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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대의 품삯이 되겠노라

운영자 2020.05.04 10:10:38
조회 116 추천 1 댓글 0
얼마 전 나의 사무실로 휠체어에 실려 들어온 여인이 있었다. 오십대 말인 그녀는 어려서부터 뇌성마비로 몸을 쓰지 못한다고 했다. 불행은 삼박자로 온다는 말이 있다. 그녀가 삼십대일 무렵 봉고차를 타고 가다가 둔턱에서 차가 덜컹하는 순간 목의 신경을 다쳐 손가락마저도 못 쓰는 전신마비가 됐다는 것이다. 그녀는 식물인간 비슷하게 됐다. 혼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오줌과 똥을 눌 수 있다. 화장실에 가는 횟수를 줄이기 위해 물은 목을 축일 정도로 조금만 먹어야 한다고 했다. 관장을 해야 똥이 나온다고 했다. 혼자 목욕도 할 수 없다. 움직이지 못하는 그녀는 밤에 이불을 덮을 수도 없었다. 무겁기도 하고 잘못 이불에 덮이면 마치 구덩이에 빠진 듯 혼자 헤어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그녀는 몇 달 전 엄마가 죽었다고 했다. 평생 그녀의 손과 발이 되어 주던 엄마였다. 그녀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유일한 그녀의 우주였던 그녀가 살던 아파트가 소송이 걸렸다. 화분에 심겨진 식물 같은 그녀는 자신의 우주가 없어지면 죽음 그 자체였다. 그녀가 자신의 사건을 맡아달라고 나의 사무실 문을 두드린 것이다. 아는 사이도 아니었다. 어떤 인연도 없었다. 휠체어에서 그녀는 소리가 나지 않는 말 한마디를 하기 위해 깊은 속에서 젖 먹던 힘까지 다 짜내고 있었다. 두 시간 동안 앉아서 귀를 기울여도 몇 마디 듣지를 못했다. 휠체어에 실린 그녀의 몸이 자꾸만 밑으로 미끄러져 내려갔다. 그녀를 데리고 온 사람이 수시로 뒤에서 그녀의 양어깨 사이에 손을 넣어 끌어올렸다. 그녀를 데리고 온 여성은 피도 살도 섞이지 않은 남이었다. 그런데 그녀와 함께 지내면서 돌보고 있다고 했다. 그녀의 뒤에 예수가 서서 그냥 말을 들으라고 명령하시는 것 같았다. 그래서 인내하면서 그냥 들었다. 그 다음에도 그녀가 찾아왔다. 그냥 열심히 얘기를 들었다. 다음에는 내가 그녀가 사는 곳을 찾아갔다. 찾아가는 것이 맞을 것 같았다. 거기서 목욕 봉사를 하러 오는 육십 대 초쯤의 여성을 만났다. 그 여성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제가 봉사를 하러 왔다가 오히려 많은 은혜를 받고 갑니다. 제가 돌아가서 혼자 목욕을 하면서 내 스스로 목욕을 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축복이고 감사인지 모른다고 깨닫습니다. 혼자 걸어 다닐 수 있고 화장실에 가고 밥을 먹고 말하고 잠을 자는 일상의 평범한 생활이 모두 축복이고 은혜라는 걸 알았으니까요.”

삼십년 변호사 생활을 하면서 처음 만나보는 의뢰인이었다. 나는 평생 어떤 일을 해 왔나?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 재산을 빼앗기기도 하고 억울하게 감옥을 들어가기도 했다. 그들의 억울한 사정과 애환을 끝도 없이 들어주곤 했다. 그리고 법정에서 그들의 입이 되어 주기도 했다. 나는 요즈음 식물이 되어 버린 이 나이 먹은 여인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나 고민을 한다. 그러나 그 여인은 식물이 아니었다. 그 여인은 움직일 수는 없지만 아이큐가 백사십이 넘는 높은 지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글씨는 쓸 수 없지만 손가락으로 스마트폰의 자판은 누를 수 있었다. 그 여인은 그 손가락으로 영상을 편집하기도 한다고 했다. 그녀는 내가 아파트에 갔을 때 찍은 영상을 편집해 거기에 자신의 시를 옷 입혀 카카오 톡으로 보냈다. 거기서 그녀는 이렇게 노래하고 있다.

‘나는 황제보다 하인이 부럽습니다. 공주가 되기보다 구박을 받아도 말괄량이가 되고 싶습니다. 왕비의 가마보다 걸어다니는 평민의 다리가 더 좋습니다. 인기스타이기보다 모든 것을 스스로 하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나는 노동자의 건강함이 부러우며 봉사자의 손길을 갖고 싶습니다. 무엇보다 기도하는 무릎과 손을 높이 들고 뛰면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나는 원치 않는 공주가 되어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쇼윈도의 마네킹처럼 사람들이 나를 들고 가야 움직입니다. 누가 원하는 것을 가져다주어야 잡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최선을 다하는 것이 나의 일이기에 죽을 힘을 다해 살겠습니다.’

한밤중의 조용한 시간에 주님께 기도를 드린다. 그리고 주님은 내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다.

‘그대가 하는 일을 진지하게 수행하라. 내가 그대의 품삯이 되겠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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