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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리의 말차악몽] 말?차푸딩과 말차라떼 (스압)
오늘은 에밀리의 생일을 기념하여 에밀리와 함께 디저트를 만들어볼 거예요자주 나오면 오글거리니 가끔만 나오자 에밀리 제작자님! 기대해봐도 될까요?라면물도 제대로 못 맞추는 사람한테 뭘 기대한다는 거니불이나 안 내면 다행이라고 생각하렴(한심) 거두절미하고 만들 것들을 꺼내보자무인양품 돌아다니다 주워온 녹차푸딩키트와 말차라떼계란후라이 하나 못 굽는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제작자님 예전에 한 번 시도했다가 계란찜이 되어서 울면서 먹었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걱정이네요...조용히 하렴만드는 법 자체는 간단해보인다왼쪽이 푸딩 분말, 가운데가 팥 시럽, 오른쪽이 콩고물이겠군오늘은 콩고물을 쓰지 않을 예정이다푸딩 담을만한 적당한 병이 이것밖에 안 보여서 이걸로 결정평소엔 컵으로 쓰던 물건이다언제 마지막으로 썼는지 모를 냄비와 국자도 세팅우유는 이걸로 정했다.나이를 먹어서 그런가 락토프리 아니면 소화가 잘 안 돼..제작자님... (안쓰럽)우선 우유 300ml에...푸딩 분말을 넣는다.딱 내가 원하던 비주얼이군*광경을 보던 에밀리가 입을 막고 나감*약불에서 조금 저어주니 김도 폴폴 나고 뭉친 덩어리도 풀어졌다젓다 보니 갑자기 꾸덕해진 푸딩우유진짜 순식간이라 너무 놀랐음불 끄고 30초정도 휘젓는데 점점 꾸덕해짐이대로 더 있으면 ㅈ되겠다 싶어서 바로 용기에 붓기로 결정아씨 다흘렷내ㅡㅡ??????????왜 컵 하나밖에 안 나옴??두 개 분량이라며날 속인거니?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일단 만들어진 건 바로 냉장고로...하.... 한 것도 없는데 힘드,ㄹ다이래서 사람이 안 하던 짓을 하면 안되는데라떼도 사왔으니 이것도 한 번 마셔봐야지옆에는 시음을 도와줄 해적 맥주잔이따 완성본에는 예쁜 컵 쓸 거임오...생으로 먹어봤는데 생각보다 달고 달고 맛있다일단 우유는 전자레인지로 2분 데워서 따뜻하게 만들어잇따뜻한 우유에 말차 라떼 가루 두 스푼지금 보니까 숟가락 왜이렇게 반짝거리냐 큰일날뻔했네시음 평: ★★★☆☆꽤나 달고 은은하게 말차 맛이 난다. 에밀리도 좋아할 맛.맥주잔 용량에는 두 스푼이니 일반 머그컵엔 한 스푼 정도가 적당할 듯.에밀리는 아직 화장실에서 토하는 중인 것 같으니 정리하고 푸딩 완성까지 기다리면 될 듯-2시간 후-제작자님... 저는 이제 집으로 가볼게요... 즐거웠어요...에밀리 드디어 나왔구나. 이제 거의 다 완성했단다.아직 좀 덜 굳었지만 시간이 없으니 어쩔 수 없지완성된 푸딩 위에 팥고물(그거아님)을 뿌려주고따뜻하게 데운 우유에...제작자님! 집에 왜 찻집 잔이 있는 거죠?!가끔은 모르는 게 약일 때도 있단다 에밀리그리고 솔직히 나도 몰라말차 라떼 가루를 타주면 간단하게 말차 라떼 완성이제 대미를 장식할 시간이야취이이이익!마지막으로 휘핑크림과 푸딩 위에 말차 라떼 가루를 조금 뿌려주면지옥에서 올라온 말차 정식 완성!이걸 위해 휘핑크림에 8000원을 더 썼단다Wow! 스테키데슈!! 정말 예뻐요!이때를 위해 아껴놓은 미라이 스푼과 타카네 포크도 꺼냈다조금 늦었지만 다시 한 번생일 축하해 에밀리~!!푸딩 시식평: ★★★★☆많이 달지만 녹차 맛이 굉장히 진해서 맛있다.2개 분량이 하나로 응축돼서 그런가?끝!재미 없었을지도 모르지만 여기까지 봐줘서 감사합니다퇴근하고 집에 오면 9시인데 열심히 만들고 찍고 글 적었더니 벌써 12시 30분이 넘었네에밀리 다시한번 생일축하하고 올해도 잘 부탁해항상 감사드리고 and i also
작성자 : 스키키라이고정닉
불교불교...조선시대의 불교 스폰서들...
숭유억불은 조선시대의 기본 기치였다 이건 싱붕이들도 너무나 당연히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함그러나 한편으론 유교를 내세운 조선 왕실,그중에서도 내명부, 왕실 비빈들은 불교 최대의 스폰서였음그러면 내명부의 여인들중 불교의 독실한 신자의 비율은 얼마나 되었을까?사실상 무의미한게 그냥 100퍼라 보는게 더 맞을거임조선왕조 최초의 왕비 신덕왕후 신씨로부터 마지막 왕비 순정효황후 윤씨에 이르기까지 거의 대부분의 왕비들이 사찰에 기도처를 마련하거나 불사에 동참한 기록이 남아있음전체 구성원의 80~90%가 하나의 종교를 믿는다는 것은그 종교에 대한 기호라기보다는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문화에 가깝다고 봐야함왕실 여인들에게 있어서 불교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왕비로부터 말단 무수리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여인들이 수백 년간 지속해온 공통의 문화라고 보는게 맞을꺼야불교가 한반도에 유입된 이래 1000여 년간 사찰에 불단을 마련하고 득남기도를 하는 데 익숙했던 조선의 여인들에게 불교는 어머니로부터 딸에게,시어머니에게서 며느리에게로 자연스럽게 전승되는 기복의 종교였음조선왕조가 개국한 후 최초의 왕비로 경복궁에 입궐한 태조의 두 번째 왕비 신덕왕후 강씨는 결혼 전부터 독실한 불교신자였음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기 전부터 불교에 귀의하도록 설득하고, 무학대사를 왕사로 봉하게 한 것도 신덕왕후의 조언에 의해서였고 태조가 신진사대부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궁궐 내에 내불당을 건립한 것도 신덕왕후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음킹메이커로 유명한 이방원의 아내, 그러니까 태종비 원경왕후 민씨도 독실한 불교 신자였는데,말년에 남편에 의해 일가가 쓸려나가고 아끼는 아들은 성녕대군이 이른 나이에 죽자 말년에 불교에 귀의하여죽은 남동생들과 아들을 위해 금가루로 불경을 베겨 쓰는 불사를 진행하거나죽기 전에 내 아들(성녕대군)의 명복을 빌기 위해 대자산대자암에 승당(스님들이 머무는 건물)을 짓고 싶다는 유언을 남겼음 세종대왕의 아내였던 세종비 소헌왕후 심씨 또한시아버지인 태종에 의해 아버지가 죽고 일가가 몰락한 뒤불교에 많이 의지..정도가 아니라 불교가 아니었으면 미쳤거나 홧병으로 세상을 떠났을꺼임원통암등을 짓는데 후원했으며, 나중에 소헌왕후를 위해 세종이 석보상절을 세조에게 짓게 한것도 유명함세조의 부인 정희왕후는 전국 각지의 절 역사책을 뒤져보면, 돈을 댄 후원자 명단에 이름이 압도적으로 많이 나왔음 정희왕후는 세조의 병이 깊어지자 남편의 쾌유를 빌기 위해 오대산 상원사를 중창하고, 세종의 영릉을 이전하면서 신륵사를 중수했음 또 세조가 죽은 후에는 광릉 인근에 위치한 봉선사를 89칸 규모로 중창하여 광릉의 정부 공식 지정 사찰로 삼았음. 조카로부터 왕위를 찬탈한 남편 세조, 그리고 젊은 나이에 요절한 두 아들 덕종과 예종을 먼저 앞세운 정희왕후로서는 마음의 짐을 벗을 수 있는 위안처가 불교 이외에는 없었을 지도어쨌든 그녀는 평생 동안 전국 각지의 사찰에 큰 시주자로 참여하면서 여러 절 역사책에 이름을 남겼음정희왕후의 며느리이자 성종의 어머니인 인수대비 한씨 또한 독실한 불자였음심지어 산스크리트어 된 불경을 번역하는 일도 할수 있었을 정도 이것 때문에 대신들과 다투기도 하고 성종도 아 이건 좀 이런 말을 할 정도였음웃긴건 정작 성종의 어머니 인수대비는 왕실여인들을 위한 지침서로 유교적 여성관을 담은 『내훈』이라는 책을 펴낼 정도로 유교적 소양이 높았는데, 왕실의 어른으로서 유교를 내세웠던 반면 자신이 위안을 구한 곳은 불교였다니 아이러니지 인수대비는 불교경전을 산스크리트어, 한문, 언문으로 각각 번역한 불서를 남길 정도로 불교에 심취했고 인수대비는 남편과 아들의 복락을 위해 간경도감(국가 공인 불경 번역 및 출판 기관) 을 통해 불경간행에 적극 나섰으며, 직접 『금강경』 등을 필사하기도 했음 1471년 간경도감이 폐쇄되자 그 이듬해부터는 직접 흩어진 불경 목판을 수집해 인쇄했고이렇게 해서 발간된 불경이 총29편 2,805권에 달함성종의 계비 정현왕후 윤씨, 중종의 계비 문정왕후 윤씨, 선조의 계비 정순왕후 김씨 등 이어 등장하는 왕비들 또한 사찰 후원자 목록에 자주 등장하는 인물들임다른 기록들도 정말 셀수 없이 많음 대표적인 예시만 들어봐도 팔공산 파계사에서 불공을 드리고 영조를 낳은 숙빈 최씨, 건봉사에 석가상을 조성하고 팔상전을 지어준 영조의 비 정성왕후사도세자의 어머니 영빈 이씨, 정조의 후궁 화빈 윤씨, 순조를 낳고 수락산 내원암에 칠성각을 조성한 수빈 박씨, 봉은사 괘불을 조성한 순조의 후궁 순화궁 김씨금산 보석사를 중창해 원당으로 삼은 고종비 명성황후, 무량사 산신각을 조성한 영친왕의 어머니 엄비, 조선왕조가 망한 후 낙선재에서 살아가다 말년에 대지월’라는 법명을 받고 불교에 귀의한 조선의 마지막 황후인 순정효황후 윤씨에 이르기까지 왕실여인들의 불교신앙은 꾸준히 이어졌음또한 왕궁 내부에 정업원이란 절이 있어서많은 왕실 여인들이 말년을 보내거나 머문 곳이기도 함 꼭 조선 왕조가 아니더래도 박정희 대통령의 첫번째 아내였던 김호남 여사 또한 절의 시주보살(스님들 밥해주는)로 절에 머물렀는데이를 안 육영수 여사가 김호남 여사가 머물던 절을 지원하면그게 부담스러운 김호남 여사는 다른 절로 가고거길 또 지원하고 이렇게 되어서 한국 불교 부흥에 도움이 되었다는 평가도 있음또한 팔만 대장경으로 유명 해인사를 보수 하는데 이는 정희왕후와 인수대비, 인혜대비의 노력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함 또한 불교 탱화등을 그리는데도 왕실 여성들, 그리고 나인이나 상궁들도 시주했고조선 왕실의 여인들이 불교를 보호하자유교적 이데올로기를 구축해야 할 사명을 띠고 있는 국왕이라 할지라도 어머니와 부인이 독실한 불교신앙을 갖고 있는 상황에서 불교를 전면적으로 부정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고이는 조선의 불교가 어느정도 버티는데 큰 도움이 되었음누군가는 이들이 아들낳기를 발원하기 위해, 자신의 권력을 지탱시키기 위해 불사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기복적 성격을 벗어나지 못했고그때문에 진짜 불교가 아니다...라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이들 덕분에 지금까지 불교 문화가 살아남았다는게 사실임그리고 우리가 봐야하는 점은 이들이 지극히 인간적인 존재들이었으며, 인간으로서 겪을 수밖에 없는 고통과 비애를 불교를 통해 극복하려고 했다는 점이 아닐까 싶어...
작성자 : ㅇㅇ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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