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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독일 국민수신기 'VOLKSEMPFÄNGER'
이베이에서 구매한 독일의 '국민수신기/국민라디오' 뭔 물품 이름이 이러겠냐 싶겠지만 공식명칭이 국민라디오 맞음. '폴크스엠팽어(Volksempfanger)'가 공식명칭이고 Ve301로 불리기도 했는데 Volks Empfanger의 약자+나치당이 정권을 잡은 1933년 3월 1일을 뜻함. 히틀러와 나치당은 1933년에 완전하게 독일의 의석 과반석을 차지하며 정권을 잡게 됨. 바이마르 공화국을 무너뜨리고 나치독일이 성립되었지만 국민의 지지가 있다고 해도 그 지지율을 확고하게 만들 필요가 있었음. 언제든 불빛이 희미해지고 어둠이 내리면 펜 대신 총을 잡고 전 국민이 독일을 위해 전선으로 뛰어들 준비가 될 정도로 사상까지 무장시켜야 했기에 끊임없는 교육과 사상검증으로 국민들이 자신들의 의견에 동조하는지 확인해야 했지. [국민라디오 등장 이전 초저가 라디오 NORA의 E82W] 때문에 나치당은 1920년대부터 급속히 발전한 라디오라는 매체에 주목했음. 전파를 이용해서 전국에 목소리를 송출한다는 점은 어마무시한 선전 효과를 가지고 있었으니까. 다만 아무리 싸도 150제국마르크에 해당하는 라디오 값이 문제였음. 당시 노동자들 월급이 120에서 150제국마르크였는데 수치상으로는 한달 치 월급이지만 지금과 구매력도 다르고 사회복지도 전무하던 때라 최소 2배에서 3배는 비싸게 느껴질 수밖에 없지. 참고로 당시 1933년 나치독일 물가 기준은 1. 호밀빵 한 덩어리는 0.3 제국마르크 2. 우유 1리터에 0.2 제국마르크 3. 계란한개 0.1 제국마르크 4. 감자 1kg에 0.06 제국마르크 이런 상황에서 150제국마르크를 국민들이 사게끔 만드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음. 때문에 나치당은 위 사진의 NORA사의 E82w라는 1929년에 출시한 굉장히 값싸고 단순한 라디오에 주목했음. 수신기와 스피커가 분리된, 배터리로 작동되는 단순한 장치였는데 이는 라디오를 굉장히 싸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이 없지는 않았다는 것. 때문에 나치당은 설계자 오토 그리싱에게 다음과 같은 제원을 요구함 1. 중파am와 장파lw 수신이 가능할것 2. 스피커와 본체가 같이 붙어있을 것 3. 수신률은 독일 어느 곳에서든 수신이 가능할것 4. 그러면서 가격은 80제국마르크를 넘지 않을 것 쉽게 말해 오토바이 만들 돈으로 경차 만들라 뭐 이런 거 [크기비교로 보드마카 둠. 이 시대 라디오들 특성상 크기는 거대함] 그래서 오토 그리싱은 과감한 원가절감으로 라디오 설계를 해냄 1. 외장은 손이 많이 가는 목재 형식 대신 틀로 빠르게 찍어낼 수 있는 베이클라이트(초기형 플라스틱)로 만든다 2. 슈퍼헤테로타인 방식 대신 TRF방식 사용. 노브를 돌려 주파수를 맞추는 방식이 아닌, 더 구형의 방식인데, 원하는 주파수대역으로 노브를 돌려 신호를 잡고 정밀조정 노브로 한번 더 감도를 맞추는 방식임 3. 단파 수신기능을 제거한다 4. 내장안테나도 꺼져 5. 스피커도 음량조절기능도 없이 소리만 나오게 하면 됨 그리고 이 제품을 '제 10회 대독일 라디오 박람회'에 시연하였음 1933년 8월 18일부터 27일까지 열린, 목조건물로 된 '그로스도이체 풍커슈텔룽' 즉 대독일 라디오박람회 베를린 전시장에 총 59가지의 라디오들이 전시되었는데 그 중 위 사진과 같이 초기형 Ve301 몇대가 전시되었음. 전시회의 주인공은 VE301이라는 듯이 거대한 대형 글자판이 세워졌고 제작에 참여할 28개 회사 중 몇몇 회사의 간부들이 출시를 발표함. 독일을 대표하는 라디오답게 전면에는 제국수리가, 이후 모델에는 하켄크로이츠도 들어갔음. '제국의 국민은 모두 총통의 소리를 듣는다' 이후 판매되기 한달 전부터 독일 전역 전자제품 상점마다 포스터가 나붙었고 판촉 사원들까지 사전판매를 시도했음. 이 방식은 제대로 먹혀들었는데, 출시 당일 초도생산물량 10만대가 완판되어버림. 그리고 추가 생산한 20만대도 며칠만에 매진되었고. [성탄시즌 연말연시. 독일 주파수 설명서 N.S FUNK의 표지를 장식한 VOLKSEMPFANGER] 연말에는 30만대가 추가 생산되었는데 이 또한 크리스마스 기간에 완판됨. 이렇게 된 이유는 독일 정부가 국민 대상으로 보증을 서줬기 때문인데 76제국마르크를 한번에 쓰기 힘든 국민들을 고려해서 할부판매를 계획함. 나치독일에서 유일하게 시행했던 이 라디오 할부판매는 라디오 상점에서 VE301을 구입하면서 동봉된 서류에 서명하면 정부가 구입자를 대신해서 라디오 값을 즉시 전기회사에 대납하고 이후 구매자가 전기 요금과 함께 요금을 정부에 납부했는데 7.25 제국마르크씩 18개월 할부와 함께 4.40제국마르크가 추가된 형식으로 실제로 총 소모되는 비용은 86.45 제국마르크였음. 현금 지불 가격보다 14% 높았지만 구매율은 떨어질 줄 몰랐다고 [후면 모습. 구멍은 진공관이 내뿜는 열을 환기시키기위해 뚫어놨고 내부에는 마그네틱 라우드 스피커가 보임. 규정규격이 있기에 28개 전기회사에서 만든 라디오들은 모두 품질,생김새,재질이 동일했음] "라디오를 구입한 첫날 저녁에 내가 얼마나 놀라고 기뻤는지 모릅니다. 매우 원시적인 실내 안테나가 있어도 쾨니히스베르크, 비엔나, 슈튜트가르트, 그리고 여러 외국 방송들을 매우 강한 수신률로 청취할 수 있었습니 다. 그리고 지붕 높은 곳에 안테나를 장착한 지금, 국민라디오에는 거의 모든 원하는 방송을 저녁 시 간에 청취할수 있습니다." -기술 컬럼 N.S FUNK의 소비자 평가 [내부모습. 맨 위에는 마그네틱 라우드 스피커, 밑에는 정류관,증폭관 등의 진공관과 배선판, 전압선택판, 커패시터 등이 보임. 구조가 굉장히 단순함] '정부에서 선전목적으로 발행했고 해외방송을 듣지 못하기 위해 감도를 의도적으로 낮추었다'라는 말이 있는데, 실상은 단순히 해외방송국의 안테나 출력이 생각보다 낮은데다 VE301 가격 특성상 고수신율을 발휘할 성능이 안되었기 때문에 생긴 오해. 선동방송을 위해 라디오를 전국에 배포했듯이 독일 라디오 방송은 20퍼센트를 선동, 80퍼센트를 오락/음악/뉴스로 채웠음. 음악은 주로 히틀러가 좋아했던 바그너의 클래식이 연주되거나 행진곡, 장엄한 곡들이 연주되었음. 다만 교묘하게 중간중간 선동방송을 배치해서 라디오를 들을 때 선동방송을 들을 수밖에 없었고 서서히 독일 국민의 사고방식까지 잠식해 나감 [배신자!!] 런던, 모스까우 등 독일의 적국방송을 듣는 것은 전쟁이 터지고 나서 불법이 됨. 독일 라디오들은 전쟁이 터지자 모든 라디오 주파수 선택노브에 아래와 같은 살벌한 경고문을 달았음 "주의! 외국 방송을 청취하는 행위는 우리 민족의 국가 안보에 대한 범죄이다. 이는 총통의 명령에 따라 중형으로 처벌받으며 교도소형으로 처벌된다.” 전쟁이 장기화되고 연합군의 폭격이 늘어나며 승리가 불확실해지자 독일국민들은 해외방송에 귀를 기울였는데 1944년부터 독일국민들이 국방군방송을 믿지 않는 편이었다고. 영국의 BBC는 이때다 하고 출력을 올려 전황을 발표했는데 이거 몰래 듣다가 걸리면 눕히고 개밟힌다음에 감방에 끌려갔음. 나중에는 하도 방송에서 구라만 치니까 아예 선전부장관 이름을 따서 '괴벨스의 주둥아리'라는 별명까지 생김. 독일 선전부 장관 생일에 극빈자 대상으로 실시한 라디오 배포식. 총 500여대가 무료로 배포되었음. 해당 라디오는 VE301의 염가판 DKE38인데 35제국마르크라는 싼 가격에 할부판매도 진행되었고 수백만대가 팔렸지만 성능이 똥오줌이고 독일제답지 않게 내구성도 오리같아서 몇년안가서 죄다 망가졌다고. 전쟁이 장기화되고 정보통제가 강해졌는데 안네프랑크의 일기에서도 아래층 창고의 라디오가 BBC로 맞춰놓은 채로 숨은 일이 나오는데 이때 주파수를 바꿔놓고 올라올걸 하고 후회하는 대면이 나옴. 실제로 처벌받은 경우도 있는데 대다수는 훈방으로 끝났지만 800여명 정도는 중형으로 처벌받았고 그들 중 총살당한 사람들도 있었음. 처벌 강도는 전쟁전에는 훈방수준에서 끝났지만 전쟁이 격해질수록 처벌의 강도는 커졌는데 중형선고자들이 이 시기에 많이 나왔다고함. [전쟁의 크리스마스] 전장에서도 폴크스앰펭어를 썼는데 배터리로 구동되는 'VE301B' 형식도 있었음. 노잼 클래식만 나온다는 불평이 받아들여져 한동안 금지되었던 미국풍 재즈음악도 방송되었음. 정권에 문제가 되지 않는 선에서 음악방송은 대체로 청취자의 의견이 많이 받아들여졌다고. [연합군 폭격기를 향해 발사되는 독일공군의 대공기관포] 폭격이 있을 때는 독일의 방송국들이 일제히 침묵에 들어갔는데, 방송국 또한 연합군에게는 주요 타격 시설이라서, 연합군이 이쪽을 폭격했는데 방송국이 갑자기 멈춘다=경로에 방송국이 있다 라는 결과가 나와버려서 파괴를 대비해서 방송은 공습경보가 울릴 때는 멈췄음. 폴크스앰펭어로 방송된 나치 독일의 마지막 방송은 히틀러가 국민돌격대와 같이 소련군에 맞서 싸우다 장렬히 전사했고 모든 독일군은 현 시간부로 적대행위를 중단하라는 최고사령부의 방송이었다고 함.(실상은 히틀러는 자살했지) 선전목적으로 만들어진 라디오였지만 수백만대 만들어졌고, 전쟁전에 만들어진 고품질의 ve301들은 이후로도 수십년간 사용되다 현재는 박물관에서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음. 우리나라에선 ㅆ노잼 KBS1만 잡힘. 그럼 20000 - dc official App
작성자 : 카를라우퍼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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