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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의 길을 분명하게

운영자 2022.11.14 10:03:29
조회 127 추천 1 댓글 0

우연히 내가 타고가던 택시의 기사분이 이런 말을 했다.

“저는 택시기사라는 직업에 정말 감사합니다. 더도 아니고 덜도 아니고 땀 흘려 뛰는 만큼 일하는 시간만큼 정확하게 보수가 주어지는 직업 아닙니까? 그렇다고 우리 택시 기사가 누구에게 상품을 팔려고 과장을 합니까? 거짓말을 할 필요가 있습니까? 세상에 자랑할 것은 없어도 택시 기사보다 정직한 직업은 없을 겁니다.”

정말 그럴 것 같았다. 택시 기사는 아름다운 직업이었다. 그가 덧붙였다.

“그런데도 말이죠 어떤 손님은 시비를 걸고 돈 안내고 도망치는 분도 있고 어떤 사람은 때려요. 어린 사람한테 얻어맞은 적도 있어요. 그게 세상이거니 하고 참는 연습을 하는 게 이 택시 운전입니다.”

써머셋 모옴의 소설 ‘면도날’에서 하버드를 나온 주인공은 뉴욕의 택시 운전사가 된다. 그는 택시를 탁발승의 지팡이 같은 수행의 도구라고 했다.

한 봉사단체에서 소리꾼 최씨를 만났었다. 쉰 여덟살의 그는 푸른 도포를 입고 학같이 춤을 추기도 했었다. 그가 이런 말을 한 기억이 아직 남아있다.

“어린 시절 창에 미쳐서 민요나 가요를 닥치는 대로 배웠죠. 잔치집과 밤무대를 전전하면서 평생을 보냈어요. 나이를 먹어 그런지 이삼년전 부터는 그나마 불러주던 게 뚝 그쳤어요.”

그의 아내는 춤꾼이었다. 그리고 딸은 예술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그들 가족은 평생 소리와 춤에 미쳐 가난을 친구삼고 집도 없이 떠돌아다닌 것 같았다. 소리를 할 수 있는 곳이라면 돈을 받지 않아도 찾아간 것 같았다. 그들은 나환자촌이나 양노원을 돌아다니면서 무료 공연을 하고 있었다. 소탈하고 때 묻지 않은 착한 예인(藝人)들이었다. 소리꾼 최씨가 죽었다는 소리를 전해 들었다. 세월이 흐른후 그의 딸이 대한민국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아이돌이 되어 있는걸 텔레비전 화면에서 본 적이 있다. 아버지의 인내와 선행의 결과는 없어지지 않고 모두 모여 딸에게 돌아간 것 같았다. 나에게 취재를 온 자유기고가가 있었다. 그가 일이 끝난 후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일간지를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어요. 잡지사에서 근무를 했었는데 시를 쓸 시간을 가지기 위해 사표를 냈어요. 그러다 보니 일용할 양식을 얻기 위해 더러 출판사의 부탁을 받아 이렇게 취재를 다니고 있습니다.”

시를 신성한 문학의 제단 위에 올려놓고 그는 생활을 위해서는 노동을 하는 것 같았다.

얼마 전 대통령의 연설비서관이 자기를 지칭해서 ‘고스트 라이터’라고 하면서 대통령은 자기의 생각을 글로 쓸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나도 대통령의 말씀자료를 쓴 적도 있고 변호사 단체장의 컬럼을 대신 써 준 적도 있다. 잘 한 짓은 아니지만 죄의식은 별로 느끼지 않았다.

한 대필작가를 만났던 적이 있다. 자기 이름을 내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글을 써 주는 사람이었다. 그가 고스트라이터가 된 자신의 배경을 이렇게 말했다.

“국문학과 등록금을 내기 위해 안한 일이 없어요. 음식점 점원, 옷집 점원, 골프연습장 캐디를 했어요. 저는 그냥 글이 좋았어요. 쓰고 또 썼죠. 읽을거리가 떨어지면 국어사전, 의성어 의태어 사전을 들추면서 외웠어요. 그러다가 어쩌다 보니 대필작가가 됐어요. 이름이 중요한 게 아니라 자기가 형상화 하는 작품 자체에서 희열을 느꼈어요. 저는 고스트라이터지만 남이 써 준 작품으로 등단을 하거나 이름을 내는 게 오히려 허위 의식이죠.”

돈 때문에 그림자 노동을 한 것 같았다. 나는 그녀의 다음말을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저는 뒤늦게 가난한 소설가의 아내가 됐어요. 좋은 작품을 쓰라고 남편을 깊은 산으로 보냈어요. 벌써 십삼년이나 됐어요. 저도 이제는 내 이름을 가진 작품을 쓰고 싶어요.”

어떤 일을 하든지 자기의 길을 분명하게 걸어가는 사람들을 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주춤거리지 않고 마음을 다잡고 자기 길을 가는 사람들을 보면 좋아 보인다. 자기가 좋아하는 예술을 신성한 제단 위에 모셔놓고 일용할 양식을 위해 노동을 하는 모습도 괜찮다. 스스로 선택한 일에 충실하고 부지런하게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사명을 다한다는 것은 그걸 의미하는 건 아닐까. 하나님은 그 이상의 것을 사람에게 바라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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