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시인사이드 갤러리

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갤러리 본문 영역

목사와 변호사 1

운영자 2010.02.04 14:07:24
조회 527 추천 0 댓글 0

   “저는 부흥회 일로 바쁘니까 변호사께서 제 사건의 증인들을 대신 찾아가 만나시고 법정에 나가도록 해주시죠.”

  송수화기를 통해 굵직하게 흘러나오는 K목사의 말은 부탁 형식을 취하고 있었지만 당당한 명령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 말에 나는 약간 기분이 상했다.


   “목사님, 지금 증인들의 주소들을 알고 계십니까?”

   “저는 모르지요. 그렇지만 변호사를 선임했으면 변호사가 그런 걸 전부 파악해서 해주셔야 하는 게 아닐까요?”

   K목사는 처음으로 변호사와 접촉을 가져 보고 또 사건을 의뢰한 듯 했다. 법률사무소를 하다 보면 여러 종류의 직업과 성격을 가진 사람을 만나게 된다. 어떤 사람은 매일같이 사무실에 찾아와서 일에 사사건건 간섭을 하기도 한다. 혼자 변호 전략을 다 구상한다. 그리고 법정에 내는 준비서면이나 증인신문 사항의 한 자 한 자까지도 본인의 의사대로 하려고 한다. 

   평범한 말 같이 쓰여지는 신문사항 하나에도 그 속에는 법률이 녹아 스며 있어야 가치가 있다. 그러나 그런 법률을 모르고 무조건 상대방을 헐뜯고 망신 주는 것만을 요구할 때가 많다. 그럴 때면 그 내용을 자세히 설명하고 설득해 준다. 여러 해 동안 공부하면서 겨우 이해한 것을 자기의 욕심과 상대방에 대한 증오감으로 가득 찬 편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일거에 납득시킨다는 것은 무리다. 그는 납득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경우도 제시하면서 법률 토론을 벌이자고 한다. 법정에 가서 변론을 하기 이전에 그 사람에게 재판의 생리와 법률 이론을 설명하는 데 진이 빠지는 것이다. 나중에 정 화가 나면 “그렇다면 직접 소송을 하시죠.” 하며 되쏠 경우도 있다. 

   이와 반대 유형도 변호사가 괴로운 사람 중에 하나다. 사건의 기본적인 내용에 대해 본인 자신도 거의 아무것도 모른다. 증거물도 없다. 증인의 주소도 모른다. 그는 외국의 탐정 영화나 추리소설에 나오는 것처럼 변호사가 직접 모든 것을 다 알아서 챙기고 전국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증인도 수사관처럼 출장을 가서 찾아내고 설득해서 법정에 세워 주는 것으로 알고 있다. 돈을 냈으니 그것이 끝날 때까지는 자기의 고용인으로서 그 일에만 매달려 모든 시간과 정력을 다하라는 의식이 잔재해 있다. 특히 그런 사람들 중에는 세금과 비용을 제외하면 발삯에도 모자라는 돈을 내는 사람들이 많다.


   “목사님, 내가 전지전능한 하나님입니까? 증인이 어디 있는지 단번에 알아내게요. 그리고 변호사는 수사관하고는 다릅니다. 혼자 이 일에만 전적으로 매달려 사무실 문을 닫고 정처 없이 전국을 유랑할 수 있는 건 아니잖습니까? 이런 식으로 변호사 업무를 생각하시면 죄송하지만 저는 그 기대를 충족시킬 능력이 없습니다. 솔직히 사건을 그만두고 싶습니다만..”

   그건 진심이었다. 너무 현실을 보지 못하고 기대가 큰 사람에게는 어떤 노력과 결과도 만족을 줄 수 없는 것이다.


   "저는 피고로 소송을 제기 당했지만 구체적인 내용을 전혀 모릅니다. 증인이 어디 있는지도 몰라요. 그리고 주님의 사역으로 정말 바쁜 몸입니다. 그래서 변호사를 선임한 게 아니겠어요? 저는 모든 것을 주님의 뜻에 맡깁니다. 주님께서 알아서 해주시겠지요..“

   나는 순간적으로 화가 발칵 났다. 그건 현실의 다급한 일에서 회피처로 주님을 찾는 것이 아닌가 하는 오해가 일었기 때문이다.


   “그러시면 아예 가만히 앉으셔서 기도만 하시고 기적이 일어날 걸 기다리셔야지 왜 현실적인 변호사는 선임하시고 증인을 찾으라고 하시는 겁니까? 그리고 돈을 왜 주셨습니까?”

   “알겠습니다. 한번 찾아뵙겠습니다.”


   K목사 역시 상한 기분을 겨우 자제하며 교직자 특유의 예의를 차렸다. 신도들의 정식적 목자로 대우를 받다가 갑자기 모멸감을 느낀 듯 했다.


 

추천 비추천

0

고정닉 0

0

댓글 영역

전체 댓글 0
등록순정렬 기준선택
본문 보기

하단 갤러리 리스트 영역

왼쪽 컨텐츠 영역

갤러리 리스트 영역

갤러리 리스트
번호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추천
설문 시세차익 부러워 부동산 보는 눈 배우고 싶은 스타는? 운영자 24/05/27 - -
75 분명히 무슨 뜻이 있어요 [1] 운영자 10.03.02 342 3
73 늙은 소매치기와 재판장 [3] 운영자 10.02.25 427 2
71 능멸당한 헌법 [1] 운영자 10.02.24 364 1
70 능멸당한 헌법 - 피해자들을 단죄 운영자 10.02.24 257 2
69 능멸당한 헌법 - 위원회 풍경 운영자 10.02.24 261 1
68 능멸당한 헌법 - 친일관념의 지각변동 [1] 운영자 10.02.24 321 1
67 능멸당한 헌법 - 1939년 서울 운영자 10.02.24 337 1
66 PD수첩 무죄판결에 관련해서 6 [4] 운영자 10.02.16 619 0
65 PD수첩 무죄판결에 관련해서 5 운영자 10.02.16 465 0
64 PD수첩 무죄판결에 관련해서 4 [2] 운영자 10.02.16 517 0
63 PD수첩 무죄판결에 관련해서 3 운영자 10.02.16 481 0
62 PD수첩 무죄판결에 관련해서 2 운영자 10.02.16 447 0
61 PD수첩 무죄판결에 관련해서 1 운영자 10.02.16 780 0
60 목사와 변호사 8 [1] 운영자 10.02.11 385 1
59 목사와 변호사 7 운영자 10.02.11 336 1
58 목사와 변호사 6 운영자 10.02.11 310 1
57 목사와 변호사 5 운영자 10.02.09 320 0
56 목사와 변호사 4 운영자 10.02.09 358 0
55 목사와 변호사 3 운영자 10.02.09 362 0
54 목사와 변호사 2 운영자 10.02.04 452 0
목사와 변호사 1 운영자 10.02.04 527 0
52 강아지를 훔쳐간 할아버지 운영자 10.02.04 412 1
51 어느 오토바이 배달 소년 운영자 10.02.02 426 0
50 어떤 형제 2 [2] 운영자 10.02.02 434 0
49 어떤 형제 1 운영자 10.02.02 441 0
48 대통령의 아들 2 운영자 10.01.27 650 0
47 대통령의 아들 1 운영자 10.01.27 642 1
46 겨울 감옥 속의 친정 엄마 [1] 운영자 10.01.27 378 1
45 벼랑 위 자식을 밀어버린 엄마 [3] 운영자 10.01.22 615 0
44 노란 넥타이 [1] 운영자 10.01.22 385 2
43 인생 잘못 살았어요 2 운영자 10.01.19 627 0
42 인생 잘못 살았어요 1 운영자 10.01.19 522 0
41 바늘 도둑과 황소 도둑 2 운영자 10.01.19 343 0
40 바늘 도둑과 황소 도둑 1 운영자 10.01.19 372 0
39 엄니 임종도 못봤슈 2 운영자 10.01.15 335 0
38 엄니 임종도 못봤슈 1 운영자 10.01.15 389 0
37 아빠는 남편이지? 2 운영자 10.01.15 565 0
36 아빠는 남편이지? 1 운영자 10.01.15 614 0
35 교주의 저주 운영자 10.01.08 551 1
34 주수도의 비자금 - 11 중국행 [1] 운영자 10.01.05 766 0
33 주수도의 비자금 - 10 한달 만 운영자 10.01.05 419 0
32 주수도의 비자금 - 9 해결의 달인 [1] 운영자 09.12.29 567 0
31 주수도의 비자금 - 8 변호사대표 운영자 09.12.29 464 1
30 주수도의 비자금 - 7 수사동기 운영자 09.12.29 468 0
29 주수도의 비자금 - 6 검사님 닮은 대표 운영자 09.12.24 621 0
28 주수도의 비자금 - 5 편견과 고집 운영자 09.12.24 601 0
27 주수도의 비자금 - 4 다단계 피해자들 운영자 09.12.24 641 0
26 주수도의 비자금 - 3 취재의 이면 [1] 운영자 09.12.21 662 0
25 주수도의 비자금 - 2 주수도의 초청 운영자 09.12.21 744 0
24 주수도의 비자금 - 1 미용실주인 운영자 09.12.21 1092 0
갤러리 내부 검색
제목+내용게시물 정렬 옵션

오른쪽 컨텐츠 영역

실시간 베스트

1/8

뉴스

디시미디어

디시이슈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