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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단숨에 얻고 싶어 하는가?

운영자 2020.04.27 10:18:32
조회 161 추천 2 댓글 0
나는 젊어서 바둑을 배우지 못했다. 그렇지만 바둑에 빠져 있는 사람들을 보면 부러웠다. 이따금 수염이 허연 신선들이 정자에서 바둑판을 앞에 놓고 있는 그림들을 보면 신비한 느낌마저 들었다. 일본의 한 작가가 쓴 ‘명인’이라는 소설을 보면서 바둑이 하나의 도(道)라고 인식하기도 했다. 환갑이 넘은 나이에 비로소 바둑을 배우고 싶었다. 친구들이 말렸다. 바둑의 기본인 정석을 배우고 사활이나 묘수까지 배우기는 나이가 너무 먹었다는 것이다. 기억력이 소진해서 새로 입력이 되지 않는 나이에 불가능에 도전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서점에서 ‘마흔에 배우는 바둑’이라는 책을 본 적이 있다. 이미 마흔에도 바둑은 배우기 어려운 기술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도전을 해 보았다. 친구끼리 바둑을 두는데 혼자만 멀뚱하게 옆에서 텔레비전 화면에 시선을 두는 게 싫었다. 하지는 못하더라도 바둑판 위에서 돌을 가지고 나누는 그들의 은밀한 대화를 조금이라도 알아듣고 싶었다. 요즈음은 인터넷이 좋은 선생이었다. 인터넷의 최하급들이 하는 방으로 들어가 바둑을 배우기 시작했다. 상대방의 반응들이 갖가지였다.

“거기다 돌을 넣는 놈이 어디 있냐? 병신”

나는 병신이 됐다. 돌을 몇 개 놓아 보다가 말도 없이 나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또 어떤 사람이 대화창을 통해 내게 이렇게 욕을 했다.

“야 이 돌대가리 새끼야. 그게 머리냐?”

나는 돌대가리가 됐다. 바닷가의 소년이 앞에 펼쳐진 드넓은 바다를 보듯이 내게 바둑은 그런 미지의 세계였다. 무참히 욕을 먹으면서 나는 자각을 했다. 살아오면서 나름대로 평균수준 이상의 지능을 가졌고 보통사람들 이상으로 산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바둑의 세계에서는 가장 열등한 존재인 것이다. 어느 날 같이 바둑을 두던 상대방이 갑자기 나가면서 이런 쪽지를 남겼다.

“그만하자. 엄마가 학원가래.”

나는 손자뻘 아이하고 열심히 바둑을 둔 것이다. 주변의 바둑을 두는 사람들이 어떻게 노력하는지 살펴보았다. 잘 두는 데도 매일 전철을 타면 바둑의 사활을 하나씩 공부해 간다는 사람도 있었다. 프로들은 소년 시절부터 끝없이 기보를 보면서 익혀갔다고 했다. 단어장 같이 바둑의 각종의 수를 노트에 적어 공부하는 것도 보았다. 오랜 세월을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 같았다. 그중에는 “책을 보고 몇 달 했더니 주변에 나를 당하는 사람이 없었어요”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그것은 자신의 두뇌를 자랑하기 위한 과장이고 허위라고 생각했다. 그 어떤 것도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다. 로마의 거대한 건물인 콜로세움은 삼천만장의 벽돌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중국의 만리장성은 육억개의 돌로 세워졌다는 얘기를 들었다. 단번에 거대한 건물이 탄생한 게 아니라 돌 하나하나를 쌓아 올려서 그렇게 된 것이다. 부자가 된 한 노인에게 어떻게 그렇게 돈을 모았느냐고 물어보았다. 그 노인은 어느 정도 종자돈이 모아질 때까지는 먹을 것 먹지 않고 입을 것 입지 않고 철저히 절약해야 한다고 평범한 진리를 내게 말해 주었다. 일확천금의 꿈을 가지고 주식을 하지도 말고 부동산투기도 하지 말라고 했다. 먼지도 모이고 모이면 산이 된다는 논리였다. 그 노인의 집안이 조상 때부터 그랬다. 백년 전 그 할머니는 베틀에서 떠난 순간이 없었다. 노동을 해서 독에 저금해 두었던 엽전으로 논을 한 마지기씩 사 나갔다. 검약의 정신이 자손들에게 그래도 유지됐다. 그 자식 대에 농장회사를 설립했고 손자 대에는 재벌의 반열에 들었다. 나는 그 집안에서 근검과 절약을 상징하는 한국의 프로테스탄트 정신을 보았다. 요즈음 많은 청년들이 우리 사회를 ‘헬조선’이라고 하면서 저주하는 것을 본다. 6.25 전쟁이 끝나기 전 폐허에서 태어난 나야말로 헬 조선에서 태어났다. 오십년대의 비참한 광경을 떠올리면 지금의 세상은 천국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수없이 눈물을 흘리고 온갖 수고를 한 다음에야 간신히 얻는 것을 단숨에 얻고 싶어 하는 마음들이 엿보이기도 한다. 만리장성이나 콜로세움을 부러워하지 말고 돌 하나 제자리에 반듯하게 제자리에 놓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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