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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몫이 있다

운영자 2022.10.31 10: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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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상담을 해주기 위해 서울역앞 노숙자합숙소를 들렸을 때였다. 그곳에서 일하고 있는 목사가 이런 말을 했다.

“노숙자 한 사람이 로또복권을 들고 와서 자기가 당첨된 것 같다면서 보라고 했어요. 내가 확인해 보니까 십칠억짜리가 당첨된 게 맞는 거 같았어요. 그 사람이 나보고 같이 돈을 찾으러 가자고 하는데 혼자 가라고 했어요. 따라가면 그 돈에 욕심을 가진 걸로 오해받을 것 같아서였죠. 그 사람이 돈을 받겠다고 혼자 갔다오더니 하는 말이 은행에서 노숙자라고 안에 들어오지도 못하게 하더라는 거예요. 그래서 화가 나서 그 로또복권을 박박 찢어서 버리고 왔다는 거예요. 정말 아깝네요. 법적으로 방법이 없을까요?”

그 노숙자를 직접 만났다. 오십대 쯤의 선량한 인상을 가진 남자였다. 마음이 들끓지 않고 평안해 보였다. 한편으로는 나사가 조금 풀린 듯한 느낌도 들었다.

“억울하지 않아요?”

내가 물었다.

“괜찮아요. 돈 생기면 또 복권을 사면 되지 뭐. 그리고 난 이 합숙소에서 주는 옷과 카레밥이면 만족해요.”

그가 싱글싱글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에게 십칠억원이라는 것은 어떤 관념일까. 그 노숙자를 보면서 사람들마다 자기 몫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경우도 먹고 살면서 더러 친구들 밥 사주는 정도의 돈만 있으면 만족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나라는 작은 그릇에 돈이 찼다면 그 이후는 그대로 바닥에 흘러넘칠 것 같았다. 사람마다 자신의 그릇만큼만 채울 수 있기 때문이다. 평안한 그 노숙자를 선동해서 욕심을 심어주고 고뇌를 주는 역할을 하기 싫었다. 그 역시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다.

어제는 암으로 투병 중인 친구의 부인에게서 메시지가 날아왔다. 호스피스 병동으로 옮겼다는 것이다. 그에게 주어진 삶의 잔이 거의 다 차 가는 것 같았다. 고등학교 삼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그는 교실의 창가 중간쯤 앉아있었다. 성실하게 보이는 착한 친구였다. 그런데 그를 보면 어딘지 모르게 조금은 추워하는 느낌이었다. 그는 독일에 유학해서 박사학위를 따고 돌아와 연구소에서 일을 하다가 정년 퇴직을 했다. 그 이후는 고교동기들로 구성된 신우회를 조직해서 성실하게 이끌었다. 그는 암이라는 초청장을 받고 저세상으로 건너가려는 친구들을 찾아가 기도해 주곤 했다. 금년초 그 자신이 암이라는 초대장을 받았다고 연락이 왔다. 그를 보면서 인간의 수명도 자기 몫이 있다는 게 느껴졌다. 성경을 보면 인생 칠십이고 길어야 팔십이라는 대목도 있다. 그나 나나 인생 칠십 고개까지 다가 왔으면 주어진 마라톤 코스에서 자기가 뛰어야 할 몫은 대충 다 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가도 한 맺히고 아쉬울 나이는 아닐 것 같았다. 그러나 정작 죽음을 맞이하는 당사자에게는 그 느낌이 다르다. 나도 암진단을 받고 임종연습을 한 적이 있었다. 막상 닥치니까 아니었다. 언젠가 죽는다는 건 알지만 지금은 아니라고 부인했다. 갑자기 머리채를 잡힌 채 죽음 쪽으로 끌려가는 것 같았다. 그러다 살아났다. 아직 내 삶의 잔에서 채울 여백이 남아 있었던 것 같다. 성경은 살 때가 있으면 죽을 때가 있다고 했다. 나의 생명의 몫을 채우고 담담하게 옮겨갔으면 하는 심정이다.

며칠전 한밤중이었다. 무심코 움직이던 손가락 끝의 스마트 폰 화면에 갑자기 죽은 리영희 선생이 나타났다. 삼각으로 옆으로 찢어진 눈과 깡마른 얼굴의 날카로운 인상이다. 생전에 인터뷰했던 동영상인 것 같았다. 우리가 대학을 다니던 시절 그의 책 ‘전환 시대의 논리’는 눈에서 비늘이 떨어지게 하는 의식화의 교과서였다. 일흔일곱살의 노인이 된 리영희 선생은 화면 안에서 이런 말을 하고 있었다.

“나는 나름대로 주제를 알고 능력의 한계를 알기 때문에 헛된 걸 따라가지는 않았습니다. 기자가 되어 진실을 쓰려고 노력했어요. 저는 나름대로 ‘심플라이프와 하이씽킹’을 내 삶의 좌표로 추구해 왔어요. 중풍으로 쓰러져 반신불수가 된지 십년입니다. 다시 책을 볼 수 있고 글을 쓸 수 있으면 좋겠어요. 내가 하는 일이 저술이었으니까.”

그는 자신을 철저히 알고 그 그릇에 맞게 살다 간 사람 같았다. 적은 것을 바라면 적은 것으로 행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남들이 가진 것을 다 가지려 한다면 인생이 비참해 질 수 있다. 자신의 처지와 분수 안에서 만족할 줄 안다면 그가 진정한 부자가 아닐까. 사람마다 자기 몫이 있다. 그리고 자신의 그릇만큼 채운다. 거기까지다. 그 그릇이 차면 넘칠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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