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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속의 꿈

운영자 2020.04.13 10:07:55
조회 252 추천 4 댓글 5
서초동의 한 빌딩에 들어섰다. 친구들이 있는 로펌이 사층에 있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사층에서 내려 로펌으로 들어섰다. 벽 쪽으로 변호사들의 사무실이 있고 그 앞의 넓은 공간에 칸막이를 한 사무원들의 책상이 벌집같이 붙어 있는 모습이었다. 나는 친구의 변호사 방으로 들어갔다. 대학에서 교수를 하다가 몇 달 전 정년퇴임을 한 친구였다. 경기고등학교와 서울법대를 우수하게 졸업한 그는 사법고시에도 일찍 합격해서 삼십대에 법원장을 지냈었다. 그러다 학계로 간 그는 법과대학 학장을 했었다. 그 시절은 그런 젊은 나이에도 그런 지위에 갈 수 있었다. 그는 나이가 젊어도 인내를 가지고 남의 말을 들어주는 재능이 있는 것 같았다. 재판장인 그는 사람들이 한없이 지껄이는 말도 미소를 지으면서 끝까지 들어주었다. 훌륭한 판사였고 대학에서는 좋은 선생님이 틀림없었다. 자기 제자를 취직시켜 달라고 나의 사무실에 와서 빌다시피 한 적도 있었다. 퇴직을 한 그는 로펌을 하는 친구의 사무실 작은 방 하나를 얻어 그곳에 출근한다고 했다. 

“집에서 좀 쉬면서 노년에 즐거운 일을 찾지 그래?”

내가 그에게 말했다. 내남없이 우리들은 평생 일정한 궤도 안에서 생활하는 경우가 많았다.

“퇴직을 하고 아파트에서 두 달간 있었어. 그런데 집사람이 나와 같이 있으니까 불편해 하는 것 같더라구. 그래서 이렇게 사무실을 얻어서 나왔어. 정년퇴직이라는 게 사회와의 단절인데 이제부터는 언제 죽어도 괜찮은 그런 줄에 서게 된 거지.”

나는 그가 살아온 인생에 대해 묻고 싶었다. 그는 누구나 부러워하는 판사와 교수로 평생을 살았던 사람이었다.

“다시 과거로 거슬러 가서 젊어진다면 어떻게 살겠어?”

내가 물었다.

“판사는 절대 안 하지. 정말 사건 하나하나가 부담이었어. 절대적인 진실이 뭔지도 모르겠고 거기에 적용해야 하는 법리도 매번 고민이었어. 그런 걸 어떻게 했나 몰라. 그런데도 동료들을 보면 자식들을 판사를 시키거든. 그 심리를 이해하지 못하겠어.”

“교수 생활은 어땠어?”

내가 물었다. 나는 그가 교수가 되도록 추천을 당사자이기도 했다.

“당신 때문에 내가 교수로 운명이 바뀌었지. 그런데 교수를 해 보니까 그건 섬같이 외로운 직업이었어. 교수 간 소통이 거의 없는 거야. 점심시간에 같이 밥을 먹을 사람도 없었어. 공부하고 논문 쓰는 자체를 낙으로 여기는 사람이 아니면 힘든 직업 같았어. 판사로 또 교수로 살아오면서 그저 조심조심 살아오다 보니까 이제 죽음이 멀지 않은 것 같으네.”

“그러면 당신은 무지갯빛 인생이 아니라 무채색의 삶을 살아 온 거네?”

내가 되물었다.

“그렇지 뭐. 항상 가진 걸 잃을까 하는 두려움에 행동을 조심하고 살았지. 그런데 판사직이 정말 그렇게 다른 걸 희생시키면서 해야 했던 것인지는 의문이야. 다시 태어나면 판사는 절대 하지 않을 거야.”

이런 저런 얘기 끝에 잠시 대화가 소설가 이외수의 근황에 이르렀다. 그가 이런 말을 했다.

“문인으로서 명예를 가지고 있던 이외수씨 봐라. 하루아침에 평생 쌓아왔던 모든 게 무너져 버리잖아?”

인터넷뉴스에서 소설가 이외수씨가 뇌출혈을 일으켜 중환자실에 있다는 보도를 봤다. 젊은 여기자와의 스캔들이 한동안 떠돌았었다. 친구가 이렇게 덧붙였다.

“내가 재판장을 할 시절 윤석열 검사를 조금은 알아. 그 친구는 그냥 검사야. 어떤 위법사실이 발견되면 가차 없이 칼질을 하지. 그래서 조국 장관도 그렇게 수사한 거야. 지금 정권에서 윤석열의 잘못을 털어보려고 얼마나 뒤졌겠어? 그런데 하나도 나오지 않잖아? 생활이 단순하고 메마르니까 털 게 없겠지. 조금만 있었으면 진작 날아갔겠지.”

친구를 만나러 가기 전 나는 고등법원에서 열리는 국정원장에 대한 재판에 변호인으로 참여했었다. 며칠 전 국정원장이 내게 이런 말을 했었다.

“국정원장을 하지 말걸 그랬어요. 그걸 하지 않으면 이렇게 정치범으로 재판에 회부되서 고통을 받는 일은 없었을 거 아니에요?”

그는 이미 나이 여든 살의 노인이었다. 내 삶의 화두를 적어놓은 공책에서 오늘 아침은 이렇게 써 놓았던 부분을 읽었다.

‘이슬같이 내렸다가 이슬같이 지는 이 몸, 나니와의 일들은 꿈 속의 또 꿈’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한 말이다. 그 말중에 나니와의 일들은 그가 권력을 잡았을 때의 영화로운 순간을 말하는 것이다. 젊었던 여름날의 추억은 꿈속의 꿈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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