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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수 가게 할아버지

운영자 2022.11.14 10:02:12
조회 100 추천 1 댓글 0

유년 시절의 질감이 묻어있는 보문동의 뒷길을 걸어보았다. 예전에 줄지어 있던 작은 서민 한옥들이 다가구 주택으로 변해 버섯같이 솟아 있었다. 그 아래 봉제, 패턴, 디자인등의 소규모로 옷을 만드는 점포들이 복잡하게 늘어서 있는 게 보였다. 작은 작업대에서 한 두명이 일을 하는 구조 같았다. 다리가 슬슬 아파지고 목도 말랐다. 길가 주택 일층에 미니 파스타집이 보였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탁자가 세 개 정도 놓인 가게 였다. 삼십대로 보이는 젊은 남자가 구석의 조리대에서 나를 보면서 말했다.

“음식을 시키실 게 아니면 자리를 드릴 수 없습니다.”

차 한 잔 시켜 놓고 오래 앉아 있는 손님들 때문에 영업을 방해받은 적이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레몬 에이드를 한잔 시켜서 가게 문 앞에 놓인 의자에 앉아서 마시며 피곤해진 다리를 쉬었다. 젊은이들의 나홀로 가게가 많아졌다. 동해 바닷가 작은 까페를 혼자 운영하는 젊은이도 본 적이 있다. ‘심야식당’이라는 일본 드라마를 보면 중년의 남자 혼자서 낡고 비좁은 가게를 하면서 사는 모습이 나온다. 삶의 가치관이 변하는 것 같다. 내가 살던 시절은 직업의 선택순위가 있었다. 대기업에 들어가거나 전문직을 해야 성공한 것으로 간주했었다. 레몬에이드를 마시며 거리를 지나는 사람을 보다가 갑자기 그 친구의 얼굴이 떠올랐다. 중학교 시절 그는 덩치가 크고 주먹이 강했다. 아이들은 그만 보면 주눅이 들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소식이 끊겼었다. 삼십대 중반쯤이었다. 회사원이던 그가 사표를 내고 뒷골목에 있는 작은 칼국수 집을 차렸다는 소식을 들었다.

다른 친구들은 하나씩 둘씩 대기업 임원자리에 오르고 있었다. 그는 상대적으로 삶의 경쟁을 포기하고 주저앉은 것 같은 모습으로 보였다. 늦은 저녁 한적한 그의 식당을 찾아갔었다. 지하로 가는 계단 아래 창문을 통해 텅 빈 가게에 앉아 있는 그의 모습이 보였다. 그가 국수 한그릇을 가지고 와 내 탁자 위에 놓고나서 이렇게 말했다.

“국물이 짜다는 사람도 있고 싱겁다고 불평하는 사람도 있어. 싸구려 칼국수 한 그릇을 사 먹으면서 자기 차를 주차해 달라고 해. 지하의 국수 가게에 주차 자리가 어디 있겠어?”

그렇게 말하는 그의 얼굴에 언뜻 그림자가 드리우는 것 같았다. 조용하게 그냥 얘기를 들어주는게 위로일 것 같았다. 세월이 흐르면서 이따금씩 그의 국수가게 앞을 지나다 창을 통해 그의 모습을 관찰했다. 그는 무던한 성격 같았다. 국수 가게를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노력하는 것 같았다. 그가 만드는 국물의 맛이 점점 진하면서도 구수한 고급의 뒷맛을 풍겼다. 탱글탱글한 면발도 씹으면 적당한 저항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발명가같이 사람들의 입맛을 잡을 국물을 만들려고 애쓰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의 표정에 점점 자신감이 비치면서 밝아졌다. 한번은 그가 이런 말을 했다.

“내가 국물을 연구하면서 발상의 전환을 해 봤어. 왜 꼭 남들이 만들어 놓은 레시피대로만 해야하는 거야? 상추를 국에 넣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어? 여태까지의 레시피를 깨고 한번 나만의 맛을 내보려고 해.”

그는 손님이 늘어나도 몇 개의 탁자가 놓여있는 가게를 늘이지 않았다. 임대료를 더 내더더라도 그 자리를 뜨지 않았다. 앞치마를 입은 육중한 덩치로 손님들에게 공손하게 인사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낙엽이 떨어지듯 동창들 하나 둘 정년 퇴직을 하고 다시들 자연인이 되었다.

어느 날 저녁 그의 국수 가게로 갔다. 내가 먹는 국수 앞에 그가 반찬을 가져다 놓았다. 갖은양념에 정성껏 버무려 알맞게 익힌 김치였다. 그의 가게에는 오래 삭혀 깊은 맛이 우러난 된장 간장 고추장을 쓴다고 했다. 그가 이런 말을 했다.

“이제 국수에 대해 조금은 알 것 같아. 아들 녀석이 나를 따라 자기도 대를 이어서 국수를 만들겠다고 하는 거야. 그래서 지금 주방에 들여보내 육개월째 훈련을 시키고 있어. 아들이 기술을 익히면 이제는 강가 한적한 곳에 아담한 국수가게를 차려놓고 아들이 하게 하면 어떨까 생각중이야. 예전에 가게에 와서 측은해 하던 친구들의 눈빛이 변했어. 상무님 전무님하고 대접받던 친구들이 정녁퇴직을 하고 백수가 되니까 거꾸로 나를 부러워하는거야. 나를 찾아와서 어떻게 하면 손님이 줄을 서는 국수가게를 할 수 있는지 노하우를 가르쳐 달라고 해. 그런데 그게 어디 쉬운 일이겠어?”

그렇다. 인생의 작은 성취 하나도 작은 기쁨 하나도 오랜시간 기다리고 노력하고 정성을 기울여 이루어 낸 것 만이 참된 게 아닐까. 그는 현재 하는 일에 만족하고 프랜차이저로 사업을 키우겠다는 욕심도 없었다. 사람들마다 각자 자기 주제에 맞게 해야 할 영역이 있다는 것이다. 그를 보면서 위대한 사업은 뭘 하느냐가 아니라 그런 삶의 자세와 생애가 아닐까 생각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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