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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버랜드는 존재하지 않는다 (1)

유희자(180.229) 2015.08.04 14:44:14
조회 2127 추천 42 댓글 6

 

 

 

 


밤 열두 시를 훌쩍 넘긴 시간. 바다도 잠이 든 고요를 깨는 건, 네버랜드 해(海)에 은밀히 숨어있는 해적 섬이다. 그 해적 섬의 주요 고객들은 두말 할 것 없이 해적이다. 해저화산이 폭발하면서 만들어진 이 화산섬은 생각보다 규모가 커서 배를 정박시키기에도 좋았다.

쉽게 말하면 해적 섬은 해적들의 쉼터이자 중요한 거래소라고도 할 수 있었다. 그런 해적 섬에 몇 남지 않은 술집, ‘바다 해적’은 해적 섬에서 가장 크고 가장 큰 소란을 일으키는 곳이었다.

 

 

이름 : 엘사 J. 후크 (Elsa J. Hook)

직업 : 네버랜드 해의 지배자, 졸리 로저 호 선장

현상금 : ....

  

 

이름 : 안나 P. (Anna P. Pan)

직업 : 납치범, 네버랜드 대표 네버랜드 마스코트

현상금 : ....

 

   

벽에 붙은 지명 수배지를 보고 얼굴에 흉터가 가득한 남자가 휘파람을 분다. 현상금이 다른 지명 수배자들보다 월등히 높았기 때문이었다. 안나 P. 팬의 지명 수배지에는 누군가가 장난스럽게 펜으로 직업란에 두 줄을 그어 지워버리고는, 익살스러운 단어를 남긴 흔적이 영력했다.

 

 

“와우, 또 현상금 올랐어. 저 둘 중에 하나라도 잡으면 인생 피는 건데!”

“아서라 인마. 어떻게 저 둘을 잡을 수 있다는 거냐?”

“맞아. 그러다 목이 달아나버린다고? 아무리 어린애라지만 피터 팬은 살인자이자 납치범 아니야?”

“게다가 후크 선장은 한술 더 뜨지.”

 

 

후크 선장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해적들은 낄낄 웃었다. 이번 대(代)의 후크 선장은 여자인데도 수없이 많은 적들을 죽이고, 당당히 ‘후크’라는 자리를 차지한 해적이었다.

네버랜드 해의 지배자. 악명 높은 졸리 로저 호의 선장. 쇠갈고리 손을 가진 해적.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 여 선장.

 

 

“평소에는 냉철한 주제에 네버랜드 일만 되면 180도 돌변해서 미친개처럼 날뛰니까.”

“맞아. 지난번 피터 팬 일당들이랑 싸우는 걸 봤는데... 나도 오금이 저릴 정도더군. 꼭 부모 원수 대하듯 피터 팬을 죽이려고 기를 쓰더라고!”

“크크큭. 근데 부모가 뭐지? 술 이름인가?”

 

 

한 해적의 농담에 테이블은 더 시끄러워진다. 그런데 취기 탓인지, 옆 테이블의 해적은 겨우 여자한테 쫀거냐고 시비를 걸어댄다. 취기에 흠뻑 젖어있던 그들은 작은 발화점 하나에 싸움이라는 화재를 일으켰다. 거친 욕설들과 함께 그들이 무기를 집어 들었다. 너무도 익숙한 풍경에 술집 마스터는 이맛살을 찌푸리며 닥치라고 소리를 질렀지만, 기어코 피를 보고야 말았다.

 

 

“감히 씨 쿡크를 건드렸겠다!”

“씨 쿡크? 아~ 위대하신 네버랜드의 지배자 후크 선장에게 제일 먼저 무릎 꿇은 병신 집단들 아니신가. 이거 몰라 뵈어 죄송하게 됐수다.”

“감히! 죽여 버리겠다!”

“해볼 테면 해 보시던가? 겁쟁아!”

“오늘 네놈을 죽여 버리고 망할 후크 선장의 목까지 따서 씨 쿡크의 깃발만 봐도 오줌을 지리게 해주겠어!”

 

 

이 지저분한 싸움을 느긋하게 바라보고 있던 2층 난간의 붉은 선장 옷을 입은 여 해적의 얼굴에 한줄기 미소가 그려졌다. 잃어버린 오른 손을 대신하고 있는 차가운 쇠갈고리는 즐겁다는 듯 테이블을 긁었다. 순식간에 홈이 파인다.

 

 

“-라는데, 후크 선장님?”

 

 

낮게 깔린 코웃음 소리가 여자의 말에 응답을 해준다.

 

 

“흐응.”

 

 

엘사 J. 후크.

엘사는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이 럼주를 들이켰다. 거만하게 테이블 위에 다리를 올려놓은 채, 한 손으로는 비어버린 럼주 병을 테이블 아래에 내려놓는다.

 

 

“어머, 당신은 화도 안 나?”

“그다지.”

 

 

그들의 말이 허풍이든 진심이든 간에, 자신에게 직접적으로 이빨을 드러낸 것이 아니라면 쉽게 넘어가줄 수 있는 술꾼의 헛소리다. 만일 엘사의 성질이 조금 더 고약했다면 네버랜드 내의 해적단의 수는 반절 이하로 줄어버렸을 것이다.

 

 

“내가 해적 한 두 번 보는 건 아니지만, 역시 달라. 그냥 널리고 널린 해적들이랑은.”

“해적은 해적일 뿐이지.”

 

 

엘사를 상대하던 여자는 피식 웃으며 빈 술잔에 술을 부었다. 그 사이, 우당탕탕-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결국 1층에 앉아있던 해적들 대부분이 싸움에 가담해버렸다.

 

 

“아유, 수리비 또 깨지겠네. 정말! 여기 술집마저 없어지면 술 마실 곳도 없는 주제에 허구한 날 쌈박질이라니깐?”

 

 

여자는 짜증을 내며 슬쩍 엘사를 쳐다보았다. 엘사는 여전히 미동도 하지 않고 술을 마실 뿐이다. 이 소란스러움도 눈앞의 섹시한 여자도 안중에 없다는 듯이. 그 태도는 오히려 초연해보여서 차마 건드리면 안 된다는 생각까지 들게 만들 정도였다.

그러나 술집이 없어진다면 자신은 일할 곳을 잃는다. 여자는 애교스럽게 엘사에게 매달려 교태를 부린다.

 

 

“저어기, 멋진 선장님? 당신이 말려주면 안 돼?”

“....”

 

 

엘사는 다시금 코웃음을 쳤다. 매달리는 여자를 떼어내지도 않는다. 손만이 바삐 술잔을 입으로 옮긴다.

 

 

“부탁이야아~ 씨 쿡크야 그렇다 쳐도 최근에 모습을 드러낸 루헤임 해적단은...”

“루헤임 해적단?”

“몰라? 하는 행동이 하나같이 수상쩍어서 해적들 사이에서도 등한시되고 있고. 특히 네버랜드랑 접촉을 하려고 한다는데...”

 

 

네버랜드 이야기가 나오자 엘사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버린다. 여자가 가리킨 손가락 아래로, 루헤임 해적단으로 추정되는 남자 몇 명이 주먹을 휘두르고 있었다.

 

 

“과연.”

 

 

엘사는 여자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허리에 찬 피스톨을 끄집어내어 장난치듯 1층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크악-!”

“맙소사, 로이!”

 

 

제대로 본 것 같지도 않은데, 그 총알은 정확히 명중해 운 나쁜 해적 하나가 순식간에 목숨을 잃어버렸다. 순간 해적들은 싸움을 멈추고 총소리가 들려온 2층 난간을 쳐다보았다. 거만하게 난간에 기대어 총구를 이곳으로 향하는 붉은 옷의 해적. 해적이라고 하기엔 굉장히 아름다운 미모를 가진 여자.

 

 

“캐, 캡틴 훅?”

 

 

오른손 대신 달고 있는 쇠갈고리로 적의 피를 취한다는 악명 높은 해적이 자신들을 보고 비릿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씨 쿡크. 나와 결투를 하고 싶다면 굳이 이곳에서 힘을 빼지 않아도 될 텐데?”

 

 

호명된 씨 쿡크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뒷걸음질 치다가, 털썩 주저앉고 만다. 잠잠히 수면 아래에 감돌고 있는 광기의 냄새가 바닷물처럼 비릿하게 코를 자극했다. 이 냄새가 진짜 피비릿내로 바뀌어 진동하기까지는 분명 얼마 걸리지도 않으리라. 엘사 J 후크 선장은 그러고도 남을 인물이었다. 섬뜩한 침묵이 감돌았다.

순간, 흥미가 깨졌다는 듯, 엘사의 미간에 주름이 지어진다.

 

 

“저 놈 말고 내 ‘오른손’이랑 악수라도 하고 싶은 자는 없나?”

 

 

엘사가 자신의 오른손을 흔들어 보인다. 날카로운 쇠갈고리는 시퍼런 빛을 뿜어냈다.

 

 

“아니면 루헤임 해적단, 그대들은?”

“.....”

 

 

오늘만큼 조용했으면 제법 장사할 맛도 나겠군. 술집 마스터는 설레설레 고개를 저으며 잔을 닦았다. 뽀득뽀득-헝겊이 잔을 닦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리는 가운데, 죽은 동료의 시체를 바닥에 내려놓은 루헤임 해적단 소속의 남자가 총을 뽑아 엘사를 향해 외쳤다.

 

 

“엘사 J. 후크!”

 

 

타앙!

부들부들 떨리는 총구가 제대로 명중될 리가 없었지만, 그는 울분을 터트리며 연달아 총을 발사했다. 총알이 다 된 피스톨은 쩔꺽쩔꺽하고 텅 빈 쇳소리만 낼 뿐이었다. 엘사가 2층 난간에서 사뿐히 뛰어내려, 1층에 착지하자 해적들은 움찔하고 뒤로 물러섰다. 엘사는 어느새 허리춤에 차고 있던 레이피어(rapier)를 뽑아들고 있었다.

 

 

“눈물 나는 동료애로군.”

“제기라알-!!!!”

 

 

질 수 없다는 듯, 엘사의 레이피어에 대항해 자신의 커틀러스(Cutlass)를 뽑아들었지만, 이내 그는 다량의 출혈과 함께 바닥에 쓰러졌다. 번개처럼 재빠른 찌르기는 그 해적의 목 줄기를 꿰뚫었고, 슬프게도 그 해적은 죽은 동료와 함께 나란히 세상을 떴다. 단 한 번의 칼부림도 없이 허무하게 죽어버린 것이다.

 

 

“그대에게 경의를.”

 

 

장난스럽게 쇠갈고리를 가슴에 댄 채, 허리를 숙인 엘사를 보고 소란을 일으킨 해적들은 재빨리 밖으로 달아났다.

흐음. 엘사는 난장판이 되어버린 술집을 스윽 둘러보았다. 남아있는 해적들은 저도 모르게 몸을 수그렸다. 다음 먹잇감을 노리는 형형한 눈빛은 이내 사그라지고, 평소와 같은 권태로운 해적 선장으로 돌아와 있었다. 피 묻은 레이피어를 회수한 다음 태연히 마스터에게 술값을 지불한 엘사가 유유히 술집을 나갔다.

 

 

정적에 휩싸여있던 술집은 그대로 고요를 유지했다. 바닥을 장식하고 있던 시체 두 구와 부서진 테이블, 의자 등은 종업원들이 깨끗이 치웠다. 그날, 술집 ‘바다 해적’은 일찍 문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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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오늘 올린거 연재 내내 후회할지도 모르지만; 플롯 짜지도 않았지만 걍 올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psps. 피터팬 애니로 본 적 없어서 집에 사촌혈육이 두고간 200페이지 조금 넘는 어린이용 피터팬을 참고로 한다. 디즈니꺼는 왼손이 없던데 책에는 오른 손이 없어서 책 따라 쓴다. 두고간 책있길래 일부러 전화까지 해줬더니 지는 이제 어린애가 아니니 나 주겠다고 쿨하게 전화 끊은 사촌혈육새끼에게. 고맙다. 난 연재들어간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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