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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와 변호사 2

운영자 2010.02.04 14:10:23
조회 452 추천 0 댓글 0

    온몸이 나른하게 풀리기 시작하는 지난 봄 삼월 어느 날 점심 무렵이었다. 평소에 잘 아는 임목사가 K목사와 함께 사무실로 들어섰다. 그들은 들어서자마자 손님석의 탁자 위에 두 손을 모으고 한참이나 기도를 했다. 나는 그동안 그들의 기도에 감사하며 눈을 감고 있었다. 이윽고 두 목사의 기도가 끝났다. 

    “엄변호사님, 다름이 아니고 K목사님의 개인적으로 사건이 있어서 왔습니다. 한번 들어보시고 사건을 맡아 주셨으면 합니다.”

    임목사는 찾아온 용건을 간단히 말하고 K목사를 소개했다. 사십대로 보이는 그는 둥그런 얼굴에 건장한 몸을 가지고 있었다. 정력적으로 개척교회를 일구어 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뒤늦게야 비로소 주님의 일에 전념을 하려고 하는데 마귀가 끼는지 자꾸만 제가 일을 못하게 가로막습니다. 조합에 있는 매형이 사인하나 해달라고 해서 한 것뿐인데 송사가 저한테 걸려 왔습니다. 온통 신경이 거기에 곤두서서 기도도 제대로 되지 않습니다. 도와주십시오.”

    목사인 그를 피고로 하여 민사소송이 제기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탁자 위에 놓여 있는 상담 일지에 그가 말하는 내용을 요약하기 시작했다. 그가 말한 내용은 이랬다.


    그에게는 신용조합에 다니는 매형이 있었다. 그의 매형은 집을 한 채 샀는데 자기 이름으로 하면 언제 빚을 져서 남에게 갈지 모르니 처남인 그의 이름으로 등기를 해 두는 것이 좋겠다고 부탁을 한 적이 있었다. 

    목사인 처남 앞으로 집을 명의신탁해 두면 목사가 집을 다른 곳에 팔아 먹을리는 없다는 계산이었다. K목사는 흔쾌히 승낙을 해 주었다. 그 결과 K목사는 자기 이름으로 집이 한 채 있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매형이 그를 찾아왔다. 자기가 근무하고 있는 조합으로 일억원을 대출받아 쓰려고 하니 조합에 넣으면 된다는 것이었다. 그 제의를 받은 K목사는 그렇게 하기로 승낙을 해 주었다. 그리고는 다음날로 바로 매형이 있는 신용 조합에 가서 일억원의 금전대출서에 서명을 해 주었다. K목사로서는 비록 자기의 이름으로 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매형의 것이고 매형이 자기의 집을 담보로 돈을 조합에서 대출받아 쓰겠다는데 이름 한 번 빌려주는 게 뭐가 어렵겠느냐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만약 매형이 조합의 빚을 갚지 못해 담보로 들어간 집이 경매에 부쳐진다고 해도 K목사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하등의 위험부담이 없으리라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매형은 조합에서 일을 잘못한 것이 발각되어 업무상 배임죄로 구속되었다. 그리고 K목사에게는 민사소송장(?)이 날아들었다. 

    담보로 제공한 집을 경매해서 6천만 원 밖에 대출금의 변제를 받지 못했으니 나머지 4천만 원을 내야 한다는 날벼락을 맞았으니 K목사는 앞이 깜깜하였다. 담보로 끝나는 것으로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가진 것이라고는 교회를 얻을 때 K목사 이름으로 지불한 전세 보증금 2천만 원 정도였고 목사로서의 봉급 몇 십만 원이 전 재산이었던 것이다. 뭔가 억울하다는 생각에 속이 부글부글 끓는다는 것이었다.

    “저는 돈을 얼마나 빌렸는지 어떤 서류가 작성됐는지 그 내용을 전혀 몰라요. 그리고 일원 한 푼 조합에서 돈을 받은 적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제가 돈을 물어내야 합니까? 더구나 조합에서는 비록 내 이름으로 되어 있지만 매형의 집을 담보로 경매하고 매형을 잡아서 구속까지 시키고는 저에게 또 이렇게 소송까지 걸어야 하는지 정말 모르겠습니다.”


    K목사는 연신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교직자로서의 사회적 체면 때문에 법정에 나가서 따지자니 신도들 보기에도 민망스럽다는 것이었다.


    “글쎄요. 일단 조합과의 대출 약정에 따라 모든 것이 결정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일단 내용을 보고 하셨든 안 보고 매형의 말만 듣고 하셨든 서명한 게 사실이시라면 그에 대한 책임은 피하기 어렵다고 봅니다..”

    나는 일단 K목사가 소송에서 패소하는 게 거의 확실할 것 같다는 결론이었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금융기관들은 자금으로 대출할 때 철저하게 나중에 증거로 할 문서들을 작성하고 이중 삼중으로 서명 날인을 받아 놓기 때문이다. 거의 일방적으로 그들에게 유리하게 작성한 문안들을 깨알같이 작게 써서 문서 전면에 가득 채워 놓고 서명 날인을 받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문서를 보기도 지겨워한다. 게다가 돈을 꾸는 입장에 그 문안을 보고 다르게 약정하자고 주장한다면 대출은 이미 물 건너가는 형편이 되는 것이다.
 

    “그래도 일단 사건을 맡아 수고 좀 해주십시오. 일단 제가 법정에 직접 나가지 않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을 받는다는 생각입니다. 성경에는 송사를 위해 법정에 가기 전에 상대방과 화해하라고 되어 있는데 저쪽에서 도무지 그럴 생각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돈도 없는 형편에 일단 끌 데까지 끌 수밖에요.. 그래서 변호사님의 도움을 청하는 겁니다.”


    “정 그러시다면 알겠습니다. 저로서는 일단 상황을 살펴보고 목사님 대신 법정에 나가는 일을 하는 것으로 역할을 맡겠습니다. 그리고 보통 금융기관에서 담보물의 가격이 대출금에 모자라면 추가 담보를 요구하기도 하고 연대 보증을 세우기도 하고 해서 끝까지 원금과 이자의 회수 방법을 합법적으로 강구하는데요.. 법적으로 몰랐다는 건 아주 정신병자나 바보가 아니고는 통하지 않습니다. 일단 각오는 해 주십시오..”


    질 사건을 거절하지 못하고 어물쩡하게 맡고야 말았다. 나는 변호사라는 직업은 현대에 있어서 일종의 승부사라고 생각한다. 옛날 같으면 돈을 꿔주고 못 받을 경우 주먹으로 해결을 보기도 했다. 베니스의 상인에서는 빚을 못 갚는 사람에게 샤일록은 약속한 만큼의 살을 원하기도 했다. 그러나 현대는 그런 직접적인 힘의 행사는 법이 금한다. 대신 말과 법리와 글이라는 방법을 통해서 권리를 위한 투쟁을 한다. 변호사란 힘 대신 말과 글로 대신 싸워 주는 직업이다. 그러다 보면 당사자보다 결과에 더 집착하는 경우가 많다. 승부욕이 지배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돈이 문제가 아니다.


    선임료를 받지 못했더라도 열심히 싸워서 이기는 경우에 그 희열은 돈보다 더 귀중한 대가다. 그러나 패배할 경우에는 몇 날 몇 일을 속이 상해서 끙끙거린다. 그런 집요한 승부욕이 한편으로 요구되는 업종이 변호사 사회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패소할 확률이 뻔히 보이는 소송을 맡는다는 것은 영 마음에 걸리는 것이었다. 알지 못할 힘에 의해 나는 대신 법정에 나가 대신 두들겨 맞는 일을 담당하게 된 것이었다. 나는 속으로 ‘예수님도 이런 십자가는 지지 않았는데’하고 투덜거렸다. 그러나 일단 시작된 일이었다. 나는 마치 게임이 되지 않는 권투 선수라도 일단 링 위에 오른 이상 링 바닥에 넉 다운 될 때까지는 최선을 다해서 약한 펀치지만 휘두르는 것이 선수로서의 당당한 태도이듯 끝까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다가 패소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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