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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명품

운영자 2022.10.04 10:5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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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도 명품이 있고 짝퉁이 있는 것 같다. 삼십대 중반 무렵 대통령 직속기관에서 인간명품을 만났다. 그는 나보다 상급 연구관이었던 파견된 검사였다. 같은 방에서 함께 일하면서 그를 옆에서 지켜보았다. 그의 타고난 듯한 우수성에 나는 놀랐다. 아침에 출근해서 몇 개의 신문과 정보보고서를 읽는 순간 그는 언론의 행간과 정국의 핵심을 정확히 파악했다. 그는 나이도 나보다 한 살 어렸다. 법쟁이인 우리는 정무적 감각이 있을 나이가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본능적으로 어떤 눈이 열려있는 것 같았다. 위에서 법률검토를 지시하면 그는 어떤 보고서도 에이포 용지 한 장 정도로 압축했다. 명령권자의 의도를 무섭도록 정확히 파악했다. 그렇다고 그 의도대로 보고서를 쓰지는 않았다. 더러 들끓는 정국이나 국회에 대처할 의견을 제시하라는 명령이 내려오기도 했다. 아직 삼십대 중반의 그가 쓰는 보고서를 보면 삼국지의 제갈량 같은 책사같았다. 그 보고서는 공정함과 항상 상대방의 입장에서 보는 배려가 깔려있었다. 입법안에 대한 대책에도 어디까지 양보하고 정권측에서 상대당에 뭘 줄 것인가도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사회적 물의가 빚어진 사건이나 과격 시위에 대해서도 어느 수위로 그걸 진정하는 게 적정한 것인지 그는 현명하게 판단하고 있었다. 사회를 대하는 젊은 그의 천재성이 어디서 나온 것인지 신기하면서 둔한 내가 부끄러웠다. 대학재학시절 행정 고시에 합격한 그의 아버지가 스무살 때 그를 낳았다고 했다. 그 역시 이십대 초에 일찍 사법고시에 합격했다. 그의 아버지는 지방 도시의 시장을 하고 있었다. 권력의 중심부에서 그는 아버지를 보호하는 모습이었다. 아버지가 시장으로 있는 지역의 정보책임자나 수사기관이 아버지를 건드리지 못하게 했다. 오히려 아버지역할을 하는 아들이었다. 아버지가 해외 출장을 갔다 올 때 그는 아버지 대신 영어로 된 자료들을 해석해 주는 걸 보기도 했다. 내가 졸업한 고등학교에도 천재성을 가진 사람은 여럿 있었다. 내가 그를 인간명품으로 본건 인격 때문이었다. 그는 겸손하고 정직했다. 그리고 따뜻했다. 주변의 힘든 상황에 공감을 하고 성실하게 적극적으로 도와주었다. 작지만 봉투에 돈을 넣어 작은 성의를 표시하는 세심함을 보았다. 그러나 그건 출세하기 위해 가장하는 위선이 아니었다. 어떻게 저런 총명과 인품을 타고날 수 있을까 나는 부러웠다.

저항적인 성격의 내가 스스로 머리를 굽힌 인물이었다. 친구 또래지만 존경심이 들었다. 세월이 흘렀다. 예상대로 그는 서울중앙지검장을 마치고 검찰총장 후보가 되었다. 그가 연설하는 장면을 텔레비전 뉴스 화면을 통해 봤다. 연설에도 군더더기가 없고 진실성이 담겨 있었다. 그가 경쟁하는 상대방 후보도 아는 사람이었다. 내가 몇 달동안 검사직무대리로 근무할 때 옆방의 검사였다. 그는 퇴근을 하지 않고 사무실에서 냄비에 라면을 끓여 먹으면서 우직하게 일을 하던 사람이었다. 공정하고 좋은 사람이 검찰총장이 되어야 법이 바로서고 나라가 반듯하게 된다. 나와 같이 일을 했던 그는 안타깝게도 검찰총장이 되지 못했다. 그는 질 때도 깨끗하게 졌다. 인간의 명품은 그런 때 더 빛이 나는 것 같았다. 지난 선거 때 대통령이 되기 위해 검사출신들이 진흙탕의 개처럼 상대방을 물어뜯는 모습을 봤다. 같은 검사 출신이지만 내가 존경하는 마음을 가졌던 그에 비하면 모두 짝퉁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미래를 바라보는 통찰력도 정국을 이끌려는 소화된 정책능력도 부족한 것 같았다. 인간명품이 꼭 대통령이 되는 건 아닌 것 같다. 사람마다 자기가 따라가고 싶은 모범으로 삼는 존재가 있다. 인간명품 위에 특품이 있는 것 같다. 톨스토이나 공자가 인간 특품쯤 되지 않을까. 그위에 최고가 또 있는 것 같다. 예수가 그런 존재인 것으로 생각한다. 거대한 산은 보는 멀리서 보는 위치에 따라 또 다가서는 거리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 나는 내 시각에서 그분의 일부만 보인다. 나는 예수가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평민이어서 좋다. 내가 가난했어도 예수만큼 가난하지는 않은 것 같다. 예수는 여우도 굴이 있고 새도 둥지가 있지만 자신은 머리를 둘 장소조차 없다고 했다. 마지막에는 어머니마저 제자에게 부탁할 정도였다. 내가 모멸감을 느껴도 예수보다는 덜 한 것 같다. 예수는 침뱉음을 당하고 뺨을 맞고 주먹으로 채찍으로 얻어맞았다. 예수는 이 세상에서의 실패자였다. 예전부터 위를 보면 불행하고 아래를 보면 행복하다는 속담이 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행복감을 주기 위해 자신의 아들을 그런 모습으로 세상 무대에 내보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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