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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를 드러내 보인다는 것

운영자 2022.10.28 18:19:02
조회 139 추천 5 댓글 0

지난해 칠십대 말의 박동삼 노인이 나를 찾아왔었다. 내가 이따금씩 찾아가던 전과자 노숙자합숙소에 있던 노인이다. 알콜 중독과 절도 그리고 오랜 감옥생활을 한 사람이라고 했다. 얼핏 보면 어딘가 나사 하나가 빠져있는 듯 보였다.

이십여년 동안 그 합숙소와 관계를 맺었지만 그 노인은 항상 바위같이 침묵했다. 그가 내게 깊은 어둠 속에 묻어두었던 과거를 어눌한 말투로 털어놓았다.

“해방 다음 해 진도에서 태어났어요. 농사를 짓다가 입대해서 맹호부대 소속으로 월남 전쟁에 갔어요. 소총수로 미군의 헬기를 타고 적진 가장 위험한 지역에 들어갔어요. 깜깜한 밤에 헬기에서 줄을 타고 밀림의 바닥으로 뛰어내릴 때면 우리들 전부 공포에 질렸죠. 그럴 때면 미군이 뒤에서 발로 차서 헬기 밖으로 내쫓았어요. 밀림 속에서 참호를 파고 매복을 하고 있을 때 정말 무서웠어요. 칠흑같은 어둠 속 어디에서 총알이 언제 날아올지 모르고 그곳이 어딘지 살려면 어디로 갈지도 몰랐으니까. 미군헬기가 우리를 데리러 올 때까지는 지옥이었어요.”

그가 잠시 숨을 고른 후 말을 계속했다.

“제대를 하고 안강망 어선을 탔어요. 원인 모르게 몸이 아팠어요. 그럴 때면 됫병에 담긴 막소주를 마셨죠. 술이 들어가면 덜 아프니까. 매일 술이 없으면 아파서 견딜 수가 없었어요. 알콜 중독으로 손이 떨리니까 배에서 쫓겨났어요. 시장 뒷골목 쓰레기통 옆에 박스를 깔고 자고 음식물쓰레기를 뒤져서 먹었어요. 알콜 기운이 없으면 창자가 녹아내리는 것 같이 아팠어요. 구걸한 돈으로 술을 사서 마셨죠. 몸이 아픈데 돈이 없으면 남의 물건을 가져갔어요. 어선에 몰래 들어가 쌀을 들고 나오다가 잡히기도 하고 공원 벤치에 누워있는 사람의 주머니에서 돈을 살짝 빼내려다가 걸리기도 했어요. 술에 젖은 상태에서 그랬기 때문에 성공한 적이 없어요. 그때는 죄를 짓지 않아도 저 놈이 위험하다 싶으면 감옥에 쳐박아 두는 보호감호라는 게 있었어요. 교도소를 보호감호소라고 간판만 바꾼 감옥에서 십년을 살았어요. 그런데 어느 날 신체검사를 받았는데 의사가 월남전의 고엽제 피해자라고 하면서 보훈처에 가보라는 거예요. 그래서 갔더니 나는 전과자라 안된다는 겁니다.”

그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상처가 깊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이십년 가까이 얼굴을 봐도 그는 마음도 입도 닫아놓고 있었던 것이다. 그가 나를 찾아온 건 자기의 상처를 드러내고 싶은 것이다. 전쟁터에서 그를 데리고 갈 헬기를 기다리듯 내게 어떤 방법을 묻고 싶은 것이다. 나는 미동도 하지 않고 그의 말을 들어주었다. 귀기울여 주는 것 만으로도 상처를 강물에 씻어 아물게 하는 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변호사는 수많은 사람들의 상처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직업이었다. 이상한 건 노숙자에 감옥까지 갔던 그가 지난 이십년동안 합숙소에서 허드렛일을 하면서 신학공부를 하고 목사가 됐다는 기적이었다. 나는 그 경위도 물었다.

“지옥 그 자체였던 청송교도소에서 있을 때 감방 안에서 이상한 남자를 봤어요. 문신투성이에 험악한 얼굴을 한 주먹출신이었죠. 그런데 주먹을 휘두르거나 남을 괴롭히지 않고 장애인이 힘들어하는 걸 보면 부축해 줬어요.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들 빨래도 해주고요. 그 사람 사물함에 성경이 꽂혀 있는 걸 봤어요. 매일 조금씩 성경을 읽더라구요. 그걸 읽으면 그 사람 같이 달라지는 것 같았어요.

어느 날부터 나도 살짝 따라 읽어보기 시작했죠. 그 딱딱하고 재미없는 책이 읽어지더라구요. 어느 날 밤 꿈속에서 예수를 봤어요. 그리곤 나도 옆의 남자를 따라 장애인을 돕기도 하고 빨래를 해주기도 했어요. 그렇게 하니까 감옥생활이 편해지고 세월 가는지도 몰랐죠. 그렇게 육년을 살았어요. 석방될 무렵 우리같이 갈 데 없는 사람들을 거두는 합숙소를 하는 목사님이 왔는데 거기로 오라고 하더라구요. 거기서 낮에는 공사장에 나가면서 일해주면서 살았어요. 합숙소의 목사님이 나보고 신학교에 가보는게 어떠냐고 권해서 내 수준에 맞는 신학교를 다녔어요.”

나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그의 일생을 담은 진술서를 썼다. 지난 이십년 동안 그의 삶을 지켜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보상을 원하는 재심 청구서에 증거로 제출하라고 권했다. 얼마 후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진술서를 읽고 우리 부부가 펑펑 울었어요. 정말 감사해요.”

진심이 담긴 진술서는 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거라는 생각을 했다. 그분이 그렇게 만들어줄 것이라는 믿음이었다. 귀를 기울이는 나에게 상처를 드러낸 그는 그것만으로도 내면의 아픔이 조금은 치유됐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몇 달후 그에게서 연락이 왔다. 나라에서 보상을 해 주기로 결정 했다는 통보를 받았다는 것이다. 베트남전쟁의 아주 미세한 일면을 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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