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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여자는 그런 여자가 아니래

운영자 2017.05.30 18:18:37
조회 259 추천 0 댓글 1
저 여자는 그런 여자가 아니래 

  

아내와 함께 제주도에 갔다가 감귤 밭을 가꾸면서 혼자 사는 노부인을 만난 적이 있다. 고향이 아니면서도 인생의 마지막을 그곳에서 뿌리박고 마치려는 것 같았다. 해안선에서 허연 파도가 밀려오는 밤의 해안가에서 그녀의 얘기를 들었다. 부드러운 바람과 은은한 밤의 정적은 노부인의 마음의 창을 활짝 열어버린 것 같았다. 그녀가 말한 내용은 대충 이랬다. 그녀가 막 사십대로 접어든 외환위기때 남편이 하던 사업이 부도가 나면서 그때까지 쌓았던 모든 것이 굉음을 내면서 부서져 내렸다. 살던 아파트마저 날아갔다. 강변도로를 지나갈 때 액셀레이터를 콱 밟고 그대로 강물속으로 들어가고 싶었던 적이 있다. 그 순간 강물위에 아이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죽으면 아이들에게 빚만 남겨주고 가는 셈이었다. 빈털터리로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아직은 젊음이 남은 것 같았다. 남들이 보면 삼십대 여성으로 보아주기도 하고 미모라는 소리를 듣곤 했다. 그녀는 보험 상품을 판매하는 일을 하기 시작했다. 전에는 안보이던 시궁창 같은 세상이 그녀 앞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큰 보험계약을 체결해 주겠다면서 육체를 요구하는 점액질의 질척한 인간들이 많았다. 보험외판원사이에도 졍글의 법칙이 지배했다. 몇날 며칠을 공들여 따낸 계약을 마지막에 경쟁자가 독수리가 낚아채듯 가져가 버리곤 했다. 아이들과 함께 생존하는 게 절실한 순간이었다. 그녀는 벤쳐 기업의 투자유치를 홍보하는 마케팅 담당으로 들어갔다. 그 내용을 이해하지도 못하는 사업을 설명하면서 투자해 달라고 하는 그녀 자신이 사기꾼 같다는 부끄러운 생각이 들곤 했다. 그 세계도 이해할 수 없었다. 한번 대박이 터지면 투자금의 수백배 수천 배를 가져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녀는 다시 일어섰다. 아이들을 다 키워 결혼을 시키고 육십대 중반인 지금은 제주도로 내려가 천평 가량의 밭을 사서 귤 농사를 짓고 있었다.

“어떻게 그 고난을 이겨냈어요?”

내가 물었다. 변호사를 하는 나도 큰돈을 받을 수 있는 위임계약이 오면 거절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런 돈은 대개 악마의 낚시미끼이기도 하지만 저항하기 힘든 유혹이었다. 배고프고 절실할 때는 신이 아닌 한 무릎을 꿇기 마련이다. 

“바닥에 떨어진 저는 깜깜한 절망 그 자체였죠. 할 수 있는게 없었어요. 절실한 마음으로 매일 성경을 읽고 하나님께 매달렸어요. 그리고 보험계약을 하러 다녔어요. 한번은 몸을 요구하는 회장에게 가지고 간 서류를 던져 버리고 돌아온 적이 있어요. 계약만 성사되면 저로서는 큰 돈을 만질 수 있는 기회였죠. 그걸 스스로 포기한 거예요. 그랬더니 그게 어떻게 소문이 났는지 ‘저 여자는 그런 여자가 아니래’라는 평가를 얻게 되고 고객들을 하나님이 더 보내 주는 것 같았어요. 그리고 신기한 건요. 경쟁자가 나의 1억짜리 계약을 채가면 얼마 후에 하나님이 3억짜리 계약을 다른 천사를 통해 보내 주시는 거예요.”

그녀는 자식들을 다 떠나보내고 노년을 제주도 남원의 귤밭에서 농부가 되어 있었다. 씩씩한 삶이었다. 타향 이웃사람들의 텃세를 모두 견뎌내고 주민대표가 됐다. 젊은 시절 투쟁경험을 살려 마을을 위해 공무원들과 협상도 하고 때로 민원을 제기하는 대표노릇도 하고 있었다. 그런 강한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어쩌면 간절한 기도소리를 듣고 그녀 안에 들어온 성령의 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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