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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상모략에 걸려 도움이 필요할 때

운영자 2020.05.15 17:05:18
조회 173 추천 1 댓글 0
광우병 사태가 일어났을 때였다. 미국산 소고기만 먹으면 광우병에 걸려 죽는 다는 방송에 선동된 사람들이 백만 명 가까이 광장에 모여 미쳐 날뛰고 있었다. 분노한 그들은 누군가를 죽이고 싶은 것 같았다. 한국 측 소고기 협상대표가 증오의 표적이 되었다. 군중은 광장에 그의 허수아비를 만들어 화형식에 처했다. 언론은 매일 협상대표의 모습을 신문지면과 텔레비전 화면에 올려놓고 인격살인을 하고 있었다. 도망 다니는 그는 나의 친구였다. 마치 범죄인처럼 마스크를 쓰고 사람들의 눈을 피해 다녔다. 그러다 지하철 같은 곳에서 걸리면 도망을 쳤다. 그는 중상모략에 걸려 멸시받고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상태였다. 변호사를 오랫동안 해 오면서 그와 비슷한 상황이 오면 사람들이 등을 돌리는 걸 흔히 보아왔다. 직장동료나 오랫동안 사귀어 왔던 사람이 세상의 흐름을 따라 하루아침에 손가락질을 하고 침을 뱉기도 했다. 나는 변호사란 그런 상황에 있는 사람 옆에서 함께 동행을 해 주는 직업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있다. 동시에 진실과 함께 해야 한다. 미국산 소고기를 먹으면 광우병에 걸린다는 전제는 보통사람이면 단번에 그게 거짓인 걸 알아차릴 수 있다. 그러나 진영의 정치 논리가 개입되면 거짓이 진실이고 광장의 다수와 높은 목소리가 정의가 되는 세상이었다. 나는 법정에서 곤경에 처한 친구의 옆에서 함께 상대방 진영의 눈에서 퍼렇게 뿜어져 나오는 독을 맞으며 함께 했다. 그건 외줄 타기 곡예사와 비슷한 직업적으로 느끼는 고통이 가미된 기쁨일지도 모른다. 기억의 벽 한쪽에 책에서 읽은 한 장면이 깊이 각인 된 게 있다. 한 사람이 친구들의 우정을 알아보기 위해 돼지를 잡아 가마니에 싼 채 지게에 둘러매고 친구 집을 찾았다. 그는 친구들에게 자기가 실수로 사람을 죽였다면서 도와달라고 간청했다. 지게 위에 얹힌 가마니에는 피가 배어 나온 얼룩이 생생했다. 그와 사귀어 왔던 사람들은 거의 모두 고개를 흔들고 그를 피했다. 나는 그런 경우가 닥칠 때 조금의 희생이 따르더라도 돕는 인간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을 해 오곤 했다. 실제로 집안에 그런 조상이 있었다. 엄씨 가의 시조가 되는 분은 평민이었다. 역적이라는 누명을 쓰고 죽어서 버려진 한 시체가 있었다. 왕은 그 시체를 수습해 묻어주는 자는 목을 치겠다고 엄명을 내렸다. 나의 조상은 아들과 함께 밤중에 그 시신을 묻어주었다. 그 사실이 발각되었다. 그건 곧 죽음이었다. 조상은 아들과 함께 강원도 영월의 깊은 산속으로 숨어 들어가면서 왕에게 보내는 이런 내용의 글을 남겼었다.

‘선을 행하다가 입게 된 화는 달게 받아들이겠소.’

조상들은 정말 오랫동안 쓰라린 운명을 맞아야 했다. 이백년 동안 산 속에서 숨어 살았던 것이다. 머슴이나 노비보다도 더 처참한 삶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일화가 주는 생명력은 모세의 율법에 뒤지지 않는 것 같다.

변호사를 하면서 법망에 걸려 감옥으로 가는 사람들을 평생 보아왔다. 그들을 만날 때 마다 나는 몇 사람의 친구가 감옥을 찾아와 함께 아파하고 안타까워하느냐고 묻곤 한다. 두 세 명만 있어도 정말 행복한 사람일 것이다. 단 한 사람도 찾아오지 않는 사람들도 많았다. 억울한 사정이 있어도 들어주는 사람이 없는 게 그 세계였다. 내가 아는 정치인의 출판기념회 때 사람들이 구름같이 몰려들었다. 그가 법망에 걸려 감옥에 갔다. 나는 그의 주위에 아무것도 없는 걸 보면서 깨달았다. 그의 주위에 몰렸던 것은 사람이 아니고 안개나 구름일 뿐이었음을. 감옥 안에서 징역 만기가 가까워 오는 조폭 두목한테서 이런 얘기도 들었다.

“중형을 받고 감옥에 있을 때는 개미 새끼 하나 찾아오지 않다가 석방될 때가 되니까 얼굴도장을 찍으려고 찾아드네요. 이게 세상입니다.”

나는 인간은 고독한 존재라고 생각한다. 바른 일을 하고 덕을 베풀어도 마찬가지다. 예수가 세상에 있을 때도 멸시받고 중상모략에 걸려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때가 있었다. 제자들과 친한 사람들이 모두 등을 돌렸다. 예수도 기꺼이 괴로움과 핍박을 받았는데 감히 그 누구를 원망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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