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장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

동북아 다자안보 협력체를 통한 평화기반 구축

  냉전 종식 이후 동북아에서는 지역 불확실성과 불안정성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동북아 지역에는 대량살상무기 외에도 다자간 협력을 필요로 하는 비전통적인 안보 문제들이 산재해 있습니다. 국제 테러, 인권, 환경오염, 마약, 해적 행위, 국제 범죄, 에너지 문제, 불법 이민, 전염병, 난민 등의 문제는 본질상 초국가적 성격을 띠기 때문에 다자간 안보 협력을 필요로 합니다. 특히 한국은 주변의 강대국들로 둘러싸여 있고 안보 구조가 취약한 상황이므로 다자간 안보 협력체의 구축은 매우 필요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현재 동북아 지역에는 유럽에서 성공적으로 정착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같은 다자안보 협력체가 아직 형성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다자안보 협력을 하기 위한 선행 조건이 충족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북핵 문제의 해결은 그 중요한 요인의 하나입니다만, 이제 북핵 문제가 해결의 가닥을 잡아 가면서 점차 동북아 다자안보 협력을 논의하기 위한 여건이 성숙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논의의 과정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할 필요가 있습니다.

  유럽에서 1975년에 ‘헬싱키 최종협약’을 채택하여 헬싱키 프로세스를 시작함으로써 유럽 분단을 극복하고 독일 통일을 이루었듯이, 이제 동북아에서도 ‘북경 프로세스’를 시작하여 안보 협력을 이룩해야 합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나는 동북아 지역 내 국가들의 다양한 안보 이해를 수렴할 수 있는 포괄적 다자안보 협의체로 가칭 ‘동북아 평화․번영 협력기구’의 설립을 제안합니다. 이 기구를 구성하기 위한 전 단계로 ‘동북아 평화․번영 협력회의’를 소집할 것을 제안합니다. 동북아 다자안보 협력의 궁극적 목적은 동북아 지역의 경제발전과 공동 번영을 위한 안정적 안보 환경을 제공하는 데 있습니다.

  ‘동북아 평화․번영 협력회의’는 우선 남․북한, 미, 일, 중, 러 6개국으로 출범하여 기본 구조를 갖추고, 추후 참여국의 확대를 검토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은 동북아 다자간 안보 협력을 추진하기 위해 역내 국가들의 동의를 구하기 위한 전방위 외교를 펼칠 필요가 있습니다. 참가 대상인 동북아 6개국을 상대로 양자 및 다자 차원에서 지속적으로 동북아 다자안보 협력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설득하여 지지를 확보하기 위한 노력을 전개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이와 같은 노력으로 ‘동북아 평화․번영 협력회의’가 성공적으로 창설되면 그 사무국을 한반도 분단의 상징인 비무장지대(DMZ)나 평화의 상징인 제주도에 유치할 것을 제안합니다. 이곳에 ‘한반도 평화기념관’을 건립하고, ‘동북아 평화공원’을 조성하여 동북아 국가 간 연대의식을 고취하고 동북아 평화와 번영을 상징하는 휴식 공간으로 활용하면, 매우 의미 있는 역사적인 사업이 될 것입니다.

  한반도는 공산주의와 자본주의라는 상반된 이념을 추구하는 패권적 세력들의 각축으로 인해 분단의 시련을 겪고 있는 지구상의 유일한 냉전 지역입니다. 한반도의 허리에 그어져 있는 휴전선은 바로 그러한 세계사적 모순의 상징입니다.

  나는 이 모순의 극복을 희원합니다. 통일국가에서 자유와 평등, 그리고 공존․공영을 핵심 가치로 하는 민주주의가 만개하기를 희망합니다. 자유와 평등은 서로 모순적인 동시에 상호 보완적인 관계에 있습니다. 자유와 평등은 공영에 바탕을 두지 않으면 실현될 수 없고, 공영도 자유와 평등이 없으면 유지될 수 없습니다. 자유, 평등, 공영을 연결하는 고리가 공존입니다. 인간은 자유 없는 평등도, 평등 없는 자유도 원하지 않을 것이며, 공존을 전제로 하지 않고서는 자유와 평등을 누릴 수 있는 질서가 유지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공존 없이는 공영도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자유․평등․공존․공영의 원칙은 일국 내의 개인과 집단들 사이에서뿐만 아니라 국가 간에도 작동되어야 합니다. 국제사회에서 국가들이 상호 평등의 입장에서 서로의 이익을 위해 협력하고 공존․공영을 추구해야 합니다.

  나는 한반도가 바로 동북아 공동체의 주역이 되고, 또한 새로운 지구 협동 사회의 주역이 될 것을 희망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원대한 비전을 가지고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및 궁극적인 통일의 과업을 빈틈없이 준비해 나가야 합니다.