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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관속의 밀과 가라지 - 4 언어가 다른 법정

운영자 2010.08.31 12:11:50
조회 340 추천 0 댓글 0

  판사에게 석궁을 쏘는 테러 사건이 발생했었다. 대법관이 협박을 받고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본 적도 있었다. 일만 하다가 집에 도착해도 쏜살같이 아파트 안으로 뛰어 들어간다는 것이었다. 그런 법관들이 나쁜 사람이 아니었다. 일반 민중의 몰이해가 많다는 생각이다. 대부분이 피하기만 할 뿐  당당히 나서서 해명해 주는 사람이 없다. 나는 그런 오해의 원인이 대단한 데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국민에게 법관수준으로 법을 알라고 할 수는 없다. 이해를 시키기 위해서는 법관이 국민과 같이 말하고 행동하고 그 속사정을 이해해야 한다. 재판에 참여하다보면 먼저 법원과 국민이 서로 언어가 통하지 않는 걸 많이 본다. 법원에서 아무리 공보관을 많이 두고 방송에 대고 법리를 설명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공개된 법정 아무 곳에나 가서 30분만 객관자의 입장에서 방청하면 당장 그게 뭘 의미하는지 안다. 대화가 통해야 이해를 하고 마음이 흐른다. 그런데 법조인들은 그 생활을 하면 할수록 언어가 외국어 같이 바뀌고 있었다. 얼마 전 유명신문사 부국장을 지낸 분한테서 한 가지 부탁이 왔다. 정치부장출신인 그는 30년 이상 글을 써 온 칼럼니스트이기도 했다. 문장에는 베테랑급이었다.


 “법원에서 민사사건 판결문을 받았는데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알 수가 없어. 해석 좀 해 줘”

  나는 한글로 된 판결문을 다시 그에게 설명했다. 한 법정에 우연히 이런 광경을 본 기억이 난다.


 “제가 돈을 다 갚았습니다.”

  당사자가 재판장에게 말했다.


 “그러니까 변제했단 말이지?”

  재판장이 반말로 되물었다.


 “빚진 거 갚았다니까요”

 “그러니까 채무를 변제했다는 거야? 아니야? 요점만 말해.”


  재판장과 당사자는 그렇게 옥신각신하고 있었다. 법리만 머릿속에 가득 찬 재판장은 우리말도 겸손도 모두 잃어버린 것 같았다. 변호사인 나 자신도 일반의 언어를 잃어버린 경험이 있다. 대학시절부터 법문장만 달달 외워왔다. 세월이 지나면서 나의 생각과 말과 글에 이상이 생겼다. 법률상담을 하러온 당사자에게 나는 열심히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상대방은 항상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멀뚱한 표정이었다. 나는 판례에 나타난 이상한 문장들을 앵무새같이 내뱉으면서 속으로는 상대방을 무식하다고 비난하고 있었다. 더러 글을 쓰기도 했다. 역시 사람들은 법률과 한자용어로 꽉 찬 내 글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 글에는 마음도 던지는 메시지도 문장의 기본 원칙도 담겨있지 않았다. 사람들을 당황하게 하고 위축시키는 엘리트의식과 권위주의만 짙게 깔려 있는 것 같았다. 법서만 읽다보니 사고방식도 현실과 동떨어져 있었다. 폭력배에게 얻어맞아도 증거가 없으면 나는 얻어맞지 않은 것이다. 돈을 꾸었어도 차용증만 없으면 나는 아무런 빚이 없었다.


  실체적 진실과 법적인 사실이 전혀 달랐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판사가 인정한 사실을 실체적 진실이고 정의라고 착각들을 했다. 그런 중병은 높은 자리의 판사를 한 사람일 수록 중하다는 걸 경험했다. 고등법원장을 지낸 분과 대화를 한 적이 있었다. 복잡한 법리와 최신판례를 상식같이 전제하고 그분의 말을 실력이 부족한 나는 반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는 머릿속에 있는 기본적인 사실조차 생략한 채 법률토론을 하는 것 같이 말하고 있었다. 나는 언어를 잃어버린 중병을 치료하기 위해 무던히 노력했다. 문학과 철학, 역사와 종교에 관한 책들을 쌓아놓고 정독하기 시작했다. 하나하나의 문장에 밑줄을 그으면서 공부했다. 평이한 문장하나 소박한 수필 한편의 탄생 뒤에 보이지 않는 고뇌와 땀이 얼마나 많이 배어 있는 것을 어렴풋이 알게 됐다. 십년이 지나고 이십년이 지나면서 나는 덤으로 말의 장인으로 인정해 주는 수필가가 되고 소설가로도 등단했다. 몇몇 언론 매체에서 고정적인 칼럼이나 소설연재를 받을 정도로 회복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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