 다시 망명길에 올랐다. 각국을 전전하며 망명생활을 하다가 1992년 오스트리아 정부의 배려로 귀국하였다.

 

 

[독일의 왕위요구자/호엔촐레른 가문의 당주]

마지막 황제 빌헬름 2세가 1940년 죽은 이후..

1. 빌헬름 3세(황태자) 1940 - 1951

2. 루트비히 페르디난트 1951 - 1994

3. 게오르그 프리드리히(프리드리히 4세) 1994 - 현재

 

1918년 제 1차 세계대전의 패전으로 퇴위한 빌헬름 2세는 1940년까지 네덜란드에 망명해 있으면서 권토중래를 꾀하고 있었다. 1940년에 빌헬름 2세가 죽자 황태자였던 빌헬름이 호엔촐레른 가문은 계승하였다. 제 2차 대전 이후 독일로 왕가는 귀환하였지만, 빌헬름 3세의 아들들은 더 이상 왕가가 아닌 자신들의 위치를 깨닫고 탈선을 하기 시작했다. 장남인 페르디난트와 차남인 하인리히는 부모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평민과 결혼하는 귀천상혼을 했다가 보수적인 왕가의 구성원들에 의해 모든 권리를 박탈당하고 당주의 계승권을 잃어버렸다. 나중에 이들은 독일법정에 권리회복의 소를 제기했으나 폐소하였고, 그들의 결혼생활도 이혼으로 결말이 났다. 빌헬름 3세의 3남인 루트비히 페르디난트만이 조신하게 자라 부모의 뜻대로 귀족의 딸과 결혼하여 당주의 자리를 계승하였고, 1994년부터는 그의 아들인 프리드리히 4세가 호엔촐레른 가의 당주위를 계승하고 있다.

 

 

[러시아의 왕위 요구자/로마노프 가문의 당주]

니콜라이 2세의 퇴위 이후...

1. 미하일 2세 1917 - 1918     니콜라이 2세의 동생

2. 키릴 블라디미르노비치 대공 1918 - 1938   알렉산데르 2세의 손자 

3. 블라디미르 키릴로비치 대공 1938 - 1992   전자의 아들

4. 마리아 블라디미로브나 대공비(女) 1992 -   전자의 딸

 

러시아 혁명으로 왕조가 몰락할 위기에 놓이자 마지막 차르인 니콜라이 2세는 혈우병을 앓고 있는 어린 황태자 알렉세이가 이 위기를 헤쳐나갈 수 없음을 깨닫고 동생인 미하일에게 차르 자리를 양보하였다. 그러나, 혁명은 이미 되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발전하였고, 미하일 대공은 1918년 볼셰비키 파에 의해 암살되었다. 니콜라이 2세의 황태자인 알렉세이도 가족과 함께 총살되었으므로, 알렉산드르 3세 계통의 남계혈통은 단절되었다. 로마노프 왕가의 당주는 알렉산드르 3세의 조카이자, 니콜라이 2세의 사촌동생인 키릴 블라디미르노비치 대공(알렉산드르 2세의 3남 블라디미르 대공의 아들이다)이 당주자리를 계승하였다. 이후 키릴 대공이 죽자 그의 장남인 블라디미르 키릴로비치 대공이 계승(재위/1938-1992)하였고, 1992년 그가 죽자 딸인 마리아 블라디미로브나 대공비가 계승하였는데, 마리아 블라디미로브나 대공비는 독일의 빌헬름 2세의 아들인 요아킴 프란츠의 손자인 프란츠 빌헬름과 결혼하였고, 아들 하나를 두고 있다.

 

 

[이탈리아의 왕위 요구자/사보이 가문의 당주]

마지막 왕이었던 움베르토 2세가 1983년 죽은 이래 황태자인

1.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4세(나폴리 공작) 1983 - 현재

 

역시 마지막 왕이였던 움베르토 2세가 제 2차 세계대전의 패전책임을 지고 포르투갈로 망명하고 공화정이 수립되었으며, 왕가의 재산을 몰수하고 그들의 입국과 공민권을 제한하였다. 1983년까지 사보이 왕가를 지키며 왕정복고의 희망을 버리지 않았던 움베르토 2세가 죽자 마지막 황태자였던 나폴리 공작이 즉위하여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4세가 되었다. 움베르토 2세의 망명기간이 길어지자 왕비였던 마리 조세와 불화를 일으키게 되고 부부는 별거하게 되는데, 이로 인해 자녀교육이 소홀하게 되어 움베르토 2세의 자식들은 모두 우애가 나쁘고, 약물중독, 스캔들, 법정 소송까지 가는 등의 추태를 보이고 있다. 현 사보이 왕가의 당주인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4세는 귀천상혼을 하여 그의 자식들은 당주 계승권이 없으며, 후계자는 사보이 왕가의 분파인 아마데오 가문(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의 자손이다)로 넘어가게 되어있다.

 

 

[그리스의 왕위 요구자/그리스계 글뤽스부르크 가문의 당주]

글뤽스부르크 가문은 덴마크의 왕가이며, 혼인에 의해 그리스의 왕권을 물려받았다.

*** 현재 1974년 폐위된 콘스탄티누스 2세가 영국에 망명, 생존해 있다. 콘스탄티누스 2세는 덴마크의 공주인 앤 마리와 결혼하였는데, 앤 마리는 덴마크의 여왕인 마르가라테 2세의 여동생이다.

 

 

[루마니아의 왕위 요구자/루마니아계 호엔촐레른 가문의 당주]

*** 현재 1947년 폐위된 미하일 2세가 생존해있으며, 공산체제가 중괴된 이후 루마니아로 돌아왔다. 마하일 2세는 자식이 없으므로, 가문의 당주가 누가 될지는 상당히 불명확한 상태다.

 

 

[불가리아의 왕위 요구자/불가리아계 삭스-코부르크-고타 가문의 당주]

*** 삭스-코부르크-고타가문은 영국, 벨기에의 현왕실이며 영국왕실은 윈저라고 이름만 바꾸었을 뿐이지 사실은 이 가문에 속해있다. 1946년 공산혁명에 의해 폐위되었던 시메온 2세는 현재 생존해 있으며, 공산제 폐지 이후 불가리아로 돌아와 민주세력동맹이라는 정당을 결성해 2001년 불가리아의 총리로 오른 기묘한 전적을 가진 인물이며, 2005년 현재까지 집권하고 있다.

 

 

[유고슬라비아의 왕위 요구자/카라도브데빅 가문의 당주]

*** 1948년 공산혁명에 의해 폐위된 왕 피터 2세가 1970년 망명지에서 죽은 이후 아들인 알렉산더 대공(황태자)이 이 가문의 당주이며 왕당파에 의해 알렉산더 2세로 호칭되고 있다.  

 

 

[알바니아의 왕위 요구자/레카 가문의 당주]

*** 1948년 공산혁명에 의해 폐위된 조그 1세가 1961년 죽은 뒤 아들인 레카가 이 가문의 당주이며, 왕당파에 의해 레카 1세로 호칭되고 있다.

 

 

[이란의 왕위 요구자/팔레비 가문의 당주]

*** 호메이니의 이슬람 혁명으로 1979년 폐위된 모하메드 레자왕은 1980년 망명지인 이집트 카이로에서 죽었다. 모하메드 레자왕은 두번의 결혼을 하였는데, 모두 이집트 왕실에서 구혼하였다. 1980년부터 가문의 당주는 황태자였던 레자 팔레비 2세가 맡고 있다.

 

[이집트 왕위 요구자]

***나세르의 혁명에 의해 폐위된 전왕 파드 2세(1950 - )가 현재까지 생존해있다. 파드 2세는 2세의 어린 나이로 즉위했으나 1953년 폐위되었고, 프랑스로 망명하여 지금껏 살고 있다.

 

 


출처는 엠파스.

짤방은 현 합스부르크가의 당주인 오토 폰 합스부르크 할배.
그 밑의 사진은 그의 종조부인 오스트리아의 프란츠 요제프 황제와 함께 찍은 어릴적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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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최음제 논란' 배우 하정우 "팬에 직접 사과…언행에 신중 기할 것" 디시트렌드 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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