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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뷁이면 ㅈㅅ 합니다 2차세계대전이 끝나다 끝까지 살아남은 나치 생존자들

L 2006.01.01 23:14:08
조회 1452 추천 0 댓글 4




짤방은 멩겔스 아저씨의 간지 포스 ----------------------------------------------------------------------------------------- 1. 죠셉 멩겔레(Joseph Mengele)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는 무엇보다도 생체실험으로 악명이 높았다. 이 수용소의 수석 의사로서 "아리안족의 특징과 푸른 눈을 가진 아이"를 인공적으로 창조하려 하였던 Joseph Mengele는 그 수용소의 의사들 가운데에서도 가장 유명하였다. 수천명의 수용자들을 개스실의 죽음으로 몰거나 갖은 생체실험을 다했던 그는 수용자들 사이에 '죽음의 천사'로 널리 알려졌다. "1943년 티푸스가 여성 수용소에 크게 번졌다. 2만명 가운데 7천명이 앓아 누웠다. 멩겔레는 먼저 6백명이 거주하는 블록을 먼저 비워 가스실로 보냈다. 그리고 그 블록을 깨끗이 소독한 다음 옆 블록의 수용자들을 들여보냈다. 이런 식으로 모든 블록이 소독되었다. 그러나 무서운 일은 그 맨처음 블록의 6백명은 가스실 외에는 갈 곳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기발한 발상에 의한 '티푸스 퇴치'로 그는 훈장을 받기도 한다. 1981년 서독 검찰이 발부한 구속영장에 의하면 "1943년 5월 25일 507명의 집시와 528명의 여자 집시를 개스실로 보냈다"고 되어 있다. 막상 그 자신이 집시계 외모와 혈통을 지녔으면서도 그토록 집시를 증오하고 학살한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더구나 뮌헨대학에서 칸트철학을 공부하고 프랑크푸르트대학에서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한 뒤 의사자격을 취득한 그가 가장 비인도적인 범죄자로 돌변하였다는 것은 큰 아이러니였다. 연합군의 진주와 함께 그는 미군의 포로가 되었으나 신원을 속여 혼란의 와중에 있던 상태에서 무사히 석방된다. 고향인 군츠베르크(Gunzberg)에 돌아온 그는 아무도 그의 전력을 모르는 상태에서 평온한 5년을 보냈다. 그러나 그의 아우슈비츠에서의 생체실험은 뉴른베르크 재판에서도 증언되었다. 아우슈비츠의 책임자였던 회스(Hoess)는 뉘른베르크재판의 피고인 칼텐브루너(Kaltenbrunner)의 변호인 심문에서 "멩겔레에 의해 쌍둥이에 관한 생체실험이 진행되었다"고 증언하였던 것이다. 1946년 12월 미국이 23명의 SS 소속의사를 전쟁범죄, 비인도적범죄등의 혐의로 재판에 회부하는 것을 보면서 멩겔레는 위협을 느끼고, 1949년 피난민을 가장하여 아르헨티나로 도주하였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그는 본명으로 산부인과 의사로 일하였다. 그에게 서독정부가 영장을 발부한 것은 1959년 7월이었다. 영장이 발부되자 아르헨티나에서 파라과이로, 다시 브라질로 도피행각을 계속하였다. 이러한 상태에서 예루살렘에서는 그에 대한 모의재판이 열려 전세계의 텔레비젼이 보도하기도 하였다. 이스라엘은 교황 바오르 2세에게 모든 카톨릭 신도들이 멩겔레의 행방을 찾는데 협조해 달라고 청원서를 보내기도 하였다. 이에 자극받은 각국 정부는 멩겔레의 체포를 위해 다각도로 협의하였다. 1985년 프랑크푸르트에서는 독일, 미국, 이스라엘 세 정부 고위 당국자들이 만나 이 문제에 관해 논의했다. 그러나 바로 그 3주후 독일의 디 벨트(Die Welt)지는 멩겔레의 시체가 브라질에서 발견되었다고 보도하였다. 논란이 일자 사웅파울루 경찰은 멩겔레의 시신이라고 여겨지는 것을 묘지에서 파내 법의학자들에 의해 검증되었다. 공식적으로 그의 주검임을 확인하였으나 일부에서는 여전히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2. 마르틴 보르만(Martin Bormann) 1946년 나치독일의 유명한 지도자들이 두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두 뉘른베르크에서 처형되었다. 그 예외는 감옥에서 자살로 처형을 피한 괴링과 제3제국의 붕괴와 더불어 사라져버린 보르만 두사람이었다. 괴링은 뉘른베르크 재판의 과정에서 "총통에게 가장 영향력이 큰 사람은, 특히 헤스가 없어진 이후인 1942년부터는 보르만이었다. 그것은 파멸적으로 강대한 영향력이었다"고 증언하였다. 히틀러의 비서였던 그는 전쟁의 말기에는 거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아 제2인자로 군림하고 있었다. 그런 보르만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자 전후 영국과 미국, 그리고 소련의 정보기관들은 조사를 진행하였다. 그러나 보르만의 소재나 심지어 죽은 흔적조차 찾지 못하였다.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에서 그는 궐석으로 사형을 선고받은 상태였다. 그를 찾으려는 노력은 계속되어 1964년 11월 서독정부는 그를 체포하는데 정보를 주는 사람에 대해 10만마르크의 현상금을 걸었다. 그 이전인 1961년 서독의 헤세주 검찰총장인 프리츠 바우어는 보르만이 살아 있다고 확신하면서 그에 대한 조사를 재개한다고 선언하였다. 1965년에는 하이파에 있는 나치전범문서보관소 소장 프리드만은 보르만이 아르헨티나에 살고 있다고 발표하였다. 이듬해 아이히만의 아들이 보르만에게 "당신의 자리에 대신 서 있는 아버지를 위해 남미의 은신처에서 나와 줄 것"을 요구하는 공개서한을 신문에 실어 관심을 끌었다. 1967년 독일 법무성은 브라질 대법원에 구금영장 및 추방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보르만이 생존하고 있다는 증거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1973년 4월 프랑크푸르트 주검찰청은 보르만의 행방에 대한 최종 보고서를 내면서 일단 보르만이 1945년 사망한 것으로 결론 짓고 공식적인 추적을 중단한다고 발표하였다. 그러나 보르만의 행방불명사실은 여전히 의문에 쌓인 채로 남아 있다. 3. 하인리히 뮐러(Heinrich Muller) 뮐러는 독일 게쉬타포의 전 책임자였는데 나치헌터들은 그의 생존을 믿고 있었다. 그는 알바니아로 도주하여 동구에서 은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그의 존재와 거주지는 결코 밝혀지지 않았다. 1964년 서독 관리들이 그라고 추정되는 사체를 검시하였으나 뮐러라고 단정할 근거는 발견되지 않았다. 4. 안톤 파벨리치와 딘코 사키치 독일 점령 당시 크로아티아에서 우스타샤 정권의 수반으로써 유대인, 집시, 세르비아정교도등에 대한 학살을 승인한 인물인 안톤 파벨리치는 전후 유고슬라비아정부의 갖은 체포노력에도 불구하고  암살을 피해가면서 1959년 사망할 때까지 아르헨티나에서 여생을 보냈다. 야만적인 강제노역과 대량처형으로 유명했던 야세노바츠수용소의 소장을 지냈던 딘코 사키치 역시 남아메리카로 피신했다가 1991년 오스트리아로 돌아와 우스타샤와 나치 친위대 대원생존자 모임에 참가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수많은 우스타샤 대원들이 크로아티아카톨릭교회의 비호 아래 수용소를 탈출하여 스페인으로 망명하거나 남아메리카로 피신했다. 5. 범죄자를 보호하는 범죄자 한편 그 신원과 존재가 밝혀졌음에도 처단에 실패한 사례들도 있다. 남미를 비롯한 독재국가로 피신한 나치범죄자들은 '안전한 피신처'(safe heaven)를 구할 수 있었다. 나치범죄자는 체제 유지의 전문가들로서 제3세계의 독재자들에게 유용할 수 밖에 없었다. 스스로 권력자에게 유용하도록 적응하는 것이야말로 자신의 생존을 보장한다는 점을 이들은 잘 알고 있었다. 전쟁이 끝나고 '제3제국'은 종말을 고했지만 일부 나치 범죄자들은 그러지 않았다. 이들 독재자들은 그들의 빈객(賓客)인 나치범죄자들을 함부로 내 주려하지 않았고 이들의 손 안에서 나치범죄자들은 안식처를 구할 수 있었던 것이다. 특히 남미는 이러한 나치범죄자들의 온상이었다. 전통적으로 남미는 정치적 피난처의 강한 관념을 지니고 있었다. 정치적 범죄를 저지른 자들을 추방하지 않는 것이었다. 한 나라의 지도자가 갑자기 다른 남미 국가의 대사관에 피신함으로써 피난처를 구하곤 하였던 것인데 나치범죄자들의 추방에 응하였다가 위험한 선례를 남길 것을 두려워하였다. 남미의 국가들은 살인자까지 거의 추방하지 않았으며 '손님'은 언제나 보호되었다. 남미는 나치 이전의 독일과도 특별한 관계가 있었다. 1차세계대전 이후 다수의 독일인이 남미로 이주하였고 이들은 각곳에 정착하여 공동체를 형성하고 그곳 정부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파라구아이의 경우 대통령이 되었던 스트뢰스너는 독일계였다. 이러한 이유로 나치즘과 인종차별주의는 이 사회에도 큰 영향력을 그대로 지니고 있었고 나치전범들이 쉽고 자유롭게 안식처를 구했던 것이다. 그 가운데 시리아에서 유태인문제에 대한 고문으로 일해 왔던 브루너(Brunner)가 그 대표적인 케이스이다. 아이히만의 오른팔이었던 브루너는 10만명의 유태인 학살에 책임이 있는 자였다. 그는 시리아 정부의 고문 역할을 하면서 그 신원이 드러났음에도 송환을 거부한 시리아 정부의 보호를 받으면서 기소를 면하였다. 우편물에 포장되어 있던 폭탄으로 실명하는 등 끝없는 위험 속에서도 그는 끝내 시리아 다마스커스에서 일생을 보낼 수 있었다.   결론 P.S길다가 읽지 않는놈들은 2차세계대전겔에 없을꺼야 그렇지? P.S2 멩겔은 진짜 나쁜놈일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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