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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벙글 고종이 왜 암군인지 당시 일본과 비교해보자
원종식 일본 찬양글 아님. 19세기 중순부터 20세기 말까지 전근대 군주정이였던 조선과 일본이 어떻게 서구화했는지, 당시 군주들의 판단을 보고 단편적으로 비교해보자는게 이 글 취지. 자료 인용보다는 내 기억에 의존해서 쓰는거니 틀린거 같은데? 라는 생각 들면 님말이 맞음. 전문용어도 가능하면 안쓰려하니 설명이 부족한 점도 양해바람. (메이지천황) 일본의 최고 존엄은 천황이다. 이는 고등학교 3년간 애니노래만 들으면서도 가타카나도 다 못외운 원종이들도 알 수 있는 상식이다. 하지만 이는 반은 맞고 반은 다르다고 할 수도 있다. 아주 간단하게 설명하면 고대 일본은 천황과 귀족 중심의 중앙정부가 있었지만 무인 중심 지방 호족들의 세력 다툼에 늘 시달렸고, 13세기 부터는 거의 상징적인 존재가 된다. 삼국지를 읽어본 사람은 동탁조조에게 양구멍 들박당하는 한나라 황제들을 떠올리면 되겠다. 무인 호족들은 천황을 허수아비로 세우고 실질적인 중앙 정부로서 일본을 다스렸는데 이들을 '막부'라고 불렀다. 물론 이들 역시 무력으로 수립된 세력 들이라 다른 무력에 의해서 도전 받기도 하고 정권이 붕괴되었다 재수립되는 등 역사가 반복되어 왔다. 16세기 경에 겨우 일본이 어느정도 통일되며 안정적인 막부가 세워지는데 이것이 우리도 잘 아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에도 막부다. (도쿠가와이에야스) 이 막부의 최고 지배자인 '쇼군'(장군)이 전근대 일본의 군주, 왕이라고 보면 된다. 왕 칭호은 안썼지만(쓰기도함) 실질적으로 왕이 맞고 대내외적으로도 최고 권력자로 인식되었다. 조선통신사도 이 쇼군이 바뀔때 연례행사로 참가했고 천황은 좆도신경안썼다. 교토 방문시 기록도 저기 어드메 궁궐에 천황이 있는데 정무는 안(못)보고 꽃가꾸고 불경읽는게 일이다 라고 써놨다. 여튼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전쟁과 된장만들기에만 능한게 아니라 정치도 잘하고 문화도 잘했다. 아들에 손자에 증손자에 이르어서는 폭동 진압까지 잘하게되어 중앙정부의 '왕권'이 공고화되었다. 몇번의 내부적 위기는 있었지만 이 치세가 19세기까지 약 300년간 이어져왔다. 하지만 결국에는 조선 말과 같은 대내외적 위기가 찾아오게 된다. (흑선) 일본은 네덜란드와 같은 특정 국가를 제외하면 서양 세력과는 기본적으로 단교했는데(기독교 세력의 국가 전복 시도 등이 있어서), 18세기 19세기 들어서는 서양이 동남아를 완전히 갈라먹고 일본 조선까지 넘보게 된다. 보통 나라가 망할때 한 가지 요인만으로 망하는게 아니듯이, 이 시기 일본은 소빙하기로 인한 국고 감소, 지방 세력의 성장과 왕권의 추락, 암군(쇼군)의 연속 집권 등 악재가 쌓이고 쌓였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은 "함선으로 무력시위를 해 강제로 일본을 개항하고 불평등 조약을 맺는다." 불리한 조건의 교역으로 일본의 경제 상황은 씹창이나고 조선 말기와 같은 정치적 혼란기에 빠진다 (미국영국에게 따먹힌 조슈번 해안포대, 현재의 시모노세키) 이에 몇몇 강력했던 지방 세력은 아예 막부를 씹고 자체적으로 정치경제외교를 실시했으며, 심지어는 막부의 개항에 반대하며 자체적으로 미국 영국 등 서방세력과 전쟁을 벌이기도 한다. 조선이 찐빠를 내면 그걸 빌미로 서양이 청에 지랄을 했듯이 서양은 이를 빌미로 막부를 더욱 압박했다. 막부는 지방 세력에 복종을 요구했으나 이들은 거부했다. (천황을 옹립하고 반기를 든 대표적인 지방 세력들) 처음에는 썩어도 중앙정부인 막부가 '반란군'을 몇 번 공격하지만, 나중에는 지방 세력들이 연합군을 결성하여 막부도 정말 나라 망할 각오가 아니면 이길 수 없는 세력으로 성장하게 된다. 이들은 일본의 혼란기에 한입하려는 서양의 지원도 뒤에서 받고 있었으며, 어느 틈엔가 천황의 명분도 얻었다. '반란군'이 '천황군'이 되고, '막부군'이 '반란군'이 된 것이다. 명분도 잃고 군사력도 잃은 채 마지막 쇼군으로 등극한 것이 바로 '도쿠가와 요시노부'이다. 막부가 힘을 잃은건 명확하고, 지금까지의 선례에 따라서 '천황을 명분 삼아 공격' 당하기 일보직전이었다. 하지만 약 서른 살에 쇼군 1년차인 요시노부는 기가막힌 한 수로 '천황군'과의 전쟁을 피하고자 하는데... 그것은 바로 '막부의 모든 권력을 천황에게 상납'하는 것이었다. 사실 요시노부 혼자의 판단만은 아니고 대항 세력의 은근한 압박이 있긴 했지만, 지금 내전하면 서양도 개입해 일본이 후타바공원이 되는건 불보듯 뻔한 일이었고, 쇼군이 천황에 절대복종함으로서 '천황군'이 막부군을 타도할 이유가 사라지게 된다. 이로서 도쿠가와 일가는 군주로서의 권한을 전부 포기하고 천황을 중심으로 새롭게 세워진 신정부에 권력을 이양한다. 전근대적 군주가 스스로 왕가에 종지부를 찍어서 내전을 회피하려 한 것이다. 사실 일련의 과정은 순식간에 평화적으로 이뤄지진 않았다. 도쿠가와 가문도 에도 막부의 '군주'로서 지지세력이 남아있었다. 막부 세력이 남아있으니 당연히 반발이 있었고, '신정부군=천황군'도 남아있는 세력을 빌미로 쿠데타를 일으켜 내전에 돌입한다. 국지적인 전투에서 계속 신정부군이 승리하며, 막부군은 후퇴를 거듭하며 본거지인 에도=도쿄까지 물러나게 된다. 코앞까지 노려진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요시노부는 '항복하기'에 이은 예상치 못한 수를 한번 더 두는데.. 그것은 '진심 항복하기'였다. 요시노부는 신정부군 일부 세력과 '몰래' 협의해 본진인 에도성을 전투없이 내어주고 남은 권력도 이양했다. 이번 항복은 진짜 막부 세력도 예상을 못해 일부 막부 세력들은 순간적인 상황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폭력적으로 변해 신정부군과 막부세력 양쪽에서 버림받은 진짜 반란군이 되어버린다. 그럼에도 요시노부는 쇼군이었던 위치를 이용해 여러 옛 막부 세력들을 설득, 규합하였으며 내전의 확대 억제하였다는 점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어보인다. 이상을 읽고나서 '아니 그냥 나라 망할거같으니까 통수치고 항복한거 아님?'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사실 맞긴 함. 실제로 요시노부에 대한 부정적 평가도 많음. 특히 전선에 아직 아군이 싸우고 있는데 항복했다는 점에서 욕을 엄청먹기도 함. 하지만 내가 처음에 글 쓴 취지와 같이 고종과 비교해보면 개인적으로 이 사람을 욕하고만 싶진 않다. 위에서 적어온 내용을 읽다보면, 막부와 도쿠가와 세력이 끝물이었다고 몇번이고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정부군에 맞서 일본이 반반으로 나뉘어져 전쟁을 했다는건, 단순한 막부와 반란군의 전쟁이 아닌 신체제와 구체제의 전쟁이라는걸 알 수 있음. 딱히 막부편이 아니더라도 구체제파의 일부로서 막부진영에서 전쟁한 세력들이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구체제의 대표가 전근대적 군주제의 종말을 인정하고 새 시대에 순응하도록 설득한건 결과적으로 일본이라는 국가에 큰 행운이었다고 생각됨. 통수맞고 신정부군에 끝까지 항거한 일부 세력의 토벌전만으로도 몇년 동안 넘게 질질 끌게 되고, 이로 인한 반란도 발생한다. 만약 요시노부가 결사항전을 주장했었다면? 전쟁은 과연 더 빨리 끝날 수 있을까? 신정부군의 동력이 그대로 서구화로 이어질 수 있었을까? 서구 세력들의 영향력은 더욱 확대되지 않았을까? 일본 제국의 행보는 차치하더라도 근현대 일본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을수도 있지 않았을까. 아까 고종떡밥도 그렇고, 흔히 대한제국 말기를 비판할 때 나오는 말이 국제감각이 없다, 자기보신만 생각한다, 왕실보전만 신경쓴다 등이 있음. 국제감각이야 지금 당시가 당연히 다르니 어쩔 수는 없다하지만, 2번과 3번에서 고종순종과 요시노부가 큰 차이가 있었다고 생각된다. 사직과 '왕실'을 이어온 군주가 그것을 자기대에서 끊는다, 그것도 내부의 반란과 한치 앞을 예상할 수 없는 외세 상황의 앞에서. 잘못하면 내일 구체제의 대표로도 처형 당해도 이상하지 않고, 백년 뒤에 민족의 배신자로 묘지가 파헤쳐질 수도 있었음. 나는 이게 대단하다고 생각함. 결국 요시노부는 실행했고, 결과적으로 최소한의 손해(실제로 최소인지는 모르지만 지금와서는 그렇게 보인다)만 입고 일본은 근대화에 성공했으니까. 고종과 대한제국 역시 역시 전근대적 군주제를 폐지하고 개혁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는 점에서, 완전히 동일하진 않아도 전근대의 군주라는 상황에서 둘이 상황을 비교하게 되는건 어쩔 수 없어보이기도 함. 아까 고종 떡밥이라, 두서없이 평소 생각나는대로 썼음. 특별한 글은 아니지만 끝까지 읽어준 사람에게 감사를.
작성자 : 野獣先輩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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