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리의 인격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되어 업무를 시작하는 날이다. 시청 뒤 프레스센터 19층의 식당에서 대학동창 몇 명이 모였다. 한 달에 한번 정도 시간이 되면 참석해 간단한 점심을 먹으면서 살아가는 얘기를 나누곤 한다. 웨이터가 와서 메뉴판을 보이며 주문을 받고 있었다.
“산채 비빔밥”
“잡탕밥”
“된장찌개”
“생선구이”
식성들이 가지가지다. 내 차례가 왔다.
“함박 스테이크”
“그건 좀 시간이 걸릴 텐데요”
웨이터는 자연스럽게 다른 음식 쪽으로 방향을 돌린다.
“괜찮습니다. 기다리죠”
전에는 남들이 시키는 걸 무의식적으로 따라서 주문을 했다. 이제는 한 끼라도 내가 좋아하는 걸로 선택하고 싶었다. 옆자리에 장관을 했던 친구가 모처럼 모임에 나왔다. 그와는 중고등학교와 대학교까지 같이 나왔다. 대학시절 내내 깊은 산골의 절이나 철지난 늦가을 강가 방가로에서 고독을 공유하면서 공부하던 친구다. 공직자 시절 그의 신상서류에 제일 친한 친구로 적히곤 했다.
“내가 검은 양복을 입고 왔는데 여기서 점심을 먹고 강영훈 총리 1주기 추도식에 가려고 해.”
“가족도 아닌데 네가 왜?”
내가 친구에게 물었다.
“내가 젊은 날 강영훈 총리 보좌관을 했잖아? 보좌관과 총리의 관계는 단순한 공무원관계가 아니고 죽고 난 이후에도 모셔야 하는 인격적인 관계야. 새로 문재인대통령이 취임하고 이제 총리가 탄생하겠지만 내가 모셨던 강영훈 총리는 정말 인격자였어.”
옆에서 가장 가까이 보았던 그가 내게 털어놓는 말은 진실일 수 밖에 없었다.
“어떤 인격이었는데?”
“어떤 행사장에 갈 때 수행을 했는데 꼭 30분 전에 먼저 가야 한다고 주장하시는 거야. 그런데 그때만 해도 총리가 뜨면 경찰이 교통통제를 하기 때문에 길이 막힐 염려가 없었어. 그래서 내가 말씀드렸지. 총리가 먼저가 계시면 다른 사람들이 불편해 하니까 정시에 도착하시면 된다고 했지. 총리가 먼저 가 있으면 장관들은 더 먼저 가야 하잖아? 국장들은 말할 것도 없고 말이야. 그런데 총리가 정색을 하시면서 그게 무슨 소리냐고 하시는 거야. 그 행사의 주빈이면 먼저 가서 앞에 섰다가 오시는 손님들에게 깍듯이 인사를 하면서 모셔야 한다는 거야. 그래서 총리가 항상 먼저 가서 기다리곤 했어. 총리실 안에서 손님들을 맞이할 때도 항상 공손하게 듣고 그 손님들이 갈 때면 문 밖까지 가서 인사를 하셨어. 다른 총리들은 대개 방안에서 악수를 하고 헤어져. 나도 장관을 해 봤지만 문 밖까지 따라 나가서 진심으로 인사를 하고 배웅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야. 그런데 강영훈 총리는 하셨었지.”
웨이터가 음식을 날라다 주었다. 그는 비빔밥이고 나는 철판위에 지글지글 고기가 끓는 듯한 함박 스테이크였다. 빨강 노랑 파랑의 파브리카 조각들이 치즈소스 옆에 아름답게 놓여 있었다.
“내 밥보다 함박스테이크가 더 맛있는 것 같아 보이네”
친구가 밥을 비비다가 내 스테이크를 보면서 말했다. 그가 문득 생각이 났는지 덧붙였다.
“돌아가신 강영훈 총리의 진짜 훌륭한 인품을 나는 직접 목격한 적이 있어.”
“그게 뭔데?”
내가 되물었다.
“강영훈 총리가 일 년쯤 하시다가 사표를 내셨어. 보좌관을 하던 나로서는 이해할 수가 없었지. 어느 날 차를 함께 타고 가는데 그 이유를 말씀하시는 거야. 총리를 처음 시작할 때 남들이 칭찬하는 말을 하면 아부같이 들리는 게 마음이 불편했다는 거야. 그런데 일 년 쯤 총리로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칭송하는 소리를 계속 들으니까 점점 그게 자연스럽게 들린다는 거야. 사람이 그런 남의 칭송에 익숙해 지면 물러날 때가 됐다는 경고로 받아들여야 하는 거래. 그래서 사표를 내는 거라고 하셨어. 그런 인품은 옆에서 지켜본 나 아니면 사람들이 거의 모르지. 그런 모습들을 보고 나도 장관을 할 때 겸손한 장관이 되려고 노력을 했어. 나도 큰 조직을 거느렸잖아? 산하에 경찰도 있고 전국의 소방도 있고 일반 행정조직의 공무원들도 있고 말이야.”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식이 텔레비전에서 방영되고 있었다.
이제 대통령이 낮은 데로 임하며 국민과 직접 소통하라는 게 시대의 주문인 것 같다. 인격이 훌륭한 총리와 장관들이 임명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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