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아는 사람이 오래전에 발행된 ‘도’(道)라는 책을 보내주었다. 헌 책방에서 구했는데 내용이 심상치 않다는 것이다. 산속에 수도원을 세우고 평생 성경을 읽은 95세의 목사가 쓴 책이었다. 신비로운 깊은 영성이 책장의 곳곳에서 느껴졌다. 목사가 된 고교동기가 그를 잘 알고 있었다. 같은 성직자지만 도저히 범접하기 힘든 성화(聖化)된 분이라고 했다. 그 분은 평생 산속에서 기도하고 성경을 읽고 벽돌 한 장 한 장을 직접 쌓아 기도굴을 만든 기인이라고 했다. 목사들이 만나고 싶어도 보기 힘든 존재라고 했다. 일 년에 한두 번 산에서 내려와 목사들의 모임에 와서 한마디씩 하고 가는 분이라고 했다. 그는 도인(道人)이 틀림없는 것 같았다. 그를 만나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백살이 가까우면 혼자 산에서 지내기는 불가능할 것 같았다. 수소문해서 그 분이 거처하는 곳을 알았다.
2014년5월19일 오후3시 나는 구리시에 있는 한적한 주공아파트 광장에 도착했다. 한낮의 하얀 햇살이 네모난 광장에 내리쬐고 있었다. 도인 엄두섭 목사가 살고 있다는 집이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704호의 벨을 눌렀다.
“누구세요?”
나이먹은 할머니의 목소리였다. 엄두섭목사는 병수발을 하는 늙은 부인과 함께 산다고 했다.
“예전에 쓰신 책을 읽고 꼭 만나 뵙고 싶어서 왔습니다.”
내가 공손하게 방문한 목적을 얘기했다.
“이제는 힘이 없어서 방에 누워계시는데---”
“그래도 잠깐 모습만이라도 뵙고 갈께요.”
내가 물러서지 않았다. 잠시 후 ‘찰칵’하고 금속성의 소리가 울리면서 문이 열렸다. 이십평 정도의 소박한 아파트였다. 싱크대와 식탁 그리고 반대편의 벽에 오래된 긴 소파가 놓여있는 소박한 집이었다. 거실 벽 쪽에 그림이 담긴 액자 하나가 보였다. 도심의 빌딩들이 보이고 공중으로 사람들이 들려올라가는 장면이었다. 잠시 후 한 노인이 벽에 손을 대고 한 발자국 한발자국 힘겹게 거실 쪽으로 오는 모습이 보였다. 엄두섭 목사였다. 이윽고 그가 내 앞에 놓인 의자에 힘겹게 앉았다. 형형한 눈빛이었다. 나를 살피는 그 눈에서 신비로운 기운이 흘러나오는 느낌이었다. 평생 경건하게 살아온 사람에게서 흘러나오는 가을 계곡물 같은 생명의 기운인지도 모른다.
“어떻게 오셨소?”
쇳소리 섞인 노인 특유의 작고 조용한 음성이었다. 그러나 어떤 다른 힘이 섞여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예전에 쓰신 책 중에서 도(道)라는 걸 보고 왔습니다. 예수를 간절히 믿고 싶은데 안 됩니다. 그저 예배당에만 형식적으로 다니는 엉터리 교인입니다. 그래서 한 말씀 받으려고 이렇게 왔습니다.”
“오해하지 마시오, 평생 일선(一善)도 못한 사람이오.”
평생 수도를 했다는 사람의 입에서 한 가지 선한일도 한 게 없다는 말이 튀어 나왔다. 의외였다. 겸손이 아니라 진짜로 그렇게 느끼는 표정이었다. 그가 천천히 말을 계속했다.
“내가 아흔 여섯 살이오. 죽을 기간이 지났는데도 아직 이렇게 존재하고 있소. 내가 전에 잘했다고 생각하는 것도 돌이켜 보면 다 욕심에서 했던 거요. 인기 얻으려고 꾸미고 조작했어. 그러니 한 가지 좋은 일도 한 게 없지.”
철저한 자기부인이었다.
“산속에서 수도원을 만들고 평생 성경읽고 기도하고 사셨다면서요?”
내가 물었다.
“지금의 교회를 보면 목사들이 강대상을 치면서 설교하고 믿음으로 구원받았으니까 그게 다라고 생각 하는데 그게 아니야. 유럽에는 개신교 수도원도 많아. 내가 우리나라에서 수도원을 처음 세웠지. 그랬더니 나 보고 이단이라고 해. 그렇게 함부로 이단이라고 정죄하는 행동들이 고쳐져야 해. 요새 보면 한국에도 수도원이 생기잖아? 안양이나 부산에 있는 수도원이 내가 포천에 세운 거랑 비슷하지. 수도에는 고행이 따라 고난이 눈을 뜨게 하고 고생이 사람을 깨닫게 하는 거지.”
“어떻게 믿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내가 다시 간청했다. 30년 교회를 다녀도 껍데기만 왔다갔다. 하나님이나 성령의 존재 자체도 더러 의심이 갔다. 노인은 내 얼굴을 찬찬히 보면서 진의를 파악하는 것 같았다. 이윽고 그가 입을 열었다.
“나는 일곱 살 때부터 장호원의 공장에서 일을 했지. 예수를 믿어야 밥을 준다고 해서 믿게 됐는데 벌써 그게 90년이 됐어요. 젊었을 때 교회에서 주기철 목사님이나 조만식 장로님을 뵜지. 지금은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순교한 훌륭한 사람으로 받들지만 그 당시 평양노회에서는 주기철 목사를 제명했었어.”
그는 살아있는 기독교역사의 증인인 느낌이 들었다. 그가 계속했다.
“믿는다고 바로 구원받고 그게 끝이 아니야. 바로 믿어야 해. 우리가 아담과 하와의 후손인데 이 세상에서 어떻게 천사같이 될 수 있겠어? 우리는 죄를 짓고 금세 다 잊어버리는 경우가 더 많아. 그러면 안 돼. 회개를 해야지. 회개도 말로만 회개합니다 하는 건 진짜 회개가 아니요. 간절해야 돼. 예배를 보는 것도 간절함이 있어야 하는 거고. 회개하고 다시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를 믿어야 하는 거야. 행함이 따르고 성화되기 위해서는 수도생활을 해야 하는 거야. 수천명의 성자가 수도원에서 나왔어. 죽을 때까지 수도한다는 종신서원도 있어. 그래야 성화되는 거야. 목사들의 실수는 수도생활이 없어서 그래.”
“말씀 중에 성자가 나왔는데 우리나라에도 성자가 있나요?”
내가 물었다.
“우리나라에 대단한 성자들이 있었어. 이용도는 ‘미치자 미치자 예수에 미치자’가 구호였어. 그 사람 서간집을 내가 젊어서 봤는데 감동을 받았지. 강신명은 길을 가다 불쌍한 사람을 보면 옷을 벗어 주고 밤이면 다리 밑에서 자는 고아들을 안고 잤어. 그러다 집에 오면 온 몸에 기어 다니는 이 때문에 부인이 집으로 못 들어오게 했지. 거지가 집으로 오면 부인의 옷장에서 제일 좋은 옷을 꺼내 주기도 했어. 그 사람들 다 기성노회에서는 이단으로 배척받았던 사람이야. 그런데 성자였어. 또 진짜 성자는 이세종이란 사람이었어. 화순에서 농사를 짓다가 우연히 성경을 얻어 혼자 읽다가 깨달음을 얻은 사람이지. 천태산 자락에 산막을 짓고 거기서 성경 보면서 혼자 살았어. 그 사람은 산에서 쑥을 뜯어먹고 살았어. 내가 우연히 그 사람을 만난 적이 있는데 키가 작달막한 사람이 얼핏 보면 거지같아. 그 사람은 성경대로 살았어. 지금 사람들이 보면 기행이라고 볼 것도 있었지. 잡은 이를 죽이지 않고 성냥갑에 담아 물에 띄워 보냈지. 왜 절에서도 스님들이 그렇게 하잖아? 봄에 산에가서 고사리를 뜯다가 거기서 물이 나오니까 피를 흘리는 것 같다고 표현한 사람이야. 이세종은 길을 가다가도 풀을 어루만져 주면서 사랑을 고백했어. 그 양반은 집 부엌에서 독사를 만나면 작대기로 살살 밖으로 몰면서 ‘너 큰일 날 뻔 했다’라고 하는 사람이었어. 이세종은 독에 생쥐가 빠지면 나뭇가지로 사다리를 만들어 주어 살생을 하지 않았어. 그런데 나는 수도원을 하면서도 독사를 참 많이 잡아 죽였지. 도저히 그 사람을 본 받을 수가 없었어. 그게 구원은 아니지만 성화에는 관계가 되지. 이세종은 지리산 자락에서 처녀 총각 열명을 모아 성경을 가르쳤어. 그 사람들이 제자가 된 거지. 그 중 오복희라는 여자가 이세종을 따라다니면서 그 말과 행동을 공책에 썼는데 내가 그걸 읽은 적이 있지. 오복희가 지식이 많지 못해 자세히 쓰지 못했어. 하여튼 그때 내가 이세종을 보고 잡지에 ‘성자를 보았다’라는 제목으로 기고를 했었어. 이세종의 제자 이현필이 있었는데 글도 잘 쓰고 착실한 사람이야. 이세종이 깨달은 걸 이현필이 다 노트에 적었는데 그 노트가 없어졌어.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야. 하여튼 이세종의 성신을 이현필이 받았어. 이현필은 거지 굴에 들어가 살았지. 아직 그걸 이을 성자가 없어.”
내게 말을 해 준 엄두섭 목사는 성자였다. 다른 말로 하면 도인이라고 할까. 우리 사회의 곳곳에는 그런 깨달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그런 분들을 찾아가 지혜의 말씀을 듣고 배우는 것도 노년의 즐거움중 하나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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