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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슬없는 한가한 인생

운영자 2017.06.22 11:23:50
조회 316 추천 3 댓글 0
벼슬 없는 한가한 인생

  

이십대부터 삼십대 초까지 추리소설에 푹 젖어있었다. 신혼의 단칸 셋방 석유풍로에 냄비를 올려놓고 하이면을 끓여먹으면서 소설한권을 읽으면 마음속에서는 한여름 멜론 밭에서 나는 향기가 피어오르는 것 같았다. 초등학교시절부터의 취향이기도 했다. 썩어가는 다다미 냄새가 풍기는 방에서 소설을 읽었다. 삼십대 초에 나는 갑자기 돈키호테가 됐다. 소설속의 형사나 첩보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직접 환상 같은 그 세계 속으로 들어가 보고 싶었던 것이다. 수사과장급으로 임명하는 경찰간부의 특채에 응시했다. 간단한 주관식 문장시험을 치르고 핵심인 면접이 있었다. 면접장엔 감색 경찰정복에 어깨에는 은빛 왕 무궁화가 가득 들어찬 경찰의 최고위 간부들이 면접 시험관으로 앉아 있었다. 면접 직전에 취미나 특기 같은 간단한 사항들을 정해진 양식에 써서 냈다. 지금으로 치면 경찰청장인 치안본부장 방 앞에 대 여섯명 정도의 지원자 들이 다소곳이 앉아 있었다. 내 차례가 되어 면접을 치르는 치안본부장 방 안으로 들어갔다. 어깨에 빛이 반짝이는 계급장을 달고 근엄한 표정을 한 면접관 중 한 사람이 내게 물었다.

“지나가다가 파출소나 경찰서를 보면 어떤 기분이 드나?”

어려서 보던 순경의 독사 같은 누런 눈빛이 떠올랐다. 독발이라고 걸리면 그 자리에서 가위로 머리를 자르는 사람들이 경찰이었다. 경찰서에 가면 단번에 따귀부터 얻어맞기도 했었다.

“솔직히 말해서 기분이야 안 좋죠. 경찰서에서 떡을 해 놓고 와서 먹으라고 해도 안 갑니다.”

“어??”

질문을 했던 면접관이 순간 당황하면서 얼떨떨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옆에 있던 다른 면접관이 뭔가 단단히 벼르는 얼굴로 내게 물었다.

“여기 취미 특기란에 ‘음악’이라고 써 놨는데 정말인가?”

“칸을 비워두고 거기를 채우라고 하기에 그냥 써 뒀지 다른 큰 뜻은 없습니다.”

“음!!”

그 면접관은 알 수 없는 신음을 내뱉었다. 마치 자신이 모욕이라도 당한 듯한 얼굴이었다. 그가 이놈 어디한번 보자 하는 식으로 시비같이 질문을 계속했다.

“자네 음악에서 메트로놈이라는 걸 알아?”

넌 하나도 모르지 하는 표정이었다. 사실 나는 중학교 2학년 때부터 학교 밴드반 생활을 했다. 그리고 고등학교와 대학에서는 친구들과 그룹사운드를 결성해서 대학축제들을 돌아다니면서 공연을 했다. 음악의 장르나 가수 아니면 특정곡이 아닌 박자를 세는 도구를 아느냐고 묻는 그 시험관의 수준을 알 것 같았다.

“--------”

나는 대답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그는 먹이를 본 독수리처럼 나를 몰아붙이고 싶은 것 같았다. 그들끼리 고개를 돌려 서로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

“그래도 정직은 하잖아?”

그런 작은 소리가 귓전에 들려오고 있었다. 며칠 후 경찰에서 우편으로 합격통보가 왔다. 즉시 경찰학교에 입학해 몇 주 훈련을 받고 경찰서 수사과장이나 보안과장으로 발령을 받으라는 내용이었다. 나는 다시 생각해 보았다. 경찰 최고위 간부라는 사람들이 어깨에 단 깡통계급장만 번쩍거리지 머릿속은 쓰레기만 가득한 느낌이었다. 재미있던 추리소설속의 소박한 생활을 하는 고독한 집념의 형사 오병호와는 전혀 달랐다. 경찰의 인사담당자한테서 전화가 왔다. 하급자인 그 역시 목소리에 알 수 없는 권위와 버릇같은 위압감이 배어 있었다.

“마음이 바뀌었어요. 나 경찰 안 할랍니다.”

“왜요?”

“하여튼 그렇습니다.”

전화 저쪽에서 그가 뭔가 분노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윽고 한 톤이 높아진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리 같은 사람 이파리 하나 계급장으로 시작해서 평생 근무해도 무궁화 하나 어깨에 달기 힘든데 단번에 무궁화를 세 개를 달아준다고 하는데도 안하다니? 지금 제정신으로 하는 말입니까? 우리조직을 무시하는 겁니까?”

나는 욕을 먹으면서 그 순간을 넘겼다. 승진이 인생의 목적이고 군림하고 싶은 욕망이 있다면 그런 가치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유교의 전통은 과거에 급제해서 큰 벼슬을 하는 것이다. 노자의 도가는 벼슬이나 명예를 가볍게 여기고 개인적인 삶을 즐기는 것이다. 잠시 공직생활이나 조직을 구경한 적이 있다. 매일 지루한 회의에 참석하고 공식행사에 동원되고 가기 싫은 술자리에 가서 허리를 굽히고 잔술을 받아 마셔야 하는 게 그 생활인 것 같았다. 위에는 또 윗사람이 있는 게 조직이었다. 남들이 세상을 향해 달려가는 삼십대에 출세를 포기한다고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알렸다. 뒷골목에 작은 개인법률사무실을 차리고 사방 벽에 내가 좋아하는 책들을 벽같이 가득 쌓아놓고 읽었다. 느린 듯 하면서도 세월의 강물은 빨리 흘러갔다. 경찰특채의 면접시험장 앞에서 같이 기다리던 친구들이 하나하나 경찰청장이 되어 텔레비전 화면에 나오고 있었다. 전국의 경찰관들로부터 거수경례를 받는 그의 어깨에는 은빛 무궁화가 가득 만발해 있었다. 달이 차면 기울 듯이 인간의 운세도 그런가 보다. 그때 알던 경찰청장들이 하나하나 구속이 됐다. 모두 뇌물혐의로 걸려드는 것이다. 그런 자리에 있으면 뇌물의 유혹을 거절하기가 힘든 것 같았다. 경찰청장을 지낸 친구가 구속이 됐다. 그는 내게 변호를 부탁했다. 화려한 계급장을 단 제복대신 그는 누런 홋겹 죄수복에 포승을 하고 수갑을 차고 있었다. 그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수갑을 차고 포승을 한 채 호송버스에서 내려 거리에 있는 경찰들을 보는 순간 정말 부끄러웠어. 내 얼굴을 알아보고 청장님 하면서 경례를 붙이는데 얼굴이 화끈 거리는 거야.” 

원숭이가 나무에 올라가면 빨간 궁둥이가 보이게 되어 있다. 벼슬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장관청문회를 보면 누드쑈를 보는 것 같다. 돌이켜 보면 벼슬 없이 책을 읽고 여행을 했던 한가한 인생도 축복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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