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이 강가에 개를 끌고 갔었소. 나는 어렸고, 사람들이 뭘하는지 잘 몰랐지. 그냥 다들 웃고 떠들기에 좋은 일이 일어난 줄 알고 어른들을 따라갔소. 어른 하나가 몽둥이를 꺼내서 개의 골통을 내려쳤소. 개는 부르르 떨더니 네 다리를 쭉 뻗고 쓰러지더군. 그때까지도 나는 무슨일이 일어난 것인지 영문을 몰랐었소. 웃고 떠들던 사람들이 갑자기 개에게 몽둥이를 휘두른다니 그런걸 예상이나 했겠소? 그냥 떨고만 있었지."

"어린 아이에겐 충격이 컸겠구려."

"그렇소. 나는 놀라서 한마디도 하지 못했지. 그냥 개가 죽은 줄 알았지 뭐요. 골통이 반쯤 바스라졌으니깐 다른 수가 있겠소? 어른들 몇이 털을 뽑고 개를 뜨거운 물 속에 집어넣을 때 까지 나는 그 개가 살아있을거라는 생각같은건 조금도 하지 못했었소."

"나라도 같았을거요. 달리 생각할 구석은 없어 보이는군."

"그런데 말이야. 그 죽은 줄 알았던 개가, 뜨거운 물에 집어넣자 마자 축 늘어져 있던 몸을 바르르 떨더니 솥 밖으로 뛰쳐 나오지 않겠소? 그러더니 개 주인에게 달려가서 꼬리를 흔들더란 말이지. 마치 애교를 떠는 것 처럼... 낑낑 거리며 꼬리를 흔들더란 말이요. 자기 머리를 몽둥이로 치고, 털을 뽑으려고 끓는 물에 넣으라고 한게 주인인데 그 주인에게 달려가지 뭐요."

"개란 존재는 그렇지. 맹목적인 사랑을 한다고 해야하나. 어쩌면 자신을 살려줄 수 있는 존재가 주인 뿐이라는걸 알았을지도 모르겠구료."

"어느 쪽이건 상관없었소. 나는 그날 생각했소. '개라는 것은 먹는게 아니로구나.' 그날 이후로 나는 평생동안 개를 괴롭힌 적이 없소. 개에게는 도저히 손이 나가질 않더군."


말을 마친 여동빈은 씁쓸한 얼굴이 되어있었다. 나는 화톳불에 삭정이 몇개를 집어넣었다. 사그라들던 불빛이 다시 일렁이며 일어난다.
어두운 밤. 피부로 와닿는 공기가 선득하지만 나에게도 여동빈에게도 온도를 올려줄 화톳불 같은것은 필요치 않다. 그래도 우리는 불을 피웠다. 인간에게는 이런 감성적인 부분도 어쩐지 필요한 것이다.

"그러니까 여동빈. 내가 이해를 한게 맞다면..."

나는 신중히 말을 골랐다.

"그래서 반고랑도 무공으론 비빌만하고, 멸망까지 애저녁에 막아낸 여동빈 자네가, 고작 달기에겐 손을 써보지 못하고 졌다는 것이겠지? 여우는 개과 동물이니까 때리지 못하겠더라? 그래서 달기한테 좆발린거다?"
"그 말대로요. 차마 때릴 수가 있었어야지. 달기 개년이 꼬리를 아홉개나 흔들며 얼마나 구슬프게 짖던지..."

여동빈은 침중히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