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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방송국 리포터가 뒤늦게 빠져 50살에 시작한 일
CCBBLAB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9.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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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덕후들이 만든 회사”···자전거 중고거래 플랫폼 ‘라이트브라더스’중고 자전거 찾다 불편함 느껴 직접 창업 “중고 자전거도 꼼꼼히 따져보고 사야” 한국을 대표하는 자전거 플랫폼이 목표 임직원 8명이 자전거 탄 기간을 모두 합하면 85년이다. 한 명당 10년 넘게 자전거를 탄 셈이다.좋아하는 취미로 일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소위 ‘덕업일치’를 꿈꾸는 사람들이 많다. 덕업일치는 한 분야에 전문적인 식견을 가진 사람을 뜻하는 ‘덕후’와 ‘직업’을 합친 말이다. 그러나 첫술에 배부를 순 없는 법. 흥미와 적성에 맞는 일을 단번에 찾기는 어렵다. 그렇다 보니 첫 직장을 나와 이직·전직하는 이들도 많다.   서울시 용산구에 위치한 라이트브라더스 매장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김희수 대표. /jobsN라이트브라더스 김희수 대표(49)도 쉰을 앞두고 자전거에 취미를 붙여 관련 스타트업까지 창업했다. 40년 후반에 이르러서야 라이딩의 즐거움을 알았다. 20대엔 방송국 리포터, 30~40대엔 브랜드 컨설팅 일을 했다. 이전 직업들이 만족스럽지 않은 것은 아니다. 지금의 라이트브라더스를 일구는 데 좋은 밑바탕이 됐다.   ◇ 취미로 타던 자전거가 창업 아이템으로   브랜드 컨설팅 일을 오래 한 김 대표는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매 순간 창의성을 요구하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지켜보던 김병수 라이트브라더스 부사장이 미니벨로 자전거를 선물했다. 미니벨로 자전거는 바퀴 크기가 20인치 이하인 작은 자전거를 말한다. 둘은 함께 자전거를 타며 자연스레 자전거 시장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라이트브라더스’를 만든 계기는.  “기존에 타던 미니벨로를 팔고 새 자전거를 사려고 했다. 가격대가 만만치 않아 중고 자전거를 찾아봤다. 일일이 발품을 팔아 상품을 비교하고 외관 상태만 보고 살지 말지 결정해야 했다. 그때 중고차 플랫폼인 ‘SK엔카’가 떠올랐다. 중고차를 살 때처럼 꼼꼼히 비교 검색할 수 있는 자전거 중고거래 플랫폼을 만들고 싶었다.”  -신제품이 아닌 중고유통을 택한 이유는.  “자전거 중고거래 시장에 개선점이 많다고 생각했다. 여전히 중고카페를 이용해 거래하고 자전거를 배송시킬 수 없어 직접 운반해야 했다. 또 중고시장을 잡으면 후속 사업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이 많다. 자전거는 끊임없이 유지보수가 필요하다. 라이트브라더스는 중고거래 중개만 하지 않는다. 자전거 수리·점검·판매를 비롯해 최근엔 자전거 리스 프로그램까지 시작했다.” (좌) 지하매장에서 전문 미캐닉이 자전거를 점검하고 있다. (우) 눈으로 안보이는 미세흠집을 표시해 뒀다. /jobsN-가성비를 넘어 가심비(심리적 만족감을 중시하는 소비) 시대다. 프리미엄 자전거를 취급하는 이유는?  “어느 시장이든 밑에서 위로 저변을 확대하기엔 제품군이 다양해야 해서 자본이 많이 든다. 스타트업 회사로써 프리미엄 시장을 우선 공략하는 탑다운(하향) 방식이 맞다고 생각했다. 또 자전거는 이용자가 직접 타기 때문에 안정성이 중요하다. 비용을 내더라도 안전하게 타고자 하는 수요를 생각했다. 라이트브라더스의 평균 검사비용이 45만원 정도다. 30만원 이내의 생활 자전거보다 더 비싸다. 그래서 전문적인 수리·정비가 필요한 자전거 매니아를 대상으로 한다. 매니아층이 주로 타는 중고가 가격대의 카본(탄소섬유) 소재 자전거를 취급한다. 100만원 안팎에서 많게는 1000만원이 넘는 프리미엄 자전거다.”  -라이트브라더스는 자전거 판매회사가 아니라 ‘서비스 디자인 회사’라고.  “사업하기 전 자전거 시장을 조사했다. 전에 하던 일 때문에 생긴 직업병 같다. 어떤 일이든 시작하기 전에 시장 조사를 한다. 자전거의 경우 자동차보다 애프터마켓 규모가 작았다. 애프터마켓은 제품판매 이후 부품교체·정비·업그레이드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장을 말한다. 자동차를 타다 싫증이 나면 튜닝을 하거나 문제가 생기면 전문 카센터를 찾는다. 그러나 자전거는 관리나 수리가 어려워지면 팽개쳐 놓는 사람이 많다. 이런 점에 착안해 자전거 애프터마켓 서비스를 제공하는 온·오프라인 공간을 만들었다.   또 라이트브라더스 매장에는 음료를 마시고 쉴 수 있는 카페 공간이 있다. 자전거 이용자들끼리 자전거에 관한 정보를 공유하는 곳이다. 자전거를 매개로 즐거운 경험을 이어나갈 수 있는 서비스 디자인 플랫폼을 계획했다.” (좌) 매장 책장에 꽂힌 자전거 관련 만화책들 , (우) 라이트브라더스 매장의 카페공간. 누구나 이용가능하다. / jobsN-자전거 리스 프로그램을 시작한 이유는.   “자전거 리스가 힘들었던 이유가 잔존가치 측정이 어렵기 때문이다. 잔존가치는 자동차 리스처럼 일정 기간 사용하고 처분할 때 받을 수 있는 금액을 말한다. 쉽게 말해, 중고로 되팔 때 얼마를 받을 수 있느냐다. 중고 자전거는 판매자의 말과 외관 상태만 보고 어림짐작으로 사는 경우가 대다수다. 그런데 외관이 멀쩡해도 눈에 보이지 않는 프레임 내부가 엉망일 수 있다. 또 자동차와 달리 사고 이력이 남지 않아 전 주인이 어떻게 탔는지 알 수 없다.   우리 회사 리스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매장에서 자전거 수리·점검을 받고 이력을 남길 수 있다. 리스 기간이 끝나면 기록한 데이터를 이용해 잔존 가치를 평가한다. 고객이 자전거를 반납할 경우, 과거 데이터를 바탕으로 라이트브라더스에서 다시 중고로 되파는 형태다. 리스와 중고판매가 리스사인 라이트브라더스 한 곳에서 이루어진다.”라이트브라더스에서 판매 중인 리스 자전거. /'라이트브라더스' 홈페이지 캡쳐-중고판매 중개는 어떻게 이루어지나.  “중개 최저 수수료를 27만 5000원으로 책정했다. 중개 수수료가 최저 수수료 이상이면 중고 판매가격의 11~18% 정도를 받는다. 자전거 성능검사를 비롯해 픽업서비스 비용은 따로 받지 않는다. 성능검사 시 문제가 있으면 중개판매를 거절한다. 제품은 자사 스튜디오에서 직접 촬영해 회사 홈페이지에 올린다.”  -수익은 괜찮은 편인가?  “라이트브라더스의 업력은 2년 정도다. 작년에 3억원 정도의 매출이 나왔다. 올해 2분기까지 매출은 4억원 정도다. 올해 목표 매출액은 15억원이다.”  ◇ X-ray로 들여다본 자전거 안은 상처투성이  -자전거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는 비파괴검사가 있다고.  “김병수 부사장이 전에 도시가스 시공설계일을 했다. 도시가스 배관에 문제가 없는지 X-ray검사로 들여다봤다. 이걸 배관 비파괴검사라고 한다. 당시 몇몇 사람들이 자전거를 가져와 비파괴검사를 의뢰했다. 자전거용 검사가 아니다 보니 금액이 비싸고 검사 기간도 길었다. 또 검사 후 판독이 정확히 이루어져야 하는데 판독기술도 없었다.   한국 비파괴협회장한테 메일을 보내 기술자문을 맡겨 자전거용 비파괴검사 기술을 개발했다. 이 기술을 사용하면 X-ray를 이용해 외관 손상 없이 자전거 프레임 내부를 점검할 수 있다. 검사시간도 훨씬 줄어 짧으면 20분 정도 걸린다. 자전거 전문가가 자전거 내외부를 점검해주는 미캐닉 서비스도 제공한다. 브레이크, 바퀴각도 테스트 등 16개 부문 61개 항목을 매뉴얼대로 꼼꼼히 검사한다.”외관상 문제가 없어 보였으나, 비파괴 검사로 내부 문제를 발견한 상태. /'라이트브라더스' 홈페이지 캡쳐-보통 자전거 수명은 얼마인가.  “정해진 수명은 없다. 수명차이가 있다기보단 관리법에 따라 달라진다. 아끼면서 잘 관리해주면 오래 타고, 험하게 타면 좋은 자전거도 부서진다.”  ◇ 자덕이 만드는 대한민국 대표 자전거 플랫폼  김 대표는 스스로를 ‘자덕(자전거 덕후)’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일할 땐 덕후의 코드는 계승하지만 덕후 마인드는 버리려고 한다. 자전거를 좋아하고 몰두하는 덕후의 코드는 적극적으로 취한다. 반면 좋아하는 만큼, 좋아하는 시간에만 일하고 싶은 덕후 마인드는 지양하려 한다. 덕질이 곧 일이기 때문이다.   -라이트브라더스가 추구하는 자전거 문화가 있다면.  “누구든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라이딩이다. 라이트브라더스는 토요일마다 라이딩을 한다. 일종의 원데이클래스처럼 누구든 참여할 수 있다. 따릉이를 타고 와도 괜찮다. 직원들은 서로를 ‘Buddy’라고 부르고 참가자는 ‘Bro·Sis(브라더·시스터)’라는 호칭을 쓴다. 최근엔 22명의 참가자를 모집해 전현직 자전거 국가대표와 자전거 여행을 떠났다. `불편함 없이 자전거만 즐길 것`이 여행컨셉이다. 자전거 수리공인 미캐닉과 전문 사진가가 있는 마케팅팀도 동행했다." 인스타그램을 통해 토요라이딩 멤버를 모집하는 모습. / '라이트브라더스' 인스타그램 캡쳐-공공자전거의 출현이 위협적이지 않나.  “나도 가끔 따릉이를 탄다. 공공자전거를 타다 자연스레 프리미엄 자전거로 관심이 옮겨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 사람이 여러 자전거를 소유한 시대다. 산에 갈땐 산악용 자전거를, 출퇴근용으로는 로드 자전거를 이용하는 식이다. 후속 플랫폼을 위해 퍼스널 모빌리티 시장을 주시하고 있다. 퍼스널 모빌리티는 전동휠·전기 자전거 등 개인용 이동수단을 말한다. 차로 움직이기엔 가까운 거리를 전기자전거로 이동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앞으로 프리미엄 전기 자전거도 리스·장기렌탈이 가능하도록 사업영역을 넓힐 생각이다.” -라이트브라더스를 어떻게 발전시킬 계획인가.  “기존의 정체기인 중고 자전거 시장의 룰을 깨뜨리고 새로운 생태계를 만드는 ‘룰브레이커’로 성장하고 싶다. 특히 자전거 이용자 입장에서 느낀 불편함을 고려해 개선점을 찾아 나갈 예정이다. 항상 되뇌는 말이 있다. ‘상상하고 기획하고 실행에 옮기자’. 자전거 애프터마켓을 적극적으로 육성해 자전거에 관한 모든 정보·서비스가 오가는 플랫폼을 꿈꾼다.”/jobsN-김희수 대표에게 자전거란.  “처음 자전거를 탔을 땐 마냥 좋았다. 오히려 일을 시작하고 나니 덜 탄다. 지금은 라이딩을 즐기기 보단 자전거 시장의 문제점을 해결해야 하는 시간인 것 같다. 그만큼 무게감이 느껴진다.”글 CCBB 장은비시시비비랩
하버드·예일대 교수들이 극찬한 일본 이름 분필, 알고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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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 수학자가 극찬, 비정규직 시간 강사가 인수한 85년 일본 전통 분필 브랜드“교사가 수업에 들어갈 때 유일한 무기가 뭡니까. 분필 한 자루예요. 교사에게 최고의 무기를 선물한다는 자부심으로 분필을 만들고 있어요.”지난 5월 한 유튜브 채널. 하버드·프린스턴·예일 등 미국 명문 대학의 수학과 교수들이 출연했다. ‘왜 세계적 수학자들은 분필을 사재기 했나(Why the World’s Best Mathematicians Are Hoarding Chalk)’라는 제목의 영상이었다. 백발이 성성한 노교수가 칠판 앞에 서 분필을 썼다. 자신이 얼마나 이 분필에 깊은 애정을 갖고 있는지도 설명했다. 이들이 손에 쥔 분필은 하고로모 분필. 이 영상은 960만 조회수를 기록할 정도로 많은 인기를 끌었다.전세계 최고의 수학자가 극찬한 하고로모 분필. /유튜브(채널@Great Big Story) 캡처세계 최고의 수학자들에게 극찬을 받는 하고로모 분필. 하고로모 분필을 만드는 사업자는 한국인이다. 원래 일본 회사였지만 신형석(49) 세종몰 대표가 인수했다. 신 대표는 2016년부터 분필을 국내에서 생산해 전 세계에 판매한다. 작년 말, 중소기업벤처부는 국내 우수 중소기업을 선정했다. 해외 시장 개척을 지원하기 위해 GMD(글로벌 시장 개척 전문 기업) 사업을 벌였다. 미국 영상 제작 대행업체가 하고로모 분필을 소개하는 유튜브 영상을 기획·제작해 만들었는데 이 영상이 ‘대박’을 치며 전세계 하고로모 분필 매출이 급등했다.◇대학교수 꿈꾸던 시간강사···현실의 벽 앞에 포기 하고로모 분필은 일본의 전통이 담긴 제품이다. 하고로모 문구는 와타나베 일가가 1932년 세운 회사다. 조개껍질 등을 섞는 제조 노하우를 개발해 수준 높은 분필 등 문구류를 제작해왔다. 일본 분필 업계에서 줄곧 1·2위를 차지하며 최대 60억원의 매출을 기록한 때도 있었다. 2015년까지는 창업주의 손자인 와타나베 타카야스 사장이 회사를 경영했다.그러나 2015년 이후 사업을 이어나가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일흔에 접어든 와타나베 사장의 건강이 나빠졌기 때문. 공장 문을 닫을 위기에 처하자 와타나베 사장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선대가 평생을 바쳐 일궈놓은 회사였다. 그러나 마땅한 후임자가 없었다. 마침 신형석 세종몰 대표가 그의 앞에 나타났다. 신 대표는 와타나베 사장에게 “하고로모 분필 제조 기술을 이어받아 한국에서 사업을 이어나가겠다”고 제안했다.왼)일본 나고야 하고로모문구 본사 앞에서·(오)한국 포천 공장에 방문한 와타나베 사장. /세종몰 신형석 대표 제공“저는 원래 교수를 꿈꾸며 대학에 강의를 나가던 시간강사였어요. 연세대 대학원에서 건축공학을 전공하고 건축역사 박사과정을 밟았죠. 10여년 전부터 안동대·두원공대에 강의를 나갔습니다. 대학 시간강사로 버는 돈은 한 달에 100만원 정도였어요. 지방 강의를 다니면 차비가 많이 듭니다. 차비를 뺀 나머지 돈으로 생활하기가 힘들었어요. 생활비를 벌기 위해 입시학원을 찾았습니다. 노원구 세일학원에서 수학 강의를 했죠. 학원 강사는 시간당 수당을 받아요. 경력 초반에는 1시간에 6만원이었습니다. 나중에는 8만원으로 올라요. 보통 오전 7시부터 밤 9시~10시까지 일합니다. 경력이 쌓이니 돈을 많이 벌 수 있었어요. 학원 규모가 큰 데다 재수종합반 담임선생님까지 맡았거든요.”대학교수를 꿈꾸던 그는 결국 현실적인 문제로 입시강사를 계속했다. 처음에는 학원에서 일해 목돈을 모으자는 생각이었다. 어느 정도 안정적인 기반을 마련해놓으면 돈 걱정 없이 대학 강의를 다닐 수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정규직 교수 자리는 TO(Table of Organization)가 가뭄에 콩 나듯 났다. 거기다 국내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이를 교수직에 임용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신 대표는 형편상 해외 유학을 가지 못했다. 현실적인 요소를 고려하다 보니 입시학원에 계속 남을 수밖에 없었다. “처음엔 큰 꿈을 가지고 있었지만 흐르는 대로 살아온 셈이죠.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강사를 하면서 우연치 않게 분필 사업 기회를 잡을 수 있었어요.”신형석 세종몰 대표. /jobsN“하고로모 분필을 처음 접한 건 2006년이었습니다. 동료 강사와 함께 도쿄에 있는 요요기 주쿠(代々木塾)라는 대형 입시학원을 탐방했어요. 학원에서 판서를 해봤는데 분필을 몇 번 만져보니 사용감이 좋았습니다. 가루만 풀풀 날리며 뚝뚝 부러지는 기존 분필과 달리 묵직한 데다 부드럽게 필기할 수 있었어요. 색깔도 다양한 형광색이었구요. 일본 강사에게 부탁해 하고로모문구 분필 몇 통을 한국에 가져왔어요. 그 분필로 강의를 하는데 학생 반응이 뜨거웠습니다. 반 학생들은 최소 20명에서 최대 80명 정도입니다. 대형 강의실 같은 경우, 뒷좌석 학생들이 판서를 보기 힘들 때가 있죠. 그런 학생들도 분필 글씨가 잘 보인다는 겁니다. 심지어 학생들이 나서서 다른 과목을 가르치는 선생님한테 그 분필을 써달라고 요구하기까지 했어요.”◇와타나베 사장 직접 만나 “내가 한국에 유통해보겠다” 설득학생들의 반응에 신 대표는 하고로모 분필을 더 구하러 나섰다. 우선 우리나라 분필 업체에 전화를 돌렸다. “일본산 하고로모 분필을 유통할 생각이 없냐”고 물었다. 어렵다면 빨강·노랑·파랑 외에 또 다른 색깔의 분필을 제작해주면 안 되냐고 물었다. 국내 분필업체 3곳에 전화를 걸었지만 모두 퇴짜를 맞았다. 단가가 비싸 수익이 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또 분필 산업 자체가 사양산업이라 새로운 유통망을 늘릴 여력이 없다고 했다. 예전부터 친분이 있던 메가스터디 신승범 강사가 조언했다. “하고로모 분필 구하기가 어렵다 하니 승범이가 ‘형이 직접 수입해서 팔아’라고 말해줬죠.”설민석, 신승범 강사의 특유의 알록달록한 판서는 하고로모 분필로 만들어진다. /유튜브(이투스 채널) 캡처“그 길로 하고로모문구 사장을 만났어요. 일본 유학 간 제자들에게 이메일을 보내달라 부탁했습니다. ‘한국의 학원 강사인데 하고로모 분필이 너무 좋다. 한국에서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지 알려달라’는 내용이었죠. 나고야 공장에서 미팅을 하자는 회신이 왔습니다. 와타나베 사장이 직접 마중을 나왔더군요. ‘하고로모 분필의 우수성을 알아줘서 고맙다’며 기꺼이 계약을 해줬습니다.”2009년 하고로모 분필을 유통하는 세종몰을 창업했다. 1타강사로 유명한 신승범·설민석 강사가 하고로모 분필 마니아였다. 당시 인터넷 강의가 유행하던 때였다. 하고로모 분필은 유독 다른 분필보다 영상에 선명하게 나왔다. 신승범 강사 특유의 알록달록한 판서가 하고로모 분필로 탄생한 셈이다.“와타나베 사장과 4~5년간 계약을 맺으면서 신뢰를 쌓았습니다. 일본인은 약속을 중요하게 여겨요. 늘 정해진 일자 안에 정확하게 계약금을 입금하니 ‘이 사람은 믿을 수 있다’ 판단한 거죠.” 2015년 초 와타나베 사장이 급히 그를 호출했다. 일본에 가보니 병세가 위중한 상태였다. 일흔을 넘긴 나이로 위암 투병을 하고 있었다. “앞으로 공장을 운영하는 게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분필을 더 공급하기 어렵습니다. 미안합니다.” 와타나베 사장의 이야기를 들은 신 대표는 문득 자신이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85년 전통이 담긴 하고로모 분필의 제조 노하우가 이대로 사라진다 하니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장인 정신으로 만든 최고 품질의 분필이었어요.”◇브랜드 이름 유지하는 조건으로 사장에게 사업권 인수와타나베 사장은 처음에 아이들을 가르쳐오던 신 대표가 어떻게 사업을 하겠냐며 반대했다. 그러나 계속된 설득 끝에 결국 그에게 사업권을 넘겨줬다. 하고로모문구를 매입하려는 일본 업체도 많았다. 그러나 와타나베 사장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브랜드 이름을 유지하는 일이었다. 그가 보기에 신 대표야말로 브랜드를 끝까지 책임질 수 있는 적임자였다.와타나베 사장에게 사업체를 물려받고 마주한 첫 번째 난관은 나고야 공장에 있던 기기를 한국에 들여오는 일이었다. 초기 사업 자본금은 8억원 정도. 낡은 기기를 해체하는 것부터 돈이 들었다. 기기를 전부 뜯어보니 40피트 컨테이너 16대 분량 정도가 나왔다. 일본 나고야 공장부지에서 경기도 포천으로 기기를 전부 옮기고 설치하기까지 총 6개월 걸렸다. 한국 전압(220V)과 일본 전압(110V)이 달라 애를 먹었다. 그러나 행운이 따르기도 했다. 하고로모문구에서 25년간 기계 운영을 총괄해오던 경력자가 기꺼이 신 대표 사업에 합류했다. 분필 제조 단계 중 가장 중요한 단계인 성형화 기계를 조작할 줄 아는 장인이었다. 2016년 포천에서 ‘메이드인코리아 하고로모 분필’을 생산하는데 성공했다.아픈 몸을 이끌고 한국 포천 공장에 방문해 기계를 직접 체크하는 와타나베 사장. /신형석 대표 제공“와타나베 사장이 제게 사업을 물려주며 내건 유일한 조건이 있었습니다. 하고로모라는 이름만큼은 없애지 말아 달라 했죠. 그 외에는 저에게 유리하게 계약했어요. 한 대당 5000만~9000만원 하는 기계를 100만원 가격에 팔았죠. 포천에 공장을 이전한 뒤로도 한국에 와 비법을 하나하나 전수했습니다. 하고로모문구 분필은 일본 국민에게 오랫동안 사랑을 받아왔어요. 제가 사업체를 넘겨받았다 하니 NHK(일본 최대 공영방송사)가 안타깝다는 내용을 담은 다큐멘터리를 만들 정도였죠.”◇"교수의 꿈, 이루진 못했지만 그 이상 해냈다 생각”한국에 막상 들여와 제품을 생산하니 처음엔 반응이 냉담했다. 한국에서 생산하는 한국산 제품이었는데도 일본 이름이라는 이유만으로 거부감을 나타냈다. 또 원래 쓰던 분필보다 가격이 서너 배 비싸다는 점도 문제였다. 신 대표는 제품력을 증명하는 것으로 승부수를 띄웠다. “하고로모 분필은 한 번도 안 써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써본 사람은 없어요. 그만큼 품질에 자신이 있었어요. 또 국내 소비자가 일본 이름에 반감을 느끼니 눈을 돌려 해외 시장을 봤어요. 창업 첫해 2016년 매출은 3억원이었습니다. 2017년 6억원, 2018년 10억원으로 매해 약 2배씩 성장했습니다. 올해 매출 목표는 15억원입니다.”[CCBB] 전세계 수학자가 극찬했다, 하고로모 분필 신형석 대표 인터뷰“지난 5월, 세계 최고의 수학자이자 수학과 교수들이 출연해 하고로모 분필이 얼마나 우수한지 설명하는 유튜브 영상이 화제가 됐어요.” 영상 속에는 ‘분필계의 롤스로이스’, ’천사의 눈물을 담아 만들었을 것’, ‘이 분필로 문제를 풀면 틀릴 수가 없다’는 극찬이 이어진다. 세계 최고의 수학자들의 영상은 900만 뷰 이상의 조회 수를 기록했다. 영상이 인기를 끌자 하고로모 분필은 아마존 분필 카테고리에서 매출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분필을 사재기해 가격을 올려 팔려는 전문 업체들도 등장했어요. 앞으로 대한민국 제조업의 한 부분을 책임진다는 사명감을 갖고 사업을 키워나갈 계획입니다. 저는 대학 강단에 선다는 목표를 결국 이루지 못했어요. 하지만 제가 만든 분필은 세계 최고 대학의 칠판 앞에 놓여있죠. 꿈을 이룬 것 그 이상을 해냈다 생각합니다.”글 CCBB 감자깡시시비비랩
"준비하고 쏘세요" 전국민 설레게 한 복권 사라진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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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첨될 확률을 계산해 보면, 복권을 사는 건 밑지는 장사라는 확신이 듭니다. 그럼에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희망을 사듯 매주 복권을 사는 분들이 있죠. 지금이야 '복권'하면 로또부터 떠올리게 되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2002년 처음으로 로또가 발행되기 전까지 매주 국민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던 주택복권이 있었으니까요. 특유의 멘트와 추첨 방식으로 아직도 많은 분들이 기억한다는 주택복권의 역사, 지금부터 한번 살펴볼까요?한국 최초의 정기 복권경향신문주택복권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69년 9월의 일입니다. 그전에도 전쟁 복구비를 충당하기 위해 탄생한 애국복권, 박람회 개최 자금을 마련을 위한 산업박람회 복표 등이 있었지만, 정기적으로 발행하고 추첨하는 정기 복권은 주택복권이 최초였죠. 초기에 월 1회만 추첨하던 주택복권은 1972년 6월부터 월 3회로, 다시 1973년 3월부터는 주 1회 추첨으로 변경되었습니다. 국가기록원주택복권을 발행한 주체는 한국 주택은행이었습니다. 복권 발행의 목적은 '군경 유가족과 월남전 참전 장병 등 무주택 저소득층을 위한 아파트 건립 기금 마련'이었죠. '주택복권'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가 두 가지나 있었던 셈입니다. tvN 응답하라 1998주택복권은 1983년 4월부터 1988년 12월까지 올림픽 복권으로 대체되는데요. <응답하라 1988>에서 정봉이(안재홍 분)이 당첨된 복권이 바로 올림픽 복권입니다. 준비하시고~ 쏘세요!스타뉴스"준비하시고~쏘세요!" 주택복권을 사 본 적은 없어도, 이 멘트를 기억하고 있는 분들은 많을 겁니다. 이 멘트가 울리고 나면 유니폼을 입은 도우미들이 손에 들고 있던 버튼을 눌렀고, 돌아가는 과녁판에 화살이 꽂히면 그 숫자를 차례로 이어 당첨번호를 확정했죠. 하지만 이런 추첨 방식이 쭉 지속된 것은 아닙니다. 1979년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 이후 "쏘세요"라는 멘트가 총탄 발사를 연상시킨다는 이유를 들어 공 추첨 방식으로 바뀌기도 했죠. 그러다 1992년부터는 다시 화살 발사 방식으로 돌아왔다고 하네요.  인터뷰 365주택복권의 초기 액면가는 100원으로, 당시 물가로 담배 한 갑을 살 수 있는 금액이었습니다. 1등 당첨금은 300만 원이었는데요. 당시 아담한 서민주택 가격이 200만 원 정도였다고 하니, 당첨되면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루고도 남는다는 계산이 나왔죠. 15일 동안 서울지역에 한정해 판매했던 1회 주택복권의 당첨자는 청량리 시장 내 과자가게를 운영하던 허모 씨였다고 하네요. 이후 1000만 원에서 3000만 원으로 오른 1등 당첨금은 1983년 1억 원까지 오르게 됩니다. 우표처럼 수집하는 복권로또야 언제 사든 같은 모양이지만, 주택복권은 매회 다른 테마와 다양한 도안으로 발행되었습니다. 때문에 당첨이 되지 않았더라도 우표 수집하듯 주택복권을 모아두는 사람도 있었죠. 복권 판매 촉진을 위해 1회부터 300회까지의 복권을 모두 소지한 사람에게 냉장고나 텔레비전 등 고가의 사은품을 내걸기도 했다네요. MBN추첨 방송을 진행하는 방송사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달라졌습니다. 기본적으로는 KBS에서 추첨이 이루어졌지만, 1973년에는 잠시 MBC에서 추첨을 진행하기도 했죠. 1993년 KBS 1TV에서 KBS 2TV로 넘어갔던 추첨방송은 2005년부터 MBN에서 진행되었다네요. 주택복권의 몰락이코노미톡 뉴스1990년대는 이런저런 복권의 등장으로 뜨거워집니다. 90년대 초반에는 즉석복권인 엑스포 복권이, 후반에는 밀레니엄 복권이 인기를 얻었죠. 하지만 주택복권의 쇠락을 가져온 것은 누가 뭐래도 2002년 12월 처음 등장한 로또였는데요.  당첨금 규모가 어마어마한 로또에 대적하기 위해 당첨 금액을 5억 원까지 올려도 봤지만, 큰 효과는 없었습니다. 2006년 4월,  대세 복권의 자리를 로또에 내어준 주택복권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죠.SBS funE1969년부터 2006년까지, 무려 37년 동안 서민들을 웃기고 울린 주택복권은 그러나 아직도 사람들의 뇌리에 깊이 각인되어 있습니다. 복권을 사지 않은 이들도 일종의 오락으로 TV에서 방영되는 추첨 생방송을 보곤 했는데요. 현재 연금 복권 추첨도 화살 발사 방식으로 이루어진다고 하니, 주택복권 추첨 방송에 향수를 느끼는 분들이라면 시청해 보시는 것도 좋겠네요. 글 CCBB 피클시시비비랩
세월이 거꾸로? 나이 먹을수록 점점 더 전성기 외모 찍는 연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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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체인지'간혹 드라마만 보다가 출연 연예인의 프로필을 보고 놀랄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대부분 생각보다 나이가 적거나, 생각보다 나이가 많은 경우 중 하나인데요. 특히 연예인들은 나이가 어리더라도 또래에 비해 성숙한 화장, 의상으로 제 나이로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유달리 성숙해 보이는 외모로 시청자들을 깜짝 놀라게 한 배우들이 있었습니다. 과연 어떤 배우들이 성숙함과 순수함을 동시에 지닌 '반전 매력'을 선보였을까요?1. 진세연출처 - MBC '라디오스타' / JYP ent. / youtube @이지금 [IU Official]진세연은 1994년생입니다. 다만 빠른 년생이었기 때문에 93년생들과 함께 학교를 다녔다고 밝혔는데요. 어느새 데뷔한지 10년 차인 배우임을 감안하면 상당히 빠른 나이부터 다양한 배역을 소화해왔다고 볼 수 있죠.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자신이 93년생인 수지, 루나, 아이유와 동갑임을 밝혀 패널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습니다.출처 - 한국스포츠경제그녀는 자신이 또래보다 성숙해 보이는 것은 사실이지만, 덕분에 그 나이대에 할 수 없는 배역들을 얻는 장점이 있다고 언급했는데요. 실제로 '각시탈'을 촬영할 때에는 갓 20살이 된 나이였지만 작품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모습을 보여주었죠. 드라마 '옥중화'에서는 15살 차이 나는 고수의 상대역을 맡아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2. 오하영출처 - 병 속의 지니 / '몰라요'에이핑크의 막내인 오하영은 96년생으로 올해 24살입니다. 데뷔 당시에는 그녀가 그룹의 막내라는 것과 16살이라는 것에 많은 사람들이 놀라는 반응이었는데요. 나이에 비해 성숙해 보이는 외모도 있지만, 그룹 멤버들이 어려 보이는 것도 한몫하였죠.출처 - instagram @_ohhayoung_ / 플랜에이 ent.하지만 그녀의 성숙한 외모는 오히려 팀 내 최장신이라는 점과 춤실력이 더해지면서 청순함을 추종하는 에이핑크 중 가장 섹시 컨셉을 잘 소화하는 멤버로 언급되는데요. 데뷔 이후 8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그녀는 더욱 물오른 비주얼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팬들은 그녀가 실물로 봤을 때 가장 헤어 나올 수 없는 멤버라고 입을 모았죠.3. 임수향출처 - MBC '라디오스타'90년생인 임수향은 올해 30살을 맞이했습니다. 그녀는 지난해에 방영한 '내 아이디는 강남 미인'에서 좋은 연기를 보여주며 큰 호응을 얻었는데요.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요즘 제 나이를 찾아가고 있다"라며, "중학교 때도 직딩 소리를 들었었다"라고 밝혀 웃음을 유발하였죠.출처 - instagram @hellopapa11그녀의 또래 연예인으로는 소녀시대 윤아, 박신혜, 박보영 등이 있는데요. 티아라의 효민, AOA 전 멤버였던 초아, 고아라도 그녀와의 첫 만남에서 언니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사실 이들 모두 동갑이거나 임수향이 한 살 더 어렸었죠. 하지만 최근 휴식기를 즐기고 있는 그녀는 30대라고 믿을 수 없는 미모를 보여주었습니다.4. 김소연출처 - blog 도담이 / KBS '연기대상'배우 김소연은 데뷔 초에는 노안이라는 말을 들었지만 오히려 지금에 들어서면서 동안으로 평가받는 스타입니다. 90년대 특유의 짙은 화장 기법은 그녀의 성숙한 외모를 더욱 부각시켜주었는데요. 이로 인해 15살에 아역상을 수상할 당시 "왜 아역상을 어른이 받는 거냐"라며 대중의 항의가 빗발치는 상황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출처 - 마리끌레르 / instagram @sysysy1102또한 1995년에 방영된 '딸부잣집' 출연할 때에 16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20대 초중반의 역할을 맡았죠. '2004 인간시장'에서는 배우 이정길과 37살의 나이 차이를 극복하고 커플 연기를 펼친 경험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느덧 올해 40살에 접어든 그녀는 또래보다 동안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었습니다.글 CCBB 연예톡톡                시시비비랩
연습생 시절 없이 외모 하나로 속전속결 바로 데뷔한 아이돌
CCBBLAB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9.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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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JYP ent.연예인들은 '버티는 사람이 뜬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기회가 올 때까지 연습을 갈고닦아야만 합니다. 특히 아이돌은 현재 과열된 산업이기 때문에 더더욱 일찍부터 연습생 생활을 거치는 분들이 많은데요. 그중 연습생 기간이 거의 없이 빠르게 데뷔한 분들이 있어 모아보았습니다. 캐스팅 담당자와 대중의 마음을 훔쳐 간 우월한 비주얼의 소유자들은 누가 있을까요?1. 수지출처 - SBS '힐링캠프'수지가 '슈퍼스타K' 오디션을 보다가 JYP 엔터테인먼트의 관계자에게 캐스팅 당했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입니다. 오디션장에서 화장실을 갔다가 캐스팅 당했다는 수지는 약 10개월의 연습생 기간을 거친 것인데요. 당시의 캐스팅 매니저는 얼마나 뿌듯할까요!출처 - mnet / '건축학개론'노래면 노래, 연기면 연기 못하는 것 없는 만능 엔터테이너로 자라난 그녀도 초창기에는 비주얼로 먼저 유명세를 떨쳤습니다. 맑은 인상에 하얀 피부는 누구나 한 번쯤은 첫사랑의 대상이었을 법한, 그야말로 '건축학개론'의 그녀였죠. 연습 기간이 짧았지만 선천적인 끼로 데뷔 초부터 유명세를 얻게 되며 지금의 자리에 이르게 되었습니다.2. 걸스데이 유라 혜리출처 - twitter @@Girls_Day_Yura / instagram @yura_936걸스데이 유라와 혜리는 당시 멤버 충원을 위해 모집된 멤버였습니다. 두 사람은 연습생 한 달 동기로 알려져 있죠. 유라가 청순 섹시와 백치미라면 혜리는 쿨해 보이면서도 명랑하고 털털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데요. 유라와 혜리의 화려한 비주얼에 넘어갔다가 성격에 더 매력을 느낀 팬들이 많습니다.출처 - instagram @yura_936모두 각기 다른 매력을 뽐내던 걸스데이는 지난 2월, 계약이 만료됨에 따라 잠시 각자의 길을 가기로 하였습니다. 네 사람 모두 연기와 방송 활동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걸스데이로서의 활동을 보는 것은 당분간 힘들 것입니다. 하지만 멤버들 각자가 선택한 길이니 그녀들의 또 다른 도전을 응원합니다.3. 라이관린출처 - mnet '프로듀스 101 2'얼마 전 워너원 활동을 무사히 끝마치고 우석X관린 유닛 활동에서 또 다른 매력을 선보인 라이관린도 연습 기간이 짧았습니다. '프로듀스 101' 촬영 당시 연습생 기간이 6개월 밖에 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약간의 미숙함은 있었지만 당시 그의 비주얼에 넘어간 팬들이 상당히 많습니다.출처 - MBC '음악중심' / mnet 'mcountdown'프로그램이 전파를 탄 후 라이관린은 '설리 닮은 꼴'이라고 불리며 흔치 않은 비주얼과 피지컬로 많은 팬들이 생겨났죠. 하얀 피부에 소년 같은 미소를 보이다가도 무표정할 땐 냉미남 느낌을 주기 때문에 어떤 이미지도 어울립니다. 거기다 라이관린은 아직 19살입니다. 계속해서 발전하고 있는 그의 잠재력은 여전히 무궁무진합니다.4. 강지영 구하라출처 - SBS / twitter @@_sweethara카라의 멤버들이었던 강지영과 구하라 역시 카라의 새 멤버를 충원하기 위해 선발된 멤버들입니다. 급하게 멤버를 꾸리다 보니 구하라는 3개월, 강지영은 2주 정도의 연습생 기간을 거쳤다고 하는데요. 카라가 활동하던 시절 멤버 전원이 비주얼 멤버라고 불릴 만하다고 유명했었죠. 그중에서도 강지영과 구하라는 각자 다른 느낌의 비주얼로 빠른 시간 안에 팬들을 보유할 수 있었습니다.출처 - instagram @koohara__ / @kkangjji_현재 구하라는 한국과 해외를 오가며 활발한 방송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강지영은 일본에서 드라마, 영화에서 활약하고 있죠. 그녀의 피나는 노력으로 완성한 일본어 실력은 일본인들마저 현지인 같다고 칭찬할 정도입니다. 연습생 기간은 짧았지만 데뷔 후 어느덧 11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면서 다들 내공이 어마어마해진 것이 느껴집니다.출처 - 스타데일리 / 경기일보카메라에 비치는 직업인 만큼 처음 캐스팅되고, 그들이 주목받게 된 계기는 비주얼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들이 치열한 연예계에 자리 잡게 된 이유는 그것뿐만이 아니겠죠. 자신들만의 재능을 더욱 꽃피워내며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앞으로도 열일하는 스타들의 행보가 기대됩니다.글 CCBB 연예톡톡시시비비랩
러시아가 한국에 수출하고 후회했다는 최강의 전차
CCBBLAB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9.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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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 최초로 가스터빈엔진을 장착한 3세대 주력 전차인 T80전차는 T64전차가 개발되던 19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소련은 전차 설계를 2개에 회사에 나눠 경쟁체제를 구축하는 방안을 검토하였으며 그 결과 전통적으로 러시아 전차를 생산해 오던 우랄 열차 공장과 모로조프 설계국이 각 각 T62와 T64를 개발해 낸다.(사진 - T64 전차)T64 전차는 자동 장전 장치, 복합 장갑, 대형 피스톤 엔진 등을 적용한 차세대 전차 였으나 당시 공업 소재 기술에 발달이 설계를 따라가지 못해 지나치게 시대를 앞서 나갔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실전에 배치하기에는 너무나 불안정한 모델이었다.(사진 - T72 전차)따라서 러시아는 모로조프 설계국이 개발한 T64 전차에 개량을 우랄 열차 공장에게 의뢰했고 후속 모델로T72라 불리는 전차가 개발, 배치된다. 그 결과 제 3세계와 러시아를 대표하는 전차 T72가 탄생하였으며 소련군에만 1만여대 이상이 생산, 배치되었다.이 후 소련은 당시 1950년대부터 키로프 공장이 개발해 오던 가스터빈 엔진을 실전에 배치하길 원했으며 옴스크란스 마쉬사와의 합작으로 T64에 가스터빈 엔진이 장착 되도록 설계를 변경, 개량한 모델인 T80이 탄생한다.그렇다면 한국군은 어떻게 러시아가 수출금지 항목으로 지정했던 T80 전차를 보유하게 된 걸까? 1991년 노태우 정부 당시 소련과 수교를 진행하며 서로간에 경제 협력을 증진 하기 위해 한국 정부가 경협차관 30억달러를 소련에게 제공한다1999년까지 상환하기로 했던 이 30억 달러는 소련이 멸망하고, 러시아의 경제 또한 상당히 어려워지면서 상환이 어려워 졌고 러시아는 현금 대신 각종 방산 물자로 한국에게 상환 하기를 요청했다. 한국정부가 이를 받아들이면서 1차 불곰 사업이 1995년부터 1998년까지 진행되었으며 T80U전차 33대, BMW-3 장갑차 33대, 메티스M-대전차미사일 70문, 이글라 휴대용 대공 미사일 발사기 50문, 탄약 2000여발 등을 도입했다.한국군이 도입한 T80U는 당시 서방측 전차에 대항하기위해 새롭게 개발된 T80에 업그레이드 버전으로 1990년대 출시한 서방측 3세대 전차와 동일한 스펙을 갖췄다. 콘탁트-5로 명명된 신형 반응장갑과 1250마력을 발휘하는 신형 가스터빈엔진, 날개 안정식 분리철갑탄과 대전차 고폭탄, 유도식 포발사 미사일등이 운용 가능한 125mm 활강포를 적용 했다.서방권 전차에 비해서 상당히 크기가 작은 동구권 전차에 1250마력에 고출력 가스터빈 엔진을 달아 놓은 만큼 시속 70km라는 상당히 빠른 속도를 낼 수 있다. 보통 러시아군은 동맹국 뿐만 아니라 타국에 병기를 수출할 땐 무조건 다운그레이드 된 성능으로 제공하지만 T80U는 공장에서 러시아군 용으로 인도를 기다리고 있던 T80U를 그대로 한국으로 들여옴으로서 당시 최신 러시아 무기를 보유하게 되었다.T80U는 35대중 한대는 당시 K1전차를 생산하던 현대 로템 공장으로 보내졌으며 한국군 관계자와 미국 육군, 전차 차량 사령부, 미군 육군 시험 평가 사령부 참관 하에 완전히 분해 및 분석했으며 추후 한국군이 개발한 K1A1 전차와 K2전차 개발에 큰 도움이 되었다.또한 서방권 군을 비롯한 당시 한국 최신 전차였던 K1 전차를 능가하는 성능을 가진 탱크로 적성 국가가 보유한 주력 무기에 대한 정보 파악 및 현용 북한군 전차에 확실한 우위를, 대다수 중국 전차들과 동등한 스펙을 가지고 있는 3세대 전차인 만큼 아직 까지도 그 활용도가 높다. 35대라는 소량만 도입된 만큼 부품 수급이 어려워 한때 퇴역 이야기가 거론 되기도 하였으나 추가 차관 사업을 통해 러시아군이 보유한 부품을 물물 교환 하는 방식으로 해결했다.T80U는 가스터빈 엔진을 적용한 만큼 디젤 엔진보다 소음이 크지 않으며 현가장치의 성능이 우수해 고속 돌파 능력 및 험지 돌파능력이 뛰어나며 20여년간 운행하며 단 한번도 궤도가 벗겨지지 않는 등 신뢰성이 우수하다 평가 받는다.T80U은 별도에 부교없이 최대 5m 정도의 강을 자력으로 돌파 가능할 뿐만 아니라 T80U를 운용하는 제 3기갑여단 불곰 대대가 위치한 지역인 동부 전선은 하천이 많기 때문에 기동 타격 전력으로 적합하다는 평가를 받는다.또한 가동률이 96%에 달할 정도로 내구성과 신뢰성이 우수하며 강력한 엔진과 낮은 차체를 가진 만큼 저피탐성, 저피탄성, 고기동성을 가지고 있어 K1 계열보다 우세한 험지 돌파능력을 보여준다. 한국군이 보유한 T80U는 2022년 까지 현역 일선에서 활약할 예정이며 K2 흑표 전차에 3차 양산이 종료된다면 T80U는 전략 퇴역 될 예정이다.글 CCBB 오토앤군사 시시비비랩
16년전 세금 빼고 189억 손에 쥔 로또 1등 당첨자의 근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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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7억원 받았다” 로또 1등 당첨자들의 근황인생 역전의 기회로 불리는 ‘로또’. 하루 평균 100억원 이상 팔린다. 하지만 1등에 당첨될 확률은 800만분의 1이다. 벼락에 맞아 죽을 확률이 428만분의 1이다. 벼락 맞아 죽기보다 로또 1등 하기가 2배나 어렵다.주점에서 물건을 훔친 뒤 도망가는 황씨./TV조선 방송 캡처13년 전, 로또 1등에 뽑혀 화제였던 남성이 또 뉴스에 나왔다. 6월17일 상습절도 등 혐의로 불구속 입건된 황모(40)씨. 그는 2006년 1등 당첨자였다. 당시 황씨는 강도상해 혐의로 수배 중이었다. 수배 중 우연히 산 복권이 1등에 뽑힌 것이었다. 그는 19억원을 받았다. 황씨는 그중 1억원으로 변호사를 선임했다. 그 결과 벌금만 내고 정상적인 삶을 다시 살 수 있었다. 새로운 인생을 살 것 같았던 황씨는 나머지 돈을 1년여 만에 모두 탕진했다. 돈을 더 불리고 싶은 마음에 시작한 도박이 문제였다. 이후 2007년, 2008년, 2014년에도 물건을 훔치다 붙잡혔다. 검거 당시 그의 지갑에는 복권 10여장이 있었다. 또 한 번 돈벼락을 꿈꾸며 훔친 물건을 팔아 복권을 샀다. 당시 황씨는 경찰에서 "로또가 되지 않았으면 평범하게 살았을 텐데, 복권 때문에 내 인생이 이렇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고 한다. ◇행운일까 불행일까 로또(Lotto)는 이탈리아 말로 ‘행운’이라는 뜻이다. 우리나라는 2002년 처음 발행했다. 2018년 판매액은 3조9658억원. 1일 평균 119억원어치가 팔렸다. 역대 최대 1등 금액은 407억원이다. 6월19일 기준 지금까지 1등 당첨자는 총 5824명. 평균 1등 금액은 약 20억원 정도다./동행복권 홈페이지지금까지 당첨 번호 중 가장 많이 나온 숫자는 무엇일까. 1회부터 863회까지 가장 많이 나온 번호는 43번이다. 지금까지 159회나 뽑혔다. 다음은 34번으로 150회가 나왔다. 34번, 1번, 13번, 17번, 33번, 12번, 20번, 40번이 뒤를 이었다. 가장 적게 나온 번호는 22번으로 106회가 나왔다. 동행복권은 홈페이지에 제262회차부터 현재까지 1등을 많이 배출한 판매점 명단을 올려놓았다. 1등은 부산 동구 범일동에 있는 ‘부일카서비스’다. 지금까지 34건의 1등을 배출했다. 다음은 서울 노원구 상계동에 있는 ‘스파’로. 33건을 기록했다. 3위는 대구 달서구 본리동에 있는 ‘일등복권편의점’이었다. 1등이 19번 나왔다.로또를 사는 사람들./조선DB많은 사람이 인생 역전을 꿈꾸며 로또를 산다. 하지만 2001년 경제학자 귀도 임벤스(Guido Imbens), 통계학자 도널드 루빈(Donald Rubin)은 논문을 통해 복권이 꼭 ‘행운’이라고 할 순 없다고 지적했다. 복권 당첨자들은 평균적으로 돈을 받은 이후 10년 안에 수령금의 84%를 다 쓴다고 했다. 미국 켄터키대학의 스코트 핸킨스(Scott Hankins) 박사는 1993~2002년 플로리다주에서 5만~15만달러를 받은 고액 복권 당첨자와 1만달러 이하 소액 당첨자의 연도별 재정상태를 분석했다. 고액 당첨자가 소액 당첨자보다 재정 상태가 나빴다. 큰돈을 받고 2년이 지나자 고액을 받은 사람들의 파산율은 평균 3%로 소액 당첨자보다 더 높았다.  5년 후에는 고액 당첨자 5%가 파산 신청을 했다. 이들이 파산하는 이유는 갑자기 늘어난 재산을 주체하지 못한 것으로 봤다. 지나친 소비를 하며 이를 통제하지 못하는 것이다./조선DB한국재무설계의 박정상 재무설계사는 당첨자들이 파산하는 이유를 미국의 경제학자 제임스 듀젠베리의 ‘톱니효과(ratchet effect)’로 설명했다. 톱니효과란 개인소비의 스타일이 쉽게 변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수입이 줄면 소비를 줄여야 한다. 하지만 과거 습관 때문에 이전의 소비행태를 지속한다. 소비를 늘리기는 쉬워도 줄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그는 "한번 쓰는 돈이 늘어나면 다시 낮추기 힘들다. 예를 들어 급여가 10만원이 오르면 그 즐거움을 느끼는 게 3달이다. 3달 이후 월급을 다시 줄여버리면 이미 커진 소비 형태 때문에 살아가기 어렵다"고 했다. 한번에 거액을 받은 사람들은 과거보다 씀씀이가 커질 수밖에 없다. 때문에 다시 전에 쓰던 만큼의 금액으로 살기 어렵다는 말이다. ◇우리나라 로또 1등 당첨자들 근황 사람들은 로또가 되면 하루아침에 모든 게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평생 만져보지 못한 큰돈을 한 번에 손에 쥐기 때문이다. 하지만 갑자기 생긴 큰 돈이 꼭 행복을 가져다주지는 않는다.A씨의 어머니가 아들에게 당첨금을 나눠달라며 시위를 하고 있다./TV조선 방송 캡처A씨는 2015년 로또 1등에 뽑혔다. 그는 40억3400여만원을 받았다. 하지만 1등에 뽑힌 후 가정이 파탄났다. 어머니가 돈을 나눠달라고 했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A씨에게 손자들을 키워줬는데도 돈을 나눠주지 않는다며 불만을 터뜨렸다. A씨의 어머니는  '패륜아들 000을 사회에 고발합니다'라는 피켓을 들고 양산시청 등에서 1인 시위를 하기도 했다. 결국 이들은 법정에서 만났다. B씨는 2003년 1등에 뽑혀 242억원을 받았다. 이 금액은 역대 금액 중 2위로 많은 금액이다. 세금을 빼고도 189억원이라는 큰돈을 손에 쥐었다. 하지만 5년 만에 받은 돈을 모두 탕진했다. 주식, 투자 실패가 그 이유였다. 이후 그는 사기꾼으로 전락했다. B씨는 인터넷 채팅 사이트 등에서 자신을 ‘펀드매니저’라고 소개하며 사기를 쳤다. 그는 복권 당첨 영수증 보여주며 피해자들을 속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B씨는 사기 혐의로 구속됐다. 50대 남성 C씨는 2010년 로또 1등으로 15억원을 받았다. 이후 그는 동서에게 4000만원을 빌려줬다. 하지만 두 사람은 돈을 갚는 문제로 말다툼을 벌였다. 결국 C씨는 동서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숨졌다. 2012년에는 당첨금을 함부로 썼다며 남편이 아내를 때리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40대 남성 D씨는 로또 1등에 뽑혔다. 그는 받은돈 중 1억5000만원을 사업자금으로 출금해 보관 하고 있었다. 하지만 D씨는 아내가 그 돈으로 몰래 주식투자를 했다는 사실을 알고 분노했다. 경찰은 아내를 주먹과 발로 수십 차례 때린 혐의로 그를 불구속 입건했다./TV조선 방송 캡처1등 당첨자 중 사회에 모범이 되는 사례도 있다. 역사상 역대 1등 당첨금은 407억원이다. 이 돈의 주인공은 춘천경찰서 근무한 박 모 경사다. 그는  2년 뒤 춘천경찰서 희망장학회에 10억 원 쾌척했다. 희망장학회는 어려운 가정환경 속에서 자라는 경찰관 자녀를 위해 운영하는 단체다. 박 경사의 기부 이후 전국 경찰서에서 가장 큰 규모로 성장했다. 박 경사는 이후 사업가로 변신했다. 또 약 30억을 사회에 환원했다.한 대학생이 로또 1등에 뽑혔다고 올린 인증샷./온라인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지난 3월에는 한 대학생이 로또 1등에 뽑혔다며 후기를 올려 화제를 모았다. 이 글쓴이는 고려대학교 온라인 커뮤니티인 ‘에브리타임’에 제851회 1등 당첨 용지를 찍어 올렸다. 자신을 고려대학교 재학생이라고 소개한 그는 "실제 받은 금액은 25억 정도지만 세금을 빼면 약 17억원을 받았다"며 "전세 관련 대출 상환하고 약 16억원이 남았다"고 사용 내역을 밝혔다. 또 로또를 산 날을 회상하며 "난 복권을 주기적으로 사는 사람이 아니다. 그날은 너무 피곤해 잠이 들었는데 꿈이 생생해서 샀다"고 했다. 그는 서울의 중소형 아파트 한 채와 외제차 한 대를 산 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했다.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있다   로또 때문에 패가망신 하는 사례를 줄이기 위해 재정 전문가인 엠피 던레이비(M. P. Dunleavey)는 지난 2007년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있다(Money can buy happiness)’는 책을 냈다. 그는 복권 1등 당첨 시 행동요령 5가지를 제시했다. △시간을 가져라 △정리하고 검토하라 △손익을 계산하라 △우선순위를 찾아라 △금융관리사를 만들라 등이다.엠피 던레이비(M. P. Dunleavey)./엠피 던레이비(@mpdunleavey) 트위터 캡처최소 3개월 동안 시간을 가지고 자신의 자산과 부채를 검토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또 세금과 높은 이자를 지불하는 부채를 먼저 지불해야 한다며 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것을 추천했다. 갑자기 부유해진 상황에서 쓸모 없는 소비를 줄이기 위해서다. 엠피 던레이비는 자산관리사, 투자전문가를, 상담사, 심리학자 등을 만나보는 것을 추천했다.   박정상 재무설계사는 “로또 당첨자들은 한꺼번에 큰 금액을 받게 된다. 한푼한푼 모아서 관리해 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무분별한 소비가 이뤄진다"며 계획적인 지출을 해야한다고 당부했다.  글 CCBB 귤  시시비비랩
매일우유·우루사에 적힌 이 표시, 뭔가 했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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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증받으면 금리 우대받고 보증한도도 올라가는 이 제도여성가족부는 지역 중소기업에 ‘가족친화인증제’를 적극 알리고 확산하고자 가족친화경영에 대한 교육·자문을 제공한다고 6월 13일 밝혔다. 가족친화인증제는 가족친화 사회환경의 조성 촉진에 관한 법률에 따라 여가부 장관이 일·생활 균형을 지원하는 기업에 인증을 부여하는 제도다. 일과 가정생활이 조화롭게 양립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국민 삶의 질 향상과 국가사회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가족친화인증을 받은 기업은 제도 시작 당시인 2008년엔 14개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총 3328개에 달한다.◇가족친화인증의 혜택가족친화인증을 받은 기업은 다양한 혜택을 누릴 수 있다. 정부·지자체 사업자 선정 시 가점을 주며, 중소·중견기업 융자 금리를 우대한다. 출입국 우대카드 발급 등의 특전도 있다. 지자체에 따라 세무조사를 일정 기간 면제해 주거나 사업 혹은 행사 참여에 우선권을 주는 곳도 있다.가족친화인증제 인센티브 중 일부./가족친화사업 홈페이지지원 대상이 중소기업이냐 대기업이냐에 따라 받을 수 있는 인센티브에 차이가 있다. 다만 대기업에 부여하는 인센티브는 중소기업도 모두 누릴 수 있다. 그 반대는 성립하지 않는다. 상세한 인센티브 내용은 가족친화지원사업 홈페이지 중 인증제도안내에서 ‘인센티브 지원 현황’(ffsb.kr/ffm/ffmCertIncentive.do) 페이지를 보면 확인 가능하다.◇가족친화인증을 신청하는 방법여성가족부는 매년 4월쯤 가족친화인증 신청 공고를 낸다. 인증 신청은 6월 즈음까지 받는다. 이후 서류심사와 현장실사, 가족친화인증위원회의 심의 등을 거쳐 11월 인증 결과를 통보한다. 정식 인증은 12월에 부여한다.최고경영층의 리더십, 가족친화실행제도, 가족친화경영 만족도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100점 만점에 70점 이상(중소기업은 60점 이상)의 점수를 받으면 인증을 부여한다. 인증 유효기간은 3년이며 2년 연장이 가능하다. 연장은 70점 만점에 40점 이상, 재인증(신규 인증+연장 기간 만료 후 재신청)은 70점 만점에 45점 이상이면 받을 수 있다. 유효기간 연장과 재인증은 중소기업·대기업·공공기관 모두 필요점수가 같다.가족친화인증제 점수기준표./가족친화사업 홈페이지여가부는 가족친화인증제를 양적으로 확대하고 질을 높이기 위해 중앙가족친화지원센터(한국건강가정진흥원)에서 추진하는 가족친화 교육 및 자문 상담을 지역 유관기관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또 가족친화경영 문화가 정착하기 상대적으로 어려운 지역의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지역 맞춤 가족친화 교육·자문 상담 협력 사업을 시범적으로 진행한다. 교육을 희망하는 기업이나 기관이면 누구나 신청 가능하다. 문의는 중앙가족친화지원센터(02-3479-7675)에서 받는다.가족친화인증 제품 패키지./가족친화사업 홈페이지이정심 여가부 가족정책관은 “지역 중소기업에서 가족친화경영 문화를 확산해 가는 것은 저출산·고령화의 위기를 극복하고 우리 경제가 성장할 수 있는 토대를 다지는 것”이라며 “가족친화인증제가 지역에서 활성화될 수 있도록 다양한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했다.글 CCBB 폴리시시비비랩
가난이 싫어 17살에 MBC 코미디언 시험봤던 소녀, 지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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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보러와요’ 방미는 OOO을 20대부터 보러 다녔다“젊을 때 벌어놓은 돈 못 모으면 말년 비참하게 사는 거예요.”‘날 보러와요~외로울 땐 나를 보러 오세요.’ 가수 방미는 1979년 MBC 2기 공채 코미디언으로 데뷔했다. 개그우먼으로 시작했지만 개그보단 노래 실력을 기억하는 이들이 더 많다. ‘날 보러와요’,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등이 히트곡이다. 요즘 세대는 잘 모르지만 1980년대 대표 인기 연예인이었다. 과거 부동산으로 재산 200억원을 모았다는 인터뷰를 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지난 5월 해외 부동산 투자 비법을 담은 책을 출간하고 유튜브 활동을 펼치고 있는 가수 방미를 만났다.유튜브 방송을 찍는 개인 스튜디오에서. /jobsN-어떻게 연예인을 했나.“아버지는 도박꾼. 집안을 전혀 돌보지 않았어요. 어머니가 남대문에서 옷 가게 점원으로 일하면서 가족을 다 먹여살렸죠. 가난이 너무 싫었어요. 어려서 목표라곤 돈 벌어야겠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제 재주는 사람들 모아놓고 재밌게 웃겨주는 거. 딱 하나였죠. 정신여고에서 개그 반장으로 유명했어요. 열일곱살에 MBC 공채 개그맨 시험을 봤습니다. 심사위원으로 배삼룡 선생님이 계셨어요. ‘잘하는 거 하나 해봐’ 하시더라고요. 무인도를 불렀더니 면접장이 조용해져요. 그 방에 여섯 명이 들어갔는데 혼자 합격했어요.”가난한 부모에게 물려받은 유산은 세 가지. 돈은 버는 것보다 모으는 게 더 중요하다. 인생에 계획이 없으면 아무렇게나 산다. 반드시 재산을 키워나가야겠다. 이 생각을 갖고 어린 나이에 연예계에 들어섰다. 70년대 말 코미디언 생활을 하면서 받던 월급은 3만원. 방송국은 서울 서대문구에 있었다. 그의 집은 명륜동이었다. 방 한 칸에서 온 가족이 살았다. 차비를 아끼기 위해 집에서 직장까지 매일 걸어 다녔다고 한다. 대략 8km 거리다. 코미디언 경력이 1년 반 정도 지났을 무렵이었다. 배삼룡 콘서트의 특별 초청 가수로 무대에 섰다. 그곳에서 날 보러 와요 작사가를 만났다.80년대 가수활동을 활발히 펼치던 모습. /출처·KBS, 유튜브(@Again 가요톱10) 캡처-코미디언으로 데뷔했지만 가수 활동이 더 유명하다. 가수 데뷔 계기는.“노래를 불렀더니 작사가께서 음색을 마음에 들어 하세요. 그렇게 음반을 계약했죠. 노래가 나오자마자 많은 분들이 그 곡을 좋아해 주셨어요. 1980년 ‘날 보러 와요’가 청계천 카페마다 흘러나왔습니다. 히트를 친 거죠. 일반 직장인은 30~40년 일정하게 월급을 받잖아요. 연예인은 인기를 끄는 3~4년 안에 평생 벌 돈을 바짝 벌어요. 목돈을 만질 수 있어 좋겠다 하는데 그 이후부턴 쭉 내리막길이죠. ‘한물갔다’ 싶으면 그 어디서도 찾아주지 않아요. 어린 나이였지만 이 인기와 수익이 평생 가지 못할 거라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가난한 아버지 덕분에 안 교훈이었어요. 인생계획을 잘 세우고 살 것. 가난을 탈출하는 방법이라 생각했습니다.”-가난을 탈출하기 위해 어떻게 행동하고 계획했나.“목돈을 만든 거죠. 엄마가 남대문 옷 가게 직원이었어요. 팔고 남은 옷을 이리저리 천으로 기워 무대의상으로 입고 나갔죠. 비싼 건 절대 안 입었어요. 어느 날 동료 가수가 번쩍거리는 옷 입고 와서 그러더라구요. ‘이 옷이 뭔 줄 알아? 엘비스 프레슬리 백댄서가 무대에서 입던 옷이야. 1500불짜리.’ 그때 얼마나 웃겼던지. 환율이 1달러에 700원이었으니 1500달러면 한국 돈으로 100만원 정도예요. 그 돈이 지금으로 치면 얼마예요. 지방 행사 가도 전 궁색한 티가 났어요. 다른 연예인들 차를 줄지어 세워놓으면 맨 끝에 낡은 백만원짜리 차가 하나 있어요. 저 빼고 다 벤츠 몰았어요. 그때 동료들이 ‘돈 벌어서 어디다 써’ 자꾸 물어댔어요. 저요? 그때 아끼고 아껴 집 샀어요. 어릴 적 집 없이 맨날 옮겨 다니는 게 하도 서러워서. 돈 모아 1980년대에 방배동 아파트를 샀죠.”방미 씨가 1982년 샀던 32평짜리 방배동 궁전아파트 가격은 2500만원. 2년 뒤 4000만원에 여의도 은하 아파트를 구입했다. 1985년 동부이촌동 신동아아파트를 8000만원에 매입. 이후엔 6000만원의 은행 대출을 끼고 방배동 신삼호아파트를 1억5000만원에 사들였다. 1982년부터 86년까지는 아파트값이 천정부지로 오르던 시기다. 처음에 샀던 아파트 가격은 세 배 이상 급등했다. 20대 나이에 집 4채를 보유할 수 있었다.방미 제공-부동산 투기를 한 것처럼 들리는데.“그렇게 보는 사람도 많아요. 노래만 불렀던 제가 부동산에 대해 뭘 알았겠어요? 제가 집 산 지역을 둘러보면 전형적인 ‘부의 길’이에요. 방배동·동부이촌동·여의도···. 전부 서울의 내로라하는 부촌이잖아요. 투자를 알고 한 건 아니었어요. 관심이 생기는 지역이 있으면 계속 지나가면서 관찰했어요. 연예인을 하면 세상 물정 돌아가는 걸 잘 몰라서 부동산에 대해 본인이 관심 갖고 연구하지 않으면 잘 몰라요. 요즘에도 연예인들이 건물 샀다, 부동산 투자했다는 기사가 많이 나는데 사실 진짜 부동산을 움직이는 핵심은 패션디자이너·헤어디자이너들이에요.” -왜 헤어디자이너와 패션 디자이너가 부동산을 움직이나?“그들이 하는 일이 뭡니까. 재벌들 옷 맞춰주고 국회의원 가족들 머리 만져주잖아요. 알짜 정보를 얻는 지름길이죠. ‘서초동에 예술의전당이 들어선다, 청담동에 명품 매장이 생길 예정이다···.’ 지춘희 패션 디자이너는 1만원 정도에 청담동 건물을 사서 1000만원으로 불린 인물이에요. 그럼 그와 인맥이 있는 또 다른 디자이너가 합류하는 거죠. 과거 김지미·정윤희·노주현 등 최고 배우들의 헤어를 디자인해주던 유지승 헤어디자이너라는 분이 있어요. 홍성호라는 성형외과 의사도 유명했죠. 그들이 압구정·청담동에 모여 매장이나 병원을 냅니다. 지금까지 상권이 형성된 것 살펴보면 디자이너·성형외과 의사 같은 분들이 가격 낮을 때 들어가서 매장 내고 동네를 개발한 거예요. 연예인이 건물 사는 건 소문날 거 다 난 다음 일이에요. ”그렇게 젊을 때부터 국내 부동산에 관심을 가져오다 갑자기 노선을 틀었다. 미국에 가서 사업을 하겠다는 꿈 때문이었다. 그가 미국에 처음 간 것은 1984년. LA올림픽이 열렸을 때다. 화려한 도시를 보니 드는 생각이 있었다. ‘10년 정도 연예인을 한 다음 돈 모아 뉴욕에서 살아보겠다.’ 어차피 인기는 오래가지 못할 거라는 걸 매일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연예인은 남에게 보여주는 직업이다. 겉치장에 신경 쓰다 보면 사치를 해야 한다는 점도 성격에 맞지 않았다.10년 전 캐나다를 여행하면서. /방미 제공-1990년 갑자기 미국으로 향했다.“연예계 생활이 맞지 않았던 것 같아요. 연예인이 싫었던 건 아닙니다. 지금도 전 ‘한번 연예인은 죽을 때까지 연예인’이라 생각해요. 우리가 죽으면 신문에 부고 하나는 나잖아요. 누군가 우리 노래를 듣거나 영화를 봤던 기억을 해주잖아요. 특별한 직업이라 생각해요. 하지만 젊은 시절엔 그 일이 너무 짐스러웠어요. 어딜 가나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으니까요. 돈을 벌기 위한 직업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는데 말이죠.“-미국에서는 어떤 생활을 했는지.“사업을 벌이고 부동산을 보러 다녔죠. 쥬얼리샵을 운영했어요. 그 와중에 틈틈이 매매로 나온 건물을 살폈어요. 뉴욕에서 가장 먼저 산 부동산은 트럼프 플레이스입니다. 센트럴파크 서쪽 허드슨강을 끼고 있는 건물이죠. 로열층을 2000년 32만달러(3억7000만원)에 샀어요. 창으로 허드슨강이 내려다보이는 좋은 뷰를 갖고 있죠. 지금 시세가 한 11억~15억원 정도 할 거예요. 주위엔 센트럴파크와 줄리아드대학교(The Juilliard School of music), 컬럼비아대학교(Columbia University in the City of New York)가 있어요. 서울에서는 이 가격으로 이 정도 매물을 구하기란 불가능합니다. 그만큼 서울 부동산 가격이 비싸단 말이죠.”-주얼리샵은 잘됐나.“사업을 하려면 사람들 만나고 영업도 해야 하는데 그걸 못했습니다. 노력을 하지 않은 건 아니에요. 매일 밤 가방이나 구두에 큐빅을 다느라 손가락 마디가 다 굽었어요. 그러다 낮에는 부동산을 보러 다녔어요. 사장이 가게에 없으니 가게가 잘 될 리 없죠. 천성이 부동산 투자자인가 봐요. 그것 말고는 다른 것에는 재미를 못 느끼겠어요. 어릴 때부터 새로운 동네 가면 이 동네는 어떤 사람들이 사는지, 주변엔 무슨 명소가 있는지, 대중교통은 뭐가 있는지 등을 살폈어요. 순수한 호기심이라면 호기심일 수도 있고 또 다르게 보면 본능적으로 돈 버는 걸 연구했던 것 같아요. 예전이나 지금이나 부동산이 돈을 불릴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 생각하니까요.”jobsN-해외 투자를 하다 한국에 들어온 이유는 무엇인가.“이젠 대중들이 저에게 별로 관심이 없어요. 거리를 다녀도 알아보는 이가 많지 않아요. 책(나는 해외투자로 글로벌 부동산 부자가 되었다)도 내야하고 겸사겸사 한국에 돌아온 거죠. 유튜브를 운영하고 있어요. 미국 생활할 때부터 블로그를 운영했는데 습관이 들었나 봐요. 이젠 영상을 올리고 있습니다. 부동산 투자 얘기, 정치 얘기, 연예인 얘기···. 하고 싶은 말을 해요. 댓글 창도 닫아놓고 제 말만 하니까 구독자는 많지 않죠. 재밌으니까 하는 거예요.”-재산이 진짜 200억원인가.“노코멘트할게요. 틀린 말은 아니죠. 하지만 지금은 국내 부동산 자산은 거의 처분한 상태입니다. 논현동에 건물이 있었는데 1층을 10년 넘게 공실로 비워뒀어요. 국내 부동산 경기가 좋지 않아요. 이 기사가 나가면 또 얼마나 많은 비난이 실릴지 모르겠지만, 정부가  지나치게 세금을 많이 걷고 있어요. 자영업자들의 사정이 어렵다 보니 공실률이 높아지고 있고요. 악순환입니다.”-정치적 발언을 하거나 상대 연예인을 비판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성격이 그래요. 솔직하게 말해야 속이 풀립니다. 요즘 한국 사회가 하도 답답해서 한마디 했습니다. 말했잖아요. 한번 연예인은 죽을 때까지 연예인이라고. 대중의 관심을 받고 살았으면 품위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해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요? ‘남 탓하지 마’요. 지금 당신이 처한 상황이 어떻든지 분명 헤쳐나갈 방법이 있습니다. 자신을 믿고 끝까지 돌파해내세요. 구두쇠처럼 한번 살아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글 CCBB 감자깡시시비비랩
연봉 6600만원, 복리후생금 500만원, 안식휴가비 200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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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시 2년 만에 흑자전환에 힘입어 대대적 신규채용 나선 인터넷 전문은행“카카오뱅크 서비스가 시작된 뒤 기존의 은행 앱들이 많이 바뀌었잖아요. 개발자로서 금융계 혁신을 주도한다는 자부심이 있습니다.” 카카오뱅크 플랫폼 기술파트 그레이스(김하은)씨는 경력 2년 차의 서버 개발자다. 유명 소프트웨어 개발 회사를 다니다 지난 5월20일 카카오뱅크로 이직했다. 그는 실무 면접 당시 코드 리뷰가 인상 깊었다고 말했다. “보통 코드 리뷰 면접에선 정답을 맞추는지에 집중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카카오뱅크는 정답 여부 보다 문제 해결 과정을 더 중요하게 평가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면접관과 자연스러운 토론 분위기 속에서 저의 업무 능력을 자연스럽게 보여줄 수 있었습니다.”채널 모바일 개발파트가 일하는 모습 /카카오뱅크 제공조직 문화도 면접 분위기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나이, 연차를 떠나 공동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평적으로 머리를 맞대는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혁신으로 이어지는 것 같아요. 이런 회사에 다닌다는 게 정말 뿌듯합니다.” 인터넷전문은행 카카오뱅크가 경력직과 인턴직(정규직 전환형) 상시 채용을 진행 중이다. 합격자는 6개월간의 인턴 근무 후 정규직 사원으로 전환된다. 채용 공고는 각 파트별 프로젝트와 업무 일정에 따라 수시로 나온다. 비정기적 공개채용도 있다. 6월24일부터 ‘결과 빠른 개발자 공채 2019’로 한차례 공개채용을 할 예정이다. 입사지원서 접수부터 2차 면접까지 전체 전형에 걸리는 시간은 단 2주다. 3년 이상 경력직을 찾는다. 채용 분야는 안드로이드 개발자/아이폰 개발자/QA 담당자/웹 서비스 개발자/서버 개발자/빅데이터 플랫폼 아키텍트/데이터 엔지니어/백엔드 개발자/계정계 IT 담당자/고객센터 IT 담당자/정보계 IT 담당자 등이다. 원서접수 기간은 1차, 2차로 나눠서 이뤄진다. 지원자들은 본인의 일정에 맞는 기간을 선택해 서류를 접수하면 된다.라이언 체크카드와 사내 카페 /카카오뱅크 제공※ 카카오뱅크 결과 빠른 개발자 채용 일정 1차 서류접수기간: 6월 24일 월요일 ~ 6월 27일 목요일 (7월 12일 모든 전형 완료) 2차 서류접수기간: 7월 15일 월요일 ~ 7월 18일 목요일 (8월 2일 모든 전형 완료) 카카오뱅크 채용 페이지 kakaobank.recruiter.co.kr/appsite/company/index 2016년 설립된 인터넷 전문은행 카카오뱅크는 이듬해 정식 출범 이후 꾸준한 성장세를 기록 중이다. 2017년 7월 27일 서비스 개시 첫날 자정까지 18만7000명이 계좌를 개설했다. 이날 수신액은 426억원, 여신액은 200억원을 기록했다. 5일 만에 계좌개설 고객수가 100만명을, 한 달 만에 300만명을 돌파했다. 2019년 5월 말 현재 고객수는 962만명, 수신액은 16조8171억원, 여신액은 10조7126억원(잔액기준)이다. 카카오뱅크는 올해 1분기 65억6000만원의 당기순이익을 거둬들였다. 영업 첫해인 2017년에 1045억원의 손실을 봤지만, 2018년 210억원의 손실로 적자 폭을 줄이고 올해 1분기 흑자전환했다. 카카오뱅크 채용 관계자는 “상반기에 100여명을 신규채용했는데 하반기에도 비슷한 규모로 인재를 영입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현재 카카오뱅크 직원은 정규직과 수습, 인턴을 포함해 약 660명 정도다. 은행연합회에 공시된 2018년 카카오뱅크 지배 구조 및 보수체계 연차보고서에 공개된 직원 평균 연봉은 6600만원이다. 직군별, 경력별 연봉 수준이 상이하며 업계 평균보다 높은 수준이다. 연봉 협상 시 개인의 성과와 역량 평가를 고려해 연봉 인상률에 반영된다.인재영입 홈페이지를 보는 사람 /카카오뱅크 제공◇채용절차 채용 전형은 서류전형, 1차 실무진 면접전형, 2차 경영진 면접전형, 연봉 및 처우 협의, 최종 합격으로 이뤄진다. 직무에 따라 전형을 추가해 운영하기도 한다. 개발자의 경우 코딩 테스트 전형을 서류전형 이후에 한다. 다른 직무도 필요한 경우 과제 전형을 진행한다. 각 직무별 영입 프로세스는 공고를 통해 미리 확인할 수 있다. 모든 전형에서 배수를 정해두고 합격과 불합격을 결정하지 않는다. 면접전형에서 모든 지원자가 탈락할 수도 있고 모두 합격할 수도 있다. 카카오뱅크 채용 관계자는 “지원자를 다른 지원자들과 상대적으로 비교하기보다는 지원자 각각의 역량을 절대적으로 평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모든 전형에서 평가는 ‘실무’를 중심으로 이뤄진다. 실무에 맞닿아있는 질문과 과제들로 평가한다. 변호사나 회계사와 같은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자격증이 필수 조건은 아니다. 단 직무와 관련된 자격증은 가점 요인이다. 지원자의 나이나 학력, 전공 등은 보지 않는다. 인턴사원의 정규직 전환 여부는 인턴 기간 중 직무수행 역량, 문화적 합성(Culture Fit), 성장 가능성을 검토해 결정한다. 카카오뱅크 채용 관계자는 “정규직 전환율을 ‘확률’로 알려드리긴 어렵지만, 장기적으로 함께하는 것을 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카페에서 이야기하는 모습1 /카카오뱅크 제공◇서류전형 입사지원서는 인재영입 팀이 아니라 각 직무별 서류 담당자가 검토한다. 때문에 지원서 작성 시 본인의 경력과 역량에 대해 구체적으로 기술하는 것이 좋다. 입사지원서를 평가하는 ‘독자’가 현업 실무자란 점을 인지하고 작성하는 게 좋다. 입사해 본인이 담당할 업무와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경험과 역량을 자세하게 기술하자. 경력직 사원 영입의 경우 ‘경험 및 경력기술서’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경험 및 경력기술서를 통해 프로젝트와 업무 내용을 상세히 전달한다면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자기소개서 문항 - 카카오뱅크에 입사를 희망하게 된 구체적인 이유는 무엇이며, 입사 후 목표를 기술해 주세요. (최대 1,000자 입력 가능) - 같지만 다른 은행인 카카오뱅크, 본인의 차별화된 역량 및 기술을 근거로 지원한 직무에 적합한 이유를 기술해 주세요. (최대 1,000자 입력 가능) ※‘카카오뱅크가 원하는 인재상은?’에 대한 인사팀 답변 카카오뱅크의 ‘인재상’은 카카오뱅크에 내재되어 있는 4가지 가치와 7가지 일하는 방식에 따라 즐겁게 일할 수 있는 분을 영입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수평은 혁신을 만들어내는 좋은 도구이기 때문에, 수평이 올바로 작동할 수 있도록 서로를 존중할 수 있는 환경, 정보의 투명한 공유를 통해 모두가 동등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수평, 존중, 혁신, 공유의 울타리 안에서 즐겁게 뛰어놀 수 있는 분이라면 카카오뱅크가 찾고 있는 바로 그 인재입니다. ※카카오뱅크가 일하는 방식 1. 생각엔 위아래가 없다. 다름이 있을 뿐. 회의실에서 우리는 어느 곳보다 자유롭다. 2. 가능한 모든 정보를 공유한다. 빠른 판단과 투명한 결정. 우리의 힘이 시작된다. 3. ‘다름’은 언제나 환영한다. 유연하게 생각하고, 함께 완성한다. 4. One Team, One Spirit. 팀플레이를 이기는 개인기는 없다. 5. 우리가 정한다. 무엇을 할지, 무엇을 얻을지. 어디까지 성장할지. 6. 우리는 최고의 전문가 조직이다. 우리는 기꺼이 기준이 되고, 그 기준을 스스로 넘는다. 7. 일하는 방식을 끊임없이 혁신한다. 세상에 없던 은행은 그렇게 태어난다.카페에서 이야기하는 모습2 /카카오뱅크 제공◇1차 실무진 면접 코딩 테스트 등 과제 전형은 서류전형 합격자를 대상으로 실시한다. 입사 후 담당할 업무와 유사한 문제가 나온다. 1차 실무진 면접전형에선 과제 리뷰가 이뤄진다. 실무 면접은 지원 분야 파트장을 포함한 현업 평가자들 4~5명이 면접관으로 참여한다. 면접 시간은 평균 한 시간 정도다. 코드 리뷰가 포함된 개발자 직군 면접은 한 시간 이상이 걸리기도 한다.  1) 경력직 채용 직무수행 역량과 문화 적합성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다. 직무수행 역량은 전/현 직장에서의 경험과 경력 사항에 대해 꼬리물기식 질문을 던지며 파악한다. 지원자 포트폴리오에 나온 과거 프로젝트 수행 사항에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개발자 직군의 경우 제출된 코딩 테스트에 대한 코드 리뷰를 진행하며 자연스럽게 문제 해결 능력을 파악한다. “문제를 왜 그러한 방식으로 해결했나””지원자가 사용한 방식의 장ㆍ단점은 무엇인가” 등 구체적인 답변을 요한다. 지원자는 실제로 본인의 기여도가 높은 프로젝트와 업무를 이야기하는 것이 좋다. 개발자 직군의 경우 제출된 코딩 테스트에 대한 코드 리뷰도 함께 진행한다. 언어와 툴에 대한 활용 능력뿐만 아니라 코드 리뷰라는 과정에 대한 적응력도 함께 확인한다. 2) 정규직 전환형 인턴 채용 직무수행 역량과 문화적 합성 뿐만 아니라 지원자의 성장 가능성이 주요 평가 대상이다. 업무와 관련된 자격증이나 대내외 활동 경험도 중요하지만 업무와 관련된 지식을 쌓고 역량을 기르기 위한 자세를 갖추고 있는지가 중요하다. 배움에 있어 수동적인 모습보다는 자기 주도적인 자세를 보이는 지원자가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 관련 경력이 없기 때문에 삶의 자세, 카카오뱅크 서비스 사용 여부 등 기본적인 질문이 많이 나온다. 최근엔 “지원자 또래에서 카카오뱅크를 사용할 때 느끼는 장단점은 무엇인가”란 질문이 나왔다. ◇2차 경영진 면접 1차 실무진 면접과 마찬가지로 직무수행 역량과 문화적 합성을 확인하는 데 방점을 둔다. 이용우, 윤호영 공동 대표이사와 그룹장 혹은 파트장이 면접관으로 들어온다. 경영진 면접이지만 직무 경험에 대한 질문이 많이 나온다. 지원자의 답변에 꼬리물기식으로 질문이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지원자는 자신의 경험에 대해 매우 구체적인 답변을 준비해 가는 게 좋다. 면접 시간은 30분 내외다. ※2차 면접 질문 사례 -지원자 본인이 해당 업무를 수행함에 있어 중시하는 기준 혹은 가치관은 무엇인가? -지원자 본인이 가진 강점을 키워드로 말하라. 그리고 업무 수행 시 해당 키워드가 발현된 사례를 구체적으로 말하라. -카카오뱅크가 가진 문제점은 무엇인가. 지원자라면 어떻게 해결하겠나.◇모자 쓰고 면접 와도 ‘OK’, 카카오뱅크 서비스에 대한 실질적 고민이 중요 면접을 앞두고 있다면 그 회사의 최근 화두 정도는 알고 가는 것이 기본이다. 최근 카카오뱅크의 화두는 ‘ 천만 고객 달성 이후의 서비스’다. 카카오뱅크 채용 관계자는 “고객 1000만명 돌파를 앞두고 있다”며 “지원자이기 이전에 고객으로써 카카오뱅크의 은행 상품과 서비스를 직접 이용해보고, 어떤 부분이 편리하고 불편한지를 고민해보고 오는 게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면접 복장은 완전 자유 복장이다. 실제로 한 지원자는 2차 경영진 면접 때 두꺼운 패딩에 캡 모자를 눌러쓰고 왔지만 ‘최종 합격’을 했다. 카카오뱅크 인사팀 관계자는 “정장을 입는 것이 마음이 편한 분들은 단정하게 입고 오지만 티셔츠에 반바지를 입고 편하게 오기도 한다"라며 “1, 2차 면접관분들은 면접이 끝나면 지원자가 어떤 옷을 입었는지 기억을 하지 못할 만큼 복장에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있다”고 답변했다.(왼) 회의가 가능한 공간1 (사내 카페), (오) 회의가 가능한 공간2 (그린소파테이블) /카카오뱅크 제공◇본인의 휴식과 성장도 자기주도적으로 설계 카카오뱅크의 복리후생 제도 중 가장 직원 만족도가 높은 것은 ‘자기 주도 마일리지’다. 자기 주도 마일리지는 연 500만원의 현금성 복리후생금이다. 유흥/사행성 업종을 제외하고 국내 모든 가맹점에서 자유롭게 사용 가능하다. 먹는 것을 좋아하면 식당에서, 자전거를 좋아하면 자전거 장비를 구매하는데 사용할 수 있다. 단체상해보험을 가입해 실손 의료비와 진단금을 지원한다. 가입 범위가 본인, 배우자, 자녀를 넘어 양가 부모님까지다. 판교 오피스와 서울 오피스에서 직접 의료비 신청을 할 수 있는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본인과 본인 외 가족 1인의 건강검진도 매년 지원한다. 만 30세 이상은 2년에 한번, 만 40세 이상은 매년 종합검진을 받을 수 있다. 학자금 지원 제도는 자녀의 고등학교와 대학교 등록금을 지원하는 형태다. 초등학교와 중학교는 의무교육 기간이라 별도 지원이 없지만, 4세~7세 자녀에게 2년간 영유아 지원금이, 신청자에 한해 회사와 협약된 어린이집을 지원하고 있다. 유급 보건휴가 제도와 새로운 가족을 위한 지원 제도도 있다.. 유급 보건휴가 제도를 통해 여성 직원은 한 달에 한 번 휴가를 사용할 수 있으며 임신기간 근무 단축, 산전후휴가, 육아휴직 등을 자유롭게 사용하는 분위기다. 8시간 휴가인 연차, 4시간 휴가, 2시간 휴가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왼) 수면실, (오) 회의가 가능한 공간3 (도란도란) /카카오뱅크 제공카카오뱅크의 가장 큰 복리후생 제도 중 하나는 안식휴가와 유연 근로제다. 안식휴가는 근속 만 3년이 되는 날 발생한다. 한 달간의 유급휴가를 지원한다. 여기에 더해 회사는 안식휴가비 200만원도 별도로 지원한다. 또한 유연 근로제의 도입으로 ‘워라벨’ 문화가 안착했다. 개인별 자율 근무시간 관리 프로그램 ‘워크온’을 도입해 직원들이 본인의 출퇴근 시간을 입력한다. 협업을 위해 설정된 집중 근로시간 4시간에 대한 근로를 한다면 그 외 시간에는 출근과 퇴근을 얼마든지 유연하게 할 수 있다.  자유롭고 쾌적한 업무환경을 위한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카카오뱅크는 직급 체계가 없다. 은행업을 하며 필요한 최소한의 직책만이 존재할 뿐이다. 사내에선 영어 이름을 사용하며 수평적으로 커뮤니케이션한다. 또 ‘피곤헷징’이라는 이름을 가진 수면실과 사무실 곳곳에 놓인 안마의자 등이 있다. 카카오뱅크 채용 홈페이지 바로가기 kakaobank.recruiter.co.kr/appsite/company/index  ※카카오뱅크 인사/경영지원 인재영입담당자 클로이 님(recuit@kakaobank.com)이 입사가이드 작성을 도와주셨습니다.글 CCBB 김경민 객원기자시시비비랩
옷 허름하게 입고 명품 매장 찾았다가 직원에게 들은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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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시게요?" 고객 무시하는 명품 브랜드명품 브랜드의 갑질줄 세우고 가격 몰래 올리고구찌(Gucci), 루이뷔통(Louis Vuitton), 샤넬(Chanel)….흔히 명품이라고 부르는 해외 브랜드들입니다. 브랜드 가치, 상품성 등으로 상당한 몸값을 자랑하죠. 그러나 이 몸값과 가치를 빌미로 고객에게 갑질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고객들은 “기분이 나쁘다”, “사고 싶은 마음이 사라진다”고 합니다. 어떤 브랜드들이 고객의 미움을 샀는지 알아봤습니다.◇"그동안 가격이 올랐으니 더 내세요."명품 브랜드는 '본사 정책'이라는 이유로 매년 가격을 조금씩 올립니다. 루이뷔통의 경우 4월 11일 일부 제품의 가격을 평균 3% 올렸습니다. 작년에는 2월, 9월, 11월 세 차례에 걸쳐 가격을 올렸죠. 샤넬은 3월부터 총 462개 품목의 가격을 인상했습니다. 작년에는 네 차례에 걸쳐 가격을 올렸습니다. 본사는 글로벌 정책을 이유로 가격을 올리지만 기준이 애매합니다. 수요가 증가하는 혼수철에 가격 인상 폭이 더 크기 때문입니다.전문가들은 비쌀수록 잘 팔리는 '베블런 효과(veblen effect)'를 노린 전략이라고 설명합니다. 한편으로는 결혼철을 앞두고 인상 소식을 흘려 구매를 유도하려는 것이라고 하죠. 가격 인상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완불 웨이팅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완불 웨이팅은 마음에 드는 물건의 재고가 없을 때 가격을 다 지불하고 제품을 나중에 찾으러 가는 것입니다. 디올과 롤렉스가 물건을 찾으러 온 손님에게 가격이 올랐으니 차액을 지불하라고 해서 논란이 일었습니다. 한 소비자는 롤렉스에서 10개월 전에 돈을 내고 제품이 들어오길 기다렸습니다. 그가 전화를 걸어 찾으러 가겠다고 말하자 가격이 30만원이 올랐다는 통보를 받은 것입니다.디올도 같은 문제로 구설에 올랐습니다. 한 여성이 제품값을 모두 지불하고 구매 대기를 걸었습니다. 롤렉스와 마찬가지로 제품을 찾는 시점에는 가격이 올라 차액을 지불했다고 합니다. 그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가격을 모두 지불했는데도 차액을 내놓으라는 건 배 째라식 영업”이라고 호소했습니다.디올에서 판매 중인 가방(좌), 롤렉스 시계(우) / 디올, 롤렉스 홈페이지◇줄 서서 차례로 들어가세요명품 매장 앞을 지날 때면 줄 서있는 고객들을 볼 수 있습니다. 각 브랜드는 손님 한 명(팀) 당 한 명의 직원이 붙어 응대하는 맨투맨 쇼핑 서비스를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지만 해당 매장을 이용하는 고객들은 불만이 많습니다.명품 매장을 이용하는 김씨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1~3명의 손님을 줄 세우는 건 이해할 수 없다”면서 “다 들어가도 혼잡하지 않은데 명품에 목매는 사람이 된 거 같아 기분이 좋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샤넬을 이용하려던 한 고객은 친구와 오랫동안 줄을 서서 매장에 들어갔습니다. 친구와 함께 각자의 물건을 사려고 하자 직원이 판매원 한 명 당 한 개만 팔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결국 그는 다시 줄을 서서 재입장해야 했다고 합니다.사지 않고 둘러보고 싶어도 매장 안에 점원이 모두 손님을 응대하고 있으면 줄을 서야합니다. 한 고객은 구경만 하고 싶은데 줄서는 정책 때문에 부담스러워서 들어가지 않고 그냥 돌아왔다고 했습니다.매장 앞에 줄 선 사람들 / 조선DB◇겉모습으로 판단하기도명품 매장에 들어갔다가 제대로 응대를 받지 못하는 고객들도 있습니다. 매장에 들어간 손님을 30분이 되도록 아무런 응대를 하지 않는 ‘방치형’, 질문에 퉁명스럽게 대답하는 ‘무안형’ 등 다양합니다. 정확한 제품명을 알지 못하는 고객에게 정색을 하면서 “그건 파우치라고 하는 거예요”라고 답한 직원도 있었죠.고객들은 “투명 망토 쓴 줄 알았다”, “나는 방치했는데 잘 차려 입고 온 사람에겐 웃으면서 응대하더라”, “겉모습과 내역으로 사람을 대하는 것 같아 기분이 나빴다”는 반응입니다. 개그맨 장동민씨도 명품 매장을 갔다가 차별 대우를 당한 경험을 털어놔 화제였죠. 가방을 볼 수 있냐고 물었지만 직원은 “사시게요?”라고 말하면서 제품을 꺼냈고 “다 보셨죠?”라면서 차갑게 대했다고 합니다. 이에 화가 난 그는 가방을 다른 직원에게 구입했다고 합니다.업체들은 직원 개인의 문제라고 책임을 떠넘기고 있습니다. 이런 차별 대우를 받았을 때는 직원을 바꿔달라고 하거나 관리자급 직원을 불러 불편사항을 말하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JTBC 방송화면 캡처◇갑질, 불황에도 매출 증가이런 대우에도 대부분 명품 브랜드 실적은 성장중입니다. 조선비즈에서 작년 실적을 조사한 결과 대부분 두 자릿수 성장을 이뤘습니다. 크리스챤 디올이 51.8%으로 가장 큰 폭으로 성장했고 발렌시아가, 발렌티노, 입생로랑 역시 38% 이상의 성장률을 보였습니다.이어 백화점 명품 판매 비중 확대가 한몫했다고 밝혔습니다. 산업통상자원부 조사 결과를 보면 올해 3월 백화점 매출은 전년 동기보다 2.3% 증가했습니다. 한편 명품 상품군의 매출은 15.7% 증가했죠. 전체 매출에서 명품이 차지하는 비중도 22.3%였습니다. 또 구매 연령대가 낮아진 것도 매출 증가 요인 중 하나입니다. 베인 알타감마 리서치 조사에서 입생로랑의 65%, 구찌, 프라다 매출의 50%는 밀레니얼 세대가 구입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손문국 신세계백화점 부사장은 조선비즈와의 인터뷰에서 "프리미엄과 희소가치 등을 추구하는 고객들 덕분에 명품 시장이 성장세를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글로벌 트렌드에 민감한 젊은 세대들의 구매력이 높아지면서 해외 브랜드가 국내에서도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라고 덧붙였다.글 CCBB 하늘   시시비비랩
"그렇다" 피겨퀸은 부자, 김연아가 15년간 모은 재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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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SBS대한민국에서 단연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스포츠 스타를 꼽으라면 '이 선수'가 바로 생각날 것입니다. 은퇴 후에도 전성기와 같을 정도의 인기를 누리는 전 피겨 스케이팅 선수, 김연아입니다. 피겨 불모지였던 한국에서 기록에 기록을 세우던 그녀는 기적과도 같은 존재였는데요. 그렇기 때문에 출전한 대회마다 수상하며 꾸준히 CF를 찍는 그녀의 수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과연 세계의 최정상인 그녀가 모은 수입은 어느 정도일까요?현역 시절, 1년에만 100억 원대의 수입출처 : 민주일보, 포브스지금까지 그녀의 활동에서 가장 눈에 보이는 것은 수상 경력일 것입니다. 미국의 포브스에 따르면 김연아는 2009년에 각종 대회의 상금, 후원 계약 등으로 약 90억 원의 수입을 기록했다고 합니다. 이후 2010년부터 2014년까지 매년 100억 대의 수입을 올린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특히 2014년에는 약 168억 원으로 세계 여성 스포츠 스타 중 4위의 기록이었습니다.출처 : 엑스포츠 뉴스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하게 되면 매월 100만 원의 연금 혜택 자격과 포상금 및 격려금을 지급받을 수 있게 되는데요. 2010년 밴쿠버 올림픽의 경우 금메달을 획득한 그녀는 총 6000만 원의 포상금을 얻게 되었습니다. 4년마다 6000만 원, 매년 1200만 원의 수입이라면 금메달 획득 이후 매년 2700만 원입니다. 평범한 생활은 가능하겠지만 안무가, 코치 등을 고용하긴 힘들죠. 그런 그녀에겐 '부가적인 수입'이 있었습니다.편당 최고 대우로 알려진 'CF 출연료'출처 : blog 신인평, 샤프란사실 스포츠 스타에게 수상 경력이 가장 돋보이기는 하지만 주된 수입원은 CF 일 수밖에 없습니다. 심지어 김연아와 같은 모든 국민에게 호감을 주는 스포츠 스타는 부르는 게 값일 정도인 모델이죠. 그녀가 본격적으로 시니어 부문 메달 획득과 함께 CF계에도 혜성처럼 나타났는데요. 그녀의 출연료는 편당 최고 대우인 10억 원 이상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출처 : KB 국민, 맥심게다가 김연아라는 광고 모델이 주는 광고 효과는 엄청납니다. 이로 인해 KB 금융그룹, 맥심 화이트골드, 평창수, 잇츠스킨, 제이에스티나 등은 전속 모델로서 장기 계약을 체결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죠. 2007년부터 30개가 넘는 기업의 160편이 넘는 CF를 찍은 그녀는 은퇴 후에도 소비자가 가장 선호하는 광고 모델이기도 합니다.게다가 2010년부터 김연아는 모친이 이사, 본인이 주주로 있는 '올댓스포츠'의 소속이 되어 수익 분배의 영향을 받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전 소속사에 몸담고 있던 3년간의 광고를 고려해보아도 약 1500억 원가량의 수입이 있었을 것으로 보입니다.희비가 엇갈리는 부동산 투자출처 : 한경, 아주경제, 한국일보, 중앙일보그러나 그녀가 소유하고 있는 부동산들은 각각 정반대의 행보를 보이고 있었습니다. 현재 김연아의 거주지로 알려진 고급 빌라 마크힐스는 장동건·고소영 부부, 현빈, 크리스탈, 빅뱅 대성 등이 거주하는 '연예인 아파트'로 소문난 곳인데요. 사생활 보호는 물론 인테리어까지 친환경적이라는 평으로 인기가 많습니다. 현 시세는 30억 원대로, 7년 동안 시세차익이 8억 원인 것으로 알려져 있죠.출처 : 커넬시티, 조선일보반면 인천 송도의 '커넬 워크'는 상황이 좋지 못했습니다. 그녀가 30억 원에 사들인 3개의 상가는 빈 점포가 더 많은 실정이었는데요. 따라서 현재 부동산 가치가 크진 않지만 앞으로 송도의 개발 가능성과 함께 봐야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기부도 월드클래스? 세계에서 4번째의 '기부왕'출처 : gettyimages, instagram @serenawilliams, 연합뉴스이렇듯 김연아는 상금, CF, 부동산에서 화려한 이력을 보여주고 있는데요. 정말 화려한 것은 바로 '기부'였습니다. 미국의 한 캠페인 단체인 '두 썸씽'이 2015년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그녀는 '세계에서 가장 자선 활동을 많이 한 운동선수' 4위에 올랐습니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존 시나, 세레나 윌리엄스 다음이었죠.출처 : 유니세프, 이데일리또한 포브스는 김연아가 2007년부터 2014년까지 기부한 금액이 약 30억 원가량이라고 언급했는데요. 이는 공식적인 기부만을 합한 것이며 비공식 기부, 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는 점을 고려하면 엄청난 금액을 사회에 기부한 것입니다. 은퇴 후 동계 스포츠의 발전과 올림픽 유치를 위해 물심양면으로 노력하는 모습만 보아도 그녀의 진심이 느껴지는 것 같죠.출처 : 중앙일보무엇보다 스스로에 맞서 이겨내는 노력으로 세계 정상까지 올라선 그녀가 은퇴 이후로도 보여주는 모습들이 놀라울 따름입니다. 슬럼프 하나 없이 늘 최고의 무대를 보여주던 그녀는 이제 개인의 기록뿐만 아니라 사회를 변화시켜나가고 있죠. 이것이 김연아만이 가지고 있는 광고의 파급 효과와 연이은 기부가 더욱 강하고 아름답게 느껴지는 이유인 것 같습니다. 앞으로 그녀가 보여줄 앞으로의 행보가 더 기대됩니다.글 CCBB 스마트인컴        시시비비랩
걸그룹→SBS아나운서→미녀 스타강사로 인생이 이렇게 달라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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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침없이 하이킥학창시절에 특정 과목 선생님을 좋아해 본 경험, 다들 있으실 겁니다. 선생님이 좋아지면 나도 모르게 그 과목을 열심히 공부하게 되죠. 선생님을 기쁘게 해드리고, 일취월장하는 실력으로 관심을 받고 싶으니까요. 여기, 학생들의 사랑을 받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선생님들이 있습니다. 선생님에 대한 애정과 성적이 비례한다면 수강생들 전부 좋은 대학에 진학할 수 있을 정도로 인기를 누리는 분들인데요. 짱짱한 실력에 훈훈한 외모까지 갖췄다는 이분들, 과연 어떤 사람들인지 지금부터 알아볼까요?명불허전 사탐 1타, 이지영 선생님스카이 에듀가장 먼저 만나볼 사람은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윤리 교육과 출신의 이지영 선생님입니다. 세화여고 교사를 거쳐 EBS 사탐 강사로 입성한 그는 현재 스카이 에듀에서도 사탐 과목을 강의하고 있죠. 이지영 선생님 강의의 특징은 깔끔한 개념 정리와 한눈에 딱 뜰어오는 깔끔한 판서로 요약해볼 수 있을 텐데요. 특히 EBS 개념완성 강의에서 도입한 필기노트는 핵심을 뽑아 정리해두기에 매우 편리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죠.OSEN166cm로 큰 편인 키, 작은 얼굴에 또렷한 이목구비로 외모마저 아름다운 이지영 선생님은 걸그룹 트와이스 멤버 사나를 닮았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습니다. 정작 본인은 인스타그램 계정이 없는데, 누군가 팬계정을 개설할 정도로 학생들에게 인기도 많죠. 2014년 말 경에는 사탐 분야의 1위였던 최진기 선생님을 밀어내고 당당히 1타 강사로 등극했습니다. 수만휘 / 이지영 트위터선생님이 직접 운영하는 SNS는 인스타가 아닌  트위터인데요. 요팅이나 골프 등, 고급스러운 취미를 즐기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3년 전에는 한 수험생 카페에 '도곡동 EBS 건물 앞에서 맥라렌에서 내리는 이지영 쌤을 봤다'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죠. 작성자가 첨부한 사진 속에는 비 맞은 노란색 맥라렌이 주차되어 있었는데요. 화려한 취미에 슈퍼카까지, 호화스러워 보이는 선생님의 생활은 본인의 노력으로 이룬 것으로, 그의 집안은 오히려 흙수저에 가깝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IMF로 가세가 기울던 때 수해까지 입는 바람에 집을 잃고 초가집으로 이사 가는 일을 겪기도 했다네요. 인피니트 엘이 제자? 이하영 선생님채널예스두 번째 주인공은 서초 고등학교 교사이자 EBS에서 수학 강의를 담당하는 이하영 선생님입니다. 이하영 선생님은 '수포자들의 구세주'라고 불릴 만큼 기본을 탄탄히 다져주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요. EBS에서 가장 먼저 맡은 수업도 왕초보 수학 강의였죠. 원래 꿈이 한의사였다는 선생님은 중학교 때는 공부를 곧잘 했는데, 고등학생이 되자 성적이 많이 떨어졌다고 합니다. 공부를 한 만큼 반드시 성적이 오르는 '정직한 과목'인 수학에 집중하면서 조금씩 성적을 회복했다네요. EBS i이하영 선생님은 쉽게 풀어주는 기초 수학으로도 유명하지만, 귀여운 듯 청순한 얼굴과 시원한 미소를 갖춘 미녀 선생님으로도 잘 알려져 있죠. 그가 아이가 셋이나 있는 기혼자라는 사실을 알고 실망한 남학생들이 한둘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MBC every1 인피니트 쇼타임선생님은 EBS가 아닌 다른 방송에 출연한 적도 있습니다. 2015년 12월 방송된 MBC every1 <인피니트 쇼타임> 4화에 종업원으로 분장한 채 깜짝 등장했죠. 알고 보니 이하영 선생님은 인피니트 엘의 은사님이었는데요. 엘은 "연습생 생활하면서 지칠 때마다 힘을 준 분"이라며 선생님을 소개했습니다. 아직도 매년 스승의 날 찾아가는 것은 물론, 가끔 만나 일상적인 고민도 나누는 사이라고 하네요. 가수, 아나운서 거쳐 스타 강사로, 안미정 선생님경단기 소속의 영어 강사, 안미정 선생님의 이력은 매우 독특합니다. 그는 1999년 한국 최초로 걸스힙합을 표방하며 데뷔한 걸그룹 O-24의 멤버였죠. 핑클, S.E.S. 등 워낙 쟁쟁한 여성 그룹이 많았던 시기였던지라, O-24는 큰 주목을 받지는 못합니다. 결국 2집으로 가수 활동은 막을 내렸고, 안미정 선생님은  SBS 수원 지역 아나운서로 잠시 활약했죠.  경단기이후 TESOL 6개월 과정을 수석으로 수료한 그는 YBM, EBS 등을 거치며 영어 강사로서의 커리어를 시작하는데요. 2011년 경단기(당시 우리 경찰 학원)에 스카우트된 뒤 현재까지, 경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들을 대상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아나운서 출신다운 안정적인 목소리와 정확한 발음, 수험생의 눈높이에 맞춘 친절한 설명 등으로 경단기 영어 선생님들 중 제일 인기가 많죠. 인강 강사들은 종종 과한 포토샵의 프로필 사진으로 놀림을 당하기도 하는데, 안미정 선생님은 오히려 프로필 사진이 미모를 다 담지 못할 정도로 영상이나 실강에서 더 아름답다고 하네요.   그 누나에 그 동생, 김대혜 선생님MBC 나 혼자 산다 / 김사랑 인스타그램2017년 MBC <나 혼자 산다>에 출연하며 박나래 씨의 넘치는 관심을 받았던 김사랑 동생, 기억나시나요? 깔끔한 얼굴에 186cm의 훤칠한 키로 '그 누나에 그 동생'이라는 말을 들었던 김대혜 씨는 2009년 드라마 <신데렐라 맨>으로 데뷔한 모델 겸 배우로 알려져 있죠.인스티즈그에게는 우리가 미처 몰랐던 직업이 하나 더 있었으니, 바로 인강 영어 강사였습니다. 2013년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치과 훈남 닮은 영어 인강 강사'라는 제목으로 몇 장의 사진이 올라오는데요. 사진에는 지금보다 한층 앳된 얼굴의 김대혜 씨가 칠판 앞에서 강의하는 모습이 담겨져 있었죠. 경원대학교 영문과 출신인 김대혜 씨는 능률교육 틴즈업에서 영어 선생님으로 활동했다고 합니다.  '문제로 마스터하는 고등 영문법'이라는 수업과 함께 전용 교재까지 출간했죠. 다만 아직도 강사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지, 계속하고 있다면 어느 학원에 소속인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네요. 글 CCBB 피클시시비비랩
1% 최악의 시청률에도 불구하고 역대급 스타들 배출해낸 프로그램
CCBBLAB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9.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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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tvN '나는 펫'약 12년 전부터 방송을 시작한 '나는 펫'은 방송 시작 이후 많은 인기와 화제를 몰았습니다. tvN이 개국한지 얼마 안 된 데다가 케이블에게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한 인지도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시청률 1%를 넘기는 화력을 보여주었죠. '우리 결혼했어요'와 유사한 포맷에 동거인이 '펫'이라는 설정으로 숱한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지만 많은 스타를 배출한 등용문의 역할을 하기도 했는데요. 어떤 스타들이 역대 '나는 펫'에 출연했을까요?1. 유인나출처 - tvN '나는 펫'유인나는 시즌 1의 출연자 가수 청미의 친구로 잠깐 출연한 경력이 있습니다. 원래는 가수 지망생이었던 유인나가 처음으로 방송에 출연하게 된 것인데요. 출연자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밥을 먹는 등 짧은 출연이었지만 지금과 그대로인 모습이 인상적이죠.출처 - MBC '지붕 뚫고 하이킥' / tvN '도깨비'이후 2009년에 '지붕 뚫고 하이킥'에 출연하며 연기자로서 데뷔하게 됩니다. '지붕 뚫고 하이킥' 다음으로 선택한 '시크릿 가든'이 대박 흥행을 터뜨리며 그야말로 '라이징 스타' 반열에 들어서게 되었죠. 그뿐만 아니라 '인현왕후의 남자', '별에서 온 그대', '도깨비', '진심이 닿다' 등 흥행작에 출연하며 지금은 명실상부 흥행 보증 수표 배우로 불리고 있습니다.2. 김시향출처 - tvN '나는 펫 3' / KBS '스타골든벨'김시향은 전직 레이싱 모델로 이미 인지도가 높은 축에 속했습니다. 한창 활동하고 있는 중에 '나는 펫' 시즌 3에 출연하면서 방송 데뷔를 하게 되는데요. 이 방송을 통해 더욱 큰 인기를 얻은 그녀는 예능과 드라마를 종횡무진하게 됩니다.출처 - instagram @azurer.bumho / @florist_sihyang본격적인 방송 데뷔 후로는 '섹션TV 연예통신'의 MC를 맡기도 하였고, '다 줄거야', '스타일' 등의 드라마에 출연하기도 했습니다. 활발한 연예계 활동을 이어나가던 김시향은 어느 순간부터 방송에서 찾아보기가 힘들어졌는데요. 그녀는 플로리스트로 전향한 후 지난해에는 한 헤어 디자이너와 결혼식을 올렸다고 합니다. 결혼식 당시에는 주례에 황정민, 사회는 정상훈이 담당해 화제이기도 했죠.3. 지호진출처 - tvN '나는 펫 4' / MBC '무한도전'YG케이플러스 소속 모델인 지호진은 '나는 펫' 시즌 4의 출연자입니다. 그녀는 당시 프로그램에서 두 명의 펫과 동거하는 설정이었는데요. 그녀만의 털털한 매력으로 프로그램의 인기를 더했죠. 그녀는 과거 '무한도전'에서 소개팅 상대로 출연하며 화제가 된 적도 있습니다.출처 - instagram @jihojin지난 4월 14일에 결혼식을 올린 그녀는 현재 행복한 신혼 생활을 만끽하고 있다고 하는데요. 헬스 트레이너로 알려진 남편과의 모습은 정말 말 그대로 선남선녀가 따로 없는 것 같죠. 웨딩드레스마저 모델답게 소화하는 모습이 정말 아름답습니다.4. 정가은출처 - tvN '나는 펫 5''8등신 송혜교'로 유명했던 정가은 역시 '나는 펫' 시즌 5가 데뷔작이었습니다. 당시 31세였음에도 불구하고 동안 외모를 뽐내고 있죠. tvN 개국공신이라고도 불리는 그녀는 '나는 펫'을 계기로 '재밌는 TV 롤러코스터'의 한 코너였던 '남녀탐구생활'에 출연하면서 큰 활약을 펼쳤는데요. 이후 '무한걸스', '영웅호걸' 등에 출연하면서 더욱 예능계의 입지를 단단하게 다졌습니다.출처 - instagram @jung_ka_eun한편 정가은은 2016년 결혼 후 지난해 1월에 결별하였는데요. 현재 그녀의 SNS를 보면 딸의 사진이 가득할 정도로 아이에 대한 사랑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육아와 방송, 그리고 모델 활동 모두 놓치지 않는 그녀의 앞으로의 활동 역시 응원합니다.글 CCBB 연예톡톡시시비비랩
멤버들끼리도 치열한 신경전 벌인다는 아이돌 센터자리의 변화
CCBBLAB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9.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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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 육성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대표격인 '프로듀스101'가 곧 방영을 앞두고 벌써부터 그 열기가 뜨겁습니다. 잔인하기로 유명한 '프로듀스101'은 순위로 생존을 결정하는 건 물론 팀의 센터가 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는데요.아이돌 문화에서 그룹의 센터란 절대적인 것은 아니지만 그룹 이미지를 대표하고, 대중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을 수 있죠. 그렇기 때문에 멤버들끼리도 센터에 서기 위해 치열한 신경전을 버리기도 한다는데요. 과연 인기 아이돌 그룹 센터엔 누가 서있는지 낱낱이 파헤쳐 보겠습니다.소녀시대여러분은 소녀시대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멤버는 누구인가요? 우리 모두 같은 멤버를 떠올리실 것 같은데요. 소녀시대의 센터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듯 바로 '윤아'입니다. 윤아는 소녀시대의 비주얼 멤버로, 비주얼 멤버가 센터에 서는 건 가장 보편적인 방법이죠.출처-piterest앞서 말했듯 센터의 이미지가 곧 그룹의 이미지입니다. 외모가 준수하고 호감형인 외모를 가진 비주얼 멤버를 가운데 세워 그룹 이미지를 투영시키죠. 윤아는 데뷔 당시 소녀시대가 추구하는 풋풋하고 소녀 같은 이미지와 가장 잘 어울리는 멤버인데요.출처-sm엔터테인먼트소녀시대 대형의 중심에는 항상 윤아. 무대뿐만 아니라 포토월에서까지 대형을 유지하며 꽃다발 효과를 톡톡히 봤죠. 이제는 가요계 장수 걸그룹이 된 소녀시대. 오랜 시간 동안 활동한 만큼 다양한 콘셉트들을 시도했는데요. 앨범 콘셉트에 맞게 윤아가 아닌 다른 멤버들이 센터에 서는 경우도 종종 볼 수 있습니다.에이핑크출처-뉴데일리다음 주인공도 소녀시대와 같이 비주얼 멤버를 센터에 세우는 그룹이죠. 에이핑크의 센터는 바로 손나은. 손나은은 데뷔 당시 오밀조밀한 이목구비와 여리여리한 몸매로 큰 주목을 받기도 했었는데요. 그 덕에  손나 여신(손나은 여신)이라는 귀여운 별명도 가지고 있습니다.출처-blog smaaw34에이핑크의 경우 원래는 7명으로 데뷔했지만 한 멤버가 탈퇴하게되 의도치 않게 짝수 멤버가 되었죠. 멤버 수가 짝수여서 주로 보미와 손나은이 가운데 자리에 서지만, 에이핑크의 센터가 손나은이라는 사실은 누구도 반박할 수 없을 텐데요.출처-mango손나은은 비주얼도 비주얼이지만 멤버들 중에서도 비율이 좋아 같은 춤을 춰도 눈에 띕니다. 손나은의 춤선은 아이돌 팬들 사이에서도 유명하죠. 그리고 여리여리하고 청순한 이미지를 추구하는 에이핑크의 이미지와 가장 잘 어울리는 멤버입니다.블랙핑크비주얼 멤버가 항상 곧 그룹의 센터, 그룹의 이미지를 대표하는 것은 아닙니다. 몇몇 그룹의 경우 비주얼 멤버와 센터 멤버가 따로 존재하는데요. 이 경우 비주얼 멤버를 뛰어넘는 독보적인 매력이 있는 경우죠. 비주얼도 물론 중요하지만 노래나 퍼포먼스, 콘셉트 소화력은 아이돌에게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조건입니다.출처-yg엔터테인먼트대표적인 케이스가 바로 블랙핑크의 제니입니다. 제니는 팀 내에서 가장 긴 6년이라는 연습 기간을 가지고 있는데요. 덕분에 제니는 랩, 보컬, 댄스 모두 높은 수준에 라이브 실력 또한 안정적입니다. 제니는 독보적인 실력과 매력으로 그룹 기획 당시부터 중심 멤버로 여겨졌다고 하죠.출처-twitter@rroo21블랙핑크에서 제니가 센터 멤버라는 사실은 이미 팬들 사이에서는 유명한데요. 그룹 내 유일하게 솔로 앨범을 발매하고, 무대의상에도 차이를 두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때문에 멤버 차별 논란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죠. 아직 신인 걸그룹인 블랙핑크는 현재까지 센터 포지션 변화는 없지만, 다음 앨범에도 제니가 센터를 지킬 수 있을지 궁급합니다.엑소충처-blog @jrabbit0522엑소 같은 경우에도 가장 잘생긴 비주얼 멤버가 센터가 아닌데요. 엑소의 센터는 압도적인 데뷔 티저 개수를 자랑하는 카이죠. 카이가 등장한 데뷔 티저는 다른 멤버와 비교해 압도적으로 많은데요. 그 이유는 엑소를 기획할 때부터 카이를 센터로 점찍어뒀기 때문입니다.출처-sm엔터테인먼트티저 속 카이는 엑소 멤버들의 이름을 몸에 새겨 넣기도 하며 엑소의 이미지를 카이에게 투영시켰는데요. 특히 연습생 시절부터 춤을 잘 추기로 유명해 군무에서 중간에서 서 중심을 잡아줄 때가 많습니다. 또 주로 곡의 포인트 안무는 카이가 담당하죠.출처-케잇케이,sm엔터테인먼트엑소 곡 중 무대 엔딩이 모든 멤버는 다 누워있고, 카이만 혼자 서서 끝나는 경우도 있는데요. 그만큼 카이가 엑소를 대표하는 이미지를 가진 멤버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카이는 뛰어난 춤실력으로 엑소라는 그룹을 잘 표하기도 하지만 준수한 외모와 큰 키를 가져 그룹 내에서 눈에 띌 수밖에 없는 멤버죠.레드벨벳앨범마다 센터가 변하는 그룹도 있습니다. 레드벨벳의 센터를 당연히 비주얼 멤버인 아이린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은데요. 아쉽게도 레드벨벳의 센터는 아이린 혼자가 아닙니다. 아이린은 얼굴 천재이기 때문에 센터에 서지 않아도 저절로 시선이 갈 뿐이죠.레드벨벳의 경우 발랄하고 경쾌한'레드'콘셉트와 우아하고 성숙한'벨벳'콘셉트를 번갈아가면서 앨범을 발매하는데요. 앨범 콘셉트에 맞게 센터를 정하기 때문에 팬들 사이에서 센터가 누구인지 열띤 토론이 벌어지곤 하죠.출처-twitter@r_lin84비주얼 센터 아이린의 경우 엔딩 요정이라고 불리며 곡의 마지막을 담당하는데요. 슬기의 경우 7년이라는 연습생 생활로 갈고닦은 춤과 노래 실력으로 주로 무대에서 센터에 많이 서죠. 그리고 조이는 레드컵셉과벨벳컨셉을 모두 잘 소화하는 멤버로 레드벨벳 하면 가장 먼저 그녀를 떠올리는 사람도 많습니다.글 CCBB 연예톡톡시시비비랩
행사 끝나고 남은 이 깐풍기 때문에…전 이렇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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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장례식장이라도 전화 안 받으면”···재외공관 직원의 눈물“먹고 남은 깐풍기 어디 갔나. 찾아내라.”“뇌 어느 쪽이 고장 나서 일을 그렇게 하나.”“네가 전화를 안 받아도 괜찮은 순간은 죽었을 때밖에 없다.”외국에 거주하는 한국인을 보호하기 위해 설치한 재외공관. 대사관·영사관·대표부 등이 재외공관에 속한다. 전 세계 재외공관 수는 183곳. 1965년 35개에서 55년 만에 5.2배 늘었다. 재외공관에서 일하는 행정직원은 2017년 기준 3095명. 행정직원은 공무원이 아닌 공공부문 비정규직 근로자다.외교부가 2017년 공개한 ‘재외공관 행정직원 이직 현황’을 보면 2013~2016년 퇴직한 행정직원은 2992명. 이직률은 19.7%였다. 이직 이유는 공관장의 사적 업무 지시나 욕설 등 ‘갑질’ 행위가 가장 많다. 재외공관 행정직원들이 당한 갑질 사례를 알아봤다.Stone Music Entertainment 유튜브 캡처◇구두 닦게 하고 사적 심부름 시킨 무관···“집사나 가정부처럼 부려”A 준장은 중국 베이징 한국대사관에서 근무하는 무관이다. 무관은 주재국 군사 정보를 수집하고 군사 관련 외교를 담당한다. 6월11일 베이징 한국대사관은 A 준장이 5월 말 한국으로 불려가 국방부에서 조사를 받았다고 밝혔다. 그가 현지 행정직원 B씨에게 부당한 지시를 내리고 폭언을 했다는 제보 때문이었다.B씨는 A 준장이 평소 직원들에게 자주 욕을 했다고 폭로했다. A 준장은 B씨에게 구두를 닦으라고 지시하는 등 업무와 관련이 없는 심부름도 시켰다. 또 B씨는 베이징에 살고 있는 무관 부인의 운전기사 노릇도 했다. B씨는 “A 준장은 마치 집사나 가정부처럼 직원을 부렸다”고 했다.A 준장은 갑질 의혹을 부인했다. 그는 “부임 초기인 2018년 부득이하게 직원에게 현금 인출 등을 두어 번 부탁한 게 전부”라고 한국일보에 말했다. “낯선 외국에 나와 있어서 어쩔 수 없이 도움을 받은 것”이라는 설명이다. A 준장은 “사적 심부름이 아니라 공적 업무에 해당하는 합당한 지시였다”고 해명했다.(왼)SBS 유튜브 캡처, (오)조선DB◇행사 끝나고 남은 깐풍기 행방 캐물은 대사지난 3월 몽골 한국대사관에서는 ‘깐풍기 대첩’이 있었다. 정재남 주몽골 대사는 3월 29일 금요일 오찬 행사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갔다. 저녁 8시쯤 정 대사는 행정직원 C씨에게 전화해 “행사 끝나고 남은 깐풍기가 어디 있냐”고 물었다. C씨는 “아르바이트생이 가져간 것 같다”며 “월요일에 다시 확인해보겠다”고 했다. 정 대사는 “그 말에 책임지라”고 했다. 통화가 끝나고 난 뒤에는 카카오톡 메시지로 깐풍기 행방을 거듭 확인했다.C씨는 월요일 오전 출근해 아르바이트생이 아닌 몽골인 직원이 깐풍기를 버렸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C씨는 정 대사에게 사실대로 보고했다. 그러자 정 대사는 “왜 허위로 보고했느냐”며 화를 냈다. ”책임진다고 했으니 책임을 지라”며 폭언도 했다. C씨는 깐풍기의 행방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보고했다는 이유로 경위서를 썼다. 이후 C씨는 1년간 맡았던 업무와 관련이 없는 부서로 자리를 옮겨야 했다.정 대사는 깐풍기 논란이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그는 “요리사가 음식 준비를 많이 해서 깐풍기 재료가 남았다”고 말했다. “국민의 세금으로 산 음식 재료가 없어졌으니 그 경위를 파악해 보라고 시킨 것”이라고 했다. 외교부는 5월 말부터 정 대사에 대한 감사를 하고 있다.◇총영사가 비서에게 “개보다 못해” 폭언하기도 2018년 10월 한혜진 전 삿포로 총영사는 상해 혐의로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한씨는 2016년 3월부터 2017년 8월까지 공관 비서에게 수십 차례 폭언과 폭행을 했다. “개보다 못하다”, “머리가 있나 없나”, “뇌 어느 쪽이 고장 났나”와 같은 말을 했다.한씨의 갑질로 비서 D씨는 스트레스와 우울증에 시달렸다. 현지 병원에서 6개월 동안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진단을 받았다. 외교부는 2017년 9월 한씨의 폭언·폭행을 검찰에 고발하고 11월 그를 해임했다. D씨는 한씨의 폭언이 담긴 녹음파일을 검찰에 제출했다. 파일 개수는 40개, 녹음 분량은 20시간에 달했다.YTN NEWS 유튜브 캡처◇어머니 장례식장이라도 전화 받으라는 영사2018년 사우디아라비아 총영사관에서 근무하던 영사는 사우디아라비아인 직원에게 폭언 등 갑질을 했다. 현지인 직원 E씨는 작년 초 영사로부터 갑질을 당했다는 내용을 담은 탄원서를 외교부에 제출했다. E씨는 탄원서에서 “자동차 와이퍼를 교체해달라는 부탁을 거절하자 영사가 월급을 깎으려 했다”고 주장했다.현지인 직원은 영사의 폭언도 고발했다. E씨는 영사가 “어머니 장례식장이라도 내 전화를 받지 않으면 곤란해질 것”이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전화를 받지 않아도 괜찮은 유일한 순간은 네가 죽었을 때”라고도 했다고 한다. E씨는 또 같은 실수를 되풀이한다는 이유로 영사로부터 퇴직도 강요받았다고 고발했다.비정규직인 행정직원들은 재외공관에서 가장 갑질에 취약하다. 상사의 보복이 두려워 잦은 폭언과 폭행에 시달려도 꾹 참고 일하기도 한다. 이런 재외공관 갑질을 줄이려면 어떤 대책이 필요할까. 투명한 조직 운영 방식이 해결책으로 꼽힌다. 윤종민 충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중부매일에 실은 칼럼에서 “직원들의 업무 배치와 근무 상황을 외부에서 알 수 있도록 조직을 운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수직적인 공직 체계를 수평적으로 바꾸려고 노력해야 갑질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글 CCBB 영조대왕시시비비랩 
27살에 떠난 뒤…월급 130만원 받던 조교의 놀라운 현재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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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류학과 졸업 후 떠난 유학···월급 130만원 받던 미국 대학 조교의 현재 연봉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 황지영 교수한양대 의류학과 졸업 후 20대 후반에 미국 유학우수 강의상·교수상 수상해 미국 학계 인정“한국과 미국 소비자 간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서비스업 종사자를 대하는 태도예요. 미국에선 고급 백화점을 가도 직원들이 손님들을 별로 신경쓰지 않아요. 반면 한국 소비자는 상대적으로 ‘고객은 왕’이라는 생각이 강해요.”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 황지영(42) 교수는 스물일곱에 미국 유학을 떠났다. 30대 중반에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University of North Carolina-Greensboro) 교수직을 얻었다. 학계에선 마케팅 전공 교수이자 리테일(Retail) 전문가로 통한다. 방학엔 한국에 돌아와 도서출판·강연·방송활동 등을 활발하게 한다. 2019년 4월 미래 유통산업 트렌드를 예측한 '리테일의 미래'라는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미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정보통신 기술을 보유한 나라다. 인공지능·드론·빅데이터 분석 등 첨단기술을 이용해 아마존·이케아·우버 등의 글로벌기업이 어떻게 유통과정을 바꾸는지 등을 연구한다. 황 교수의 취미는 쇼핑보다 쇼핑하는 사람들 관찰하기다.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학 황지영 마케팅학과 교수(The University of NorthCarolina GREENSBORO). /jobsN◇국내 의류학과 졸업 후 처음엔 직장생활“2001년 한양대 의류학과를 졸업했습니다. 졸업 후 얼마간 중소 패션회사에 들어가 패션 MD로 일했죠. 인력이 부족한 회사여서 매일 밤 열한시까지 야근하는 삶을 반복했습니다. 오래 일하다 보니 허리가 아파왔어요. 그런데도 병원 가겠단 말을 못 하고 상사 눈치를 살폈습니다. 좀 더 장기적인 비전이 필요했습니다. 돈을 모아 유학 준비를 했죠.”회사에서 받던 월급은 200만원 미만. 월급은 적었지만 배울 수 있는 게 많았다. 직장에서 가장 재밌었던 업무는 데이터로 현상을 분석하는 일이었다. 예를 들어 전년도와 비교해 올해는 어떤 패션이 유행하는지, 똑같은 옷이 특정 매장에서 더 많이 팔렸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지 등을 밤새워 자료를 들여다보며 연구했다. 유통학을 더 자세히 공부하고 싶었다. 2002년 하반기 미국 유학준비를 했다. 2003년 8월 미시간 주립대(Michigan State University) 국제유통학 석사과정을 시작했다.“가족 반대가 컸죠. 집안 형편이 좋은 건 아니었거든요. 공무원이었던 아버지는 제가 일곱살 때 돌아가셨습니다. 미국 대학원 한 학기 등록금은 800만원이었습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모은 돈과 가족 지원을 받아 유학자금을 마련했죠. 언어 때문에 고생 많이 했습니다. 여섯 명이 팀을 지어 세 시간 동안 토론하는데 한마디도 못하겠더라고요. 제 의견을 내는 것도 익숙지 않은 데다 영어가 입에서 나오지 않아 좌절했습니다. 유학 후 1년 정도 잠을 거의 못 잤어요. 20대 후반의 나이에 가족 지원을 받아 유학을 떠났는데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적응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죠.”. /jobsN◇대학원 졸업후 취업좌절···고민 끝에 박사과정 밟아각고의 노력 끝에 나머지 1년은 우수한 성적을 내 장학금을 받았다. 석사를 마친 뒤 미국 기업에 취업할 생각으로 유통 기업 20~30곳에 이력서를 냈다. 전부 떨어졌다. 함께 유학하던 외국인 동기들도 신세는 마찬가지였다. 미국에서 기업이 외국인 직원을 고용하려면 취업비자(H1B)나 각종 절차 증명서 등을 발급해야 한다. 그러나 석사 출신의 외국인을 고용할 곳은 많지 않았다. 서류 지원부터 좌절당하자 오기가 생겼다. 2006년 오하이오 주립대(Ohio State University)에서 박사과정을 밟기 시작했다.“박사 2년 차 교수님이 저보고 수업을 직접 해보라 하셨어요. 일주일에 한 번 50분간 강연했어요. 70명 수강생을 앞두고 모국어도 아닌 영어로 강연하려니 긴장했죠. 하지만 외국인이라 오히려 학생들 반응이 좋았어요. 대다수 미국인들은 태어난 주를 벗어나지 못해요. 한국에선 G마켓 등 온라인 쇼핑이 활발하다, 싸이월드 같은 소셜미디어가 있다는 사례를 소개했죠. 온라인 강국인 한국 이야기에 미국 학생들이 많은 관심을 보였습니다.”미국 대학원에서 박사 과정을 밟는 학생들은 조교를 많이 한다. 조교는 월급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오하이오 주립대학원 조교의 월급은 1100달러(130만원) 정도. 황 교수는 한 달에 약 700달러(80만원)를 집값으로 냈다. 집값을 뺀 나머지 돈으로 생활하기 빠듯했다. 2007년 하반기 이후 금융위기가 닥쳤다. 1달러에 900원 정도였던 환율은 1달러에 1600원 정도로 뛰었다. 한국에서 보내주는 유학비로 2배 비싸진 미국 물가를 감당해야 했다. 황 교수는 지도교수 덕분에 힘든 고학 시절을 견딜 수 있었다.최근 출판한 '리테일의 미래' 책을 들고 인터뷰하는 모습, 2017·2018년 UNCG Teaching Award(UNCG 대학에서 주는 티칭 상)를 수상하고 있는 모습. 황교수는 전체 조교수 중 1명으로 최고의 교수로 선정돼 상을 받았다. /황지영 교수 제공◇미국 지도 교수, 논문 발표회 앞두고 "쿠키 하나도 준비하지 마"“박사 논문을 발표할 때였습니다. 교수님들을 위해 다과라도 준비해야겠다 생각하고 있었어요. 발표 전 지도 교수님이 오셔서 단호하게 말씀하셨어요. ‘쿠키 하나, 생수 한 통도 준비하지 마. 논문 그 자체를 심사하는 거지 그 외의 것은 관심 없다.’ 제가 운이 좋았을 수도 있지만 다른 조교도 마찬가지였죠. 지도교수 생일선물로 머그컵 한 개 정도를 드렸어요. 미국 교육계는 원칙을 중요시해요. 조교를 교수의 사적인 일에 동원한다거나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황 교수는 박사 과정을 마친 후 한국으로 귀국할 계획이었다. 논문 발표가 끝나자 마침 플로리다 대학교(University of Florida)에서 국제 비즈니스 전공 포스트닥터(post doc·박사후연구원)를 모집했다. 박사후연구원은 대기업 직장인 못지않은 넉넉한 월급을 받는다. 황 교수는 플로리다 대학과 2년 계약을 맺은 뒤 연구 성과를 인정받아 계약을 2년 더 연장했다.jobsN포닥 과정 중에는 학장의 추천을 받아 핀란드 알토대학(구 헬싱키경제대학)에서 국제 마케팅을 가르칠 기회도 있었다. 포닥 3년 차에 2012년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 마케팅학과 교수직에 지원했다. 미국 교수 임용 과정은 1년 기간을 두고 이뤄진다. 예를 들어 다음 해 가을학기에 강연할 교수명단을 전년도 상반기에 꾸린다. 후보생을 상대로 여름에 1차면접을 본 뒤 겨울에 2박3일간 면접을 본다. “미국에서는 교수를 한 명 고용하면 최대 20~30년을 함께할 동료라 보기 때문에 꼼꼼히 검증해요. 면접 당일 오후부터 면접관과 미팅을 합니다. 진지한 분위기에서 하는 면접은 아니고 식사를 한다든가 산책을 하면서 대화를 나누죠. 어떤 연구를 하는지, 무슨 계획이 있는지 등을 공유합니다. 편한 분위기지만 흐트러져선 안돼요. 면접단은 30명 정도로 학장·부학장·마케팅학회 교수진 등입니다. 매 순간 태도를 살핍니다. 교수 임용을 할 때 인성을 가장 중요시하기 때문이에요.”황지영 교수는 면접에 합격해 2013년 7월 마케팅 전공 조교수(Assistant Professor of Marketing)로 부임했다. 미국 대학에서 정년을 보장하는 교수직을 얻기 위해서는 보통 두 번에 걸친 까다로운 심사를 통과해야만 한다. 강연한 지 3년째 되는 해와 6년째 되는 해 발표 논문 수·연구 실적·학생 평가 등을 고려해 학교에서 교수 점수를 매긴다. 결혼한 교수들 사이에선 이 심사를 받는 시기에 ‘이혼율이 가장 높다’는 말도 나온다. 하루아침에 대학교수에서 실직자가 될 수 있기에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이다. ◇까다롭다는 정교수 심사과정 모두 통과···연봉은 1억원 이상황 교수는 이 심사를 모두 통과했다. 2019년 정년을 보장하는 부교수(Associate Professor)로 승진해 8월부터 근무할 예정이다. 한국과 달리 미국에는 정년이 없어 교수가 원할 때까지 평생 일할 수 있다. 75세의 노교수도 강단에 설 수 있다. 미국 교수의 연봉은 전공과 경력별로 다 다르게 받는다. 황 교수는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학에서 1억원 이상의 연봉을 받고 있다.2017년과 2018년 2년 연속 UNCG(University of North Carolina at Greensboro) 우수 강의, 2017년 우수 연구자·강의상을 수상했다. 연구실에 틀어박히기보다 현장에서 사람들의 소비성향을 관찰하면서 아이디어를 얻는다. 쇼핑몰에 가면 커피숍부터 찾는다. 자리에 4~5시간씩 앉아 사람들이 물건을 사는 과정을 들여다본다. “미국에선 목소리만으로 음악듣기·쇼핑하기 등의 기능을 갖춘 AI스피커가 생활가전으로 떠오르고 있어요. AI스피커 사용자는 스피커가 없는 소비자보다 평균적으로 400달러 이상 물건을 더 구매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죠. AI스피커 특징 중 하나는 사용자가 정확한 브랜드를 가리켜 주문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휴지가 떨어졌을 때 ‘휴지 주문해줘’라고 하지 ‘크리넥스 시켜줘’라고 안 해요. 여러 브랜드 중 특정 물건을 담는 것은 주인의 취향을 분석한 인공지능이 하는 역할이죠.”(왼)미국 FOX TV와 인터뷰하고 있는 모습·(오)2017년 UNCG의 경영대학 단과대에서 조교수 레벨에게 주는 연구상과 티칭상을 황지영 교수가 수상했다는 기사. /황지영 교수 제공◇"교수라는 직업도 미래엔 위기···앞으로 감성 중요해질 것"인공지능이 가져올 미래를 예측하는 황 교수에게 교수라는 직업의 전망은 어떤지 물었다. 황 교수는 “세계적으로 교수라는 직업 자체가 위기인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 미국에서는 명문 대학의 강연을 쉽게 들을 수 있는 온라인 러닝 플랫폼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아이비리그의 온라인 강의와 주립대학교수가 경쟁하는 셈이다. “학교 자체의 브랜딩과 연구를 강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늦은 나이였지만 미국 사회에 도전한 게 잘한 선택이었다 생각해요. 삼십대 초반까지 자리를 잡지 못해 미래가 불투명했습니다. 박사나 박사후 과정을 밟는다 해도 교수직이 확실해지는 건 아니니까요. 결과적으로 봤을 땐 지금은 웃으며 과거를 얘기할 수 있지만 매 순간 치열하게 살았어요. 앞으로 학생들에게 감성을 가르치는 교수로 남고 싶어요. 인공지능은 미래 대다수 직업을 대체할 거라 여겨집니다. 이런 시대에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감성과 창의력으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야 한다고 말해주고 싶어요.”글 CCBB 감자깡시시비비랩
작년 결혼자격 얻은, 13시즌째 ‘보살팬’ 이끄는 39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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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화신(信)' 홍창화 단장이 말하는 "나의 청춘, 한화 이글스"‘보살팬’. 프로야구팀 한화 이글스를 응원하는 팬들을 지칭하는 별명이다. 오랜 기간 중하위권에서 맴도는 팀 성적에도 오직 ‘최,강,한,화’만을 목이 터져라 외치는 이글스 팬들에 대한 감탄의 의미가 담긴 단어다. ‘엘린이(LG 트윈스의 어린이 팬), ’두린이(두산 베어스의 어린이 팬)’같이 어린이 팬을 지칭하는 말은 있다. 하지만 구단 팬 전체에게 별명이 붙은 것은 한화 이글스가 유일하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오랜 시간 믿고 기다려주는 의리. 보살팬이란 별명은 한화 팬들에게 주어진 일종의 훈장인 셈이다.홍창화 한화 이글스 응원단장/홍창화씨 SNS13시즌 째 보살팬을 이끌며 한화 이글스의 응원을 이끌고 있는 홍창화(39) 응원단장. 그는 2006년부터 지금까지 야구경기가 있는 날이면 늘 한화생명이글스파크(대전구장) 응원단상에 오르고 있다. 한화 이글스는 2008년부터 2017년까지 가을야구에 진출하지 못했다. 최하위를 기록한 해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홍 단장은 팀이 지고 있어도, 역전을 당해도 팬과 선수의 사기를 북돋기 위해 늘 웃는 얼굴로 ‘최강 한화’를 외쳤다. 유니폼 뒤에 ‘信(믿을 신)’이라는 글자를 새겨넣고 팬들에게 팀에 대한 변함없는 믿음을 부탁했다. 팬들은 이런 그에게 ‘창화신(信)’이란 별명을 붙여줬다. 창화신에게 한화 이글스와 보살팬은 어떤 의미일까. 끝까지 포기하지 못하게 만드는 한화 이글스만의 매력은 무엇인지 직접 만나 들어봤다.-한화 이글스와의 인연이 어떻게 시작됐는지 궁금합니다. 한화 이글스 응원단장을 맡게된 계기가 있나요?“1999년에 한화 이글스가 한국 시리즈 우승할 당시 이글스 팬이었던 후배와 함께 호프집에서 경기를 봤는데 너무 재미있는거에요. 그때부터 한화 팬이 됐지만 사실 대전구장에 직관을 하러 자주 갈 정도로 열성 팬은 아니었어요. 제가 한국체대 재학 시절 응원단장을 했었어요. 군대를 다녀온 후 일거리를 찾고 있었는데 마침 한화 이글스 응원단장이 공석이라 오디션이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원래부터 응원하던 팀이었기에 간절한 마음으로 오디션을 봤고, 응원단장으로 선발됐습니다. 운이 너무 좋았죠. 저와 업무상 관계를 맺고 있는 이벤트 회사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어 2008년에는 SK와이번스 응원단장으로 잠시 옮겼었지만, 1년만에 다시 한화로 돌아와 이후 11시즌 연속, 총 13시즌 한화를 응원하고 있습니다.”김인식 감독의 '믿음의 야구'에서 비롯된 창화신(信)/홍창화씨 SNS-창화신(信)이라는 별명은 어떻게 유래한 것인지요.“2006년 처음 응원단장이 됐을 때 한화 이글스를 지휘하던 분이 김인식 감독님이셨어요. 김 감독님의 트레이드 마크가 ‘믿음의 야구’였거든요. 거기서 아이디어를 얻었죠. 선수들은 유니폼 뒤에 자기만의 고유 번호가 마킹되어 있잖아요. 그 당시만해도 응원단장이 입는 유니폼에는 대부분 팀의 우승 횟수가 마킹되어 있었어요. 팀이 지금까지 한번 우승했다면 올해도 우승했으면 하는 마음을 담아 ‘V2’를 새겨넣는 식이었죠. 그런데 저는 뭔가 다른팀과는 차별화 된 무언가를 하고 싶었어요. 고민 끝에 제 이름인 ‘창화’ 글자 밑에 ‘믿을 신’ 한문을 크게 박아넣었죠. 다행히 팬 분들도 좋아해주시면서 감사하게도 ‘창화신’이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야구장에 처음 오시는 팬분 중에는 ‘야신(야구의 신)’처럼 ‘신(神)’ 글자로 오해하시는 분이있는데, 아닙니다. 믿을 신입니다.”-한화 이글스 응원 중에 가장 유명한 것은 8회 공격마다 모든 팬이 일어나 오로지 목소리만으로 ‘최,강,한,화’를 외치는 ‘육성 응원’과 윤향기의 ‘나는 행복합니다’를 개사해서 만든 ‘행복송’입니다. 이 두가지 응원은 어떻게 만들게 되었나요.“육성 응원은 두번째 시즌이었던 2007년부터 시작했어요. 롯데 자이언츠를 대표하는 ‘신문지 응원’이 있잖아요. 우리도 우리만의 색깔을 지닌 응원 구호를 만들고 싶어서 구단 스태프들과 아이디어 회의를 거듭했고, 그 결과 탄생한 게 육성 응원입니다. 처음에는 지금처럼 일사 분란하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점차 팬분들이 열성적으로 호응해주시면서 대표 응원이 된 것 같습니다.‘행복송’은 2011년부터 시작된 응원가에요. 응원가는 각 팀 응원단장이 만드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그 과정에서 구단 스태프나 치어리더, 팬 분들에 이르기까지 주변의 도움을 많이 받아요. ‘이런 곡이 있는데 좋더라. 한번 만들어 보는게 어떻겠냐’고 제안을 많이 해주세요. 행복송은 그 때 당시 사귀었던 여자친구의 어머님이 ‘내가 사우나 가서 즐겨 듣는 곡인데 멜로디가 너무 신난다’며 알려주신 곡이에요. 이렇게 많은 사랑을 받는 응원가가 될 줄 몰랐는데, 참 감사하죠.”홍창화 한화 이글스 응원단장과 한화 이글스의 '보살팬'/홍창화씨 SNS-영화 ‘인디아나존스’ OST를 활용한 정근우 선수의 예전 응원가처럼 유명한 선수 응원가도 많이 만드셨는데, 응원가를 만드는 노하우가 있는지요.“응원가로서 가장 좋은 것은 사람들이 이미 많이 알고 있는 곡이에요. 물론 신나는 곡이여야죠. 많이 알려진 곡이 아니더라도 한번 들으면 계속 머릿속을 맴도는 중독성 있는 음악도 좋아요. 이런 음악들을 찾으려고 늘 노력하고 있어요. 또 중요한 점이 선수마다 플레이 특색이 있기 때문에 여기에 어울리는 곡을 찾는 것입니다. 신인 선수들이나 발이 빠르고 안타를 많이 치는 선수에게는 밝고 경쾌한 음악을 쓰고, 김태균 선수나 최진행 선수처럼 거포 스타일에는 무게감이 있으면서도 중독성이 있는 음악을 찾아 쓰고 있어요. 최근에는 저작인격권 문제로 예전에 만들었던 유명한 응원가를 쓰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서 개인적으로 아쉬운 점이 있습니다. 응원가 한곡을 만들더라도 저작권에 저촉이 되는지 확인해야합니다. 간단한 작업이 아니에요.”-지난해 한화이글스가 3위로 가을야구에 진출하기 전까지 오랜 기간 팀 성적이 좋지 못했는데, 응원단장으로서 힘들지는 않았습니까. 팀이 경기에서 지고 있을 때 팬들의 사기를 올리는 본인만의 방법이 있는지요.“처음에는 힘들었지요. 저도 사람인데요. 응원하고 있는 팀이 지면 당연히 기분이 좋을 리 없지요. 하지만 마지막 경기가 끝나는 순간까지 야구장을 떠나지 않고 열정적으로 응원해주시는 팬분들을 보면 더 힘을 낼 수밖에 없습니다. 팬분들을 위해서라도 제가 지친 모습을 보여선 안된다고 생각해요. 팀이 경기에 지고 있고, 점수차가 크게 나 사실상 역전의 가능성이 거의 없을 때는 팬분들에게 아예 전광판을 보지 말라고 할 때도 있어요. ‘점수판 보지 마세요. 자, 이 경기는 한국 시리즈 7차전 9회말 2사 만루, 점수는 1대 1입니다. 안타 하나면 우리가 우승하는 겁니다’라고 팬분들에게 자기 암시를 하라고 하는거죠. 그러면 팬분들도 힘을 내고 좋아해 주세요. 경기에 지더라도 경기장에 오신 분들은 즐거울 권리가 있습니다. 응원단장은 거기에 힘을 보태는 역할이라고 생각해요.”-그동안 한화 이글스가 우승권 성적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팬들의 지지가 계속되는 원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다른 야구팀과 차별화된 한화 이글스만의 매력은 무엇인가요.“예전부터 한화는 ‘인간미 넘치는 야구’를 했다고 생각해요. 선수와 코칭 스태프, 프론트 직원까지 모두 정이 많고 거기서부터 이글스 야구의 원동력이 생겼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끝날 때 까지 끝나지 않은 야구’라는 특색이 더해졌습니다. 지고 있어도 ‘이대로 쉽게 질 것 같지는 않은데’란 생각이 들게끔 경기가 끝날 때까지 쉽게 포기하지 않아요. 그러다보니 막판에 지고 있던 경기를 역전하는 경우가 종종 있고 그런 모습에 팬분들도 환호해 주시는 것 같습니다.”열정적으로 응원하는 한화 이글스의 팬들/홍창화씨 SNS-한화 이글스 ‘보살팬’만의 특징이 있다면 무엇일까요.“팬분들 역시 정이 많아요. 가끔씩 경기에서 큰 점수 차로 지고 있을 때는 오히려 팬분들이 저더러 힘내라고 외쳐주세요. 저도 사람인지라 정말 가끔씩 표정관리가 안될 때가 있어요. 예를 들어 팽팽한 경기에서 우리 팀이 무사만루 찬스를 맞았어요. 마침 타순도 중심 타순인 거에요. 이 상황에서는 점수를 꼭 내줘야 하거든요. 그런데 삼진 나오고 이어서 병살타가 나오면 저도 힘들지요. 그럴 땐 응원석 주변에 앉아계신 분들이 ‘곧 역전할 거에요, 힘내세요’라고 외쳐주세요. 너무 고맙죠.”-기억에 남는 팬이 있나요?“특별히 저를 좋아해주시는 팬 중 상당수가 남성분이세요. 10명 중 8명은 남성팬이시거든요. 그래서 여성 팬분들이 저를 좋아해주시면 기억에 남는 경우가 많죠. 10년전 쯤 여중생 두명이 제 팬이라고 해주셔서 ‘그럼 너가 팬 1호, 너는 팬2호 해라’라고 했던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최근에 이 학생들이 각자 결혼해 아기를 안고 경기장을 찾아와줬어요. 너무 고맙고 행복했어요. 한편으로는 세월이 눈 깜짝 할 사이 흘렀구나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13시즌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는 무엇인가요. 가장 행복했던 순간과 힘들었던 순간은 언제였나요.“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는 2006년 준우승 당시 한국시리즈 6차전 마지막 경기에요. 그 해 우리팀엔 류현진 선수도 있었고 야구를 너무 재미있게 했었어요.준플레이오프부터 올라가서 한국시리즈에서 삼성 라이온즈와 만났었죠. 1승 1무 3패로 뒤져있던 6차전 경기에서 저희가 3대2, 1점차로 지고 있었는데 9회말 마지막 공격에서 1사 만루 찬스가 있었어요. 안타 한방이면 끝내기 역전이 가능해서 기대치가 엄청 높았었죠. 그런데 타석에 들어선 용병 클리어 선수가 내야플라이로 아웃돼 2아웃이 됐고, 이어 타석에 선 데이비스 선수가 삼진으로 아웃되면서 경기가 끝났어요. 응원단장으로서 첫 해였고 우승을 눈앞에서 놓쳤던 경기라 아직도 기억이 생생해요.”홍창화 한화 이글스 응원단장/홍창화씨 SNS-응원단장으로서의 하루 일과에 대해 시간대별로 말씀해주세요.“저희는 주로 야간 경기를 하기 때문에 일반 팬분들과는 하루 시계가 조금 다를 거에요. 기상 시간은 9시 정도입니다. 아침먹고 정오까지는 개인 체력 단련을 하거나 여가 생활을 하는 편이에요. 점심먹고 오후 1시~2시 사이에 경기장으로 출근합니다. 그날 경기에서 할 응원 계획을 점검하고 오후 5시쯤 직원 식당에서 가볍게 이른 저녁을 먹습니다. 보통 6시 반에서 9시 반정도까지 경기를 하고 밤 10시에 야식으로 허기를 달래죠.경기가 없는 날에는 기업 체육대회나 레크리에이션 행사에 참여하기도 합니다. 프로야구가 열리지 않는 겨울에는 농구나 배구 같은 다른 종목 경기에 응원단장으로 뛰고 있습니다.”-응원단장 직업의 보수는 얼마나 되는지요.“보수는 한달에 한번 월급 방식으로 들어옵니다. 경기 수에 비례해서 수입이 들어오기 때문에 달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는 편이에요. 구체적인 보수는 팀마다 다르고 경력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자세하게 말씀드리긴 힘들 것 같습니다.” -올해 만으로 서른 아홉입니다. 응원단장으로서 언제까지 한화 이글스와 함께 할 계획인지요. 앞으로의 계획이나 소망을 말씀해주세요.“영광스럽게도 한화 이글스의 응원단장으로 10년 넘게 일하고 있습니다. 작년에는 응원단장으로 뛴 경기가 1000경기를 넘어 기념 시구를 하는 기회를 얻기도 했습니다. 체력이 닿을 때까진 응원 단상에서 내려오고 싶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한화이글스가 우승하는 모습을 꼭 보고 싶어요. 작년에 오랜만에 가을 야구에 진출했는데 가을 야구 맛을 한번 보니까 우승하는 것까지 꼭 보고 싶습니다. 또 한가지 바람이 있다면 5~6년 후에 한화 이글스의 신축구장이 개장될 예정인데 새로운 경기장에서도 꼭 응원을 펼쳐보고 싶어요.”홍창화 한화 이글스 응원단장/홍창화씨 SNS-아직 미혼입니다. 팀 성적이 안좋을 때 ‘한화 이글스가 가을 야구 진출하면 장가가겠다’고 팬분들과 약속하셨었는데, 작년 마침내 가을 야구에 진출했습니다. 결혼 계획은 있으신지요.“이제 장가갈 수 있는 자격을 얻은 셈입니다. 지금은 언제든 좋은 배필만 만나면 결혼할 생각이 있습니다. 갑자기 결혼 발표가 날 수도 있습니다. 지켜봐주세요.”-한화 이글스는 본인에게 어떤 의미인지,  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한화 이글스는 제게 단순 직장을 넘어서 정말 많은 의미를 지닌 팀입니다. 굳이 한 단어를 꼽자면 ‘청춘’이 가장 어울릴 것 같네요. 20대 후반부터 30대 전부를 함께 한, 제 청춘같은 팀이 바로 한화입니다.열심히 목이 터져라 응원해 주시는 팬들께는 정말 한분 한분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작년에는 성적이 좋아 이기는 경기를 많이 한 반면, 올해는 아직까진 성적이 그리 좋지 않은 편입니다. 하지만 언젠가 기회는 반드시 옵니다. 찬스가 왔을 때 한화가 치고 올라갈 수 있도록 팬 여러분들도 조금만 더 힘내시고 지금처럼 열정적인 응원을 부탁드립니다. 물론 경기가 이기면 기분 좋고 신나지만 진정한 응원은 팀이 지고 있을 때, 성적이 좋지 못할 때 하는 응원이라고 생각합니다. 힘든 시기에 해주시는 응원이 선수들에게 더 힘이 될 것입니다.”글 CCBB 이준우시시비비랩
파리바게뜨 원조 라이벌로 불렸지만...어느 순간 사라져버린 빵집
CCBBLAB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9.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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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일요경제여러분이 가장 선호하는 빵집 브랜드는 무엇인가요? 개성 있는 빵을 만들어 파는 작은 베이커리들도 매력적이지만 갑자기 출출할 때, 어느 정도 보증된 평균적인 빵 맛을 원할 때는 파리바게뜨나 뚜레쥬르만 한 곳이 드물죠. SPC와 CJ 푸드빌이라는 거대 식품 기업의 작품인 이 두 브랜드가 지금은 국내 베이커리 프랜차이즈의 양대 산맥처럼 여기지고 있는데요. 뚜레쥬르보다 앞서 전 국민의 입맛을 사로잡으며 파리바게뜨의 라이벌 역할을 해왔던 브랜드가 있었으니, 바로 크라운 베이커리입니다. 한때는 동네마다 있었던 크라운 베이커리의 빵 맛에 길들여진 분들도 꽤 계실 텐데요. 그 많던 크라운베이커리는 대체 다 어디로 간 건지, 지금부터 그 사연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국내 최초의 제빵 프랜차이즈출처: SBS 뉴스크라운 베이커리는 국내 제과·제빵 프랜차이즈 브랜드의 원조격입니다. 1988년 크라운 제과에서 탄생한 이 브랜드는 같은 해 10월, 별도 법인으로 분리되어 나오면서 본격적인 전성기에 돌입하죠. 어느 지점에서나 같은 빵 맛을 볼 수 있다는 것이 매력으로 작용해 국민들의 큰 사랑을 받게 된 크라운 제과는 90년대를 주름잡는 브랜드로 성장합니다. 90년대 초반 제빵업계에서는 최초로 TV 광고를 시작했고, 전성기 크라운 베이커리의 가맹점 수는 800여 개에 달했죠. 특히 대패로 깎아낸 듯 얇게 슬라이스 한 화이트 초콜릿이 올라간 생크림 케이크가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IMF, 그리고 경쟁업체의 성장언제까지나 한국 대표 빵집 브랜드로 남아있을 것 같았던 크라운 베이커리도 어느 순간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합니다. IMF로 수많은 국내 기업이 휘청대던 1998년, 크라운 베이커리의 모회사 크라운 제과도 부도 위기를 맞게 된 것이죠. 크라운 제과는 5년여 만에 정상화되었지만, 그동안 크라운 베이커리의 입지는 크게 줄어 있었습니다. 크라운 제과와 같은 해에 체인점 사업을 시작한 파리바게뜨, 1997년 등장한 후발주자 뚜레쥬르가 이미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시장을 장악한 뒤였으니까요. 출처: 머니투데이 방송 / 중앙일보1,000억 원에 달하던 매출액이 반 토막 나고, 매장 수도 8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들자 2012년 크라운 제과는 크라운 베이커리를 합병합니다. 크라운 베이커리를 살리기 위한 마지막 심폐소생술이었지만 회생의 기미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크라운 베이커리의 적자 때문에 크라운 제과마저 휘청할 지경이었죠. 결국 2013년 9월, 크라운 베이커리의 철수가 공식 발표되기에 이르렀습니다. 가맹점주들과의 갈등출처: 이지경제시장 상황의 변화로 브랜드가 뜨고 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지만, 크라운 베이커리의 경우 왕관을 내려놓고 퇴장하는 과정마저 그다지 아름답지 못했습니다. 사업 철수에 대한 공식적인 발표가 있기 전 본사 측에서 취한 조치가 가맹점주들의 반발을 불러일으켰죠. 본사가 공급 제품을 줄이거나 공급 가격을 최대 54%나 인상하는 등 사업 포기를 유도하기 위해 압박한다는 것이 점주들의 주장이었는데요. 이에 대해 본사는 "경영상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베이커리 사업을 철수할 계획은 없다"면서 "본사의 손실 최소화를 통해 경영정상화를 이루고, 가맹점주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상생의 발전 방안을 찾아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죠. 출처: SBS CNBC 백브리핑 시시각각그러나 해당 내용이 보도된 지 3개월 만에 사업 종료를 아리는 공문이 각 가맹점에 발송되었고, 크라운 베이커리는 역사와 추억 속으로 사라지게 됩니다. 본사는 가맹점별로 최대 2,000만 원까지 보상해주겠다는 조건을 내걸었지만, 이 역시 점주들의 환영을 받지는 못했죠. 다른 제과 브랜드로 전환하려면 적어도 1억 원 이상의 돈이 든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었습니다. 추억 속의 화이트 초코케이크출처: Paxx Style크라운 베이커리는 이제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지만, 여전히 크라운 베이커리의 빵 맛을 그리워하는 소비자들도 있습니다. 특히 브랜드의 시그니처 메뉴로 각인되었던 화이트 초코 케이크가 문득문득 생각난다는 글이 가끔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오기도 하죠.네이버 카페"촉촉 달달 부드러운 크라운 베이커리의 화이트 초코 케이크가 너무 먹고 싶다"거나  "파리바게뜨와 뚜레쥬르에도 비슷한 제품이 있지만 그 맛이 아니다"라며 아쉬움을 표하는 사람이 꽤 많은데요. '강렬한 추억의 맛'을 그대로 재현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닌가 보네요.글 CCBB 스마트인컴시시비비랩
수억원 들여 입점 쾌재 외쳤던 백화점 매장, 하루 아침에 사라진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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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비즈, 경남신문백화점에 입주하는 것은 브랜드의 이미지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이 브랜드는 백화점에 들어올 수 있는 수준의 브랜드구나 하는 생각을 하는 거죠. 그래서 백화점에 입점하고 싶어 하는 브랜드, 제품이 참 많은데요. 막상 백화점에 입점한 업체들은 입주 자체가 까다로웠을뿐더러 늘 '을'의 입장에서 위기감에 시달린다고 하죠. 왜 그런 걸까요? 함께 알아보시죠. 1. 백화점 입주 기준뉴스토마토, 테크홀릭우선 백화점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현대, 롯데와 같은 백화점에 입주하기 위해서는 어떤 조건을 만족해야 할까요? 각 백화점에 입주하기 위해서는 입점 상담을 요청해야 합니다. 이후 입주하고자 하는 브랜드의 백화점으로부터 브랜드 평가를 받은 후 입점 가불가 여부를 평가받게 되죠. 평가항목은 백화점마다 조금씩 다릅니다.인테리어 라이프, 현대백화점현대백화점은 브랜드의 상품력과 기획력, 영업력 그리고 판촉력을 주로 평가합니다. 상품력에는 상품의 품질과 고급성부터 트렌드 반영도까지 살피죠. 기획력은 제품의 개발·공급 능력이 있는 회사인지, 브랜드 인지도와 가격경쟁력이 있는 회사인지가 주된 평가 항목입니다. 영업력은 업체의 조직 구성과 백화점 영업 경험을 보고 판촉력은 앞으로 성장 가능성이 있는 브랜드인지도와 앞으로의 판촉계획을 고려합니다.롯데백화점, 전자신문롯데백화점도 현대백화점과 대체로 비슷한 평가항목을 갖추고 있습니다. 다른 점은 브랜드의 콘셉트를 중요시 여긴다는 것이죠. 또한 브랜드의 경영능력과 회사의 자금력을 살피는 점이 현대백화점과 다른 점이었습니다. 백화점이 제시하는 조건에 부합한 업체는 본격적으로 계약서를 작성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 계약서에 문제가 많았죠. 2. 갑의 위치에 있는 백화점Newsnack백화점은 유통업계의 갑으로 군림하고 있습니다. 이는 입점업체와 백화점 간의 계약서에 등재된 내용으로 알 수 있죠. 뉴스 1의 보도에 따르면 한 백화점은 입점 업체가 퇴점 통보에 항의하자 용역 업체를 통해 강제로 반출했다고 보도했습니다.일요신문, 아시아경제당시 백화점은 "'을'이 계약 종료 후에도 자기 소유물을 반출하지 않을 경우 '갑'은 '을'의 책임과 비용 부담 아래 '을'의 주소로 이를 반출할 수 있다"라는 약관 조항을 들었습니다. 입점업체는 매장 설비 비용 보상을 요청했지만 비용 보상은커녕 퇴출 과정에서 기존 제품도 손상되고 말았죠.한겨례, Mr MONK _네이버블로그공정거래 위원회의 조사에 따르면 입점업체와 백화점 간의 계약서에는 입점업체에 불리한 약관조항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입점업체의 매출에 큰 영향을 주는 매장 위치와 면적도 백화점 측에서 '건물 관리 운영상 부득이한 경우'라는 포괄적인 이유를 들어 바꿀 수 있도록 했죠.노르딕앤,매장 운영에 필요한 기본적인 설비 또한 입점업체가 부담하도록 되어있었죠. 또한 입점 계약이 중도에 해지되더라도 백화점은 입점 매장이 설치한 설비비용을 보상할 의무가 없다는 규정을 달았습니다. 백화점에 잘못 보였다간 매장 위치도, 면적도 불리한 곳에 배치되고 설비 비용이 추가 지출되는 데다가 언제 계약이 해지될지 불안해해야 했죠. 3. 개선되어가는 갑질 계약서 현황매일경제, 조선일보다행히 위의 불공정한 약정 항목은 공정위 약관 심사를 통해 시정되었습니다. 입점 업체들의 경우 한자리에서 안정적으로 장사하는 것이 중요하죠. 공정위는 입점업체들을 위해 매장 이동을 여름, 겨울 등 시즌을 위한 상품 전면 개편과 같은 때에만 백화점이 매장의 위치를 조정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또한 잦은 매장 위치 변경을 지시하는 백화점의 징벌적 매장 변경을 방지하기 위해서죠.한국일보, YKTM_네이버블로그, 서울신문또한 백화점 요구로 입점한지 1~2년 내에 매장을 이동해 인테리어 비용이 발생할 경우 백화점이 해당 업체의 입점 기간을 일정 기간 보장하도록 했습니다. 퇴점 또한 입점업체의 책임이 분명한 경우가 아니라면 설비비용을 백화점을 보상하도록 했죠. 매점 이동과 퇴점의 기준 또한 표준 계약서에 상세히 공지하도록 했습니다. 이처럼 백화점과 입주업체간의 계약서는 조금씩 개선되어가고 있죠.유진투자증권, 중앙시사매거진유진투자증권은 고용에 대한 우려 때문에 소비자심리지수가 하락하고 있다는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소비자들이 필수 지출 항목을 제외하고는 소비를 축소하고 있는 것이죠. 때문에 편의점이나 대형마트 등의 오프라인 유통채널의 매출이 감소하고 있는 상황입니다.유진투자증권, CNB저널하지만 백화점은 오히려 오프라인 유통채널임에도 매출이 증가했죠. 이는 해외 명품 브랜드의 매출액이 두 자릿수 상승률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백화점과 명품은 주 소비계층이 경제적 여유가 있는 상류층과 편의점, 대형마트 주 소비계층의 소득격차가 커진 것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결국 백화점이 까다로운 조건을 내세워도 업체는 더 많은 수익을 위해 입주할 수밖에 없겠네요.글 CCBB 피클        시시비비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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