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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마지막 날이라면?

운영자 2020.05.15 17:04:54
조회 119 추천 3 댓글 0
작은 아버지가 관 속에 들어가기 전 이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깨끗한 옷을 갈아입을 때였다. 사촌 여동생은 여러 가지 감정이 복잡하게 뒤섞인 눈빛으로 아버지를 보고 있었다. 나 역시 이제는 입을 굳게 다물고 눈 감고 있는 작은 아버지의 시신을 보며 마음속으로 물어보고 싶은 게 있었다. 사는 동안 작은아버지는 세상에 대해 부정적인 것 같았다.

“있는 놈이나 없는 놈이나 배운 놈이나 못 배운 놈이나 죽으면 똑 같아 지는 거야.”

소주에 취하면 작은아버지는 끊임없이 그렇게 넋두리를 했었다. 노동자인 작은 아버지는 서울 변두리의 빈민촌에서 살았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어머니 없이 자라고 평생 가난하게 살다가 가난하게 죽었다. 배우지도 못했다. 작은아버지가 평등을 누릴 수 있는 곳은 죽음 이후였다. 나는 장례식장의 영안실 차디찬 스테인리스 판 위에서 침묵하고 있는 작은 아버지를 내려다보면서 마음속으로 물었다.

‘이제 부자나 배운 사람들과 평등해지니까 좋으세요?’

작은아버지는 아무 말이 없었다. 아마도 마음속은 평생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매일 새벽 노동시장에서 일을 찾으면서 슬프고 힘들었을 것이다. 죽음이 평등한 세상으로 가는 유일한 탈출구였을지도 모른다. 장례를 마친 후 사촌 여동생은 탄식조로 이렇게 내게 말했다.

“아이고 우리 아버지 나한테 조금만 더 사랑을 베풀었으면 얼마나 좋아. 나 중학교에 입학해서 학용품이 필요하다고 하면 ‘이놈의 계집애’하고 때리기도 했어. 아버지가 속이 상해서 그랬을 거야.”

어둠에서 나서 어두운 세상을 살던 작은 아버지의 마음은 깜깜한 밤이었을 것이다. 나는 작은 아버지가 죽기 얼마 전 혼자 쓸쓸하게 있는 요양원을 찾아가 십자가를 머리맡에 놔 드리고 함께 기도를 했었다.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가? 는 오늘도 내가 생각하는 화두이다.


강태기라는 시인이 죽기 얼마 전 나와 진지한 대화를 한 적이 있었다. 소년 시절 자동차 수리공이었던 그는 두 신문사의 신춘문예에 당선됐다. 천재성을 가긴 시인으로 평가되었다. 그는 문학의 제단에 자신을 바치기로 했다. 시가 나오는 근원적인 샘을 찾기 위해 그는 조금만 돈이 생기면 인도를 찾아갔다. 인도 시골의 먼지가 낀 망고나무 아래의 좌판에서 몇 루피의 값싼 음식을 사 먹으면서 영혼 속에 자신이 쓸 시들을 쌓아나갔다. 그 시상들이 핏속에서 녹고 세월에 삭혀지기를 기다리다가 나이 육십부터 누에가 비단실을 뽑아내듯 그렇게 뱉어낼 예정이었다. 그러나 그가 예순살이 되던 해 그의 폐에 탁구공만 한 공동이 있는 걸 발견했다. 의사는 몇 달 후에 닥쳐올 그의 죽음을 선고했다. 임대아파트의 방에 혼자 누워 죽음의 사신이 오기를 기다리는 그를 찾아가 잠시 친구가 됐었다. 그는 다급한 마음인 것 같았다. 힘이 다 빠진 상태에서도 공책에 시를 쓰고 있었다. 그는 내게 무엇 하나라도 선물을 주고 싶어하는 안타까운 표정이었다. 그가 죽기 이틀 전 병원으로 옮겨졌을 때였다. 그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엄 변호사가 오기 전에 내가 무슨 말을 해 줄까 고민을 했어요. 그러다 떠오른 게 있는 데 글을 쓸 마음이 생기면 바로 그때마다 쓰세요. 나중은 없어요.”

죽기 전 얼마 동안 그는 삶의 지혜를 내게 알려주었다. 그 한마디 한마디는 지금 다시 생각해도 반짝이는 보석 같은 것들이다. 그는 평생 엄청난 독서를 했지만 정작 죽음의 순간까지 읽으면서 함께 할 책은 신약성경과 논어라고 했다. 아침에 창문을 통해 보이는 이슬이 맺힌 호박꽃이 몸이 떨리도록 아름답다고 했었다. 나는 요즈음 오늘이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날이라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떻게 행동할까를 상상해 본다. 매일매일의 삶을 그렇게 살아 왔어야 하지 않을까 돌이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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