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광화문에서 있었던 태극기 부대의 시위를 보러 간 일이 있었다. 광장을 새까맣게 메운 대부분은 초라한 모습의 노인들이었다. 그들의 손에는 태극기와 함께 미국의 성조기가 들려있었다. 지하철역의 화장실은 광장보다 더 복잡했다. 오줌이 마려운 노인들이 끝도 없이 줄을 서 있었다. 오줌을 흘려 바지 앞이 축축한 사람들도 더러 눈에 띄었다. 지나치는 젊은이들이 노인 태극기 부대를 보는 눈길이 곱지 않은 것 같았다. 노인들이 서로서로 떠들어 댔다.
“우리가 어떻게 세운 나란데 빨갱이한테 빼앗기겠어요? 어림도 없지 우리나라가 넘어갈 때 미군이 와서 싸워줬잖아요? 그것만 했나? 우리를 원조해서 먹고 살게 해 줬잖아요? 요새 젊은 놈들은 고마운 걸 모른다니까. 한미동맹이 있어서 우리가 사는 거야.”
나 같은 노인세대의 뇌리에 박힌 생각들이었다. 6.25 전쟁의 끝 무렵 태어난 나도 노인세대에 들어왔다. 꼬마 때 동네 구멍가게에 가면 총알을 장난감처럼 팔았다. 산에 들에 널려있는 게 전쟁 때 뿌려졌던 총알이었다. 그걸 나무팽이 가 중심을 잡고 잘 돌도록 유선형의 끝에 박아넣기도 했다. 우리는 미국을 자유민주주의를 전해준 천사 같은 나라라고 배웠다. 재즈와 미군 피엑스에서 흘러나오는 막대한 물자들은 어린 우리들 뿐 아니라 어른들의 의식마저도 마비시켰었다. 우리 세대는 절대 기아의 배고픈 시대였다. 도심에는 깡통을 든 거지들이 우글거렸다. 한 남자거지가 시멘트 쓰레기통 속의 연탄재 위에 버려진 김치 줄거리를 허겁지겁 먹는 뒷모습이 기억의 벽에 각인되어 있기도 하다. 농촌에서는 보리가 이삭이 패어 먹을 정도로 익지 않으면 그 사이에 굶어 죽는 가족이 속출했다. 그래서 보릿고개라는 말이 있었다. 시골에서 보따리 장사를 하는 할머니를 따라다니며 물건을 팔고 보리쌀 반 되를 받는 걸 직접 보기도 했다. 우리는 미국의 잉여농산물을 받지 않으면 굶어 죽는다고 두려워했었다. 또 북한이 침략할 때 미군이 싸워주지 않으면 모두 몰살될 것 같은 공포감이 있었다. 그게 나 같은 노인세대의 아픈 기억이다.
세월의 강이 흐르고 기적이 일어났다. 우리는 세계에서도 손꼽을 정도로 부자나라가 됐다. 서울의 강남은 뉴욕에도 뒤지지 않는다. 젊은이들은 고급브랜드의 커피를 손에 들고 다닌다. 좋은 옷과 음식이 쓰레기장에 넘치고 있다. 남한에서 하루에 남는 음식물을 북으로 보내면 그곳에서 굶어 죽는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한다. 주민센터에서는 힘든 사람은 지원금을 받아가라고 선전한다. 국민 모두에게 돈을 주는 나라다. 남한의 경제력은 이미 북한의 오십배가 넘는다. 북한이 가지고 있는 핵을 쏘더라도 그 순간 자신도 멸망할 것이기 때문에 쉽게 서툰 행동은 하지 못할 것이라고 한다. 남한이 핵을 안 가진 것은 게을러서가 아니다. 미국은 그동안 한국의 핵 개발을 철저히 방해했다. 목숨 걸고 핵개발을 추진하던 박정희 대통령이 목숨을 잃었다. 박정희 대통령의 목적은 미국에 사정하며 매달리지 않는 자주국방이었다. 남북의 군사적 불균형에는 미국탓도 있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미군이 한국에 주둔하는 값을 달라고 한다. 젊은 세대들은 주권을 가진 독립국가의 중심부에 왜 외국군이 주둔해 있는지 납득하지 못한다. 왜 미국의 소수장교가 한국 육십만 대군의 작전지휘권을 행사하는 데 대해 자존심을 다치고 있다. 그들은 지난 6.25전쟁에서 미군이 북한과 휴전이나 정전에 대한 전권을 행사하고 남한은 끼지도 못한 이유를 납득 하지 못한다. 젊은 세대는 북한도 엄연히 유엔에 가입한 넓은 영토와 주민을 가진 나라인데 이제는 전쟁의 원한을 씻고 평화공존을 해야 하지 않느냐고 한다. 그들의 말에도 일리가 있다.
노인인 우리는 배고픈 시대의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배고팠던 시대가 배 아픈 시대로 변했다. 젊은이들이 ‘헬 조선’ 이라고 하는 말을 자주 들었다. 그들이 예전의 우리들 성장시절처럼 춥고 배고프지는 않은 것 같다. 나의 눈에는 너무 풍요하게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상대적인 가난은 모두가 공통되게 결핍했던 시대보다 더 정신에 고통을 주는 것 같다. 그래서 배고픈 건 견뎌도 배아픈 건 못견딘다는 말이 있나 보다.
거대한 시대의 물결이 다가오는 걸 느낀다. 광화문 광장에 나갔던 노인들이 당을 만들었지만 그들의 의견을 대변할 단 한 석의 국회의원도 나오지 못했다. 성조기를 든 초라한 노인의 모습은 젊은 세대들에게 받아 들여지지 않았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옳고 그름이 아니라 세대에 따라 인식과 생각이 다른 걸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그걸 인정하지 않으면 노인의 아집이 되어 버린다. 배고플 때는 먹을 걸 주면 되지만 배 아픈 세대는 그 영혼이 구원되어야 할 것 같다. 젊은 세대에게 사랑으로 노인의 지혜와 경험을 건네주어야 한다. 사람, 아니 인류라는 것은 나뭇잎과 같은 게 아닐까. 가을의 소슬한 바람이 대지를 낙엽으로 수 놓으면 봄은 다시금 새로운 선물로 숲을 장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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