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태풍을 뚫다.
2.개에게 쫓기다.
2023년 8월 11일
김포공항. 흐린 아침
분명 일기를 쓰고 있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아침이었다.
태풍의 여파로 인해 젖은 옷들이 아직도 축축했다.
아팠던 허리와 다리는 마치 없던 것처럼 말끔히 나았다.
이것이 젊음인가?
발바닥의 물집도 테이핑을 하니 그럭저럭 걸을 만 했다.
먼저 젖은 옷들을 처리해야 했다.
가방에 넣기엔 다른 물건들이 같이 젖고,
무게도 많이 차지하기 때문이다.

바로 주변에 있는 셀프 빨래방을 찾았다.
다행이도 공항 근처라 그런지 금방 도착할 수 있었다.
옷들을 모두 건조기에 돌렸다.
신발 건조기도 있길래 신던 신발도 바로 넣었다.
축축한 신발을 신고 걷기?
걷는 사람한테는 이것보다 끔찍한건 없다.
돌리는 동안, 굶주린 배를 채울 시간이 생겼다.

챙겨 놨던 슬리퍼를 신고, 주변 음식점으로 향했다.
대충 주변에 있던 국밥집에 들어가 육개장을 시켰다.
건조기가 끝나는 시간을 타이머로 맞춘 후,
여기에 맞춰서 밥을 먹고 가려고 했다.
큰일이 생겼다. 생각보다 육개장이 늦게 나왔다.
아침에 여유롭게 국밥을 먹겠다는 계획은 어그러졌다.
만약 세탁방에 누가 옷을 훔쳐간다면?
내 여행은 곧바로 끝날게 뻔했다.
절대 안돼.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
밥이 입에 들어가는지 코에 들어가는지도 모른 채
빨리 먹어 치우고 세탁방으로 뛰어갔다.
다행히 옷들은 건조기 속에 그대로 있었다.
다 먹고 다시 빨래방에 가서 건조된 옷들을 꺼냈다.
따뜻하고 좋은 냄새가 나는 빨래감들.
어젠 상상도 못했던 것들이다.
행복감에 가득 찬 채 옷을 정리했다.

다 마른 신발을 갈아신고 거리로 나오자,
이륙하던 비행기가 눈에 띄었다.
역시 공항 근처라 그런지 정말 가까워보였다.

걷다보니 끝이 보이지 않는 큰 거리가 나왔다.
서울 방향으로 뻗어있는 구조인 게 마치 도로가
“이곳으로 계속해서 걸으면 여의도로 갈 수 있어~ “
라고 말하는 듯 했다.
점점 공항과 멀어질수록 건물이 높아지는 게 느껴졌다.

걷다가 거울이 있길래 찍어본 내 사진.
사실 1편에 있던 그림은 이걸 따서 그렸다.
가방이 엄청나게 무겁진 않았지만, 크기는 꽤 커보였다.
거울을 보면서 내 자신이 신기했다.
어떻게 이렇게 큰 가방을 들고 어제 40킬로나 걸은거지?

걷다보니 마주친 염창역.
도로를 따라 계속해서 걸으니 다시 지하철역이 보이기 시작했다.
점점 커지고 모던해지는 건물들과 늘어나는 사람들,
넓어지며 차들도 많아지는 도로가 보였다.
서울의 중심에 점점 다가가고 있다는걸 느꼈다.

길었던 길 끝자락에서 찾은 맥도날드.
어제 찾았던 곳 들은 다 문이 닫혔었는데,
드디어 열려있는 매점을 찾다니…
바로 들어가서 점심을 먹었다.

밥을 먹고 나오자, 공사중인 큰 고가도로가 눈에 보였다.
아마 이곳만 지나면 영등포가 나오겠지.
양화교를 지나, 육교를 넘고 나니 다시 일반적인 도로가 보였다.

오늘의 도착지가 미리 써져있는 표지판.
그렇다. 오늘의 목적지는 국립현충원 이다.
어제는 너무 많이 걸어서,
오늘은 조금 적게 걸으려고 한다.

드디어 도로에서 한강공원으로 갈 수 있는 육교를 찾았다.
육교를 올라보니, 처음으로 눈에 들어온건 서울함이었다.
예전에 한번 서울함에 가본적이 있었는데,
도보여행을 오고나서 보게 되니 엄청 반가웠다.
드디어 내가 한강에 왔구나.
라고 실감 할 수 있었다.
정작 지금까지 한강을 따라 걷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육교 오른쪽에서는 국회와 여의도 건물들이 보였다.
멀리서도 보이는 국회 의사당과 높은 빌딩들,
그리고 막히는 대로의 차들.
아쉽게도 날씨가 흐려서 그런지,
남산타워와 잠실타워는 보이지 않았다.

이제야 도착한 한강 자전거길
이제 신호등과 차들 상관 없이 편하게 걸을 수 있겠구나!
탁 트인 자전거 도로처럼
내 가슴도 탁 트이는 듯 했다.
국회의사당이 얼마나 큰지
자전거길에 내려가서도 보일 정도였다.
예전엔 저 돔이 열리면 태권V가 나온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참 어이없는 소문인 것 같다.

태풍이 지나간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런지,
자전거길 옆에 잔디밭에 고인 물이 연못처럼 되있었다.
그곳에 오리들이 요란하게 목욕을 하고 있었다.
오리들은 원래 물가에 사는데 왜 목욕을 할까?
어차피 계속 물에서 사는데 말이다.

자전거 길을 따라 걷다보니 국회의사당이 가까이 보였다.
사실 내겐 국회의사당에 대한 추억이 조금 있다.
작년 10월, 게관위 비리의혹 감사청구 서명운동이 일어나,
게이머들이 국회앞에서 서명을 하러 모였었다.
이때 서명도 할 겸 물도 사서 나눠드리고 쓰레기도 치우면서
자원 봉사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났다.
정말 즐거운 날이었다.
막상 모두 끝나고 지하철을 타고 집에 가다가
뉴스에서 이태원 참사를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점점 해가 지기 시작했다.
좀 더 걷다 보니 여의나루 쪽으로 갈지
노량진 쪽으로 갈지 선택하는 갈림길이 나왔다.
더 빨리 가게 여의나루쪽을 골라서 걸었다.
여의나루 공원을 향해 걷고 있었는데,
어디선가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노래를 들어보니, 녹음된 노래는 아닌것 같았고,
주변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는걸 알게 되었다.
조금 더 걸으니 어디에서 부르는지 알게되었다.
마포대교 밑에서 버스킹을 하던거였다.
계속 걸어서 힘들기도 했고,
노래도 들을 겸 공연하는 곳 앞에 앉아서 쉬었다.
한강 야경을 보며 듣던 버스킹은 정말 낭만적이었다.

길을 걷다 보니, 몇개씩 버려져 있는 자전거가 보였다.
나는 처음엔 그냥 사람들이
버릴 자전거를 그냥 묶어두고 간건 줄 알았다.
하지만 뭔가 이상했다.
분명 자전거는 금방이라도 쓰던것 같이 생겼고,
헬멧과 짐까지 있던 자전거도 있었다.

조금 더 지나가보니 펜스 너머에 낚싯대가 있었다.
낚시꾼들이 자전거 타고 와서 주변에 묶어두고,
한강에서 민물 낚시를 하던거였다.
여기서 낚시를 해도 되나?
라는 생각은 둘째 치고
이 높은 펜스를 어떻게 넘어갔는지 궁금했다.
한두명도 아니라 정말 수 많은 사람들이
이런 방식으로 낚시를 즐기고 있었다.

미리 예약한 숙소로 가기 위해
자전거길 중간에 나와서 흑석역으로 나왔다.
계속 자전거길만 타다가 다시 지하철 역을 보니 반가웠다.

이 역은 특이하게 역 안에 정원이 있었다.
나무만 심어둔것도 아니고 안에 연못이랑 분수대까지 있었다.
이야.. 정원이 역 안에 있다니..
역 안에 도서관이 있는건 봤어도
태어나서 이런 역은 처음이다.

해가 지고 나니, 여의도를 지나 현충로를 지나는데
여기는 공실, 즉 철거 대상 건물들이 많아서 으스스했다.
여기부터 쉴 곳이 없어서 난감했다
아니, 앉을곳은 있었는데 다 젖어있어서 앉을 수가 없었다.

드디어 숙소 주변인 국립현충원에 도착했다.
막상 도착하고 보니 해가 진지 오래라
현충원 안쪽이 어두워서 보이지 않았다.
그저 새까만 어둠뿐이었다.
지나가는 김에 구경하려고 이쪽으로 온건데..
아쉬움을 뒤로한채 발걸음을 옮겼다.

조금 시원하게 가려고 동작역에 내려가기로 했었다.
숙소로 향하려면 8번 출구로 들어가서 3번 출구로 나와야 했다.
나는 여기 두 개가 이어져 있는 줄 알고
9호선 역으로 들어갔는데,
4호선으로 가는 길 쪽이 개찰구로 막혀있었다.
즉, 9호선 출구에 들어가서,
4호선 출구로 나갈 수 없다는 것이다.
굳이 여길 지나려고 교통비를 내고 싶진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왔던 길을 다시 돌아서 걸어갔다.

드디어 숙소가 있는곳인 방배동 카페거리에 도착했다.
카페들과 음식점은 많았지만
막상 늦게가서 그런지 열려있는곳은 없었다.
그냥 곧바로 모텔로 들어가기로 했다.

방을 안내받고 들어갔는데,
순간적으로 머릿속에 많은 생각이 지나갔다.
가장 싼곳 와서 이런건가?
아무리 그래도 왜 방 청소가 안 돼 있지?
그냥 나가라는거야?
저번이랑 똑같이 4만원이나 냈는데?
여기 주변에 찜질방 있나…
다행히도 사장님이 나한테 오시더니
방 열쇠를 잘못 주셨다며
새로운 방 열쇠를 주셨다.
그냥 단순히 사장님의 실수였던 거다.
다행히 새로운 방은 무척 깨끗하고 정돈된 방이었다.

방에 들어와 짐들을 푼 뒤,
어제와 똑같이 온몸을 씻고, 침대에 누웠다.
똑같이 정말 기분이 좋았다.
마치 중독될 것만 같았다.
아까 강서구에서 맥도날드를 먹은 뒤로 아무것도 먹은게 없어서
배달앱을 켜서 배달되는곳 아무곳이나 찾아서 시켰다.
그래도 어제보단 일찍 숙소에 도착해서 그런지
배달이 되던 가게들이 많았다.
저녁을 해결한 뒤, 침대에 누워 일기를 썼다.
이정도면 할만한데?
내일부턴 슬슬 다시 많이 걸어보자! 라고 말이다.

2일차) 김포공항 -> 국립현충원 [23km] 15시 ~ 23시
2023년 8월 12일
배방동. 흐린 아침
번데기처럼 이불에 돌돌 말려있는채 아침을 맞았다.
겨울에 땅바닥에서 자듯 몸이 너무 차가웠다.
잠깐만.. 차가워? 이 한여름에?
이상함을 눈치채고 침대에서 일어나자,
방 전체가 매우 차갑다는걸 알게 되었다.
방바닥에 벌을 내딛자 마치 빙판 같았다
에어컨을 확인해 보니 21도였다.
자기 전에 잠깐 낮게 온도를 맞추고 끈다는걸
잊은 채 그냥 자서 밤새동안 에어컨이 켜져 있던거였다.
짐을 싸다보니 토시 하나가 없었다.
어제 건조기에서 옷을 꺼내고 급하게 출발했었는데,
이때 아마 건조기 속을 확인을 안했던것 같다.
그래도 집에서 토시 2쌍을 챙겨서 다행이었다.
코를 훌쩍이며 가방을 싸고, 하남으로 향했다.

먼저, 서초역으로 가기 위해서 골목기로 들어섰다.
평범한 골목길이었지만, 조금 더 들어가보니
기생1충에 나왔던 부잣집 골목같이 생긴 곳도 있었다.

골목길을 나온 뒤,
공원같은 곳에서 이상한 동상을 하나 보았다.
뭔가 이상하게 생겼다.
오른쪽 밑에 쓰여있던 소개문에 따르면
이 동상은 생명체인 “말”이라고 한다.
말같지도 않은 소리를 다 하는구만.

아무리 봐도 정면에서 보니깐
스타워즈에서 나오던 자자빙크스 같았다.
이건 요리보고 저리봐도 분명히 귀가 아니라 눈이다.
분명 말을 보러 출발한 도보여행 이었는데
이런 말같지도 않은 동상을 보니 느낌이 요상했다.
이런게 왜 서울 한복판에 있을까?

심지어 바로 반대쪽에 대법원이 있는데 말이다.
“저건” 대체 무엇이었을까?
어떤 걸 본따서 조각 한 걸까?
아직도 미스테리 하다.

서초역에서 출발해서 2호선을 따라 대로를 걸었다.
지금까지 걸어왔던 길과는 비교할 수 없는
끝이 보이지 않는 높은 고층건물들이 즐비했다.

지금까지 잘 보이지도 않던 맥도날드가
거의 블럭마다 하나씩 있었다.
편의점은 말할 필요도 없다.
아마 이런곳이 이제부터 걸을 길중에
가장 번화가겠지.
있을떄 최대한 즐겨둬야 했지만,
막상 별로 필요한게 없었다.
이 어찌 끔찍한 모순인가!

걷다보니 강남역에 도착했다.
생각해보니 아침에 일어나서 아무것도 안먹고
여기까지 와버렸다.
몸이 너무 차가웠어서 그랬는지
배가 고프지도 않았나보다.
온김에 아침을 해결하러 강남역 길목으로 들어갔다.

마침 걷다보니 이번에 새로 들어왔다던 파이브 가이즈가 보였다.
먹으려고 가게 앞에 가봤는데 나를 맞이한건
수많은 사람들과, 그리고 가게 속에 있던 더 많은 사람들이었다.
이건 기다리다가 하루가 다 갈 것 같아서,
그냥 마음을 접었다.

그대신 바로 옆에 있고,
예전에 들어왔지만 그나마 비슷한
쉑쉑버거에서 햄버거를 사먹었다.
여긴 그래도 강남역에 2개나 있고
가게도 커서 사람도 별로 없고 좋았다.

다시 걷다보니 신기한 걸 봤다.
길의 이름이 테헤란로 라고 한다.
강남 한복판에 이런 외국이름으로 되있는 길이 있었나?
써있는걸 보니, 테헤란 시라는 곳이 있고,
서울시와 교로명을 교환했나보다.
테헤란에도 “서울 로”가 있을걸 생각해보니 신기했다.

더 걷다가 이제야 마주친 제대로 된 말 동상
이게 말이지.
아까 봤던건 말처럼 생긴 이상한 무언가야.

그냥 사진찍었는데 잘나와서 올려봄
살짝 부슬비가 내리긴 했지만,
다행히도 밀집모자가 어느정도 막아줘서
우비를 벗고 모자만 쓴 채 그냥 걸었다.
걷다가 사이비를 만났다.
항상 똑같은 사람 수와 표정.
그리고 좋은말을 하다가 갑자기 종교쪽으로 트는 이야기까지,
완전히 사이비의 대표적인 수법이었다.
하지만 내가 누구인가?
수원역에서 살다시피 하는 수원 토박이 이다!
누구보다 이 내가 사이비를 가장 많이 만나봤다고 자신한다.
이야기를 듣는 척 하고,
갈 길이 바쁘다며 이름과 전화번호를 주며 나중에 연락드린다 했다.
물론 당연히 가짜 전화번호와 이름이다.
그렇게 사이비들을 재끼고 다시 길을 걸었다.

걷다가 본 잠실 야구장.
마침 이날에는 LG가 쓰는 날이라
종합운동장 역 근처에는 LG유니폼을 입은 사람들이 많았다.
3년뒤에 돔구장으로 다시 지어진다던데,
처음으로 야구를 보게 된 추억의 장소라 살짝은 씁슬하다.

잠실새내역에서 본 롯데타워.
흐린 하늘에 구름에 가려진게 완전
꼭대기에 눈만 있으면 완전 사우론의 눈이다.
막상 가까이 가보니,
정말 목을 끝까지 젖혀도 꼭대기가 보이지 않았다.

지나가다 본 롯데월드
항상 봐도 두근거리는 정문이다
저 커다란 입구와 시계..
당장이라도 롯데월드에 놀러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오늘은 아니다.
계속해서 발걸음을 재촉했다.

조금 더 걷다보니 멀리서부터 평화의 문이 보였다.
올림픽 공원에 도착한 것이다.
이곳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운동을 하고 있었다.
스케이트 타는 사람들과 픽시를 타는 사람들,
배드민턴과 인라인을 타는 사람들 등등..
이번에도 노랫소리가 들리길래 버스킹을 하는줄 알았지만,
소리가 나던곳을 가보니 핸드볼 경기장에서 콘셔트를 하던거였다.
솔직 기대했었는데,
아주 살짝 아쉬웠다.

걷다보니 올림픽 공원 역과 함께 신기한 상가가 하나 있었다.
조금 오래 되보였지만, 안에 있을 가게들은 다 있었다.
언제 지어진걸까?
아마 88올림픽때 지어진게 아닐까 추측해본다.
주변 아파트틀도 이 건물을 따라 반원모양으로 있던데
정말 특이한 동네이다.

하남으로 가기위해, 감천을 따라 걸었는데,
점점 시골길이 나왔다.
높던 건물들은 낮아지고,
사람들은 코빼기도 안보이기 시작했다.
길을 걷다보니 진돗개 하나가 튀어나왔다.
처음엔 그냥 다른 시골개처럼 사람을 반기는 줄 알았다.
하지만 무언가 이상했다.
개가 꼬리를 흔드는게 아니라 자세를 낮추고,
으르렁 거리며 길 한가운데를 막고 있었다.
하필 하남으로 가는 길이 이곳 하나뿐이라
다른곳으로 돌아 갈 수도 없었다.
나는 이곳을 반드시 지나가야 했다.
혹시 모르니까 핸드폰 녹화를 켜뒀다.
그러지 말아야 했다.
그냥 그대로 몸을 돌려 뒤로 갔어야 했다.
처음엔 짖고 아무것도 안하길래
자연스럽게 개 옆을 지나갔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개가 계속 나를 따라온다.
뭐지?
집지키는 갠데 왜 나를 따라와?
본능적으로 느껴졌다
얘는 나를 물려고 한다.
미친듯이 뛰었다.
이 뒤에는 정확히 기억이 나진 않는다.
나중에 영상을 확인해보니 뛰다가 눌렸는지
중간에 끊겨있었다.
내가 뛰자 개도 나를 따라서 뛰기 시작했다.
순간 너무 당황해서 진짜 정신없이 뛰었다.
계속해서.
개소리가 멀어질때 까지.
정신을 차려보니 개는 없었다.
해는 이미 졌고, 어두컴컴해지고 있었다.
내가 달리기로 개를 이긴것이다.
아니면 집이 너무 멀어졌는지 돌아간건가?
사람이 무거운 짐을 들고도 전력질주를 하면
평소보다 더 빠르게 달릴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턱 끝까지 차오르던 숨을 고르며,
가방에서 손전등을 꺼내고 다시 길을 걷기 시작했다.

계속해서 길을 걷다보니 해가 완전히 졌다.
주변에 가로등이 얼마 없어서
손전등를 키고 바닥을 잘 살피며 걸었다.

조금 더 걷다보니 다시 도로가 나왔지만,
사람은 커녕 차들만 다니는 도로가 나왔다.
아무래도 강남과 하남 사이에 있는 산을 지나야 해서 그런가?

점점 해가 지고, 인도와 도로가 헷갈리게 나올때,
실수로 공사판에 잘못 들갔었다.
앞이 까마득 해서 바닥만 보고 걸었는데,
막상 길이 막혀있어서 헤드라이트를 앞으로 비춰보니깐,
까마득한 낭떠러지 였다.
개에게 쫓긴 다음이라 그런지 엄청 놀라진 않았는데,
지금보니 정말 위험했다.

이렇게 인도인척 하는 갓길도 있었다.
사람이 지나가라고 만들었지만, 막상 물이 차있어서
도로쪽으로 걸어야 했다.

이젠 아에 인도가 사라진곳이 나왔다.
진짜 사람은 걷지 말라고 만들어둔 도로같다.
그래도 어쩌나? 하남가려면 여기로 걸어야 하는데
그냥 걸었다.

다행히도 다시 인도는 나왔다.
하지만 산길이라 건물과 가게들이 없고,
가로등도 별로 없던 것 같았다.
저 버스정류장은 쉬기 좋은곳 같아 보이지만,
정작 의자와 조명엔 벌레가 한가득이고,
저기에 앉으면 이 산속 온갖 벌레들과 정모가 가능하다.

도로를 겨우 빠져나오자, 이젠 아에 인적도 없는 골목에 들어섰다.
한블럭에 가로수 하나뿐. 핸드폰과 조명등이 없었다면
난 분명히 길을 잃었을 것이다.
마치 버려진 동네에 온것 같았다.
심지어 어디서 들려오는지도 모르는 개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개가 짖는소리가 들리자 갑자기 내 몸의 신경이 곤두섰다.
처음 경험해보는 느낌이었다.
개 공포증이 생긴건가?
진돗개한테 쫓긴 거 하나만으로?
그래도 다행히 소리만 들릴뿐
개를 마주친 적은 없었다.

걷다보니 희망이 보였다.
저 멀리 하남 도시가 보이기 시작한것이다.
마치 어둠속에서 빛을 발견한것 같았다.
잠깐만.. 진짜잖아?

드디어 도로 끝이란 표지판이 보였다.
이제야 다시 시내로 돌아가는구나..
정말 기쁜 마음으로 터널을 지나갔다.

다행히도 생각한대로 다시 편의점과 가게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아까 서울에 비해선 볼품없지만
그당시 나에겐 정말 가뭄에 단비같던 곳이었다.

드디어 오늘의 숙소에 도착했다.
몸의 피로를 풀 겸 찜질방에서 자기로했다.
가방이 락커 안에 들어간다!
솔직히 들어갈줄은 몰랐는데
다행이다.
데스크에 맡겨야 하나..
너무 커서 거절하면 어쩌나.. 했는데,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몸을 씻고 발을 확인해보니 물집이 터졌다.
아까 개한테 쫓기면서 뛰다가 터진것 같다.
하긴. 15kg 가방을 메고 달렸는데 안터지는게 이상하지..
오히려 좋아.
이제 걷는데 불편한 느낌도 없고 말이다.
터진 곳을 깨끗하게 닦아주었다.
온탕에 몸을 담그니,
지금까지 쌓인 피로가 모두 풀리는 기분이었다.
가격도 싸고 잠도 자고.
너무 좋잖아!
나머지 숙소들도 계속 찜질방에서 자도 되겠는데?
이렇게 생각하며 일기를 쓰고 잠에 들었다.

3일차) 국립현충원 -> 하남 [31km] 14시 ~ 01시
이틀동안 말 그대로 서울을 횡단했음.
그냥 좀더 길지만 하남까지 한강변으로 걸을걸 그랬나..
그랬다면 개에게 쫓기는 일은 없지 않았을까?
사실 난 아직도 개가 짖는소리를 들으면
아직도 이때가 생생하게 떠오른다.
지금은 웃으며 말할 수 있지만,
당시엔 정말 정말로 무서웠던 경험이었어.
서울 한복판에서 커다란 가방을 메고, 우비를 쓴 채
인자작 하면서 걸어다니던 날 본
수많은 사람들은 나를 어떤 시선으로 봤을까?
이상하게만 안 봤었으면 좋겠다.
쓰다 보니 너무 나눠서 올리면 도배될까봐
따로 쓰던 거 하나로 합쳐서 올려봄.
역시 이게 나은 것 같아.
다음편 : 하루종일 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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