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한 인터넷 신문의 머리기사 제목을 보고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엄 변호사는 보기만 해도 역겹다’라는 글자가 확대되어 박혀 있었다. 그걸 쓴 분은 사회에 대해 여러 가지 쓴 소리를 내뱉어 제법 이름이 난 사람이었다. 그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당연히 만난 적도 대화를 해 본 적도 없었다. 나는 그런 음지 사회 명사의 저격대상이 될 만한 존재가 아니었다. 그냥 개인법률사무소에서 찾아오는 의뢰인을 변호하는 늙은 보통의 법률가일 뿐이었다. 왜 그런 비방을 받는지 나로서는 그 원인을 알 수 없었다. 그래도 순간 그 밑에 적힌 댓글을 보고 위로가 되기도 했다. 그 댓글에는 ‘네가 더 역겹다’라고 적혀 있었다.
서울대 교수 출신인 이영훈 씨가 반일종족주의라는 책을 발간했었다. 그가 쓴 책을 몇 권 읽었다. 그는 일본에 대해 객관적이고 국제적인 시각에서 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의 책에 대해 서울대 교수 출신이고 법무장관을 한 조국이라는 사람은 역겹다고 자신의 sns에 올렸다는 얘기를 듣기도 했다. 살아가다 보면 공중에서 날아오는 그물 같은 비방에 잡히기도 하는 것 같다.
이십 오년 전 쯤 언론에 자주 등장했던 상습절도범에 대한 재심을 청구한 적이 있었다. 그는 두 가지 상징성을 가지고 있어 언론이 주목을 했다. 그 도둑은 독재 정권 시절 고관집에 들어가 그들이 축재한 재물들을 적나라하게 봤다. 재벌집에 들어가 그 금고 속에 있는 천문학적 숫자의 가격을 가진 보석들을 보기도 했다. 그에 대한 취재는 이 사회의 불공평과 있는 자들의 적나라한 모습을 보도하는 귀중한 것이었다. 또 하나는 그는 극단적인 인권유린의 표본이었다. 수모를 당한 권력은 그를 벌레를 밟듯 짓이겼다. 징역을 삼십년 이상 살게 하고 영화 빠삐용에 나오는 것 같은 비참한 삶을 살게 했다. 가죽 벨트에 손과 팔이 묶인 채 빛이 들어오지 않는 암흑 같은 방에서 엎드려 양재기에 든 얼어붙은 밥을 핥아 먹어야 했다. 그를 감옥에서 꺼내기 위한 변호를 했었다. 그 당시 임종석씨가 진행하는 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나갔었다. 여러 대화 중에 그가 이렇게 물었다.
“별 볼 일 없는 변호사가 한 번 떠보려고 스타 범죄자를 변호한다는 소리가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질문이라는 포장을 한 나에 대한 비방이었다. 마음이 날카로운 유리 조각에 찔리는 것 같이 아팠다. 찔린 자리에서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공명심에 들뜬 변호사라고 욕을 하기도 하고 빨갱이라고 뒤에서 욕하는 동창도 있었다.
삼십대 말 야간 대학원을 다니면서 그곳에서 알게 된 사람이 있었다. 해맑은 얼굴에 지적인 인상을 풍기는 남자였다. 잡지를 만든다는 사람이었다. 이따금씩 그를 만나 밥을 사면서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듣기도 했다. 거물급 국회의원으로부터 보좌관으로 쓸 사람을 추천해 달라는 얘기를 들었다. 그는 그 무렵 직업이 없이 힘들게 살아가고 있다고 내게 말을 했었다. 내가 그를 추천해서 그는 국회의원 보좌관이 됐다. 그는 물을 만난 고기처럼 정치판에서 활발하게 뛰는 것 같았다. 얼마 후 만난 그 정치인은 내게 보좌관과 자신 둘 중에 누가 국회의원인지 모르겠다고 한마디 했다. 보좌하는 게 아니라 강제로 끌고 가는 것 같았다. 그 정치인이 갑자기 병으로 사망하고 그는 다시 예전의 자리로 돌아갔다. 내가 집을 세놓을 때 그가 소개를 한 적이 있었다. 그는 내게 노골적으로 소개료를 요구했다. 나는 주기 싫었다. 마음을 주고받고 싶었지 사고팔고 하는 관계는 맺고 싶지 않았다.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그를 우연히 만났다. 그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암에 걸려 흉측하게 죽었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아니군요.”
그건 노골적인 저주였다. 마치 그가 컵에 든 물을 얼굴에 뿌린 모욕이라도 당한 느낌이었다.
나는 생각해 봤다. 세상은 예수를 악마라고까지 했다. 아무리 얼음처럼 정숙하고 눈처럼 순결하다고 해도 비방을 면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내가 사는 세상은 어리석은 세상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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