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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일 달러까지

운영자 2022.11.28 10:30:44
조회 76 추천 2 댓글 0

얼마 전 내가 아는 가난한 노인의 ‘딱지’를 팔아준 적이 있다. 달동네가 재개발이 되면 주민들에게 상가나 아파트를 분양 받을 수 있는 자격을 주기도 한다. 그 권리를 속칭 ‘딱지’라고 했다. 그 노인은 상가를 가질 수 없었다. 거액의 납입금을 낼 수 없기 때문이다. 복부인들은 재개발지역의 ‘딱지’들을 헐값에 후려쳐 사서 아파트나 상가를 분양받았다. 부동산가격이 폭등하면 그 이익은 그들의 몫이었다. ​

있는 자는 더 가질 것이요 없는 자는 가지고 있는 것 조차 빼앗길 것이다라는 성경의 말이 맞았다. 딱지를 사는 부인은 스무살쯤 되는 아들을 데리고 나왔다. 아들에게 그 상가를 사 준다는 것이다. 그 청년은 간단한 편법 상속을 통해 재산을 물려받은 것이다. 순간 나는 그 청년과 가난한 노인의 삶이 비교됐다. 가난한 노인은 변두리의 작은 다가구주택에서 딸 부부와 손주들과 오글거리며 함께 살고 있다. 모두 열심히 살아온 것 같았다. 게으르거나 불성실하지 않았다. 다만 젊은 부부는 마이너스로 출발했다고 했다. 대출받아 가족의 밥줄인 포크레인을 사고 집을 얻었던 것이다. 남편이 포크레인 기사라고 했다. 대출금이 삶의 혹같이 달려있고 아이들이 커가면서 교육비가 무거운 짐이었다. 노인과 손주가 수시로 아팠다. 병원비도 만만치 않은 부담이 되었다. 그런 것들이 그들을 하층시민으로 묶어두는 닻이었다. 그 부부가 평생을 벌어도 상가를 상속받는 그 청년을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사회적 구조를 나는 현실로 보고 있었다. 자식에게 작은 상가 하나 사주려는 부모를 탓할 수 없다. 또 성실하게 살아 온 가난을 뭐라고 할 수도 없다. 그러나 빈부의 벽은 두꺼웠다. 재벌과 서민은 차이가 아니라 다른 우주였다. 내가 사는 이 사회는 양반 상놈이나 노비가 있던 봉건시대보다 더 많은 계급이 존재하는 것 같다.

더가진자와 덜가진자, 강북과 강남등 보통사람들 사이에서도 눈에 보이지 않는 층이 형성되어 있다. 상속이 그 원인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부모가 사주는 비싼 말을 타고 승마 특기로 대학을 갔다는 최순실의 딸은 친구들에게 부모를 잘 만나는 것도 능력이라는 메시지를 보냈다고 한다. 얄밉고 철없는 소리지만 현실의 일면이다. 강남 번화가 빌딩의 관리인이 된 어릴 적 동네 친구를 찾아간 적이 있었다. 그는 빌딩을 상속받은 젊은 사장님에게 인사를 드리라고 했다. 아마도 나를 자랑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부모에게서 상속받은 빌딩주라는 이유 만으로 고개를 숙여야 할까 의문이었다. 빌딩관리인이 된 친구는 어쩔 수 없이 현실에 묶일 수 밖에 없는 것 같았다. 부자집 아들로 평생을 그냥 놀기만 하는 친구들이 있다. 주위에서는 재산을 까먹지 않고 그냥 놀아주는 것 만도 효도라고 칭찬했다. 그런 친구중에는 입만 열면 정치를 말하고 대통령을 욕하고 세계정세를 운운했다. 그러면서 술과 여자를 찾아다녔다. 나는 그들에게 왜 노동을 하지 않느냐고 항의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자기가 힘들여 벌었기에 돈은 가치가 있다. 거저 받은 돈과 정직한 노동의 댓가는 다르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나는 구조적 모순을 가진 거대한 성에 모래 한알을 던지면서 싸우는 어리석음은 싫다. 그렇다고 불공정한 현실을 그냥 받아들이는 것도 꺼림칙해 하는 어중간한 인간이다. 며칠 전 미국에서 오래살다 역이민을 온 한 노인에게서 이런 말을 들었다. ​

“한국 사람들은 무조건 돈을 자식에게 상속하려고 하는 데 미국 사람들의 인식은 다른 것 같아요. 자기가 번 돈을 마지막 일달러까지 다 쓰고 가자는 생각이예요.”​

그 노인은 자식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직장을 얻어 성실하게 살고 있다고 하면서 이런 말을 덧붙였다.​

“자식에게 준다면 누룽지 같은 재산을 줘야 합니다. 흰 밥을 다 푼 후에 남은 누룽지 말이죠.” ​

그의 말대로 자기가 번 돈은 마지막 일달러까지 다 쓰고 가면 약간은 공평한 세상이 되지 않을까. 모두가 동일한 스타트라인에서 달리기 시작할 테니까. 변호사를 하다보면남겨진 재산의 상당부분은 국가가 세금으로 가지고 간다.​

그리고 남은 부분을 가지고 서로 조금 더 먹으려고 자식들이 하이에나 같이 물고 뜯는 싸움을 하는 걸 보곤 한다.​

땀흘린 신성한 노동으로 얻은 깨끗한 밥은 축복이다. 힘들게 벌어온 돈으로 가족과 함께 먹고 마시는 것이 진정한 즐거움이라고 성경 속의 솔로몬은 말하고 있다. 자기가 번 돈으로 친구 밥도 사주고 이웃도 도우면서 다 쓰고 가는 건 어떨까? 그게 자식들에게 평화도 남기고 공정한 세상에 이바지하는 면도 있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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