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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관속의 밀과 가라지 - 7 어느 판사의 명 연출

운영자 2010.09.02 12:20:57
조회 3136 추천 0 댓글 10

  판결을 선고할 때 얼마다 당사자를 납득시키느냐에 따라 그 판사의 인격과 자질이 그대로 나타나는 것 같다. 변호사가 고심해서 연구하고 주장을 하는 것들이 많다. 그에 대해 어떤 법정에서 재판장이 이렇게 말하는 걸 봤었다.


 “변호사가 뭐라고는 하는데 이유 없어요.”

  변론을 일축하는 그 재판장의 태도는 가벼웠다. 선고를 받던 피고인이 재판장을 향해 펄쩍 뛰어오르다가 제압당했다.


  또 다른 고등법원에서 본 광경이다. 개정 시각이 지났는데도 재판장은 들어오지 않고 있었다. 재판장의 버릇이었다. 복도에 있던 교도관들이 불만을 털어놓았다.

 “늦게 나오면 잘난 걸로 보이는 모양이지?”


 “우린 언제 구치소로 돌아가 점심을 먹나?”

  이윽고 재판장이 거만한 표정으로 법정에 나와 앉았다. 미안할 리가 없었다. 선고가 시작됐다. 중년의 남자가 나왔다.


 “피고인을 징역 이년에 처한다.”

  재판장이 건조한 표정으로 짧게 선고했다.


 “재판장님 저 사흘 전에 합의 했는데요”

  남자가 당황해서 말했다.


 “합의해도 소용없어”

  재판장이 내뱉었다.


 “다음 사람”

  재판장이 사무적으로 내뱉었다. 그를 끌고 들어가라는 지시였다. 갑자기 그가 법정이 떠나가도록 소리쳤다.


 “재판장, 야 너 똑바로 해!”

  존경하는 재판장님이 ‘야’로 바뀌었다.


 “형을 더 높일 걸 잘못했구만----”

  권위의식을 침해당한 흥분한 재판장이 눈알을 부라리면서 말했다. 고위법관인 그는 인격적으로 피고인 수준을 넘지 못하고 있었다. 검은 법복과 위압적인 법정의 분위기 그리고 법적권한만을 의지하는 판사는 국민을 설득하지 못한다.


  반면 판결을 선고하면서 말 한마디도 수십만 명의 시위대를 단번에 침묵시킨 명판관도 있었다. 그 사건은 단군 이래 최대의 사기사건이라고 보도됐던 다단계사업이었다. 언론은 피해액이 5조에 이르렀고 자살한 사람 여러 명 뿐만 아니라 서민 수십 만 명이 거리로 나앉았다고 했다. 재판 때마다 법원주변은 살벌한 전쟁터였다. 법정 안에서는 검사와 변호사가 서로 인신공격을 하기도 했다. 밖에서는 피해자라는 시위대가 다시 편이 갈려 주먹과 발길질이 오고 갔다. 피해자들도 투쟁방법에 따라 두부류로 갈렸다. 한쪽은 판사가 무기징역에 처하게 해야 숨겼던 돈을 토해낼 거라는 의견이었다. 다른 한쪽은 일단 석방시켜 돈을 벌어서 갚게 하자고 했다.


  나는 선고 당시의 상황을 일기처럼 세밀하게 기록해 놓은 게 있다. 그날 내가 써 놨던  내용은 이랬다.   


  법원 건물의 위로 회색구름이 커튼처럼 낮게 드리워져 있었다. 굵은 빗줄기가 후두둑 떨어져 포석 위에서 사방으로 은방울이 되어 날아갔다. 후덥지근하고 습기 찬 날씨였다. 나는 법원 정문 앞을 지나면서 시계를 봤다. 오후 두시 사십 오 분이다. 법원 뜰에는 경찰버스 여러 대가 출동해 있었다. 오늘 선고가 있은 후의 난동에 대비한 것 같았다. 구치소에서 출발한 호송버스가 도착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수 백 명이 앞에 서 있었다. 그들은 모두 다단계회사의 사장을 사기꾼이라고 하면서 죽이라고 악을 쓰던 시위대였다.


 “회장님 오신다.”

  한 사람이 소리치자 그 앞으로 사람들이 몰려가 도열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회장을 잡아 죽일 듯 하던 사람들이었다. 갑자기 이변이 난 것이다.


  법정은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방청석 제일 앞줄은 교도관들이 그 뒷줄은 경찰관들로 이중의 인간방벽을 만들고 있었다. 재판 때마다 방청석에서는 편이 갈려 고함과 야유로 법정은 난장판이었다. 판사들은 아직 나오지 않고 있었다. 나는 오늘 판사가 어떻게 행동을 할까 아주 궁금했다. 어제까지 사기꾼 회장을 죽이라고 떠들던 시위대였다. 그런데 오늘은 모두 우리회장님을 살려달라고 하고 있다. 자칫하면 그들이 이해관계에 따라 던지는 돌을 이번에는 재판부가 고스란히 맞을 가능성이 있었다. 방청석 앞에서 법원직원이 미소를 지으며 한마디 했다.


 “여러분 그동안 협조를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시위대가 강하면 법원직원도 슬며시 꼬리를 내렸다. 무심히 방청석 쪽으로 시선을 돌리다가 한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전 재산을 사기 당했다면서 난동을 피우던 남자였다. 그는 변호사들에게 온갖 쌍욕을 퍼부어댔었다. 그의 적대감이 눈 녹듯 사라졌다. 수십만의 적의가 호의로 바뀐 기적이 벌어졌다. 부자가 되게 해주겠다고 하니까 구름같이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게 아닌 것 같자 군중들은 머리띠를 두르고 죽이려고 덤벼들었다. 그가 다시 돈을 갚겠다고 하자 사람들은 다시 변했다. 욕심에 눈이 먼 피해자들에게도 문제는 있었다. 피해자들을 대표하는 업무를 맡은 변호사의 얼굴이 보였다. 그가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내 옆으로 다가와 물었다.


  “오늘 틀림없이 변수가 있겠죠?”

  사기꾼으로 몰린 회장이 무죄로 석방되겠느냐는 얘기였다.


 “어떻게 시위대의 태도가 이렇게 바뀌었죠?”

  내가 낮은 소리로 물었다. 하루 전만 해도 플래카드가 난무하고 꽹과리 소리가 요란했었다.


 “어제 회장이 피해자들이 요구하는 대로 각서를 다 써줬어요 합의가 된 거죠. 이제 석방되어 의무이행만 하면 됩니다.”

 “이행할 의사나 능력이 있다고 보십니까?”


 “다른 사람은 몰라도 회장은 충분히 그럴 의사나 능력이 있다고 모든 피해회원들은 인정하고 있습니다.”

  결국 사기꾼이 아니라는 인식이었다. 돈을 갚을 의사나 능력이 없이 고의적으로 거짓을 했을 때에 사기죄는 성립했다.


  이윽고 재판장이 배석판사들과 함께 법정 안으로 들어왔다.

  재판장이 갑자기 바뀐 수십만 시위대의 요구를 어떻게 처리하면서 법을 정의할 것인지 호기심이 일었다. 수많은 시선들이 재판장의 얼굴에 화살같이 쏟아졌다. 재판장은 감정을 철저히 숨긴 담담한 얼굴이었다.


 “법정 안에 기자 분들 계십니까?”

  재판장이 방청석을 둘러보며 물었다. 구석에 서 있던 몇 사람이 손을 들었다.


 “판사실에 보도 자료가 있습니다. 그 자료 중 27쪽과 55쪽의 내용들이 판결문의 핵심입니다.”

  언론에 대한 처리였다.


 “피고인 나오세요.”

  재판장이 교도관에게 명령했다. 잠시 후 벽 쪽의 문이 열리면서 백발에 파란재소자복을 입은 회장이 걸어 나왔다. 백짓장 같이 하얗게 바랜 얼굴이었다. 재판장이 그를 내려다보았다. 시선과 시선이 부딪치고 있었다.


 “지금 심경이 어때요?”

  재판장은 뜸을 들이는 것 같았다.


 “-------”

  회장은 침묵하면서 가만히 있었다. 재판장은 다시 방청석으로 시선을 돌리면서 먼저 이렇게 입을 열었다.
 

“ 그동안 재판을 많이 해 봤지만 이렇게 진지하고 열정적인 재판 과정은 못 봤습니다. 이렇게 열심히 하는 검사가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가 잘되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변호인들 역시 성의가 대단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동안 방청객여러분께서 협조해 주셔서 재판부로서는 먼저 감사를 드립니다.”

  사람들이 민감하게 그 말을 분석하는 표정이었다. 검사를 칭찬하면 형이 떨어질 가능성이 많았다. 그런데 변호사도 똑같이 배려하고 있었다. 재판장이 다시 피고인회장 쪽으로 시선을 돌리면서 물었다.


 “좀 더 재판을 하자고 연기신청서를 내셨는데 그 취지가 뭡니까?”

 “아직 충분히 심리가 되지 않았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했습니다. 저하고 같이 있는 회사임원이었던 다른 사람들은 법정에서조차 말 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일심 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억울한 점도 많고 할 말도 많습니다. 그런데 그게 안 됩니다.”


  재판장이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재판이란 시간적 한계 속에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재판장인 저 역시 시간뿐만 아니라 인간적인 한계 속에서 재판을 하고 있습니다. 그 점에 대해서는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재판장이 매끄럽게 법원의 입장을 표명 했다. 이번에는 재판장이 방청석에 꽉 찬 사람들을 향해 말했다. 


 “방청석에 나와 계시는 피해자 여러분들은 그동안 모두 주수도피고인을 엄벌해 달라고 진정하셨던 분들이죠? 그런데 여러분들은 모두 태도가 바뀌셨더군요, 이제는 모두 주수도회장님을 살려달라고 탄원을 하셨더군요.”

  사람들은 귀를 쫑긋 세우고 재판장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여러분들은 회장을 황금 알을 낳는 거위로 보시지 않았나요? 그러다가 황금 알이 나오지 않자 구속과 엄벌을 요구하셨죠?  황금 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갈라 그 속의 알을 꺼내려고 고소하신 거 아닙니까? 그래서 법정바닥에 신문지까지 깔고 앉아 거위가 죽어가는 걸 보려고 여태까지 기다려 왔던 거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오늘 아침 이 시각에는 모든 분들이 회장을 용서해 달라고 하시네요. 재판부에서는 여러분이 탄원한 내용을 세심하게 보면서 생각해 봤습니다. 회장을 다시 바깥세상으로 내보내 계속 황금알을 낳도록 하자는 여러분의 뜻으로 재판부는 해석을 했습니다. 그리고 판사들이 여기 법정에 나오기 조금 전까지만 해도 엄청난 양의 탄원서가 재판부에 더 밀려들어오더군요.”

  사람들은 올렸다 내렸다 이리저리 치는 재판장의 속뜻을 파악하려고 민감하게 신경을 쓰는 표정이었다. 재판장의 말 속에는 이해관계에 의해 손바닥을 뒤집는 경박한 인간성에 대한 질책이 배어 있었다. 재판장이 계속했다.


 “재판장인 저는 여러분의 회장이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나쁜 사기꾼이 아니라는 걸 알았습니다.”

  법적 판단 이전에 재판장이 인간적 시각에서 본 회장에 대한 평가였다. 판사가 ‘너는 진짜 나쁜 놈은 아니야’라는 그 한마디만 있어도 큰 위로였다. 재판장이 계속했다.


 “세상에서는 회장인 피고인을 단군 이래 최대의 사기꾼이라고 보도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재판장인 저는 피고인이 그렇게 매도당할 만한 영악한 사기꾼이 아니라는 걸 이제는 알고 있습니다.”

  앞에 선 피고인의 내면의 본질을 봤다는 얘기였다. 


 “모든 걸 선의로 생각하고 싶습니다. 사기꾼들은 이익을 챙겨 빠져나갈 줄을 압니다. 그러나 피고인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전형적인 사기꾼하고는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검찰은 피고인이 밀항을 하려고 했다고 하고 재산을 은닉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재판부의 입장에서는 그런 주장이 사실인지 아닌지 알 수 없다고 판단합니다. 따지고 보면 피해자들이라고 하시는 분들 역시 실질적인 피해가 없습니다. 일반적 기준으로 볼 때 사실 피해자가 아닌 거죠. 저희 재판부는 그동안의 기록을 읽어보니까 피고인의 얘기가 맞는 점이 많다는 걸 느꼈습니다.”

  검찰의 덮어씌우기에 대한 법원의 강한 통박이었다. 재판장은 잠시 침묵하다가 논점의 방향을 사건 쪽으로 돌렸다.


 “다단계사업 회장인 피고인은 자신이 독자적으로 창조한 세계 최초의 마케팅방법으로 사업을 벌였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만들었다는 마케팅에 대한 수학적 통계학적 근거까지는 준비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재판부가 보기에 피고인이 구상했다는 그 마케팅은 높은 빌딩을 새로운 공법으로 설계하면서 수학적 검증을 거치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다단계 영업이 활성화 되면서 사람들은 피고인을 황금을 만드는 마이더스의 손쯤으로 여기고  그가 짓고 있는 빌딩으로 몰려들었습니다. 빌딩건물은 점점 더 높이 구름을 향해 솟아 올라갔습니다. 그러나 수학적 근거가 없는 빌딩은 고층건물이 되자 어느 순간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아마 피고인은 건물이 무너질지도 모른다고 걱정했을 겁니다. 그러면서도 ‘괜찮겠지, 괜찮겠지’ 하고 사람들을 계속 건물 안으로 끌어들였습니다. 물론 회장이었던 피고인은 사람들에게 투기를 하지 말라고 주의를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건 이미 쵸컬릿 맛을 들인 어린아이에게 한 개만 먹고 그만둬라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고 저는 봅니다. 이미 유혹에 넘어간 사람들이 막 먹고 있었죠, 피고인이 그걸 몰랐을 리는 없습니다. 구름 위까지 높이 치솟은 건물에 균열이 나고 결국 회장인 피고인은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붕괴되어 버렸습니다. 말을 압축하면 실패한 경영자가 사업을 하는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인 것이라고나 할까요? 이윤 범위 내에서 수당을 줘야 하는데 그걸 넘어서 너무 많이 줘 버린 겁니다.”

  재판장은 잠시 말을 중단하고 회장인 피고인을 내려다 보았다.


 “000씨!”

  재판장이 갑자기 그의 이름을 또박또박 불렀다. 피고인에서 인간으로의 승격이었다.


 “당신은 어떤 다른 걸 그렇게 열망 했나요?”

  보통사기꾼 같으면 천억만 챙겨도 외국에 나가 평생 왕같이 살 수가 있었다. 그러나 그는 도망을 가지 않았다. 왜 그런 것인지가 사건의 실질적인 핵심이었다. 재판장은 그것까지 간파한 눈치였다.


 “-------”

  피고인이 된 회장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재판장은 더 이상 피고인으로 그를 부르지 않았다.


 “000씨의 열망을 저는 잘 모르겠지만 서민들은 퇴직금이나 전 재산을 털어 당신의 무너지는 건물에 가지고 들어갔습니다. 무너질 순간 막차를 탄 게 서민인 그들입니다. 지금 당신은 서해안의 기름이 나오는 유전, 그리고  강화도나 제주도의 골프장을 말하면서 보상할 많은 재원이 있는 듯 말하지만 제가 보기에 그건 어렵다고 봅니다. 그리고 피해가 너무 큽니다.”

  재판장이 이번에는 방청석의 고소인들을 보면서 말했다. 


 “여러분들은 회장이 석방되어 나가면 받고 싶은 돈을 다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시죠? 재판부는 다단계 사업에서 그 황금알을 낳는 원천을 곰곰이 생각해 봤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황우석의 줄기세포 같은 그런 가치창조가 아닙니다. 다단계판매에서 받는 수당은 중간이윤에서 나옵니다. 그리고 중간이윤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에게 약속한 많은 돈을 주기 위해서는 또 수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여 그들의 돈을 내놓게 해야 합니다. 재판부로서는 여러분들의 욕심을 위해 또 다른 선량한 피해자들이 양산된다는 걸 알면서 굳이 여러분을 만족시켜 주고 싶지는 않습니다.”

  방청석이 술렁거렸다. 갑자기 분위기가 어두워지고 있었다. 재판장은 서서히 법적 결론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일반인의 상식과 법률은 다릅니다. 법은 미필적 고의를 가진 것도 처벌하고 있습니다. 건물이 무너질 걸 알면서도 사람들을 끌어들인 점을 저는 사기의 미필적 고의로 보고 있습니다. 피고인이 유혹에 넘어간 사람들이 막 들어오는 걸 몰랐을 리가 없습니다. 그것도 미약하지만 사기의 범의라고 봅니다. 수학적 통계학적 안정장치를 설치하지 않은 것도 그렇게 간주합니다. 법적인 사기는 일반관념보다 광범위합니다.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걸 중단하지 않고 용인한 그 자체가 사기에 해당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반적인 시각에서 볼 때 실질적인 이득을 본 사람도 법률적 측면에서는 피해자일 수 있습니다. 상식과 법률은 다르기 때문입니다.”

  재판장은 법이 무엇인가를 선언하고 있었다. 이해관계에 뭉쳐진 고소인과 피고인을 모두 비판하면서 법은 그런 것을 초월한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었다.


 “다음은 여론에 대해 한마디 하겠습니다.”

  재판장이 화제를 돌렸다.


 “지금 모든 언론매체는 피고인을 단군 이래 최고의 사기꾼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저희 재판부는 여론에 영향을 받아서도 안 되지만 여론을 무시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고소를 했다가 탄원서를 낸 방청석의 여러분들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죽이고 싶지 않겠죠? 그 점은 이해합니다. 그렇지만 지금 많은 일반 국민들은 그 거위를 죽이기를 차라리 원할 겁니다.”

  어느새 재판장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피고인!”

  재판장이 그를 내려다보면서 무거운 어조로 불렀다. 그가 강한 눈빛으로 재판장을 올려다보았다.


 “이카루스의 날개라고 압니까?”

  재판장이 의미를 담은 어조로 물었다.


 “------”

  그가 말이 없었다. 


 “희랍신화에 나오는 이카루스는 스스로 하늘을 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밀 납으로 만든 날개를 달고 올랐죠, 그러다가 태양근처에서 그 열 때문에 날개가 녹아 추락을 했습니다. 피고인도 이카루스 같이 하늘을 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나요?”

  의미심장한 질문이었다. 그의 열망의 정체가 수천억의 돈보다 더 추구했던 이카루스의 날개였다고 우회적으로 표현했다.


 “-----”

  회장은 대답하지 않았다.


 “저는 재판장으로서 당신에게 형을 내기로 결심했습니다. 일심에서 징역 12년이 선고됐습니다. 검사는 너무 형이 가볍다면서 무기징역에 처해달라고 항소했습니다. 변호인단에서는 무죄라고 하면서 징역 12년은 이미 인생 오십대를 넘어선 피고인의 나머지 인생을 모두 박탈하는 무거운 형이라고 주장하면서 석방시켜 달라고 했습니다. 저희 재판부는 유사한 다단계업체의 재판 결론 몇 개를 참고했습니다. 피고인이 하던 업체에 비해 피해액이 엄청 적은데도 징역 10년이 확정된 게 있습니다. 그걸 감안하면 피고인의 감형 여지는 거의 없다고 봤습니다. 동시에 검찰 측의 무기징역도 너무 무겁다고 판단했습니다. 검찰 측이 못마땅하고 변호인 측이 허탈해 하더라도 우리 재판부는 일심에서 선고한 피고인에 대한 징역 12년을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습니다.”

  재판장이 판결문을 들고 엄숙한 표정으로 낭독했다.


 “검사와 피고인의 항소를 모두 기각한다.”

  거대한 사건에 대한 프로급 노련한 판사의 선고 장면이었다. 명쾌한 판사의 선언 앞에서 수십만의 시위대는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인간이 무엇인지 법이 무엇인지 그리고 사건의 본질이 어떤 건지를 완벽하게 파악하고 법관으로서의 소신까지 표명한 최고의 법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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