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시인사이드 갤러리

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갤러리 본문 영역

레니 리펜슈탈... 위대하고 죄 많은 예술가

카파 2005.09.26 20:50:36
조회 7677 추천 1 댓글 16


짤방은 1939년 폴란드 콘스키에서 독일 국방군들이 지켜 보고있는 가운데 자신의 무덤을 파고 있는 22명의 유태인 촌로들입니다.  4명의 독일군 병사가 살해당했다는 이유로 이들은 곧 무참하게 보복 집단 처형되었지요. 이 장면을 태연스레이 촬영한 이는 발터 폰 라이헤나우 장군의 사령부에서 다큐멘터리를 찍고 있던 바로 그녀, "레니 리펜슈탈"이었습니다. ----------------------------------------------- 레니 리펜슈탈 Leni Riefenstahl (1902-2003) 레니 리펜슈탈은 "의지의 승리" "Triumph des Willens" (Triumph of the will)의 제작자이다. 미국에서는 1950년대까지 "의지의 승리"를 미군이 보는 것을 금지시켰다. 본명은 Berta Helene Amalie Riefenstahl. 베를린 출생. 독일의 배우·제작자·사진작가·영화감독. 베를린에서 그림과 발레를 배웠고 1923-26년 유럽순회 무용공연을 가졌다. 20년대에 활동하던 리펜슈탈은 그가 출연했던 영화가 성공하면서 영화감독의 길을 걷는다. 자연, 특히 산악의 경관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독일영화의 한 형태인 '산악영화'에 출연하면서 영화와 관련을 맺기 시작했고 마침내 이 방면의 영화감독이 되었다. 1931년 레니리펜슈탈영화사를 만들었고, 1932년 <푸른 불빛 Das blaue Licht>의 각본을 쓰고 감독·제작·주연을 맡았다. 차갑게도, 지성적으로도, 혹은 평범하게도 보이는 리펜슈탈은 배우로서도 독특한 매력을 가진 여성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젊은 시절 댄서와 배우로 활동하던 그녀는 권좌에 오르기 1년 전의 히틀러의 연설을 듣고 (그의 회고에 따르면) “전기 충격을 받은 듯 묵시록적 비전을 발견”한 그는 히틀러에게 편지를 보내  개인적 만남을 간청했다. 히틀러의 눈에 든 그는 뉘른베르크에서의 나치 전당대회를 담은 ‘의지의 승리’에서 원근법적 효과를 위해 다양한 렌즈를 사용하면서, 히틀러의 영웅적 포즈를 앙각 클로즈업으로 올려 찍어 부각시키는 등 독창적 촬영술로 다큐멘터리영화의 신세계를 개척했다. 나치당의 지원을 받아 신체의 아름다움과 아리안족의 우월성을 찬양하는 영화들을 감독했다. <신념의 승리 Sieg des Glaubens> (1933)는 그녀가 1932년에 발표한 <푸른 빛 Die Blaue Licht>을 보고 만족한 히틀러는 집권하자마자 영화 제작을 의뢰한 단편 영화이며 <의지의 승리 Triumph des Willens>는 1934년 뉘른베르크에서 열린 나치 전당대회를 주의깊게 관찰한 중요한 기록영화로서 나치당의 결속을 강조하고 독일민족에게 당의 지도자들을 소개했으며 나치의 힘을 세계에 과시했다. <올림픽 경기 Olympische Spiele> (1938)는 1936년에 열린 올림픽 경기를 <민족의 축제 Fest der Völker>와 <아름다움의 축제 Fast der Schönheit>라는 2부로 편성해 영화화한 것으로 스튜디오에서 만든 감명깊은 음악과 음향효과를 만들어 찬사를 받았다. ‘민족의 제전’ '미의 제전'에서 리펜슈탈은 인간 육체의 힘과 아름다움을 탁월하게 묘사했다. 힘에의 찬미와 숭배는  아마도 나치의 이데올로기와 공통점이 있었을것이다. 다이빙의 순간, 도약의 순간을 포착한 <올림피아>의 장면들...당시로서는 가히 기적적인 연출력이다. 1935년의 <의지의 승리>와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의 기록영화 <민족의 제전 Olympia>(1938)으로 제3제국 최고의 예술가에 오른다. <올림피아>는 격찬을 받으며 베니스 영화제 작품상을 수상했다. 고대 그리스 조각가 미론이 만든 "원반던지기 선수"(Diskobolos,원작은 청동-BC450년경 제작된것으로 추정-이며 소실되었다. 사진은 로마의 란체로티 궁전에 있는 정교한 대리석 모조품)를 본딴 이 모습은 아마도 올림픽의 상징이 아닐까? 리펜슈탈의 <올림피아>의 한장면 리펜슈탈의 영화는 풍부한 음향 효과, 뛰어난 편집, 새벽의 아름다운 정경이나 산악지대, 독일의 전원생활 등을 영화에 아름답게 담아냈다는 찬사를 받았다. 그녀가 만든 영화가 나치를 돕는 결과를 낳았기 때문에 제2차 세계대전 뒤 블랙리스트에 올랐지만 나치와의 전쟁공범죄가 공식적으로 씻겨진 뒤인 1952년 다시 영화에 복귀하여 일찍이 전쟁 때문에 제작을 중단했던 영화 <저지대 Tiefland>를 완성했다. 1973년 그녀의 아프리카 사진집 <누바족의 최후 Die Nuba>가 출간되었다. <의지의 승리>는 지금까지 만들어진 프로파간다(propoganda, 선전)영화 중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영화다. 그 때문에 전쟁 후 나치에 협력한 혐의로 수용소 생활을 하게 되지만 1954년 풀려 나게 되고 그 후 사진가, 스쿠버 다이빙과 해양 영상의 촬영에 몰두했다. 1934년 뉘른베르크에서 열렸던 나치 전당대회를 담은 정치 프로파간다 영화로서 다큐멘터리 영화에 획기적인 정점을 마련한 작업으로 평가된다. 뛰어난 에술성에도 불구하고 제작 후 서방세계권의 상영 금지와 전쟁후 전범재판등 거센 비판에 휩싸여 제대로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였으나 1970년대 이후 새로운 조명을 받는다. 그녀의 인터뷰와 회고록에서도 나타나지만 리펜슈탈과 나치와의 관계는 정치적인 이념이라기 보다, 아름다움과 힘을 이미지로 표현하려는 그녀의 열망을 히틀러와 괴벨스가 정치적으로 이용한 것이라는 해석이 설득력이 있다. <의지의 승리>는 바그너의 음악을 쓰고 36대의 카메라와 첨단 영상 장비, 120명의 스탭과 8개월간의 편집으로 탄생하였다. 대표작 Das Blaue Licht (1932) Der Sieg des Glaubens (1933) Triumph des Willens (1934) Tag der Freiheit - Unsere Wehrmacht (1935) Olympia (1938) Tiefland (1954) 올림피아 의지의 승리 출처: http://www.nobelmann.com/ 손기정을 사랑한 예술가, 리펜슈탈 [iMBCsports 2003-09-13 16:24] 일생을 불꽃처럼 살다가 101세를 일기로 지난 8일 세상을 떠난 레니 리펜슈탈. 독일이 낳은 세기의 여걸인 리펜슈탈은 정열과 아름다움을 뜨겁게 사랑하다가 거짓말처럼 숨을 거두었다. 그는 말 그대로 정열의 대명사이자 아름다움의 맹신도였다. 악명의 화신으로 불린 아돌프 히틀러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그의 문화 전사 구실을 했던 것도, 삶을 송두리째 내던져 예술혼을 불사른 화가 빈센트 반 고흐를 사랑한 것도 알고 보면 정열과 아름다움을 향한 줄기찬 연모나 다름없었다. 리펜슈탈은 다섯 가지의 삶을 차례로 살았던 집념의 여인으로 회자돼왔다. 뇌쇄적 미모가 눈부셨던 젊은 날에는 영화·연극배우와 무용수로서 관객을 사로잡았고, 나치 시대에는 전설적 영화감독이자 사진작가로서 명성을 날렸다. 그리고 인생의 만년에는 탐험가이자 사진작가로서 아프리카 등 오지를 찾아다니며 삶의 본질적 정체를 미학적으로 탐색했다. 이런 그가 나라 잃어 초라한 동양의 한 젊은이에게 매료된 것은 실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1936년에 베를린 올림픽의 공식기록영화 총감독을 맡은 리펜슈탈은 우승 후보로 거명돼온 손기정이라는 식민조선의 마라토너를 처음엔 단순히 체육인으로서 주목했다. 그리고 손기정이 힘찬 모습으로 결승선에 들어오는 모습을 목격한 뒤로는 한 인간으로서 그에게 깊은 관심을 보였다. 손기정의 골인 모습은 세계 스포츠사에 길이 남은 명장면으로 꼽힌다. 42㎞를 거침없이 내달려온 이 청년은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그리고 이렇다할 승리의 환호도 내지르지 않은채 결승선을 향해 표범처럼 의연하게 돌진했던 것이다. 마지막 100m를 달린 시간은 11초 가량. 보통의 선수가 단거리를 전력질주했을 때의 속도로, 손기정은 마지막 순간을 장엄하고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었다. 무엇이 우승자 손기정의 인상을 저렇게 찌푸리게 했는지는 한국사람이라면 다 알겠지만... 다시 강조하지만 세계 마라톤 역사상 이처럼 감격적이고 인상적인 장면을 찾긴 힘들다. 한 점 웃음기없이 무표정하기만 한 우승자 얼굴은 일거에 리펜슈탈의 넋을 흔들어놓았고, 이후 리펜슈탈은 자신의 인생에 깊은 감명을 남긴 대표적 인물로 손기정을 꼽았다. 이런 손기정이 훗날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때 결승선에 들어오며 손 키스 장면을 연출한 황영조에게 "그것은 최선을 다하는 선수의 모습이 아니다"라고 꾸지람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히틀러와 악수를 나눈 손기정은 우승 3일 후 리펜슈탈의 대저택으로 초청받는 영광을 안는다. 그녀의 저택이 얼마나 웅장했던지 손기정은 회고담에서 "덕수궁과 같이 큰 규모였다"고 들려주었다. 리펜슈탈은 손기정에게 자신의 정원을 한 바퀴 돌 것을 주문했는데, 이 때 연출해 찍은 사진은 일부에서 실제 마라톤 장면으로 오해받기도 했다 역주하는 마라토너들 - 리펜슈탈 <올림피아>의 한장면 그렇다면 리펜슈탈이 왜 이처럼 손기정에게 깊은 관심과 애정을 보였을까. 리펜슈탈의 사진자료를 1천여 점 가량 갖고 있는 화가 강형구 씨는 손기정의 과묵함과 정열, 그리고 동양적 면모였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당시 올림픽은 독일과 미국 두 나라의 잔치판이었는데 일장기를 달고 나온 식민청년 손기정은 행사의 국제성을 높여주는 좋은 사례였다는 것이다. 다큐 <올림피아>의 포스터와 관련서적들 표지 리펜슈탈의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다큐 <올림피아>의 장면들 - 베를린 올림픽은 성화가 사용된 최초의 올림픽 대회 이기도 했다. 리펜슈탈은 각별한 동양인 친구인 손기정의 역주장면을 그의 대표작 '민족의 제전'에 가장 많이 삽입(전체 3시간 분량 중 10여분 할애)시켰다. '민족의 제전'은 베를린 올림픽 공식기록영화로, 이렇게 아름답고 방대한 영화는 지금껏 나오지 않고 있다고 할 만큼 유명하다. 리펜슈탈은 1956년 독일에서 열린 국제군인마라톤대회에서 20년 만에 손기정을 재회한 데 이어 1977년에는 일본TV에 나란히 출연해 베를린 올림픽을 회고했다. - 1956년 독일을 방문한 손 선수와 함께 기념촬영한 리펜슈탈 . 히틀러가 생전에 총애했던 세 여인은 널리 알려진 에바 브라운 외에 리펜슈탈과 할리우드의 전설적 육체파 배우 말렌 디트리히였다. 나치 정권의 문화담당 특별보좌관이었던 리펜슈탈은 히틀러의 선전에 선봉장 역할을 담당하다가 2차대전 종식 후 투옥과 석방으로 은인자중하다가 1960년대 들어 복권된 다음 오롯이 예술가의 길로 매진했다. <올림피아>에 등장하는 또 한명의 유색인 영웅 - 제시 오웬스. 그는 히틀러와 악수를 하지 못했다. 사실 그는 당시엔 히틀러에 대해서 아는것이 거의 없었다고 회고했다. <올림피아>의 필름을 편집하고 있는 레니 리펜슈탈... 그녀는 이 영화의 편집 작업에 18명의 스탭을 동원했다. 강형구 씨는 "리펜슈탈을 전범의 대열에서 빼낸 것은 예술이었다. 독일의 현대 문화사에서 그를 제쳐놓을 수 없을 정도로 리펜슈탈은 굵직한 발자취를 남겼다"고 평가한다. 예술이 뒷받침하지 않았다면 그는 영락없는 전범으로 이미 역사의 뒤켠으로 사라졌을 것이라는 얘기다. 강씨는 '올림피아드-레니 리펜슈탈', '레니 리펜슈탈- 다섯 가지 인생', '레니 리펜슈탈 사진집' 등 그의 관련자료를 다수 확보하고 있다. 리펜슈탈이 위인 반열에 오를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남녀라는 성별을 뛰어넘어 평생 동안 집념있게 작업하며 열심히 살았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70대와 80대의 나이에 인도양 등에서 2,000여 회의 수중촬영을 할 만큼 왕성한 건강을 과시했고, 100세를 맞은 지난해에도 작품을 발표할 정도로 예술혼은 뜨거웠다. 그녀는 자신의 인생에 은퇴라는 단어가 없다고 단언하며 삶의 언덕을 힘차게 넘어왔다. '불광불급'(不狂不及), 다시 말해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는 말처럼 리펜슈탈은 광기에 가까운 열정으로 1세기가 넘는 삶을 파란만장하게 산 것이다. 그렇다고 볼 때 그가 좋아한 히틀러와 고흐, 손기정은 일정한 공통분모가 있음을 발견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 나는 ‘의지의 승리’를 만든 것에 대해 후회할 순 있습니다. 그러나 그 시기에 살았던 것에 대해 후회할 순 없습니다. 난 반유대주의적 발언을 입에 올린 적이 없었고, 나치 당원도 아니었습니다. 내가 원자폭탄을 던졌나요? 다른 사람들을 배신했습니까? 왜 내가 죄책감을 느껴야 하죠? - 말년의 레니 리펜슈탈이 인터뷰에서 한 말 의지의 승리 (Triumph des Willens, 1934) 115분 / 다큐멘터리 / 독일 감독 :  레니 리펜슈탈 (Leni Riefenstahl) 출연 :  요제프 괴벨스 (Josef Goebbels), 아돌프 히틀러 (Adolf Hitler), 헤르만 괴링 (Hermann Göring), 루돌프 헤스 (Rudolf Hess), 하인리히 히믈러 (Heinrich Himmler) 막스 아만 , 마르틴 보르만 음악 :  헤르베르트 윈트 (Herbert Windt) 촬영 :  세프 알제이어 (Sepp Allgeier) 리펜슈탈은 다양한 각도에서 카메라를 사용함으로써 단순한 군중신을 위엄있고 강하게 표현하였다. 줄거리 1934년 뉘른베르크의 쩨펠린펠트 스타디움에서 나찌당의 전당대회가 열린다. 수많은 서치라이트가 환상적인 스펙타클을 연출하는 가운데, 과대망상에 사로잡힌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가 마치 신이 강림하는 듯한 이미지로 단상에 오른다. 그가 힘차게 연설을 할 때마다 청중은 일사불란한 반응을 보이며 광란에 빠진다. 광신적인 종교 집단처럼 히틀러의 일거수일투족에 열광하던 군중이 보이는 가운데, 확신에 가득찬 그들의 지도자가 포효하는 제스처를 취할 때는 탈혼망아의 상태로 접어든다. 배경음악으로는 바그너의 역동적인 독일 음악이 흘러넘친다. 리펜슈탈은 열린 창문으로 움직이는 고양이를 순간적으로 포착하여 절묘하게 사용하였다. 고양이마저도 나치를 숭배하는 듯 하다. 너무나도 유명한 장면 - 히틀러의 앞에 있는 사람은 친위대장 하인리히 히믈러이다. 당시로서는 분명 최첨단이라고 해야 할지....... 히틀러의 도착, 군중들의 운집, 창공을 점령한 깃발들, 카메라의 세련된 기교, 바그너의 음악, 역동적인 제스처와 청중의 반응 등등 이 모든 영화적 테크닉과 편집은 입에 담을 수도 없을 정도의 집단적인 최면에 빠진 한 시대의 비극적 아름다움에 도달해 있다. 특히 편집 리듬은 지도자와 일체가 된 듯한 세련의 극치를 보여준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제3제국 시대의 독일이 낳은 데카당스한 아름다움이자, 나찌 독일의 가장 노골적이고 뻔뻔한 선전 영화이다. 히틀러에게 봉사한 역사적 오명의 다큐멘터리이다. 어마어마한 규모의 군중 집회 - 나치스는 전당대회에 수십만 이상의 군중을 동원하는일이 흔했다. 작품해설 1934년 나찌 독일의 지도자 아돌프 히틀러가 등장하는 전당대회를 찍은 다큐멘터리 필름. 정치적 선전 선동의 목적을 노골적으로 띤 영화이지만, 이후 다큐멘터리의 기술적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주기도 했다. 과연 뛰어난 촬영 기술과 탁월한 편집 감각은 당대의 영화인들을 놀라게 했다. 그 배경에는 36대의 카메라와 첨단 영상 장비, 120명의 대규모 스탭이 동원되는 등 엄청난 물량이 소모되기도 하였다. 그러한 지원에 대한 배후에 나찌독일이 있었음은 물론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영화가 정치적 프로퍼갠더 운동에 얼마만큼 유용하며, 인간의 이성을 잠식하는가를 보여준 대표적인 작품으로 흔히 거론되기도 한다. 이 영화를 찍은 레니 리펜슈탈이란 여감독은 매우 천재적인 재능을 발휘했지만, 불행히도 나찌즘과의 관련은 그녀의 일생 동안 영화적 오명으로 기록되었다. 2차 세계대전의 추축, 유태인의 대학살(홀로코스트) 등등으로 인류에게 씻을 수 없는 죄악을 범했고, 도구적 이성의 반성 등 인간에 대한 회의를 심대하게 진행시킨 아돌프 히틀러와 나찌 독일에 대한 미화, 나아가 신화적인 묘사는 <의지의 승리>를 회복할 수 없는 지경에까지 빠뜨렸다. 하지만 1970년대 이후 전쟁 범죄의 기억에서 다소 놓여난 서방 세계에서는 이 영화가 영화라는 미디어의 한계에 도전한 테크닉에 감탄하며 정치와는 별개로 재평가를 시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오랫 동안 미군이 이 영화를 시청하는 것을 금지하기도 했다 리펜슈탈은 전후 뉘른베르크 재판을 통해 4년간 수감생활을 했다가 무죄 판결을 받고 석방되었다 리펜슈탈은 출감후 1960년대까지 10여년간 뮌헨에 있는 자신의 아파트에서 은둔생활을 하기도 했으나, 불굴의 의지로 결국 사진작가로 재기했다. 그러나 그녀는 1974년 미국에서 열린 텔루라이트 영화제에 참석했다가 유대계 단체의 항의로 곤욕을 치렀으며, 여러 곳마다 적대적 반응에 시달렸다. 70대 노인이 돼 수중 다이빙을 배운 리펜슈탈은 1974년부터 25년 동안 다른 동료들과 함께 인도양 등에서 수천회 잠수하며 바닷속을 촬영하는데 몰두해 왔다. 젊은 시절에는 속죄의 모습을 보이기도 했던 리펜슈탈은 말년에 나치 동조 혐의를 강하게 부인하기도 했다. 그녀는 100번째 생일에 즈음해 나치 영화로 알려졌던 자신의 작품들은 예술을 위한 것이었으며 이데올로기나 선전선동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독일에서는 오랜동안 영화를 통해 히틀러를 찬양하고 나치즘을 미화한 것에 대해 리펜슈탈이 사과해야 한다는 의식이 팽배해 있었다. 그러나 리펜슈탈은 인터뷰를 통해 "내가 무엇을 사과해야 할지 모르겠다"면서 "나의 작품들은 언제나 최고의 상을 휩쓸었다"고 말했다. 리펜슈탈은 1940년에 연출한 작품 <저지대>와 관련해 나치의 홀로코스트 사실을 부인해 논란을 일으켰다. 리펜슈탈은 <저지대>를 찍을 당시 동원됐던 집시 엑스트라들이 나치에 의해 처형당한 사실이 없다고 밝혔으나, 집시 단체가 이를 반박하면서 리펜슈탈을 고소한 것. 프랑크푸르트 검찰청은 그녀에 대한 수사에 착수하기도 했다. 레니 리펜슈탈은 2003년 9월 8일 수면 중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 9월 12일 뮌헨의 오스트프리트 호프 묘지에서 열린 그녀의 장례식에 수백명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들은 묘지 건물 안에 놓여 있는 관 속 시신을 차례로 접견하며 마지막으로 리펜슈탈과 인사를 나눴다. 오랜 친구인 안트예 카트린 쿠에네만은 “그녀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모두 할 수 있었다”고 회고하며 “레니, 이제 우리 마음속에서 편히 쉬세요”라고 말했다. "죽음이 속죄하는데 가장 바람직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라고 한 인터뷰에서 말하기도 한 그녀는 101년을 살았다.. 이것은 자기변호와 속죄사이에서 왔다갔다한 그녀의 인생만큼이나 모순되고 굴절된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위에서 밝힌 자료들과 국내와 외국 관련 사이트를 비롯한 인터넷 여러곳의 뉴스및 인터뷰, 사진 자료 등을 참고하여 작성.

추천 비추천

1

고정닉 0

0

원본 첨부파일 1

댓글 영역

전체 댓글 0
본문 보기

하단 갤러리 리스트 영역

왼쪽 컨텐츠 영역

갤러리 리스트 영역

갤러리 리스트
번호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추천
설문 모태 솔로도 구제해 줄 것 같은 연애 고수 스타는? 운영자 25/07/21 - -
73221 어제 본 MBC다큐에서 서정주의 친일시 카미카제 마츠이 오장이야기 [4] 촌토끼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0.08.23 265 0
73220 오랫만에 크레타 크레타아 [7] 피라모닉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0.08.23 153 0
73219 쪽발이가 불쌍해지는 사진들 [5] 붠잇아웃(112.149) 10.08.23 386 0
73218 노몬한이 몽골과 만주 가까운 할힌골 강이라고 알고 있는데 [3] 질문임(175.197) 10.08.23 143 0
73216 밀리사이트가 망한이유? 간단해... [6] (119.195) 10.08.23 175 0
73215 어깨 위에서 기관총이 부릅니다 [19] 피라모닉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0.08.23 292 0
73214 밀리사이트가 망하는 이유는 당연하지. [4] ㄴㄻㅇㄹ(121.173) 10.08.23 133 0
73210 개소문 광팔이 갈피옥(121.133) 10.08.23 44 0
73209 밴드오브브라더스실존인물+배우 한국방문했을때..Jpg [8] 김질주.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0.08.23 1587 0
73207 8.23 쿠르스크 전투의 사실상 종결. 제4차 하리코프 전투 폐막 [3] FOlly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0.08.23 1028 0
73204 스탈린 덕분에 이겼다는건 개소리지 [6] (222.106) 10.08.22 218 0
73203 "안녕하세요?.여러분의 짤장 이하노프입니다." 이하노프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0.08.22 73 0
73201 대체 일본은 어떻게 미국의 첩보를 수집한 거지? [11] ㄴㅇㄹ(112.214) 10.08.22 220 1
73200 이대갤은 근데 진짜 웰케 활성화가 안되는거야???????????? [7] 졸리✘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0.08.22 64 0
73199 헬야드(Halyard)작전-미하일로비치와 OSS [5] 슈타우펜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0.08.22 142 0
73198 내가 무인기를 구상중인데 [6] 일본해병대(222.239) 10.08.22 55 0
73197 야크트티거인지뭔지. [11] F(210.192) 10.08.22 174 0
73195 콜오브듀티5 나치좀비에서 여러명이서 플레이하려면 어떻게 하나요? [1] ㅇㅇ(116.37) 10.08.22 77 0
73194 푸틴의 꿈에 나타난 스탈린. [12] 팬더라이트(121.159) 10.08.22 317 0
73193 무엇이 무엇이 똑같을까~ [10] 팬져곰(114.201) 10.08.22 130 0
73192 그러게 갤 좀 그냥 냅두짘ㅋㅋㅋㅋㅋㅋㅋㅋ(2대갤 내용 있음) [2] 유동닉(119.203) 10.08.22 53 0
73189 이쯤에서 P1500 몬스터도 보고 갑시다. [4] 분필한다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0.08.22 375 0
73188 이쯤에서 적절하게 골리아테 보고 갑시다. [5] 분필한다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0.08.22 106 0
73186 소련이 개 자폭시켜서 독일 탱크 터뜨린 전술 아시나요??? [18] 졸리✘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0.08.22 230 0
73180 '부익부 빈익빈' 현상은 자연의 섭리인 '자연선택'의 과정이다. [21] qwer(59.12) 10.08.22 131 0
73179 디시에도 간첩이 있을줄이야!! [5] Arvono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0.08.22 106 0
73176 2대갤도 한전갤 꼴 나는거야? [7] BISMARCK(119.149) 10.08.22 77 0
73174 디시에 홍어드립 [24] 지역(175.197) 10.08.22 172 0
73171 우리는 한다면한다. [1] 토텐코프(112.156) 10.08.22 60 0
73170 욱일군 11년식 경기관총. [6] F(210.192) 10.08.22 224 0
73169 욱일의 대전차 죽창 '자돌폭뢰' [12] F(210.192) 10.08.22 503 0
73168 qwer하고 토론을 하려들지 마세요 [1] ㅂㅈㄷ(125.139) 10.08.22 57 0
73167 한다면 한다고 하는 팬Q님 어디가셨나요? [1] 팬Q(115.21) 10.08.22 32 0
73165 덕국으로 이민간 한국사람들 부럽지 않냐? [1] 근데(119.195) 10.08.22 91 0
73164 소련의 고릴라부대 [4] 일본해병대(222.239) 10.08.22 190 1
73163 독일, 소련 두나라의 기갑차량 몇대 성능비교(부제.사과문) [7] 팬져곰(114.201) 10.08.22 600 0
73161 2대때 프랑스 털리고 프랑스국민들 얼마나 영국으로 도망침? bismarck(119.149) 10.08.22 48 0
73158 미군에도 카와이는 있다 [7] 피라모닉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0.08.22 186 0
73156 나라를 걱정하는 자유민주주의 세력이란~ [3] ㅇㅇ(59.187) 10.08.22 60 0
73155 촛불시위로 국가손실 3조 넘어 [23] qwer(59.12) 10.08.22 152 0
73153 우익을 싫어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89] 기렌자비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0.08.22 177 0
73152 소빠들의 개소리 작렬은 까고 또 까야 마땅하다. [8] 118.41(118.41) 10.08.22 73 0
73151 '부익부 빈익빈' 현상은 자연의 섭리인 '자연선택'의 과정이다. [4] qwer(59.12) 10.08.22 43 0
73149 결국 독소전에서 독일에게 가장 중요했던 집단군은 남부였어? [5] 슷히븐시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0.08.22 134 0
73148 2차 세계대전의 애코 애너지? [5] 기렌자비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0.08.22 100 0
73147 팬Q 이제 안오네 [1] ㄷㄹㄷㄹ(119.204) 10.08.22 38 0
73146 레닌이 2차대전까지 살아있었으면 정말 ㅎㄷㄷ했겠다 [13] (222.106) 10.08.22 150 0
73145 Fall Gelb - 2 총통의 결단 [2] 라팔안다무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0.08.22 75 0
73144 일본군 위안부처럼 다른나라도 성노예 뭐 운용한 전적없냐? [13] 돌아온육갑수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0.08.22 226 0
73143 영국은 2차대전발발할때 자국내에서 반발이 없었나????? [10] 졸리✘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0.08.22 126 1
뉴스 [뚜벅이 맛총사] 권율x연우진x이정신이 뜨면 이탈리아 골목도 카페다! '빈티지 스트릿' 메인 포스터 대공개! 디시트렌드 07.21
갤러리 내부 검색
제목+내용게시물 정렬 옵션

오른쪽 컨텐츠 영역

실시간 베스트

1/8

뉴스

디시미디어

디시이슈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