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작 - 네버랜드는 존재하지 않는다 (32)
“안녕히 주무셨어요?”
안나는 예의바르게 인사를 건넸다가, 이내 까르르 웃었다. 아 어색해! 하고 아침부터 큰 소리를 냈다. 엘사가 주의를 주려다가 그만 두었다. 아직은 아이니까. 안나의 입가에 피어나는 미소는 꼭 해바라기처럼 예뻤다.
엘사는 안나의 이마에 키스를 해주었다. 안나는 베시시 웃으며 키스의 답례로 엘사의 볼에 입을 맞추었다. 언제나 하는 일이건만 엘사는 그때마다 조금 수줍어했다. 그 수줍음을 감추기 위해서인지 엘사는 고개를 숙인 채 안나의 리본을 손수 매주었다. 장갑을 낀 오른손이 옷깃을 매만지고, 아무것도 끼지 않은 왼손이 옷 위를 스쳐 지나간다. 엘사의 숨결이 가까이에서 느껴졌다. 안나는 야릇한 기분이 들어 살짝 떨었다.
“춥니?”
“그냥.”
안나는 대충 얼버무렸다. 얼굴이 달아오르고 부끄러웠다.
식탁에는 갓 구운 빵과 쇠고기 스튜, 삶은 콩, 삶은 계란, 라즈베리 잼, 그리고 뜨거운 홍차가 있었다. 안나는 반색을 하며 엘사의 맞은편에 앉는다.
“어디 아픈 곳은 있니?”
“없어요.”
올해 들어서 안나는 본격적인 성장통을 겪고 있었다. 우후죽순인 양 쑥쑥 자라나는 속도가 놀라울 정도다. 하지만 안나의 몸은 그만큼 삐걱거리고 있었다. 뼈가 자라는 속도를 근육과 힘줄이 그 속도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드물긴 하지만 몸에 열까지 나서 하루종이 침대에 누워있기도 하다. 이른바 때늦은 성장열인 것이다. 그럴 때마다 엘사는 고운 미간을 찌푸리면서 안나를 간호한다. 안나가 뼈마디를 주무르며 통증을 호소하면 엘사는 가볍게 마사지 해주고 벌꿀차를 타준다. 그밖에도 몸에 좋은 음식들이며 안나가 좋아하는 간식까지 살뜰히 갖다 바친다. 그럼에도 엘사는 부족함을 느꼈다. 안나가 엄청나게 먹어댔기 때문이었다.
이러다 안나가 정말 2m까지 클지도 몰라. 그래도 안나가 괜찮으면 다 괜찮은 거야. 엘사는 흐뭇하게 웃었다.
“오늘 시험은 잘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엘사가 밤늦게까지 철자 공부를 봐줬잖아요.”
아침만 되면 배가 고파서 견딜 수가 없다. 이상할 정도로 허기가 졌다. 엘사는 안나의 이야기를 경청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안나는 재잘거리면서 아침식사를 끝마쳤다.
“엘사는 안 먹어요?”
“오늘은 배가 안 고파서.”
엘사는 찻잔을 들으려 했다가 손을 물렸다. 사실 안나만 없었으면 혀를 끌끌 찼을 정도로 오늘 몸 상태가 좋지 못했다. 아침이 되자마자 거울로 안색을 살폈을 정도였다. 다행히 어디도 까만 부분은 없었다.
안나는 차도 안 마시는 엘사를 보고 눈을 둥그렇게 떴다.
“차도 안 마셔요?”
“응. 안나가 내 몫까지 먹어준다면 고맙겠는걸.”
“엘사도 먹으면 안 돼요?”
엘사는 그럴듯한 변명을 찾으려는 듯 시선을 돌렸다가 포기해버리곤 조심스럽게 포크를 집어 들었다. 어떻게 먹어야하나 망설이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다가 삶은 콩 한쪽을 찍어 입으로 가져갔다. 씹지도 않고 삼켰다.
“맛있네.”
엘사는 콩을 다 먹고-나머지는 안나에게 줬다. 안나는 엘사 몫의 식사를 남기지 않고 먹어치웠다-홍차를 조금 홀짝이더니 식사를 마쳤다. 안나가 서둘러 먹으려 하자 엘사는 안나를 말렸다.
“괜찮아. 천천히 먹도록 해.”
출근은요? 하고 안나가 눈빛으로 물었다. 입 안에는 푸딩이 가득 들어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뜻을 용케 파악한 엘사는 씨익 웃었다.
“아직 시간이 있어.”
“음.”
“목 막히겠다.”
괜찮아요. 안나는 엘사의 말대로 푸딩을 천천히 씹어 삼켰다. 그런 안나의 머리를 쓰다듬다가, 엘사가 탄성을 질렀다.
“아, 확실히 키가 큰 것 같구나.”
“정말요?”
“정말. 점점 커가네.”
“엘사처럼 쑥쑥 크고 싶어요.”
“안나라면 나보다 더 클 수 있을 거야.”
엘사는 그윽한 눈으로 안나를 쳐다보았다. 안나는 눈을 마주하다 먼저 시선을 아래로 두었다. 엘사와 오래 눈을 마주하기 힘들었다. 부끄러웠다. 동시에 어색한 침묵이 찾아왔다. 엘사는 흘긋 시계를 쳐다봤다. 출근 시간이었다.
“다녀올게.”
“안녕히 다녀오세요.”
“곧 생일이시네요. 16살이 되시는 거예요, 아가씨.”
“그래봐야 반년이나 남았는걸.”
“반년 정도는 금방간다구요?”
“음...”
하녀가 기쁘게 말했지만, 안나는 어딘가 불만이 있어보였다. 16살. 사실 나이는 물론이거니와 생일도 중요한 게 아니다. 서던의 국민으로 등록하기 위해 임의로 정한 숫자에 불과하다. 안나의 성장은 또래에 비해 늦은 편이다. 작년까지만 해도 안나는 제 나이에 비해 어린 아이로 보였다. 올해 들어서야 못다 한 성장을 이루려고 하는지 온몸이 힘을 내는 중이다.
“어른이 되려면 그래도 먼 거지?”
“물론 나이가 찼다고 모든 사람이 어른이 되는 건 아니니까요. 특히 아가씨는 성장이 좀 늦은 편이니... 참. 아가씨는 어떤 어른이 되고 싶으세요?”
“엘사를 행복하게 만드는 어른이 되고 싶어.”
“훌륭한 꿈인걸요, 아가씨. 그러기 위해선 뭘 해야 하는지, 총명한 아가씨라면 알고 계시죠?”
“...공부 말이지?”
평소라면 “그래도 숙제는 싫어”라고 싫은 내색을 보여야 할 안나다. 그런데 오늘은 확연히 다른 태도를 보여 하녀를 놀라게 했다.
“다 해놓을 거야. 선생님이 오시기 전까지 예습도 할 거고. 밥도 많이 먹고... 그러면 빨리 어른이 될 수 있잖아. 맞지?”
“물론이죠.”
생쌀 재촉한다고 밥이 되는 게 아니듯 아이의 귓전에 ‘어른 되라 어른 되라’ 속삭여도 아이가 갑자기 어른이 되는 게 아니다. 어른이 되라고 압박을 줘봤자 힘든 건 당사자인 안나다. 그걸 아는 엘사는 “빨리 어른이 되지 않아도 돼.”라고 말해서 안나의 노파심을 없애려는 심산일테지만, 안나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되어야 한다. 예전에는 자신의 늦은 성장 속도가 좋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이유는 엘사 때문이다.
엘사가 힘들어 하는 게 눈에 보였다. 언제부터 힘들었을까, 보다 왜 이제야 그걸 발견하게 된 걸까, 같은 자책이 먼저 들었다. 안나가 생각하는 엘사는 언제나 완벽하고 멋진 어른이어서, 그의 사랑과 보살핌을 받으며 자라는 게 매우 행복했다. 작년까지만 해도 이 생활에 불만 따위는 없었다. 그러다가 올해 들어서 생각이 차차 바뀌게 되었다. 엘사 말대로 조금은 자란 모양이었다.
‘받는 것도 좋지만 나도 주고 싶어져’
사랑을 받은 만큼 사랑해주고 싶다. 안나는 고동치는 심장소리를 천천히 곱씹었다. 엘사를 사랑하고 있다. 세상에서 제일 좋다. 엘사를 처음 본 그날, 첫눈에 반했다는 걸 지금 깨달았다.
“어른이 되면”
안나는 거울을 쳐다보았다. 하녀의 도움을 받으면서 화장을 하고 있는 자기 자신이 보였다. 미소도 우아하게 지을 수 있다.
“엘사를”
엘사를. 상상만으로도 심장이 세차게 뛰었다. 하녀는 부끄러움에 몸이 배배 꼬이는 안나에게 “가만히 있으세요!”라고 말했다. 좋은 걸 어떡한단 말인가. 엘사가 이렇게나 좋은데 어쩌란 말이야. 고양감이 잔소리 하나로 확 줄어들어 기분은 마이너스로 가라앉았다. 안나는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갑자기 안나가 토라지자 하녀는 한숨을 쉬었다.
“어른이 되려면 아직 머셨네요.”
안나는 아무런 변명도 못하고 이맛살만 구겼다.
라스무센 저택 근처에는 공립학교가 있다. 원래 그곳에 다니기로 했는데 몸 상태 때문에 부득이하게 가정학습과 병행해 다니게 되었다. 띄엄띄엄 다니는 학생인 안나지만 그의 뛰어난 사교성 덕분에 친구는 많은 편이다. 여느 평범한 아가씨와 다를 바 없이 친구들과 함께 차를 마시거나 쇼핑을 하거나 파자마 파티를 즐긴다.
안나는 표면상 엘사 라스무센의 후견을 받고 있는 입장이라 여러 말이 오가는 게 뻔했기 때문에 귀족사립학교에 입학하지 않고, 귀족 주최 무도회도 되도록 피해야 했다. 그 노력 덕분인지 안나에게 직접적인 영향이 가진 않았다. 하지만 공립학교에는-일반인들도 있긴 하지만-특히 상인의 자제들이 많이 다녔고, 그들의 입은 제 부모보다 가벼웠다. 엘사 라스무센의 스캔들은 의외로 귀족들에게 한정된 것이라서 노골적인 소문보다 두어 번 걸러져서 나온 소문들이 안나의 귀에 들어갔다. 출신 성분이 해적이네, 돈은 많은 모양이네, 모 회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네, 귀족들의 멸시와 관심을 동시에 받고 있네 같은 것들이었다.
그런 소문들을 들을 때마다 안나의 친구들은 안나가 상처받지 않았는지를 걱정했지만, 정작 안나는 “엘사가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는 걸.”라고 일축했다.
그렇게 무사히 한 학기를 마치고, 지금은 짧은 방학기간이다. 하지만 몸 상태가 나빴을 때 밀렸던 공부 진도를 지금 나가야 했다. 친구들은 지금쯤 바캉스를 즐기고 있을 텐데 자신은 그러지 못한다는 점이 서운했다. 최근에 툴툴거리는 것도-엘사 앞에서는 안 그러고 하녀나 가정교사 바네사에게만 그런다-이 때문이다.
“아가씨. 가정교사가 왔습니다. 아가씨?”
하녀가 안나를 불렀다. 대답이 없었다. 하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디 외출하셨나? 하고 방에 들어가려는 걸 바네사가 불러 세웠다.
“내가 갈게요. 일 보러 가도 좋아요.”
“알겠습니다.”
하녀가 부엌으로 간 후에 바네사는 문을 열었다. 문이 열리니 안나는 허둥지둥하며 무언가를 감추었다. 뭐 이상한 거라도 보고 있었나 싶어서 바네사가 “안나 아가씨?”라고 목소리를 냈다.
“바네사 선생님. 아유, 놀래라. 엘사인 줄 알았어요.”
말을 하면서도 안나는 혀를 내밀었다. 출근한 엘사가 지금 제 방에 들어올 리가 없기 때문이다. 너무 정신을 판 모양이었다.
“뭘 보고 계셨던 거예요?”
“엘사한테 비밀로 하면 보여줄게요.”
짜잔! 하고 안나는 제가 감춘 것을 보여주었다. 글라이더가 그려진 책이었다.
“‘비행의 기록 2 - 글라이더 편’? 비행에 대한 책이네요. 비행에 관심 있나 봐요?”
“하늘도 예쁘고, 한 번쯤은 날아보고 싶지 않아요? 새처럼 자유롭게.”
“멋지네요.”
바네사는 순수하게 안나의 생각에 동참했다. 땅위에서 사는 인간이라면 한번쯤은 해보는 생각이다. 저 먼 하늘에 닿고 싶고, 저 먼 하늘을 가지고 싶다는 허황된 생각은 과학기술의 발달 덕분에 점점 현실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얼마 전 모 외국에서 최초의 여성 비행기 조종사가 나와서 그런지 안나는 부쩍 비행에 관한 책들을 가까이 하고 있었다.
“그런데 왜 감추세요?”
즐겁게 비행에 대해 떠들던 안나가 시무룩한 모습을 보였다.
“엘사는 비행을 싫어해요.”
“라스무센 님이 비행을 싫어한다구요?”
“싫어한다기보다는 슬퍼해요. 그래서 엘사가 있으면 비행에 관한 얘기는 아예 안 해요.”
언젠가 비행에 관한 책을 읽던 걸 엘사에게 보인 적이 있었다. 안나의 말이라면 대부분 공감해주고 웃어주던 엘사는 진한 슬픔을 드러내었다.
- 하늘을 나는 게 좋으니, 안나?
비통함에 가까운 말투에 안나는 더럭 겁을 먹었다. 뭐가 그녀를 슬프게 만든 걸까. 물어봐도 절대 대답해주지 않을 걸 알기에 마음이 아팠다. 그냥 엘사 앞에서는 비행에 대한 얘기를 하지 말자고 굳게 다짐하는 수밖에 없었다. 안나는 ‘무력하다’라는 말을 실감하고 말았다.
“그러니까 엘사한테는 비밀로 해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러면 어쩌시려고요? 안나 아가씨 꿈은 비행기 조종사 아닌가요?”
“아니에요. 내 꿈은 엘사랑 오래오래 같이 있는 거예요.”
나는 것보다 엘사가 더 소중해. 안나는 책을 덮었다.
“라스무센 님. 잠시 시간을 주시겠습니까?”
엘사가 저택에 귀가하자마자 바네사는 그를 붙잡았다. 마중을 나온 게 안나가 아니라 가정교사라서 저절로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가 발등에 불이 떨어진 사람처럼 굴었다. 그 기세가 무서워 바네사는 저도 모르게 뒤로 물러섰다.
“아, 안나는요?”
“안나 아가씨라면 무사히 자고 있어요.”
“벌써요? 아직 이른 시간인데!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가요? 안나가 어디 아파요?”
“진정하세요! 그냥 평소보다 약을 일찍 드셨을 뿐이고! 꿈도 안 꾸고 잘 주무실 거예요. 그 전에 잠시 시간 좀-”
“안나 얼굴부터 보고요.”
아 예. 그러세요. 바네사는 아까 엘사가 지었던 떨떠름한 표정을 흉내 냈지만 엘사는 신경 쓰지 않고, 곧장 침실로 향했다. 바네사의 말대로 안나는 침까지 흘리며 숙면 중이었다. 엘사 눈에는 그 모습마저 예뻐 보였는지, 안나의 이마를 쓸어내리며 애정이 담긴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이젠 됐죠? 잠시 시간-”
“쉿. 안나 깨요. 응접실에서 얘기합시다.”
아 예. 그럽시다. 바네사는 다시금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이번엔 흉내가 아니라 진짜였다.
“그래서 하실 말씀은 뭔가요?”
“당연히 안나 아가씨에 관한 건데요.”
가정교사가 후견인에게 제 담당 학생의 이야기를 하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학생의 비밀을 지켜주는 것은 중요한 일이긴 하다. 그렇기에 바네사는 안나에게 속으로 사과하고는 엘사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말해주었다.
“...그랬나요.”
엘사가 침울해하자, 바네사는 제 추측이 맞았다는 걸 깨달았다.
“안나 아가씨가 떨어져서 크게 다친 적이 있었나요?”
“아주 옛날에요. 너무너무 옛날이라 안나는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엘사는 습관적으로 자신의 오른팔을 매만졌다. 어떻게든 덤덤해지려고 했으나 눈만 감으면 네버랜드가 보였다. 엘사에게 있어서 네버랜드는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였다. 몸에서 검은 물이 사라지지 않는 이상, 이 몸이 끝나지 않는 이상, 어쩌면 영원히 이어질 이야기가 가득 채워져 있다.
“떨어지려는 안나를 아래에서 받아냈는데, 잘 받아내지 못했어요. 안나가 너무 크게 다쳤어요. 제가 좀 더,”
칠칠치 못하게 손이 떨리고 있었다. 불안한 모습을 보이면 안 되는데 아직도 이 모양 이 꼴이라니 한심하기 그지없다.
“그랬군요. 이상한 걸 물어봐서 죄송합니다.”
“괜찮아요. 언제나 저흴 도와주셔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엘사가 적당히 대화를 끊으려고 했다. 그러자 바네사는 눈을 날카롭게 치켜떴다.
“안나 아가씨가 많이 다쳤었군요. 그럼 라스무센님은 얼마나 더 많이 다치신 거죠?”
“...”
“아무리 가벼운 아이라도 아래에서 그걸 받아내면 적잖은 충격이 가해지기 마련이에요. 게다가 안나 아가씨가 다치셨다는 건...”
“조금.”
엘사는 바네사의 말을 잘라냈다. 아직은 불편한 화제다.
“조금 다쳤어요. 지금은, 다 나았고요.”
“정말요?”
“네. 상처 회복력은 아이들이 훨씬 뛰어나지만 상처를 곪지 않게 치유하는 방법을 아는 건 어른들이니까요.”
엘사가 웃었다. 씁쓸함이 묻어나는 미소였다. 예전이라면 괜찮다고, 하나도 다치지 않았다고 극구 부인했을 것이다.
달라졌다. 안나가 커가는 만큼 엘사도 변하고 있었다. 다만 고질적인 부분은 여전한 모양이었다.
“어디 가세요?”
“잠시...”
“오. 라스무센 님. 오자마자 바로 나가시면 ‘잠든’ 안나 아가씨가 실망할 텐데요.”
“금방 올 거예요. 초콜릿 사러 가는 거니까 ‘잠든’ 안나도 용서해 줄 거예요.”
“라스무센 님.”
바네사는 단호하게 그를 불러 세웠다. 엘사는 싫은 얼굴을 하면서도 바네사를 무시하지 못했다.
“다른 사람이라면 안나 아가씨를 가둬놨을 거예요. 손발을 묶어서 다신 못 올라가게 했을 거예요. 아니면 두 번 다시 나무를 쳐다보지도 못하게끔 단단히 혼을 냈겠죠.
그러지 않으셨어요. 다친 걸 안나 아가씨 탓으로 하지 않으셨어요. 항상 자책하시죠. 안나 아가씨를 묶어두지 않으시죠. 언제나 자유로이, 안나 아가씨를 위해서.”
“묶어놓을 자격이 없으니까...”
엘사가 말을 다 잇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그런 건 자격이 필요 없어요. 아시겠어요? 라스무센 님. 더는 혼자 앓지 마세요. 됐어요. 그러면 된 거예요.”
“하지만-”
“설령 또 안나 아가씨가 높은 곳에 올라가서, 떨어지려 해도, 그 밑에서 라스무센 님이 팔을 벌리고 서 있을 거잖아요.”
이렇게나 고지식하고 답답한 기사님이라면 기꺼이 팔을 벌리고 서있을 것이다. 그간의 행동거지를 보면 이건 뭐 후견인? 보호자? 그 수준이 아니라 팔불출 경지에 다다른 것 같다. 그러다 너무 먼 경지에 도달해 버릴 가능성도 농후해 보인다. 하지만 보호자면 보호자다워야 한다. 바네사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리고 안나 아가씨도 말이죠.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린애가 아니에요. 마음 아파하는 라스무센 님을 생각해서 높은 곳에 올라가는 것을 참을 만큼 크셨어요.”
애초에 곧 16살이 될 아가씨를 어린애 돌보듯 어화둥둥 키워놓는 쪽이 문제가 있는 것이다. 아마 엘사만 안나를 아이로 보고 있을 것이다. 그 무겁고 달콤한 애정을 듬뿍 받으면서도 거만하게 크지 않은 안나가 기특할 지경이다. 가정교사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혹시, 싶어 바네사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여태 같이 목욕하는 건 아니죠?”
“작년까지는 그랬는데요. 올해부터 안나가 극구 사양하더라고요.”
“.....”
아 예. 그러셨습니까. 바네사는 세 번째로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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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왜 극구 사양하는지 아직도 이유를 모른다. 뽀뽀는 부끄러워하면서 목욕... 부끄럼 포인트가 요상하게 어긋나는 엘후견인
psps. 제 후견인을 노리고 있는 배은망덕 피후견인 안나 (15쨜). 아이같은 면에 사춘기 소녀같은 면이 섞여서 엘사는 안나를 애취급 하는듯? (근데 얼굴을 왜붉혀)
pspsps. 먄. 한편만이라고 했는데 글에 겁나 커져서 한편 더 쓰고 상하로 나눴어. 잡설 끝. 하편으로 바로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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